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고려유사>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청소년을 위한 고려유사 박영수의 생생 우리 역사 시리즈 3
박영수 지음 / 살림Friends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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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창시절엔 역사를 외우는 과목이라 생각했다. 특히 역사적 사건을 연대순으로 늘어놓는 시험 문제가 종종 있어, 정확히 외우지 않으면 맞추기 어려웠다. 그때 외운 덕에 고려가 망한 1392년과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은 정확히 기억한다.^^  역사가 외우는 과목이 아니라는 것을 안 것은 우리 아이들을 키우면서 깨달았으니, 우리 아이들에겐 외우는 공부가 아닌 이야기로 역사공부를 하도록 책을 많이 읽혔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면 유사는 무엇일까?
내가 이해하기론 유사는 시대를 초월해 진솔하게 살아간 사람들이 이야기다. 사람들의 이야기 속엔 무릎을 치며 감탄할 지혜와 교훈도 있지만, 그보다는 인간들의 치부가 더 많이 담겨 있다. '청소년을 위한 고려유사'라는 이 책에서도 예외없이 인간들의 치부와 오욕칠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래서 '19금' 팻말을 붙이고 싶은 이야기도 많다. 사실 그런 이야기가 더 재밌게 읽히지만 말이다.^^ 

 

이 책은 편집이 썩 괜찮다. 고려를 초기, 중기, 말기로 나누어 37개 꼭지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역사를 배우면서 들었던 사건들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진위를 알려주고, 당시의 문화와 풍습을 세세하게 풀어내 책읽는 재미를 더한다. 한 꼭지가 끝날 때마다 '문화이야기'라는 보충 설명으로 사건의 배경이나 유래를 충분히 제공하여 역사적 지식을 더하는 건, 이 책의 최대 장점이다. 본문에 거론된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은 별표를 붙이고, 하단에 자세히 설명하고 삽화도 있어 역사를 아는 초등 고학년이 읽어도 좋은데 19금스런 이야기는 좀...ㅜㅜ

 
 

고려 전기는 궁예한테 의심받는 왕건을 구하기 위해, 붓을 떨어뜨려 기지를 발휘한 최응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고려 건국의 일등 공신들에게 성씨를 하사해 정치적 안정을 꾀한 왕건에 의해 성씨가 도입되었다는 이야기, 신숭겸과 같이 거론되는 복지겸은 내 고향 당진군 '면천'사람이라 면천 복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예종에 이어 외손자 인종에게 딸을 시집보내고도 스스로 왕이 되고 싶었던 이자겸은, 결국 유배지 정주(영광)에서 말린 조기를 '굴비'라 부르게 된 어원을 만들었다.

특별하게 인식된 '부전자전' 인물도 있다. 외교술로 전쟁없이 청천강에서 압록강까지 영토를 늘린 서희는, 불같은 광종에게 재치있는 풍자와 강직한 충언을 서슴치 않았던 서필의 아들이었고, 서희의 아들 서눌도 훗날 문하시중까지 지내 '3대 연속 정승'이라는 명성을 얻었다니 부전자전의 좋은 예를 발견했다. 반면 고려 중기 문신정권의 거두였던 최충헌의 아들 최우와 그 아들 최충이나 딸도 사람으로선 못할 짓을 했다. 또한 이의민이나 그 아들 이지영도 높은 지위에 올랐으나 부족한 그릇대로 아무 여자나 겁탈하고 못된 짓을 일삼은 걸 알 수 있다. 역시 부전자전이란 말은 부모가 한대로 그 자식도 행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시대를 잘 못 타고난 명문장가 이규보가 남긴 '글을 잘 쓰려면 피해야 할 격'은 현대에 적용해도 옳은 말씀이라 적어둔다.

   
  * 어려운 글자를 일부러 골라 쓴다면, 이는 함정을 파 놓고 장님을 인도하는 격이다. 
* 적합하지 않은 사연을 끌어다 쓴다면, 이는 강제로 남을 내게 따르게 하려는 격이다.
* 속된 말을 많이 쓴다면, 이는 시골 첨지가 모여 이야기 하는 것이다.
* 기피해야 할 말을 함부로 쓴다면, 이는 존귀함을 해치는 것이다.
(133쪽)
 
   

고려 중기부터 말기는 역시 나라가 기울어가는 조짐처럼 사람들이 하는 짓도 부끄럽다. 왕이나 신하를 막론하고 치부가 드러나서 자긍심을 가질만한 일이 별로 없지만, 혹세무민하던 일엄을 엄히 다스린 일, 나이 어린 아들을 위한 어버이 마음을 이해한 손변의 지혜로운 판결과 귀신을 물리친 안향, 도둑을 혼쭐 내 사람이 되게 한 이방실, 소의 혀를 짜른 범인을 찾아낸 이보림, 금덩이를 강물에 버린 형제의 우애 등은 읽으면서도 훈훈한 사례였다. 

고려가 힘을 잃어 원나라의 부마국으로 전락해 왕의 호칭에 '충'자를 붙여야 했던 굴욕은, 왕이 되기 전 볼모로 잡혀가 그들의 말과 문화를 익혔고, 몽골여자를 왕비로 맞아 들이는 혼인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왕이 되어서도 자주적인 정치를 하지 못했고, 오히려 현실을 외면하거나 동성애로 위로받는 상태에 이르러, 결국 고려의 기운이 다하여 새 왕조가 일어나게 되었다. 조혼과 중매제도를 불러왔던 공녀, 혼인과 결혼의 차이, 잔치에 국수를 먹는 이유, 목화씨는 붓두껍에 훔쳐온 게 아니라 그냥 얻어왔다는 것, 뜬금없이와 두문불출의 유래, 하여가의 만수산이 의미하는 것, 솜이불을 덥게 된 내력 등 알찬 내용이 많다. 따라서 이 책은 고려의 역사와 문화를 한 눈에 꿰뚫어 알 수 있고, 잘못 알던 역사 지식을 바로잡아 주는 보물창고 같은 책이다.

*이 책에서 발견한 오자
12쪽, 궁예는 그런 왕건을 아우처럼 여겼지만 점자 왕건의 힘이... 점차로 써야 되고
123쪽 두 임금 명종과 희종을 제 손으로 내쫒았으며 신동, 강종 두 임금을... 신종으로 해야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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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11-21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안그래도 19금스러운 얘기가 많다는 소문 들었지요..
주말은 어떻게 보내고 계신지요?

순오기 2009-11-22 00:32   좋아요 0 | URL
허~ 19금스럽다는 거 벌써 소문났군요.ㅋㅋ
주말은 방콕하며 서평단 책 읽고 쓰고~
곁에 살다 이사간 친구네 집들이도 다녀왔어요.^^

마노아 2009-11-21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책 소개예요! 고려유사라니, 제목도 마음에 듭니다. 고려 공부는 이 책으로 해야겠어요. ^^

순오기 2009-11-22 00:32   좋아요 0 | URL
고려공부는 확실하지요.
마노아님이야 새로울 게 없겠지만...^^

치유 2009-11-22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훌륭하게 정리가 되는데 전 왜 이 좋은 책을 읽고도 아무 소리도 못하겠는지요..제게는 더 특별하게 도움이 되고 좋은 책인데 말입니다..

순오기 2009-11-22 09:32   좋아요 0 | URL
바쁘신가 봅니다. 특별하게 도움이 되는 책이라니 리뷰가 궁금합니다~ 어여 써 보셔요.^^
 
<카본 다이어리 2015>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카본 다이어리 2015
새시 로이드 지음, 고정아 옮김 / 살림Friends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구드룬 파우제방/보물창고/2005)'이후, 이렇게 긴장감으로 몰입돼 읽은 책은 없었다.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이 인류의 참담한 종말을 얘기한다면, '카본 다이어리 2015'는 암담한 미래지만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희망을 얘기한다. 그래, 늦지 않았어. 모두 지구온난화로 인한 환경재앙을 인식했다면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면 되는 거다.  

왜, Carbon(탄소) 다이어리 2015인가? 
2007년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의 보고서는 '지구의 온도 상승이 2도를 넘지 않게 하려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2015년에 정점에 이르고 그 뒤로 차츰 감소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니까 소설이 채택한 2015년은 여기에 근거를 둔 설정이다. 
소설은 불과 6년 후인 2015년, 탄소배출 억제를 위한 통제에 돌입한 영국 런던에서 열여섯 살 로라 브라운이 쓴 1년의 일기다. 로라는 공부엔 별 관심없고 밴드(더티 에인절스)활동이 재밌는 평범한 여학생이다. 이웃 소년(래비)에게 관심 있고, 부모와 언니에겐 불만이 많은 사춘기 소녀일 뿐이다. 록밴드 음악으로 사회 비판을 쏟아내지만,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배급제의 내핍생활을 감당하기엔 벅찬 나이다.   

탄소카드 배급제란 무엇인가?
전 국민에게 의무적 탄소 가드를 발급하여 일인당 월간 한계를 넘지 않도록 관리 통제하는 것이다. '카드 한쪽 가장자리에 작은 네모 칸들이 세로로 배열되어, 녹색에서 붉은색으로 변하는 네모 칸들은 1년치 배급량을 쓸수록 하나 하나 사라지고, 마침내 붉은 색 칸만 남으면 어둠 속에 홀로 남아 울어야 한다'고 묘사했다. 일인당 200포인트로 제한된 카드제로 겪는 가족갈등과 기후변화에 따른 전세계의 재앙과 혼란은 점점 가중된다. 곧 우리에게 닥칠 재앙을 미리보는 느낌이라 충격과 긴장으로 뒷목이 뻣뻣했다.



탄소 카드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탄소카드가 없어 버스를 타지 못한 엄마는 말한다. "강인해져야 한다는 걸 알지만 우리 세대 때문에 너무 미안해, 너희 세대의 세상을 이렇게 엉망으로 만든 게 우리잖니."
가족 중 누구라도 할당량을 초과하면 다음에 쓸 양에서 공제되고, 탄소부 사람들이 나와 교육하고 관리에 들어간다. 가족은 공동운명체인데 언니 킴의 과다사용으로 비상이 걸렸다. 탄소배급제에 이어 단전과 단수는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만큼 참담하다. 사람들은 시위에 나서고 시민을 보호해야 할 경찰은 과잉진압한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우리가 도착한 순간부터, 경찰은 우리를 광장에 가두고 몇 시간 동안 한 사람도 나가지 못하게 했다. 들어오는 것도 나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경찰은 계속 돌아다니며 뻔뻔하게 사람들 사진을 찍고 이름과 주소를 적었다. 시간이 얼마간 흐른 뒤 나는 뭐랄까 내 몸 바깥으로 영혼이 빠져 나간 것처럼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경찰은 완전 잘못 하고 있다. 결찰은 우리를 보호라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지금 이 모습을 보라. 도대체 이들은 누구를 위해 봉사하는 거야?  
   



특히, 청춘은 사랑이 필요하다.
로라는 이웃집 소년 래비를 좋아하다가 서로 마음이 통해 사귄다. 그러나 길지 않은 만남, 래비는 공부하러 떠나고... 로라의 말을 모두 들어주던 애디는 로라를 좋아하지만 말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른 후 로라는 자신도 애디를 좋아한다는 걸 깨닫는다. 애디는 항상 로라의 곁을 지키는 든든한 친구다. 태풍으로 템즈강이 넘쳐 도시가 물에 잠긴 위기에서도 힘을 다해 아서 할아버지를 같이 구한다. 



가족사랑은 위기를 극복하는 힘이 된다.
로라 아빠는 실직했지만 새로 직장을 구하지 않고 실업수당으로 버틴다. 엄마의 차를 팔아 돼지와 닭을 사오고, 마당에 채소밭을 일구며 식량 자급자족을 목표로 한다. 런던을 떠나 시골로 이사가자고 하지만 로라나 가족은 떠날 생각이 없다. 엄마와 아빠는 서로 외면하고 침묵한다. 엄마가 집을 나가 생활하지만 도시가 침수됐을 땐, 소호에 가 있던 큰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역시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땐 가족사랑보다 더 큰 힘이 없다.  

서로 돕는 공동운명체, 우리는 희망이 있다.
탄소배급제 이후 긴박한 상황이 수시로 발생하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그럼에도 로라의 사랑과 가족이야기가 재미있게 펼쳐진다. 이웃의 아서 할아버지는 로라가 부모한테 말 할 수없는 고민을 들어주고 해결해 준다. 씩씩하고 당찬 그웬 선생님의 지휘로 침수된 상황에서도 사람들을 안전하게 구해낸다. 콜레라 발생으로 사람들이 죽어갈 때도 철저한 예방으로 도시를 지켜낸다. 사람들이 이기심을 버린다면 좀 더 멋진 세상을 만들 수 있다. 불법으로 부당 이득을 챙기는 트레이시 리더를 소심이 아줌마가 혼내준 것처럼, 모두 힘을 합하면 탄소배출을 줄이고 절제의 고통을 감당할 희망이 있다.

"트레이시 리더, 법은 당신에게 손을 못 댈지 모르지만 우린 달라요. 이제 그 세계에서 손을 씻거나 아니면 사라져!" 그야말로 올해 최고의 명장면이었다.(408쪽) 

*후속작 '카본다이어리 2017'도 나온다니 기대만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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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하늘 2009-11-09 0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까지 첨부해주시는 열정~~~^^

순오기 2009-11-09 11:51   좋아요 0 | URL
이거 한번에 주르르 쓰지 못하고 어제 종일 나누어서 쓰느라 나도 뭔 소린지... 그러느라 처음 의도와 다르게 조각내 쓰게 됐어요.ㅜㅜ

꿈꾸는섬 2009-11-09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단하셔요. 전 그림책 아니면 사진 첨부 귀찮아하거든요.^^

순오기 2009-11-09 11:52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소설이면서도 자료나 삽화가 있어 이해하기 좋았어요.^^
 
유진과 유진 푸른도서관 9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우리시대 최고의 동화작가로 꼽히는 이금이 작가의 청소년소설 '유진과 유진'은 2004년 초판부터 큰 감동을 준 책이다. '책따세 추천도서'와 '한 도서관 한 책읽기 선정 도서'로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다. 작가의 자녀들이 커가는 대로 작품 속 주인공도 성장했고, 유치원에서 초,중.고까지 망라한 작품으로 독자도 함께 키워갔다. 작가는 청소년기에 읽을만한 우리시대 작품이 많지 않아서 작가로서 책임감을 느낀다며 '유진과 유진'은 성폭력이란 소재로 '상처'를 얘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학부모독서회 활동을 하면서 이 책은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과 더불어 두 번이나 토론도서로 선정할 만큼 엄마들의 호응이 좋았던 책이다.    

'유진과 유진'은 사회적 이슈가 강한 아동 성폭력의 상처를 얘기한다. 같은 유치원을 다녔던 동명이인의 유진이 중학교에서 만나 잊었던 그때의 상처로 겪는 성장통을 그렸다. 생기발랄한 십대들의 정서와 심리를 세밀하게 그리며 청소년의 일상을 보여 준다. 작가의 감칠맛 나는 문장에 ‘어쩜 이리 손에 잡힐 듯 묘사했을까?’ 감탄하며 밑줄을 그었고, 요즘 십대들의 문화와 감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중요한 건 상처가 건드려졌을 때 유진과 유진이 어떻게 반응했는지가 중요하다.

  

노란표지에 그려진 곧게 자란 큰 유진 나무와 구부러져 자란 작은 유진 나무를 교차시켜 한 챕터씩 풀어간다. 두 유진은 상처의 봉합이 다른 만큼 그 후유증도 다르다. 성폭력이 한 인간과 가정에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는지 그 폐해가 절절히 감지되고, 부모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에 따라 아이들이 달라지는 것도 알 수 있다.  

큰 유진의 부모는 '네 잘못이 아니야' 위로하며 상처를 치유했다. 상처를 극복한 천방지축 쾌활한 소녀 큰 유진은 경제적으론 넉넉하지 않아도 아웅다웅 다투며 가족과 행복하게 지낸다. 별것도 아닌 일로 동생과 싸우고 자기 핸드폰을 하러 가자는 줄 알고 좋았는데, 아빠의 헌 핸드폰을 쓰라는 말에 상처받는 예민한 십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도 큰 유진은 속마음을 알아주는 소라에게 모든 걸 얘기하며 스트레스를 풀고 위로받는다. 전교 1등 작은 유진과 동명이인이라 본의 아니게 공부 잘하는 범생이로 오해받지만, 사귀는 남자친구 건우에게 솔직히 고백한다. 호탕하게 받아들인 건우는 참 괜찮은 아이였는데, 여성 운동을 한다는 건우 엄마의 이중성은 부끄럽지만 우리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인정해야 했다. 
 

작은 유진의 부모는 억지로 봉합하고 기억에서 지우기를 원했다. 작은 유진의 부모가 자신들의 체면 때문에 서둘러 덮은 게 아닐까 의심했지만, 그들도 유진을 사랑함에는 부족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도 미숙한 부모였고, 그 사랑을 표현함에 서툴렀던 것이다. 가난해서 좋은 환경을 줄 수 없었다고 생각한 그들은, 부자인 부모님께 숙이고 들어가 아이에게 최고의 환경을 만들어주면 되는 줄 생각했다. 하지만 유진은 늘 싸늘한 눈빛으로 “깨진 그릇을 무엇에다 쓰나?” 끌끌 혀를 차는 할머니로 인해, 자신에게 뭔가 큰 잘못이 있는 거라 생각하며 주눅 들어 그림자처럼 지냈다.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없었던 작은 유진은 친부모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 돼야만 인정받고 생존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하루하루를 버겁게 살았다. 어느 누구에게도 사랑받고 이해받지 못한 작은 유진의 아픔이 절절하게 다가왔다. 가출한 유진을 데리러 왔던 엄마는, 상처를 치료하기보다 감추고 덮으려고만 했던 잘못을 고백한다. 유진은 엄마의 눈물과 그 말이 마음 속으로 스며들어 비로소 '여기저기 패이고 긁히고 멍이든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것'을 느낀다. 
 


'나무의 상처도 옹이가 박히면서 커 나가듯 자신의 아픔과 상처도 알고 이겨내야 튼실한 나무가 된다'작은 유진 외할머니 말씀에 공감한다. 나무가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 옹이가 박히듯이 아이들도 옹이가 박히며 커간다. 오늘도 여전히 진행중인 성폭력의 사회적 책임과, 그 상처가 아물도록 함께 위로하고 치유해야 될 일임을 깨닫게 한다. 또한 부모의  자녀 사랑법도 점검할 기회를 준 귀중한 책이었다. 우리 삼남매와 같이 읽고 또 읽으며 오래도록 감동의 물결이 출렁였고, 엄마의 언행이 아이들에게 상처로 남지 않도록 다짐하는 계기도 주었다. 


성폭력과 성추행은 지금 이 시간에도 도처에서 일어나는 현재진행형이다. 나영이 사건을 보면서 우리는 얼마나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분노를 쏟아냈는가? 이제는 우리 자녀들을 지키기 위해 사회적인 책임을 가져야 한다. 내 아이가 아니라고 절대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우리 큰딸 친구가 초등학교 때 학원 강사에게 성추행(그땐 성추행인줄도 몰랐고 그냥 기분이 안좋은-엄마에게 이야기 했더니 엄마는 아무 말 없이 학원수강을 끊었단다)당한 기억이 남아 대학생이 된 지금도 이성교제에 두려움을 갖는단다. 그래서 큰딸이 이 책 애기를 하면서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고, 후에 이 책을 빌려 주었다. 성폭력이나 성추행은 혹 어려서 당시엔 잘 모른다 해도, 언제 어떻게 그 상처가 덧날지 알 수 없고 그로 인한 폐해도 가늠할 수 없기에 더 무섭다.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라면 자녀와 같이 읽고 많은 대화를 나누기에 좋을 책이다. 부모들이 올바른 성의식을 가진 자녀로 키워내야 성폭력 문제도 줄어들 것이다. '유진과 유진'을 읽은 독자라면 아이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하는, 성숙한 부모 되기에 한 걸음 내딛은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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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09-11-08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제가 너무 좋아하는 책이에요. 유진과 유진 제목부터 너무 좋았는데 그 내용은 정말 청소년, 부모 모두가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순오기 2009-11-08 21:47   좋아요 0 | URL
참 아픈 이야기지만 꼭 봐야 할 책이지요.

다락방 2009-11-08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다가 지하철안에서 눈물 흘리던 기억이 나요, 순오기님.

순오기 2009-11-08 21:48   좋아요 0 | URL
세번을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눈물났어요.

같은하늘 2009-11-09 0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구성애씨가 아침 프로에 나와 자신의 얘기를 담담하게 하는 모습을 보고 부모님이 대단하다 생각했어요. 큰유진의 부모님도 대단하세요.

순오기 2009-11-09 11:55   좋아요 0 | URL
구성애씨 이야긴 우리지역에 강연왔을 때 직접 들었어요.
부모님이 그렇게 하기 쉽지 않지요.
 
<아메리카를 누가 처음 발견했을까>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아메리카를 누가 처음 발견했을까?
러셀 프리드먼 지음, 강미경 옮김 / 두레아이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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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0년 전인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최초로 발견했다고? Oh No~오류를 바로 잡는 책이다. 딱딱하고 재미없을 거란 선입견을 갖고 읽기 시작했지만, 너무 재밌어 중.고딩 남매에게도 꼭 읽어보라고 권했다. 지리에 별 관심 없는 아줌마가 읽어도 재미있으니까.^^ 뉴베리상 수상 작가인 러셀 프리드먼은 치밀한 조사로 쉽고 친절하게 기술해 초등 고학년도 읽을 수 있겠지만, 세계사를 배우는 중학생에게 딱 좋을 책이다. 지도와 자료 사진이 많아 금세 읽을 수 있고, 몰랐던 지식을 충전하는 즐거움도 누린다. 제목이나 그림을 설명한 글씨체가 독특해서 읽기가 좀 어려운 것 빼고는 다 만족스럽다.^^   

콜럼버스는 1484년에 서쪽으로 항해해 중국까지 가려는 계획을 세우고, 포르투칼 왕 주왕2세의 지원을 기대했으나 거절당했다. 스페인의 페르난도 국왕과 이사벨 왕비도 처음엔 거절했으나 6년을 허송세월한 콜럼버스가 프랑스로 도움을 청하러 가자 이권을 빼앗길까봐 지원을 승낙했다. 콜럼버스는 대양의 제독이라는 세습관직과 항해에서 가져오는 부의 1/10을 가질 권리를 약속받고, 1492년 8월 3일 니냐호, 핀타호, 산타마리아호에 90명의 선원과 1년치 식량을 싣고 출항했다. 그는 항해를 거부하는 선원들에게 위협을 느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달려 5주 후, 10월 12일 육지를 발견했다. 콜럼버스는 두 차례의 항해를 더 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항해자로는 용맹하고 모험심이 강했지만 통치자로는 부족했던 듯하다.   

콜럼버스는 1506년 5월 20일 57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자신이 아시아로 가는 새로운 항로를 발견했으며, 자신이 탐험했던 섬들 바로 옆에 중국과 일본이 있다고 굳게 믿었다니 좀 안타깝다. 그가 죽은 후 제도 제작자 마르틴 발트제뮐러에 의해 이곳이 아시아의 일부가 아니라 따로 떨어진 대륙이라는 사실에 맨 처음 주목한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라고 이름 붙였다. 그래도 아메리카를 '발견'한 공은 콜럼버스에게 돌아갔다니 그도 다행이다.^^  



당시 세계 최고의 해상 강국이었던 중국의 정화(鄭和)제독은 1405년부터 1433년까지 일곱 차례나 항해했다. 인도의 항구와 아라비안 반도, 아프리카 해안까지 누비며 인도, 아랍, 아프리카 상인들과 교역했다. 수많은 보물을 실어 날랐기 때문에 보물선이란 뜻으로 '보선'이라 불렸다. 정화의 호가 삼보(三寶)라서 중국 발음 신바오 불렸는데, 신드바드 이야기로 발전해 서양에서도 전설이 되었다고 한다. 영국 해군 잠수함 함장 출신이 '개빈 멘지스'는 정화의 중국 선원들이 콜럼버스보다 70년 먼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고, 마젤란보다 100년 먼저 세계를 일주했다고 주장한다. 어떤 주장에 구체적인 자료나 증거물이 제시되지 않으면 인정받기 어렵지만, 그가 인용하는 난파선과 유물 일부는 중국인이 남긴 흔적과 증거로 인정된다. 일부 학자들도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을 뿐, 아시아 사람들이 콜럼버스보다 먼저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디뎠을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는다고 한다. 



노르웨이 해안에서 농사를 짓던 바이킹의 후예들은 '빈란드 무용담'을 전한다. 레이프 에릭손은 그린란드에서 남쪽으로 항해하면서 발견한 뉴펀들랜드 남단(빈란드)에 이르러 정착촌을 건설했다. 헬게 잉스타드와 앤 스타인 부부가 1961년 뉴펀들랜드 정착촌에서 발굴한 뚜렷한 증거물이, 노르웨이 바이킹 후예들이 콜럼버스보다 500년 먼저 아메리카에 상륙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콜럼버스의 뒤를 이은 유럽의 탐험가들은 아메리카를 신세계로 생각했지만, 이미 수천 년 동안 거기서 살고 있는 수천만 명의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겐 고향이었다. 콜럼버스는 그곳이 인도라고 생각해 원주민을 '인디언'이라 불렀지만 그들은 부족공동체를 이루어 농사를 짓고 살았다. 유럽인들이 들어오기 전부터 아메리카에서는 고도의 문명이 일어났다 스러지기를 반복했고, 아프리카인이 유럽보다 먼저 아메리카를 발견했으리라 추측한다.  

따라서 아메리카는 1492년에 콜럼버스가 발견한 신대륙이 아니고, 이미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육로나 뱃길로 찾아와 수천 년을 생활터전으로 가꿔간 사람들의 땅이다. 하지만 학자들의 연구와 발굴되는 자료를 통해 맨 처음 주민들이 들어와 살게 된 시기와 경위를 밝히는 일은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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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11-01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교육방송 테마기행 아이슬란드 편에서는 아이슬란드 박물관을 보여주는데 자신들의 조상인 바이킹이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해서 인디언들을 무찌르는 그림을 그려 놓은 전시실이 있었어요.자신들이 콜럼버스보다 먼저 정복?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민족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더군요.

순오기 2009-11-02 08:32   좋아요 0 | URL
교육방송 테마기행~ 몇 번 봤는데 요건 못 봤네요.
흐흐~ 바이킹 후예들이야 콜럼버스보다 먼저 발견했다는 것을 만천하에 홍보하고 싶겠죠.^^
 
선생님과 함께 읽는 우리수필 담쟁이 교실 7
이상 외 엮음 / 실천문학사 / 2000년 8월
평점 :
품절


중학교 2학년 민경이의 감상문

교육청에서 열리는 논술대회에 학년대표로 뽑혀서 읽어야 하는 책 들중 하나다. 여러 작가들의 수필을 모아놓은 모음집인데, 방정환, 백석, 정지용, 박완서, 문익환, 이태준님 등 내가 알고 있었던 분 뿐들 아니라 모르던 분들도 많이 소개되었다. 다양한 주제와 문체로 수필의 매력을 보여주었다.  

오래된 책이라 글씨가 작고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한 번에 많은 쪽수를 읽기는 힘들다. 여기 나온 수필들은 엄선된 것이니만큼 그 하나하나의 개성이 강해서 이야기가 오래 머릿속에 남는다. 수필은 그 작가에 대해 뭔가 알아가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신영복씨의 순수한 어린 친구들과 함께 한 '청구회 추억'은 전에 책으로 보았던 것이라 더 반가웠다. 유달영씨의 누에를 먹으면 재주가 좋아진다는 말을 믿고 누에 5마리를 삼킨 소년의 사투가 그려져 있는 '누에와 천재'도 교과서(중2국어)에서 본 작품이었다. 예전 읽을 때도 누에가 입 안에서 몸부림치고 식도로 내려가는게 너무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어 꼭 내가 삼키고 있는 듯한 징그러움이 들고, 한 편으로는 소년이 굉장해 보이기도 했다. 재주가 좋아진다는 말에 누에를 삼키다니, 순수한 건지 어리석은 건지 잘 모르겠다. 

오늘 읽은 건 장날, 동주 형의 추억, 눈물의 골짜기를 떠나며, 권금성의 잣나무 등이었다. 장날은 어렸을 적 장돌배기마냥 돌아다녔던 장날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 문익환 목사님이 쓰신 동주 형의 추억은 따뜻하고 존경스러운 분이었던 윤동주씨에 대한 추억을 나타낸 것이다. 눈물의 골짜기를 떠나며는 실제로 스님이신 김성동씨가 쓰셔서 조금 놀랐다. 어려운 일을 겪어 떠나온 욕망과 번뇌의 도시 서울을, 이제 다시 문학을 더 가까이 하기 위해 돌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이 불교의 내용과 깊게 연관해서 쓰셨다. 

'낙동강이여, 언제나 다시 맑아지려나'와 '민물고기'는 모두 생태계 보존의 중요성, 그 중에서도 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두 분은 모두 강에서 물고기를 잡아가며 어린시절을 보냈던 기억이 있으셔서 더더욱 현재의 더러운 강과 수영장에나 가야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안쓰러워 하고 있다. 강에서 물고기를 잡아서 요리를 해 먹는 기분은 대체 무엇일까? 나 또한 그걸 겪어보지 못한 나이라 한 번 시간을 잊고 친구들과 강에서 물놀이를 하고 싶었다.  

'빵을 가지러 가는 네 손을 낮추어라'에서는 음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거기서 나온 '집'이라는 시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상이 차려졌다, 아들아.'로 시작하는 이 시는 빵이 평범한 빵이 아니라 심지어는 신성해보이기까지 한다. 따뜻한 어조로 가난한 자와, 또 신성한 빵에 대해 조용조용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다. 

심훈씨가 3.1운동으로 감옥에 갇혀있을 때 어머니꼐 쓴 편지인 '고랑을 차고 용수는 썼을 망정'은 우리 교과서에서 '옥중에서 올리는 글월'로 소개된 글이라 읽다가 반가웠다. 확실히 교과서에서 생략된 부분들이 더 있었는데, 나는 원본이 더 마음에 들었다. 이 책에 실린 작가분들이 거의 다 90년대의 분들이다 보니 일제강점기와 어려웠던 시절에 대한 것들이 많이 나왔다. 내가 몰랐던 시대와 몰랐던 사건들에 대해 각자의 개성넘치는 문체로 읽어가다 보면 그 사건들이 정말로 생생해지는 것 같다. 역시 수필은 좋은 글이다.

드디어 다 읽고 책장을 덮었을 때는 정말 기뻤다. 교욱청에서 열리는 논술대회를 위해 열심히 읽은 책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이 많은 수필 중에서 하나만 낼 것 같아서 조금 안타깝다. 내가 그렇게 열심히 읽었는데! 아주 짧게 문제 지문 하나로만 나올 것을 생각하면 정말 싫다. 어쨌거나 평소에 접해보지 못했던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니까.    


10월 17일 실시된 논술대회는, 애석하게도 이 책에선 하나도 출제되지 않았다고 약간 분노했지만... 필독 도서가 아니었으면 언제 이런 빛나는 수필을 읽어보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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