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17962125552678.jpg)
몇 년 전, 움베르토 에코의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읽었을 때, 나는 어떤 흉내를 내고 싶었다. 이름하여,
'세상에서 내가 싫어하는 것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그 방법이 뭘까 생각하다가, 결국 가장 쉽고, 좋은 방법은 생각나는대로 글쓰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에코의 팬들에게 미안하지만, 조금 흉내를 내볼까 한다.
세상에서 내가 싫어하는 것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네이버 지식인에 물어보거나, 아니면 간단하게 뉴스 검색을 해서 알 수 있는 문제를, 커뮤니티 유저들에게 물어보는 사람을 싫어한다.(오늘 맨유 대 첼시 경기 몇 시에요? 같은.이런 사람들 대부분, 정말 그 문제를 모르기보다는, 그냥 관심받고 싶어서 그런 것이란, 내 못된 심보가 들어 있음은 물론이다.) 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그렇게 질문하는 사람의 글에 덧글로, "그냥 찾아보시면 될 것을, 뭘 이런 질문을 올립니까?"라고 까칠한 덧글을 다는 사람도 싫어한다.(질문한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무안을 주는 그 태도가 싫기 때문이다.)나는 그 질문에 답글이 안 달릴 때, 결국 자신의 글을 지워버리는 사람도 싫어한다.(일단 올렸으면 친절하게 누군가 답해줄 때까지 기다려도 될 텐데, 현대인 특유의 소심함을 보는 것 같아서 싫다.)
블로그에서
인기지수가 반영되어 있는 블로그를 개설하고 나서,방문자 수와 나머지 포인트들을 지웠다 살렸다 하는 사람이 싫다.
(그래서 나는 한때 내가 싫다. 혹은 순수한 의도로 그런 행동을 할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그 의도의 불순함을 파헤쳐보려고 괜한 프로이드 놀이를 하는 내가 더욱 싫다.)
카페에서
나는 카페에서 뻔히 자리가 몇 군데 비었는데도, 사람들 눈치 보면서 그냥 가자고 재촉하는 여자가 싫다. 그리고 그런 여자를 갈수록 많이 보게 되는 그 진부한 풍경도 싫다. 더군다나 그 진부한 풍경의 주인공이 가끔 나일때는 더욱 싫다. 나는 카페에서 정장을 입은 남자가 노트북으로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누군가가 전화했을 때, "음, 나 일중이야"라고 말하는 것이 싫다.(이건 예전에 내가 적은 에세이에 그 뜻이 있다.) 더군다나 그런 사람의 심리를 파헤쳐보고, 뒷담화하는 내가 더 싫을 때가 많다.
대학원에서
나는 오랜만에 간 학교 연구실에서 동료들을 만날 때, 내게 '졸업논문 잘 되가'라는 그 인사를 하는 동료가 제일 싫다. 대학원에서 그런 가식적인 우월함과 안정감을 확보하게 되는 인사가 '졸업논문 잘 되가'라는 것, 그리고 그 인사에 전염된 사람들은 헤어나올 수 없다는 게 더 싫다.
- 수업 시간에
수업 시간에 텍스트는 꼼꼼히 읽었다는 성실함을 확인받기 전에, 그 텍스트에 대한 집중적인 탐독은 접어두고, 찜찔방 대화로 바로 돌입하는 친구들의 태도가 싫다. 그들은 아감벤도 랑시에르도 하루면 다 파악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의기양양해 한다. 그러면서 그들의 불성실한 탐독 태도를, 성실함과 우월감으로 바꾸려 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그것을 간파한 교수의 꾸지람이다. 하지만, 그 꾸지람은 엄청난 고함과 침묵을 유도하는 무반응이 아니라, 겸연쩍은 미소, 활짝 핀 미소라는 데서 그 무서움을 빛을 발한다. 하지만, 대부분 어리석은 제자들은 그 미소를 자신에 대한 칭찬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혹은 그 미소의 뜻을 간파만 할 뿐, 다음에 더 날을 세운 채, 이론적 습득의 성실함 대신 자신의 지적 과시를 위한 연장을 다듬는다.
# 다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대학교 졸업 예정자인데, 자신의 높은 학점을 자랑하며, 스펙을 자랑하다가, 결국 이런 자랑 뒤에, 앞으로 교수가 되고 싶은데, 어느 대학원이 전도유망할까요라고 인터넷 커뮤니티 유저들에게 물어보는 멍청이가 싫다. (이런 것 보면, 공부머리와 인생머리는 따로 있는 듯 해서, 공부를 모욕하는 사람인 것 같아 더욱 싫다.)
- 지하철에서
나는 지하철에서 자신과 비슷해 보이는 나이 먹은 사람에게 젊은 놈들이 어디 이 자리를 앉냐며 큰 소리로 꾸짖는 노인들을 다 싫어한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그들을 관찰하며 책 읽기 좋아하는 내 집중된 태도를 방해하기 일쑤라 더 싫다. 다시 인터넷 커뮤니티 문제로 돌아가서, 그런 껄끄러운 문제를 올리면, "너희도 늙어봐라"는 투로 훈계하려는 '젊은 영감'들이 더 싫다. 그렇게 모범적인 친구들이 대낮에 마음에 드는 처자의 싸이 사진을 공개하면서, 한 번 가져와봤는데, 이 얼굴 평가해주세요?라고 그런 장면을 발견할 때, '젊은 영감'들에 대한 나의 증오는 배로 증가하는 것이 당연한 듯 하다.
- 연애에 관하여
연애할 때, 왜 이리 고기를 못굽냐며 나를 타박하던 사람들을 싫어한다. 그런 사람들의 첫 말이 "너 외아들이지?'일 때, 더욱 싫다. 몇 달을 주기로 연애 대상이 바뀌는 건 좋은데, 싸이월드에 상대방 사진을 듬뿍 올리는 남/여자를 싫어한다 투데이 이즈에 흐렸다가 맑았다가가 너무 자주 바뀌고, 그것이 연애 주기와 겹칠 때 더욱 싫어한다. 결정적으로 싸이월드 일촌공개도 아닌 전체공개로, 현재 사귀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라는 말을 자주 발산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 극장에서
영화볼 때, 머리가 큰 것은 용서가 되는 데, 내 뒤에서 계속 자신의 발 힘을 자랑해보려는 사람들을 정말 싫어한다. 차라리 그들이 발가락양말을 신고 꼼지락꼼지락 거리는 건 용서가 될 정도로, 그 쿵쿵거리는 묵직한 소리는 어느새 노트 긁는 소리와 함께 내가 가장 싫어하는 소리가 되었다.
- 연예인에게
열애설 터지면, 옛날과 다르다고, 당당모드를 밝히며, 애정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나는 그 애정을 안주 삼아 오락프로그램에 나와 다 밝히는 연예인을 세상에서 가장 멍청하다고 생각한다. 연예인에 대한 불만은 그것밖에 없다. 하지만 이 불만은 내가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 야구 좋아하는 사람에게
케이리그 서울 구장에 몇 만명 왔는데, 그 구장 내 관객들 중 많은 사람들이 무료 입장이라며, 축구 관중 많은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싫다.
- 축구 좋아하는 사람에게
한국에서 야구가 더 인기가 많아요? 축구가 더 인기가 많아요?라고 괜한 분란글 올리는 축구팬이 싫다.
- 소설을 오랜만에 읽는다는 인문사회과학 탐독자들에게
오랜만에 소설을 몰아서 읽는데, 소설 재미가 이렇게 좋은 것이었구나, 너무 과장된 감탄을 하는 "저는 사회과학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도장인사 하며, 그 재미를 늘어놓는 사람이 싫다. 소설을 모처럼 읽었는데, "요즘 한국 소설, 너무 밥맛이야.."라고 하는 사람도 싫다.
-휴대폰
휴대폰에 웃음 (^^)이모티콘 안 들어가 있다고, "무슨 일 있어요?'라고 묻는 사람을 정말 싫어한다. 그리고 웃음 표시 좀 넣으라고 구박하는 사람도 싫어한다. 그리고 말줄임표..(..)만 넣으면, 이상한 사람 기운 빠진 사람 취급하는 것도 싫어한다. 단체 문자 보내지 말라고, 협박 넣는 사람도 싫어한다. 가장 싫은 협박은,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것이다.
- 텔레비전에서
중요한 것은 이런 일상의 흔적들이 남녀탐구생활에 나오거나, 달인에 나올 때 더 싫다. (이 프로그램들은 일상의 발견을 점점 진부한 영역으로 변화시키는 개그로 만든다. 사람들은 공감과 진부함 사이에에서 웃음을 선택한다. 하지만 이 웃음의 기간은 그 프로그램들의 폐지를 유도하는 데 쓰일 수도 있다. 즉 그 프로그램들은 발견의 진부함을 역설하는 것이다.)
-나에게
결국 이 싫어함의 대상에 내가 가장 많이 들어가 있을 때가 가장 싫다. 쓰고 나니, 안 풀리는 논문이나 더 붙잡고 있을 걸, 머리 푼다는 핑계로 이 잡글에 열중한 내가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