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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지균 감독이 25일 자택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사인이 자살이라고 하는데, 연탄가스에 의한 질식이 주요인이라고 해 난 좀 놀랬다. 내가 기억하는 곽지균 감독의 영화는 늘 연탄가스 냄새를 맡는 기분이었다. 그의 영화는 '고뇌'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캐릭터들이 늘 등장했다. <겨울나그네>를 어릴 적에 보고, (그땐 이 영화를 어떻게 봐야 할지 몰랐던 시기였지만) 한동안 입 맛이 돌아오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인생을 저렇게 처절하고 외롭게 사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영화 속에서 꼭 봐야하나라는 불편함도 있었지만, 그의 작품을 2~30분 정도 보고 나면, 어릴 적 겨울밤을 노곤하게 만들었던 연탄 기운이 들어온다.
영화 속 인물들의 눈물이 침잠된 분위기를 만든다. 사람들은 서로의 눈물을 확인하며, 인생의 아픔을 노래한다. <젊은 날의 초상>에서 <청춘>까지, 그리고 <사랑하니까 괜찮아>까지. 그는 사랑과 인생에 대한 어떤 신념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감독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대는 그를 영원히 <겨울나그네>의 곽지균으로만 생각해줄 수는 없었다. <청춘>에서 선보인 그가 강조하는 인간의 고뇌, 사랑에 대한 혼란스러운 감정들은, 지금 영화라는 것 자체를 가장 많이 보러오는 세대들에겐, 낯선 장면들이었을 것이다.
남은 것은 인간의 육신에 대한 이야기들. 그 안에서 '성장의 고통은 육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위한 속물적인 소재였다는 의심들. (이것은 영화를 하는 사람들에게 대중들이 늘 가볍게 보내는 의구심의 한 소절들이리라.)
그러나, 나는 가끔 사람들이 "시대에 뒤떨어진"이란 표현을 쓰는 영화들을 다시 볼 때마다, 과연 그것이 시대에 뒤떨어진 측면인 것일까라는 의문을 갖는다. 누군가는 이런 괴로운 사랑을 여전히 하고 있다. 다른 누군가는 이 침잠된 우울함 이 삶의 긍정을 위한 극한의 경험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랬다. 하지만 처음부터 곽지균의 영화에 대한 매력을 찾기는 쉽진 않았다. 그러나 <청춘>의 마지막 씬을 보고 나는 조금 감이 왔다. 이 사람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를.
일이 없어, 우울하다는 정말 우울한 유서를 남긴 고인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애도는, 그의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이다.
지금은 전혀 보이지 않는, 영화가 보여주는 사랑의 어떤 방식. 우리가 어떤 허전함으로 인해 그리워하는 사랑의 방식과 그것이 채우는 풍경이 있다면, 곽지균 감독의 영화는 조용히 한 자리를 차지할지도.
시도 외롭겠지만, 영화도 외롭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안타까운 죽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