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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함께 읽는 우리수필 ㅣ 담쟁이 교실 7
이상 외 엮음 / 실천문학사 / 2000년 8월
평점 :
품절
중학교 2학년 민경이의 감상문
교육청에서 열리는 논술대회에 학년대표로 뽑혀서 읽어야 하는 책 들중 하나다. 여러 작가들의 수필을 모아놓은 모음집인데, 방정환, 백석, 정지용, 박완서, 문익환, 이태준님 등 내가 알고 있었던 분 뿐들 아니라 모르던 분들도 많이 소개되었다. 다양한 주제와 문체로 수필의 매력을 보여주었다.
오래된 책이라 글씨가 작고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한 번에 많은 쪽수를 읽기는 힘들다. 여기 나온 수필들은 엄선된 것이니만큼 그 하나하나의 개성이 강해서 이야기가 오래 머릿속에 남는다. 수필은 그 작가에 대해 뭔가 알아가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신영복씨의 순수한 어린 친구들과 함께 한 '청구회 추억'은 전에 책으로 보았던 것이라 더 반가웠다. 유달영씨의 누에를 먹으면 재주가 좋아진다는 말을 믿고 누에 5마리를 삼킨 소년의 사투가 그려져 있는 '누에와 천재'도 교과서(중2국어)에서 본 작품이었다. 예전 읽을 때도 누에가 입 안에서 몸부림치고 식도로 내려가는게 너무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어 꼭 내가 삼키고 있는 듯한 징그러움이 들고, 한 편으로는 소년이 굉장해 보이기도 했다. 재주가 좋아진다는 말에 누에를 삼키다니, 순수한 건지 어리석은 건지 잘 모르겠다.
오늘 읽은 건 장날, 동주 형의 추억, 눈물의 골짜기를 떠나며, 권금성의 잣나무 등이었다. 장날은 어렸을 적 장돌배기마냥 돌아다녔던 장날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 문익환 목사님이 쓰신 동주 형의 추억은 따뜻하고 존경스러운 분이었던 윤동주씨에 대한 추억을 나타낸 것이다. 눈물의 골짜기를 떠나며는 실제로 스님이신 김성동씨가 쓰셔서 조금 놀랐다. 어려운 일을 겪어 떠나온 욕망과 번뇌의 도시 서울을, 이제 다시 문학을 더 가까이 하기 위해 돌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이 불교의 내용과 깊게 연관해서 쓰셨다.
'낙동강이여, 언제나 다시 맑아지려나'와 '민물고기'는 모두 생태계 보존의 중요성, 그 중에서도 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두 분은 모두 강에서 물고기를 잡아가며 어린시절을 보냈던 기억이 있으셔서 더더욱 현재의 더러운 강과 수영장에나 가야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안쓰러워 하고 있다. 강에서 물고기를 잡아서 요리를 해 먹는 기분은 대체 무엇일까? 나 또한 그걸 겪어보지 못한 나이라 한 번 시간을 잊고 친구들과 강에서 물놀이를 하고 싶었다.
'빵을 가지러 가는 네 손을 낮추어라'에서는 음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거기서 나온 '집'이라는 시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상이 차려졌다, 아들아.'로 시작하는 이 시는 빵이 평범한 빵이 아니라 심지어는 신성해보이기까지 한다. 따뜻한 어조로 가난한 자와, 또 신성한 빵에 대해 조용조용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다.
심훈씨가 3.1운동으로 감옥에 갇혀있을 때 어머니꼐 쓴 편지인 '고랑을 차고 용수는 썼을 망정'은 우리 교과서에서 '옥중에서 올리는 글월'로 소개된 글이라 읽다가 반가웠다. 확실히 교과서에서 생략된 부분들이 더 있었는데, 나는 원본이 더 마음에 들었다. 이 책에 실린 작가분들이 거의 다 90년대의 분들이다 보니 일제강점기와 어려웠던 시절에 대한 것들이 많이 나왔다. 내가 몰랐던 시대와 몰랐던 사건들에 대해 각자의 개성넘치는 문체로 읽어가다 보면 그 사건들이 정말로 생생해지는 것 같다. 역시 수필은 좋은 글이다.
드디어 다 읽고 책장을 덮었을 때는 정말 기뻤다. 교욱청에서 열리는 논술대회를 위해 열심히 읽은 책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이 많은 수필 중에서 하나만 낼 것 같아서 조금 안타깝다. 내가 그렇게 열심히 읽었는데! 아주 짧게 문제 지문 하나로만 나올 것을 생각하면 정말 싫다. 어쨌거나 평소에 접해보지 못했던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니까.
10월 17일 실시된 논술대회는, 애석하게도 이 책에선 하나도 출제되지 않았다고 약간 분노했지만... 필독 도서가 아니었으면 언제 이런 빛나는 수필을 읽어보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