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보 생활 지침서 메타포 7
캐롤린 매클러 지음, 이순미 옮김 / 메타포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표지는 '뚱보 생활 지침서'라는 제목과는 부조화스러운 에로틱한 느낌에 도발적이다. 표지만 본다면 청소년 자녀에게 권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느낌으로 책을 펴들어서 첫부분 보여지는 버지니아와 프로기의 애정행각이 거슬렸는지도 모른다. 나도 한때는, 아니 지금도 성적 묘사가 나오는 부분은 되짚어 읽으면서도, 10대 자녀를 둔 학부모 마인드가 작용했는지 처음엔 아이들에게 권하지 않았다. ^^

60여쪽 읽다가 중단해서 중1 막내가 먼저 읽었는데 은근히 걱정되었다. ^^ 하지만 막내는 "미국 애들 정말 조숙한 것 같아. 나보다 겨우 한 살 많은 열다섯인데 이렇게 진한 애정행각을 벌이다니 놀라워! 그래도, 버지니아가 자신을 사랑하고 당당하게 펼쳐나가는 결말이 좋았어!" 라고 소감을 피력했다. 이로써 엄마의 염려는 기우였음이 확인되었다. 역시 청소년을 위한 메타포의 일곱 번째 책 '뚱보 생활 지침서'는 10대의 공감을 얻으며 좋은 책으로 자리매김 할거라는 믿음이 생겼고, 처음 시작과는 다르게 손에서 놓지 않고 재미있게 읽었다.

주인공 버지니아는 열다섯 살 고등학교 1학년이다. 우리 큰딸도 고등학교 1학년때 중학교보다 넓은 학군에서 만난, 반 친구들의 서슴없는 애정표현과 자랑하듯 성경험을 얘기하는데 충격을 받았다. 아이는 역겨워하며 그런 이야기를 버젓이 하는 것에 놀랐다. 내가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미국 고등학생들의 애정표현 수위에 충격 받았던 느낌 그대로였다. 그 딸이 이제 대학생이 되었고 방학을 맞아 돌아왔기에 '뚱보생활 지침서'에 묘사된 청소년들의 성과, 그들의 애정행각, 애정표현 수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일독을 권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청소년 성문제만 다룬 건 아니고, 자기 인생의 당당한 주인공이 되는 정체성 찾기다.

이 책에서 새삼 놀란 것은 버지니아 부모가 자녀보다 부부의 삶에 우선한다는 것과, 그러면서 자녀에겐 부모의 결정에 따르도록 요구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사회적인 규정과 부모의 뜻을 거부하던 청소년기를 거쳤으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그걸 요구하는 엄마가 되었다는 것이다. 청소년 심리학자인 버지니아 엄마는 완벽한 가정으로 보이는데 신경 쓰면서, 정작 자녀들의 소리엔 귀기울이지 않았다. 엄마가 제시한대로 따르도록 요구해 큰딸과 마찰을 일으켰고, 자랑스러웠던 아들은 술에 취해 여학생을 강간한다. 부모가 쌓은 성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 하지만 부모는 그 소리에 정직하지 못하고 없었던 일처럼 가장하고 살기 바란다. 우상이었던 오빠 행동에 충격받은 버지니아를 배려할 여유는 없었다.

다이어트를 하던 버지니아는 미친듯 먹어댔고 자신을 학대한다. 오빠 바이런이나 엄마 아빠 누구도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이나 배려는 보이지 않는다. 한 여자의 인생을 망쳐 놓은 오빠를 용서할 수 없었던 버지니아는, 섀넌 가족의 초대로 시애틀에 가서야 상처를 위로 받는다. 오빠가 애니 밀스에게 한 짓이 자기에게 한 짓이 아니라는 것과, 오빠는 완벽하지도 않았고 항상 자기를 무시했다고 깨닫는다. 시애틀에서 섀넌과 자유롭게 지낸 후, 버지니아는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 망설이던 애니 밀스를 만나 오빠의 잘못을 사과하고, 드디어 남들의 규정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깨닫는다. 애니 밀스의 말을 듣고 자기 삶의 해답을 얻은 것이다.

   
  바이런이 한 일은 끔찍했어. 그래서 학교 당국에 보고했던 거야, 난 바이런이 다른 여자에게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안 하길 바라거든. 하지만 끔찍한 경험을 했다고 해서 그만큼 내 인생이 망가지지는 않았어. 그가 나를 지배하게 두진 않을 거야. (중략)  앞으로 미래의 내 인생은 내게 달려 있어. 사람들은 스스로 희생자가 될 수도 있고, 자기 자신에게 선택권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해.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거야. 내가 선택권을 갖는 것.  
   

버지니아는 뚱보지침으로 '다이어트 조언 목록'을 적던 것을 멈추고, 비록 뚱보일지라도 '쉬리브스' 가족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행동한다. 시애틀에서 눈썹에 피어싱도 하고 옷도 제맘대로 고르는 버지니아가 못마땅하던 엄마도 결국 인정한다. 학교 생활도 재미없고 친구로부터 자신을 격리하던 버지니아는, 웹사이트를 추진하며 친구들과 소통하는 중심인물이 된다. 정체성을 회복하고 자기 인생의 당당한 주인으로 사는 버지니아에게 박수칠 수 있어 좋았다. 우리 청소년들도 남의 시선이나 규정에 매이지 말고, 뚱보라도 상관없이 자신을 사랑하고 당당하라는 '뚱보 생활 지침서'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면 좋겠다.

버지니아가 적었던 다이어트 조언 목록은 '뚱보 아줌마'인 내겐 여전히 유효하다. 사람들의 이목이 아닌 내 건강을 위해 버지니아의 뚱보지침을 기억해야 겠다.^^

다이어트 조언 #1 배가 고플 때마다 위가 가득 차도록 생수를 마신다.
다이어트 조언 #2 한 입 먹을 때마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한 가장 오랫동안 입 안에 넣고 씹는다
다이어트 조언 #3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매니큐어를 집어라. 바르는 동안 먹겠다는 갈망이 사라질 것이다.
다이어트 조언 #4 몸의 매력 없는 부분을 운동하기 위한 독창적인 방법을 찾아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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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희망꿈 2008-07-01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제 읽기 시작했어요.
생각보다 괜찮은 책 같아요.
너무 자세한 묘사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죠.
저도 뚱보지침 꼭~ 기억하고 실천 해야겠는데요.
저도 빨리 읽어야겠어요.
긴 서평 미리 잘 읽고갑니다.

순오기 2008-07-01 12:07   좋아요 0 | URL
긴 서평 읽느라 애쓰셨어요. 줄거리 소개를 안해야 짧아지는데 말이죠.ㅠㅠ
갈수록 잘 안된다 말에요.ㅋㅋ

다락방 2008-07-03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맙소사. 저도 이거 읽어야 겠어요!!
순오기님이 읽으신 책을 아들딸들도 함께 읽는다니. 정말 멋진 가족이예요!

순오기 2008-07-04 01:03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이 끌린 이유가 무얼지 궁금해졌어요.
오히려 애들이 읽는 책을 제가 미처 못 읽지요~~ ㅜㅜ
 
골목길이 끝나는 곳 (양장)
셸 실버스타인 글. 그림, 이순미 옮김 / 보물창고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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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따끈따끈한 신간을 읽고 난 후의 반응은 두 가지다. 감동으로 당장 리뷰를 쓰고 싶은 책과, 좀 숙성시켜야 정리가 되는 책으로 나뉜다. <골목길이 끝나는 곳>은 후자에 속했다. 찬찬히 읽고 다시 한번 더 읽었는데도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다 아직 덜 숙성되었지만 솔직한 나의 감상을 남긴다.

쉘 실버스타인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각인된 작가라 그의 작품을 오래 기다렸다. 2007년 <다락방의 불빛>을 기다릴때는 애인을 기다리는 심정이었다. 반짝이는 재치와 유머, 기발한 상상력과 엉뚱함에 감탄도 했다. 어떤 작품은 나를 반성하게 했고 교훈도 주었다. 오랫동안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 '코뿔소 한마리 싸게 사세요' 밖에 보지 못했기에 참신함이 돋보여 높은 점수를 주었다.

두번째로 만난 <골목길이 끝나는 곳>은 다락방보다 황당 엽기의 수위가 더 높다고 읽혀졌다. 어린이들에겐 너무 버겁고, 청소년들도 쉽게 이해할 책은 아닌 듯하다. 순수한 어린이 마음을 담은 작품과 가볍게 웃을 수 있는 것들도 많지만,  오우~ 이 작품은 의미가 심오하고 좋은데! 북다트 한 통을 다 꽂아가며 읽었다. 그런데, 문제는 양이 너무 많다. 127여편이나 되는 작품을 읽고 나니 과식으로 체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주 황당 엽기스런 난해한 작품은, '음~ 이게 뭔소리야?' 주춤 생각에 빠지게 한 작품도 많지만, 집중하여 현자의 지혜를 발견하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이 책을 어린이용과 청소년용으로 나누어, 좀 더 얇은 책으로 만들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고 자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우화 같고 시같은 책을 만난다면 기꺼이 환호했을 것이다. 어린이들이 이해할 순수한 작품도 많으니까, 얇은 시집이나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그림책으로 만들었다면 열광했을 것 같다. 이런 기막힌 발상을 하는 그가 존경스럽고, 자꾸 뒤적일때마다 새로운 발견을 하는 묘미도 있다. 순수하고 재치 넘치는 작품 감상은 보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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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2008-06-07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대학다닐때 열광했던 책이었는데 순오기님도 마음에 든다니 좋으네요. 어린이에게는 무리수가 있지만 어린이보다 청소년부터 라는 게 더 맞을거 같아요. 그때는 이 책의 내용을 그림으로 글로 옮겨 친구들에게 편지로 보내는 즐거움을 갖고 있었어요 지금은 책꽂이에 꽂아놓고 제목만 스쳐가지만 가끔씩 누군가 이 책 이야기를 하면 너무 반가워요. 이 책에 대한 가슴따뜻하게 행복해지는 감정을 느낄수 있어서 그것을 누군가도 같이 공유할수 있다는게 참 반가워요

순오기 2008-06-07 19:19   좋아요 0 | URL
아~ 전에 출판됐던 책이군요. 어린이에게 좋은 작품과 청소년용과 나누었으면 참 좋았을 것 같아요. 저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A4 용지에 똑같이 그려서 지금도 보관하고 있어요.^^
님의 서재에 쌩~하니 달려가 구경하고 왔지요.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게 좋았어요.^^

rldmstmf 2008-10-08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거 한번재미있겠네~~언제한번은읽어보고싶다니깐..........................

순오기 2008-10-09 07:18   좋아요 0 | URL
재미있어요~ 읽어보삼!! ^^
 
벼랑 - 중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푸른도서관 24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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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읽으면서는 수없이 울지만, 작가후기를 읽으며 울어보기는 처음이었다. 간간히 들렀던 작가의 블로그 '밤티마을'에서 자녀들 소식을 접했으면서도, 청소년 소설로 형상화시킨 작품 속의 이야기에 작가 엄마의 마음이 읽혀져 눈물났다. 그리고 작가후기를 연거푸 읽으며 두번이나 울었다.

작가 후기에서 "작가가 체득한 삶이 작품에 스며들어, 청소년 시기를 보내고 있는 아들과 딸의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로 얽혀 들었다." 고 밝혔듯이, 나 또한 우리 아이들과 치열하게 치뤄낸, 아니 지금도 치루고 있는 감정의 대립과 갈등에 살기 싫을 만큼 참담한 진통을 겪어내는지라 저절로 공감의 눈물이 나왔다. 그건 아이에게 남았을 상처와 응어리가 안타깝고, 아이의 감정에 공감하며 보듬어 주지 못했던 자책의 눈물이었다. 이 책을 읽고 감정을 추스리고 숙성시켜, 중3인 아들과도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책 속 주인공들이 행복을 저당잡히고 벼랑 끝에 선 우리 아이들이기에, 나는 그네들을 벼랑으로 내몰지 않았다고 발빰할 수 없는 양심을 가진 독자나 엄마로서 편하게 감상할 수는 없었다. 책 속 이야기가 내 주변에서 펼쳐지는 리얼한 현실감에 코가 먹먹하고 답답한 가슴을 누를 길이 없었다. 노는 아이로 찍힌 난주나 이상한 아이로 찍힌 은조가 바로 내 아이는 아니어도, 우리 딸의 친구였고 우리 아들의 친구들이다. 자기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한집에 살았던 경화를 협박하고 옥상에서 밀어버린 난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지난 겨울 절박한 심정으로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한, 아들과 동갑이었던 이웃 학교의 녀석이 생각나 소름이 돋았다. 또한 우리 아이들에게도 '엄친아'를 심어줬다 생각하면 편하게 웃을 수 없었다.

벼랑에 실린 다섯 편 중, '베스트 프렌드'에 실렸던 '늑대거북의 사랑'이나 '호기심'에 실렸던 '쌩 레미에서, 희수"를 읽고, 우리 큰딸이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했었다. 작가선생님은 요즘 고등학생들의 현실을 너무 모른다고...고딩들은 착하지도 않고 그 비행의 정도가 상상을 초월하는데, 온실 속의 아이들만 그려낸다며 속상해 했었다. 그때 내가 작가를 편들며
"작가도 자기 체험을 바탕으로 주변에서 보고 듣고 겪은 일들에 상상을 더하겠지. 작가의 자녀들이 커가는 대로 작품도 저학년에서 고학년 청소년 대상으로 바뀌었고. 아들이 자퇴하니까 금방 제도권을 벗어난 희수를 그려냈잖아. 범생이 자녀 엄마가 비행의 정도를 어떻게 짐작하겠니? 너도 고등학생이 되어 사방에서 모인 아이들을 보며 기절할 정도였잖아. 엄마도 너를 통해 알았고...... 앞으로 쓰는 작품에선 살벌하게 비행을 일삼는 청소년도 그려내겠지." 하고 말했었다.

그런데, 벼랑에선 온실을 벗어난, 아니 온실을 벗어나고픈 청소년들 얘기가 펼쳐지고 있다. 심각한 비행뿐 아니라 친구를 해코지 하는 청소년도 등장한다. 마치 연작소설을 보는 것처럼, 전편에 나온 주인공이 후편에서도 일정한 분량의 연결고리를 갖는다. '베스트 프렌드'와 '호기심'에서 만났던 두 작품도 연장선에서 읽으니 새롭게 다가왔다. 청소년 단편소설이 연작의 형식이라 신선했다. 첫 편인 '바다 위의 집'에서 스스로 생명을 끊은 미네르마 혜림이가, 마지막 편인 '늑대거북의 사랑'에서 영어 과외샘의 조카 혜림으로 연결되니까 그 절절함이 실감났다.

특히 작가의 아들이 학교를 벗어나겠다 했을 때, 방황하고 갈등하더라도 누구나 걷는 그 길로 다시 들어서기 바라며 '늑대거북의 사랑'을 썼고, 입시 감옥을 벗어나 다른 체험을 시키므로 지금 그 자리의 고마움을 깨닫기 바랬다는 '초록빛 말'이나, 작가의 딸을 모델로 했다는 '바다 위의 집'에서 풀어내는 그 마음이 바로 내 마음이었다. 학교에 대한 불만이나 수없이 자퇴하는 친구들을 보며 흔들리던 딸에게 했던 내 말이 어쩜 그리 똑같이 나오는지... 역시 입시문제는 겪어본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인 듯했다.

엄마의 개인적인 체험이나 아픔을 독자와 같이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도록 형상화한 작가에게 고맙고, 엄마의 소설 모델이 되고 모티브를 제공한 딸이 표지 그림까지 그렸다니 대견스럽다. 청소년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것은 이제 어른들의 몫이다. 남의 일 일때는 그저 너그럽게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내 아이 일이 될때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부모 뜻대로 하려는 게 이기심이고 위선이라는 자각에 철렁했다. 이렇게 청소년들의 상황과 현실을 잘 담아낸 작품을 읽으며, 그네들을 이해하고 보듬으려는 마음을 갖는 것도 어른들이 준비하고 갖춰야 할 덕목이라고 깨달았다.

우리 청소년들이 꿈꾸는 저당잡힌 행복을 현실에서 누리기 소망하며, 오늘도 춧불 밝혀 뜻을 전하는 그들을 꼭 보듬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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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희망꿈 2008-06-05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너무 잘 읽었어요. 리뷰만으로도 엄마와 아이들의 아픔이 느껴지네요.
저도 이 책 빨리 읽어야겠어요. 얼마전에 저에게도 왔거든요.
저희 아이들은 아직 어리지만 이런책들을 미리 읽어두면 도움이 되겠죠?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이 되면 좋겠네요.

순오기 2008-06-05 18:15   좋아요 0 | URL
정말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이 되어야 하는데......미래를 위한답시고 현재의 행복을 저당 잡힌 아이들, 우리도 그애들을 벼랑으로 몰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해요.ㅠㅠ
 
미혼모가 설 자리는 없는 것일까?
없는 아이 메타포 6
클레르 마자르 지음, 이효숙 옮김 / 메타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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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존재감을 거부당한 '없는 아이'는 메타포의 여섯번째 책으로, 프랑스에서 2003년 크로노 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크로노상은 검색해도 안 나온다.ㅠㅠ 이 책을 읽으며, 미혼모 딸로 태어난 주홍이가 임신하고 중절수술 후 자살했던 "쥐를 잡자'가 생각났고, 중년의 나이에 황홀하게 타올랐던 불륜을 죽을때까지 간직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생각났다. 또한 정자은행을 이용해 딸을 낳아 키우는 방송인 허수경도 생각났다. 이들이 한꺼번에 떠오른 건 내 심정이 그만큼 복잡했다는 얘기다.

17살, 사랑을 느끼기엔 충분하지만 그 사랑을 감당하기엔 많이 부족한 나이다. 이 책은 첫머리에서 아르튀르 랭보의 시를 인용해 명쾌하게 표현한다.

"열일곱 살에는 신중할 수 없다. 산책길에 푸른 참나무가 있을 때는 더욱이......"

이 시의 의미에 스을적 공감하며 첫사랑을 떠올려도 좋으리라. 하지만, 이 책은 아름다운 첫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신중할 수 없었던 열일곱 살에 미혼모가 되었던 마틸드의 이야기다. 아니, 익명출산이라는 X출산(입양시킨 아이를 법적으로 포기하고, 어머니의 신분은 철저히 비밀보장)으로 태어나 입양되어 자기 뿌리를 알 수 없는 안느의 이야기다. 또한 안느의 딸 레아가 끼어든 모녀 3대의 진술이 한 챕터씩 펼쳐져 하나로 모아지는 여성의 삶이다. 예순 살의 마틸드와 마흔 셋의 안느, 그리고 눈부신 나이 열일곱 살의 레아가 엮어내는 모녀 3대의 행복찾기다.

열일곱 살에 덜컥 임신하고 X 출산(입양시킨 아이를 법적으로 포기하고, 어머니의 신분은 철저히 비밀보장되는 1941년 9월, 프랑스 법령)을 선택해 아이를 안아보지도 않고 입양시킨 마틸드. 그녀는 스물 다섯 살에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두 아들을 낳아 행복하게 잘 사는 평범한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아들을 낳고 그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버렸던 딸 - 혼자서 그애를 '니나'라고 이름 짓고 - 니나에게 속삭인 기록이 여섯 권에 이른다. 생각 속에서라도 아이를 계속 만나고 싶어, 읽을 수 없는 글을 써나간 그 마음이 짠하게 읽힌다. 가족이나 주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을 죄책감으로 적어가는 마틸드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뒤늦게라도 딸을 만나려는 것은 속죄이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입양되어 사랑받고 잘 사는 안느, 처음부터 입양된 사실을 숨기지 않았기에 자연스레 받아들였다.열 살에 내 친부모는 돌아가셨나? 라는 질문으로 X출산이라는 걸 알게 되고, 자신이 버려졌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지만, 양부모만이 자신의 부모라는 걸 인정하고 살아온 아이. 열일 곱 살에 생모를 찾으려 했으나 신분이 알려지는 걸 원치 않았단 사실에,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존재 부재의 부당함을 가슴에 담은채 살았다. 드디어 양부모가 돌아가시자 마흔 셋에 해방감을 느낀다.

입양된 딸에 대한 정보나, 자신의 뿌리를 찾을 단서라곤, 안느-플로라-뮈리엘. 1957년 7월 3일 출생뿐이었다. 이들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걱정과 근심으로 읽어나가면, 레아가 끼어들어 만남의 실마리가 풀린다. 역시 엄마를 이해하는 건 딸이다. 마틸드와 안나, 레아의 모녀 3대가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며 잘 살았을거라 짐작되는 결말이 다행스럽다. 그러나 분량이 적어서인지 모녀의 괴로움에 동참할 만큼 섬세하고 절절하게 그리지는 않았다. 담담하고 담백한 심경고백이라 눈물이 줄줄 흐르지는 않지만, 질질 끌고 나가지 않는 깔끔함은 돋보인다.

입양되어 행복하게 살아도 자신의 뿌리를 알지 못한다면 비극이다. 인간의 정체성 찾기는 본능이고 권리다. X출산이 누구를 위한 보호장치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한쪽은 죄의식으로 괴롭고 한쪽은 뿌리를 몰라 괴롭다면, 누군가에겐 인권유린이고 폭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가 되고 싶은 모성 본능으로 일방적 출산을 한 허수경이 곱게 보이지 않는다. 태어난 아이는 엄마 아빠를 가질 권리가 있다. 이런 권리를 원천적으로 봉쇄한 출산은 또 하나의 폭력일 뿐이다.

'쥐를 잡자'의 주홍이 엄마가 자기 인생의 발목을 잡았단 생각에 아이를 사랑하지 못했던 걸 생각하면, 입양되어 양부모의 사랑으로 자라는 것도 좋다. 물론 뿌리를 알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마련되어야 하고.... 우리나라는 쉽게 입양하고 파양할 수 있어, 최근엔 아파트 청약 때문에 입양했다 파양하는 사례가 어제 TV에서 나왔다. 우리나라는 입양과 파양의 법적 장치를 더 보완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리려면 그만큼의 책임도 따른다. 인생에 신중해야 할 나이가 열일곱 살 뿐이겠냐만, 감당하기 어려운 사랑을 선택하기 전에 신중해야 할 이유가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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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상에 이런 일이~~~
    from 엄마는 독서중 2008-11-11 01:36 
     1. 오전 10시에 어머니독서회 모임이 있었다. 토론도서는 '없는 아이'였는데, X출산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현재 프랑스와 룩셈부르크에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X출산(익명출산)1941년 9월 법령-자신의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입양시키고 자신은 아이를 완전히 포기하겠다는 것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아이 어머니의 신분은 철저히 비밀로 지켜진다. 프랑스에서는 이 법 때문에 자신의 출신을 찾지 못해 괴로워하는 이들이 약 40만
 
 
 
누나의 오월 이삭문고 1
윤정모 지음, 유승배 그림 / 산하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그해 오월, 난 무얼 하고 살았을까? 79학번의 번호표를 받아야 했지만, 직장을 다니는 상황에 그런 호사를 누릴 수는 없었다. 못 이룬 꿈이라 입시철만 되면 가슴앓이 했던 내 청춘의 봄은 세상에 눈 돌릴 여유가 없었다. 그해 오월, 난 치열한 현실을 살아내는 풋내기로 직장에선 조선일보를 봤고, 집에선 동아일보를 봤지만, 광주의 오월은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YMCA 활동에 동참하며 5.18의 진실에 접근하고 역사강의를 듣게 되었다. 그래도 실감나지 않았던 광주의 오월은, 88년 6월 망월동묘지에 참배하면서 비로소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후 산자의 죄의식과 빚진 마음으로 5월을 살았고, 해마다 독서모임에서 5월 문학을 토론하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부채를 갚는 심정이었다. 
 
이 책도 어머니독서회 선정도서로 다음 월욜에 토론한다. 광주에서 당시 새댁이나 여중고생으로, 더 어리게는 초등생으로 5월 광주를 겪었던 회원들은 나와는 또 다른 느낌의 5.18을 풀어내리라. 광주시민이 죽어간다는 가두방송을 들으며 밤새 숨죽였던 그들은, 광주 MBC가 불타는 걸 지켜보고 총성을 들어야 했던 그들은 지금도 5월이면 몸서리를 친다. 산자가 겪어야 할 몫도 결코 가볍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책 속의 기열이가 추적하는 누나의 오월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들은 몸소 겪었고 치를 떨었기에 낱낱이 알고 있으리라. 

작가는 1980년 5월의 광주 항쟁 당시 중학교 국어교사를 하며 시민군 홍보부장을 맡았고, 항쟁이 끝난 후에 '금희의 오월'이라는 연극을 만들어 '오월의 광주'를 알렸던 박효선 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밝히고 있다. 기억이 늘 깨어 있어야 불의가 다시는 접근하지 못한다는 말과 더불어 우리는 지금 깨어있는가 물음을 던지는 청소년 성장소설이다.

 5.18이 무슨 날인지 어떤 의미인지 헤아리지도 않는 학생들에게 기열이의 담임은 5.18묘지에 다녀오게 한다. 기열이는 그곳에서 만난 사진 한장에 시선이 박히고 오래전 죽은 누나의 죽음에 의문을 갖는다. 오직 동생 하나 공부시키려고 당차고 야무졌던 자신의 꿈을 접은 누나가, 그 난리통에 동생을 피신시키기 위해 돌아간 집에서 그대로 숨을 거둔 이유가 궁금하다. 팔뚝의 무수한 바늘 자국때문에 쉬쉬하고 덮어버린 누나의 죽음을 회상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소통하지 못한 사회의 비극, 토론하지 못하는 사회가 만들어 낸 폭력에 맥없이 목숨을 내놓아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 강한 신념이나 열정으로 저항하지도 못하고 주변부에 머물러 있던 일상에서 그들은 그 폭력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기웃거리다 날벼락을 당한 사람도 있지만, 기열이의 누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헌신을 했던 사람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런 사람도 5.18 한복판에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죽어가는 이들을 살리기 위해 내 몸속의 피라도 연거푸 뽑아내야 했던 기열이 누나처럼, 소리없이 희생된 그들을 자꾸만 잊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기억을 되살려야 한다. 그리고 기열이를 통해 죽은 누나의 명예가 회복되듯이, 무수한 주검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것도 산자들의 몫이다. 

'누나의 오월'은 5.18 한복판의 치열한 항쟁을 거론하지 않으면서, 5월 광주 역사의 뒤안길에 소리없이 희생된 평범한 사람들이 있음을 상기시킨다. 광주의 오월은 이런 사람들에 의해 소중한 자유와 민주를 우리에게 건네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온전한 자유와 민주주의 사회를 누리고 있는지는 자신할 수 없다. 지금 5.18 정신이 살아있는지, 우리 사회의 잘못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가슴 무거워지는 오월의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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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5-24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피흘려 지켜내고자 한 이 땅의 민주주의인데 오늘날 이렇게 망가지고 무너져 있는 모습을 보자니 부끄럽고 참담할 뿐이에요. 그 시간을 겪은 사람들이 해마다 맞닥뜨려야 했을 끔찍한 오월을 생각해 보니 이 화창한 계절의 아름다운 시간도 어쩐지 죄송스럽게 여겨집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시집 장가가고 또 이사 가고 축제를 열고 운동회도 열고 소풍도 가는 이 계절에 말입니다.

순오기 2008-05-24 12:59   좋아요 0 | URL
며칠전 민주의 댓글을 보면 조별로 달력을 만들며 행사니 기념일을 표시하는데, 누군가 '5.18'했더니~~ 그런 걸 달력에 표시하냐고 무시하더랍니다. 미래의 초등선생님들의 의식이 그래서야 문제되는 거 아닌가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