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조각들 - 타블로 소설집
타블로 지음 / 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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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블로니까 소설집으로 나올 수 있었겠다는 게 솔직한 내 감상이다. 게다가 사진을 곁들인 편집은 소설의 맥을 툭툭 끊어버리는 데 일조한다. 사진을 곁들이지 않았다면 더 얇았을 책이 사진 때문에 12,000원이란 꽤 높은 값이 매겨진 듯하다. 고정관념을 갖고 있어 그런지, 편집은 신선하지만 소설의 몰입엔 도움되지 않는다.  

타블로가 아니었다면 두달 만에 5쇄를 찍을만큼 수작이라고 평가되지는 않는다. 빛나는 문장에 감탄하기는 했지만, 영어를 우리말로 바꿨다는 이해를 갖고 읽어도 덜컥 걸리는 문장들이 있다. 어쩌면 다른 문화를 수용하기엔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단편적인 수기 같은, 10대 끄트머리와 20대 초반의 그를 이해하기엔 좋을 듯하다. 스텐포드 최우수 졸업이라는 그에게 거부감을 가질까봐 어리버리 설정인지 모르지만, 작품 속에선 어리버리가 아닌 똑똑한 타블로가 감지된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우울한 청년의 그림자가 투영되었다면 적당한 표현이고 제대로 이해한 것일까?  

타블로 삶의 조각들과 만나는 기쁨을 준 작품, 첫번째로 실린 안단테는 꽤 인상적이었다. 음악가 아버지와 어머니에서 출생한 나. 천재적인 아들이 자랑스러웠던 어머니의 인테리어에 웃음이 나왔다. 소통의 단절을 겪고 있는 가족, 아니 소통을 거부하는 가족들이 견뎌내는 시간이 꽤 무겁다. 질식할까봐 창문을 열어두거나 문틈으로 바람이 들어오게 하는 나와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묻는 아버지의 질문이 소통의 길을 트는 듯. 짧은 챕터가 딱딱 끊어져 감질나지만 한줄로 꿰어지는 느낌은 좋았다. 

두번째 조각, 쉿! 아픈 엄마를 두고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는 상황, 숨막힐 듯한 침실에서 친구와 같이 하는 대마흡연은 결국 아픈 엄마의 도움을 받게 된다. 대마흡연 장면과 네번째 조각 '쥐'에서 잠간 나오는 섹스 장면은 중3인 내 아들이 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생 누나는 먼저 읽었는데, 중3 아들은 그닥 끌리지 않는다며 안 읽어서 다행이라 생각된 투철한 엄마 마인드.^^ 중학생은 좀 빠른 것 같고 고3들이 수능 끝내고 보면 좋을 듯하다. 그래서 이웃의 예비대학생에게 선물로 줄 생각이다.  

'쥐'는 이 책에서 가장 빛나는 소설이었다. 엄청나게 큰 쥐의 등장으로 긴장감이 고조되고, 쥐를 퇴치하기 전에는 아무 것도 할 수없는 상황이라 여배우 캐스팅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 강력한 쥐덫으로 반토막이 난 쥐를 보며, 타블로는 이 소설에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오랜동안 생각하게 한 작품이다. 똑똑한 타블로가 감지된 소설로, 쥐와 승리의 유리잔, 최후의 일격 세 편을 꼽는다. 소설적 구성이나 장치들이 꽤 돋보였던 작품이다.

천재적이라는 타블로가 쓴 소설이니까 호기심이 땡긴다면 한번은 볼만하다.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면, 엄청 실망하거나 열광할 정도는 아니다. 다른 문화권에서 자란 우리 젊은이를 엿보는, 혹은 외국으로 자녀를 보냈을 때 벌어질 상황을 미리보기 하는 기분으로 예방주사 한 대 꾹 맞는다 생각하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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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9-01-07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있는데, 아니 그런 조각을 보셨단 말이죠? ^^ 제가 본 조각과 조금 다른 듯 하여.. 아.. 이렇게 보일 수도 있구나! 하고 놀랬어요. 크크 다시 읽으면서 곰곰 생각해 봐야겠네요.

순오기 2009-01-07 22:33   좋아요 0 | URL
제가 엄마라서 젊은사람들이 보는 거랑 달라요.
우리 딸이 리뷰를 보고 그러더라고요, 확실히 엄마 마인드는 다르다고!ㅎㅎㅎ
 
지귀, 선덕 여왕을 꿈꾸다 푸른도서관 27
강숙인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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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을 주로 쓴 강숙인 작가는 '지귀설화'의 이룰 수없는 사랑을, 신라를 구원하기 위한 것으로 그렸다. 선덕여왕 말년에 있었던 비담과 염종의 반란에 지귀를 개입시켜 개연성을 얻는다. 비담과 염종은 당에 의존하지 말고 자력으로 신라를 지키자 했고, 당나라의 연호와 복식을 따르더라도 군사협정을 맺어 백제와 고구려를 제압하려던 김춘추와 김유신 세력을 양대 축으로 세운다. 거기에 김춘추의 아들 법민이 나오고, 염종의 아들인 '가진'을 가공인물로 설정한다. 

작가는 소설의 모티브를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 줄의 기록에서 얻었다고 한다.
“16년(선덕 여왕 말년) 봄 정월에 비담과 염종 등이 여왕이 잘 다스리지 못한다 하여 반역을 꾀하고 군사를 일으켰다고 성공하지 못하였다.” 는 기록은 작가에게 영감을 주어 ‘비담의 난’을 단순한 반역이 아닌 신구세력의 갈등으로 그리게 만들었으며, 더불어 시대의 격랑에 휘말린 여러 사람들의 절절한 이야기를 쓰게 됐다고 한다.

선덕여왕이 된 덕만공주는 나이 예순에 열여섯 살 꽃다운 가진을 보고, 가슴 설레는 사랑을 느낀다. 시간을 거스를 수 없고 표현하지 못한 사랑은 끝끝내 가슴을 찌르는 병이 된다. 표현하지 못한 사랑이지만 선덕여왕은 '가진'을 사랑했고, 선덕여왕을 흠모한 것은 광덕이었던 듯하다. 지귀는 광덕의 영향으로 선덕여왕을 한번이라도 뵙기를 꿈꾸었을 뿐, 지귀가 선덕여왕을 사랑하고 흠모했다고 여길만한 것들은 많지 않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지귀설화를 다르게 그려냈지만, 지귀의 선덕여왕 사랑을 더 많이 그려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오히려 여왕이 마음에 둔 가진을 생각함이 더 애절하게 느껴졌다.  

사실 지귀는 선덕여왕을 사랑하고 흠모하는 것보다 평민인 자신을 존중해 준 가진의 낭도가 되고 싶었다. 지귀가 은혜를 입은 김유신의 부탁으로 가진의 낭도가 되어 첩자 노릇을 했으나, 마음의 고통으로 선덕여왕께 진실을 알리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정작 선덕여왕이 지귀를 찾았을 땐 탑에 기대어 잠들었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가! 여왕은 지귀의 가슴에 금팔찌를 얹어 두어, 여왕이 다녀가심을 알게 했다. 반란이 끝나고 가진이 처형되는 날 지귀는 영묘사 탑에 불을 지르고 뛰어 들었으니, 여왕과 가진을 다 구할 수 없었던 지귀의 사랑도 끝났다.

아름답고 애절한 사랑으로 읽히는 '지귀설화'를 반역 사건에 연루시켜, 그들의 반역이 외세에 의존하기 보다는 신라의 자존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음을 설득하는 듯하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진정한 통일이 아니란 역사학자들의 반론을 의식한 듯, 작가 후기에서 김춘추의 외교 정책에 대해 옳고 그른지는 말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우리가 단편적으로 아는 역사적 사실과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초등 5~6학년 이상이면 읽을만 하겠다. 청소년 대상이라 애절한 사랑을 절제했을까? 강숙인 작가의 전작들에 열광했던 독자로서 분량을 늘려 충분히 풀어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신라 변방의 아홉 적국(고구려, 백제, 당, 왜, 여진,거란, 말갈, 오월, 탐라)을 상징하여 구층 탑을 쌓고, 부처님의 가호로 적국의 침략을 막고자 했던 황룡사 9층탑은 흔적이 없으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신라의 역사 속에서 접했던 선덕 여왕을 우리네와 같은 성정을 지닌 여인으로 느낄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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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에르, 웃다 - 제6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푸른도서관 29
문부일 외 지음 / 푸른책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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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에르, 웃다'는 제6회 푸른문학상 수상작이다. 새로운 작가상으로 청소년소설을 공모해 당선된 문부일의 작품이다. 수상작과 더불어 역대 수상자들(강미, 백은영, 정은숙)의 신작 청소년소설을 더해 다섯 편이 실렸다. 표지에 천재음악가 모차르트가 웃고 있어 영화 '아마데우스'가 생각난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알아보지만, 정작 자신은 재능이 없었던 살리에르의 참담한 심정이 공감됐었다. 세상은 모차르트를 원하지만 '살리에르 증후군'을 가진 평범한 우리는 헛헛하게 웃을 뿐이다. 다섯 편 모두 긴장감을 놓을 수없는 속도와 짜임으로 독자를 끌어 들인다. 현실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주인공들과 잘 어우러진 반전으로 마무리하는 솜씨가 빛난다.

살리에르, 웃다(문부일) 설수혁은 백일장에 도전하여 번번히 미역국을 먹는 살리에르다. 백일장마다 수상작으로 뽑히는 나문호의 천재성과 비교할수록 점점 초라해진다. 백일장 심사위원의 구미에 맞는 작품을 내어 수상한다면, 정말 그게 잘 쓴 글일까? 마지막 기회라는 다그침에 수혁은 수상작을 표절하여 써낸다. 인터넷에 양심고백을 올린다는 게 실수로 일기를 올려버린 수혁, 친구들은 시보다 소설을 잘 쓰는 문학지망생으로 생각한다. 비로소 소질이 없음을 인정하고 헛꿈의 동굴에서 빠져 나온다면 씩~ 미소를 날릴 수 있으리라. 

6시 59분(문부일) 부모 몰래 여행을 가기 위해 아버지 가게에서 만원씩 꼬불쳐 경비를 마련한 권완수. 돈을 훔쳐내는 걸 알고 있던 아빠는, 몰래 돈을 가져가는 건 나쁜 짓이고 아빠랑 의논했어야 한다며 더 이상 말이 없다. 아들을 이해하고 응원하는 아빠의 묵직한 사랑에 콧날이 시큰거린다. 14시간을 주방에서 일하면서 한번도 벗어날 수 없었던 아빠는, 아들이 자기처럼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 땅 모든 부모의 사랑은 이런 것이려니... 인천항에서 제주도로 가는 배가 출발하기 1분 전, 6시 59분에 비로소 세상이 눈에 들어온다.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아들은 아버지의 믿음만큼 훌쩍 커서 돌아오리라.  

모래에 묻히는 개(강미) '길 위의 책'으로 3회 푸른문학상을 수상한 강미 작가의 작품이다. 고등학교 부회장 선거에 출마한 부잣집 아들 최민준을 중심으로 엄마와 담임, 친구들과 선후배가 등장한다. 부회장 선거에 이기기 위해 편법을 동원하고 찬조연설을 하는 선배와 참모의 시선이 싸늘하다. 왜일까? 선거에 실패하고 아파트 현관에 걸려 있는 프란시스코 고야의 그림 '물살을 거르스는 개'가 떠오른다. '모래에 묻히는 개'라는 다른 제목이 있는 그림 속의 개가 나와 겹쳐치며 눈물 한방울 흐른다. 세상의 못 볼 걸 들여다 본 처연한 느낌에 슬프다. 

짱이 미쳤다(백은영) 조폭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진짜 멋진 짱이 누구인지 잠시 갈등했다. 자기의 카리스마를 지키는 나영민인지, 정말 자기 밑의 조무래기들 미래까지 생각하는 기철인지... 아들 키우는 엄마로 내 아들이 이런데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면 주제와 동떨어진 감상이겠지.^^ 

열여덟 살, 그 겨울(정은숙)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제일 아렸다. 부자집 아들이나 다리를 저는 승효, 가난에 자신을 허물어 버리는 기철, 아주 헤픈 듯 소문난 노는 아이 지영. 깊은 밤, 지영이 당할뻔했던 성폭행 현장을 목격한 기철은 자신의 비행을 덮기 위해 침묵한다. 그러나 또 한 명의 증인이 기철이 목격했음을 문자로 알려주고... 각자의 아픔을 가진 고등학교 세 친구는 하나의 사건으로 치부가 드러나지만 마음을 되찾는다. 그래서 열여덟 살, 그들의 겨울은 춥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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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2-31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주의 독서 소녀 순오기 님.새해에도 알찬 독서로 보람있게 보내십시오.

순오기 2008-12-31 20:06   좋아요 0 | URL
독서소녀로 칭해줘서 고마워요.
아줌마가 소녀 소리 들으니 껌벅 넘어갑니다~~ 하하하
노니에님도 복만이랑 친한 2009년 되시기를...

2008-12-31 1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8-12-31 20:08   좋아요 0 | URL
백은영씨 '주몽의 알을 찾아라'로 4회 푸른문학상 받았잖아요.
나는 환타지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읽고도 리뷰 안 썼어요.ㅜㅜ
잘나가고 있군요.^^ 님도 어여 분발하세요~ 제가 응원해드립니다!!

후애(厚愛) 2009-01-01 0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항상 건강하시고 항상 행복하세요.^^;

순오기 2009-01-02 19:43   좋아요 0 | URL
후애님도 복 많이 받으세요~ ^^
 
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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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래전에 정말 낄낄거리며 읽은 책이다. 게다가 걸죽한 입담을 즐기는 독서라니! 엄마보다 먼저 읽은 중1 막내는 엄마가 낄낄거릴 때마다 "엄마도 재밌지?" 소리를 연발했다. 만화같은 뻔한 스토리에 제법 묵직한 주제를 얹어서, 가볍게 스치듯 상큼발랄하게 그려낸 김려령 작가에게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제1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주었다는 설명에 동감한다.

책은 재미있어야 한다. 특히 청소년문학은 더 재미있어야 한다. 아무리 대문짝만한 신문광고를 때리고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라고 외쳐도, 재미가 없다면 청소년에게 외면당한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충분히 사랑받을 요소를 갖고 있다. 표지부터 청소년의 시선을 끌만한 만화적 캐릭터로 옷 입었고, 등장인물 이름도 완득이, 똥주, 난닝구(남민구)라니 만만치 않다. 한 챕터가 시작되는 페이지에 만화로 요약한 센스도 돋보인다. 게다가 시작부터 담임샘인 똥주를 일주일 안에 죽여달라고 기도하는 완득이가 작정하고 끌어들이는데, 어찌 웃음없이 볼 수 있겠는가? 청소년들이 가볍게 낄낄거리며 즐길 수 있다. 완소 완득, 똥주샘 짱이다.^^

책은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줄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좋은 책이란 독자의 삶에 긍정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가볍게 읽고 무거운 주제를 새김질하며 바람직한 변화를 이끌어 줄만한 책이다. 우리 주변에 많이 있지만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이웃들, 저소득층이라 불리는 그들과 무언가 하나씩 부족한 사람들, 외국인 불법체류자를 양산하는 사회문제, 혼인으로 맺어져도 온전한 한국인이 될 수 없는 외국인 어머니 등, 제법 묵직한 사회문제가 충분한 토론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주변에 있는 그들에게 무심했던 태도를 바꾼다면 이 책을 읽은 값은 톡톡히 할 듯하다.   

감옥살이 하듯 입시에 매달려야 하는 고딩들의 현실에서 표출할 수 없는 욕구와 불만이 쌓인 그들에게 열어줘야 할 돌출구, 혹은 탈출구의 문제들. 상위권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의 존중받지 못하는 인권문제. 부모들이 못 이룬 꿈의 대리자로 정작 본인들이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진학문제 등,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얘기를 나눠도 좋을 듯하다. 물론 청소년의 성심리도 살짝 엿볼 수 있다.

가볍게 낄낄거리고 책을 읽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가 한참은 생각하게 된다. 완득이를 혼자만의 세계에서 끌어내는 똥주샘의 교육방식이 그리워지는 현실이다. 심한 욕설같은 반어적인 상말을 마구 하는 선생님이 계시다면 아이들은 좋아할까? 체벌 99대, 집행유예 12개월을 선고할 줄 아는 똥주샘의 너스레에 학생들은 그 사랑의 깊이를 짐작하지 않을까? 비록 완득이의 보급품인 햇반과 호박죽등을 수시로 갈취하는 선생님이지만, 부자 아버지의 불법체류자 학대에 반대해 그들을 위한 모임과 쉼터를 제공하고 소수자에 대한 애정을 실천하는 삶이 제법 멋져보이기도 한다.

공부는 꼴찌지만 난장이 아버지를 욕한다면 가차없이 주먹이 나가는 완득이. 어머니의 존재 여부도 모르고 살다 만난 그분(베트남인)의 닳아빠진 분홍신이 마음 아파서 새구두를 사드리는 장면에선 기어이 눈물 한방울 떨구었다. 이런 인간적인 완득이를 좋아하는 일등짜리 정윤하의 짜임은 자연스럽지 않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람들은 다 자기에게 없거나 부족한 것에 끌리니까... 내게도 부족한 것을 채워줄 친구가 그~립~다!

청소년성장소설인 이 책은 물론 완득이의 성장을 담고 있다. 난장이 아버지와 어머니인 그분을 인정하고 사랑하기까지 마음의 움직임이 담겨있고, 복싱을 통한 자기 찾기는 TKO패를 극복하려는 다짐으로 보여준다. 또한 완득이와 더불어 주변 사람들도 같이 성장하고 있다. 난장이 아버지 도정복씨와 완득이 어머니인 그분, 난닝구로 불리는 삼촌 남민구와 씨불놈으로 알려진 이웃집아저씨, 똥주 선생님조차도 함께 어울리는 가운데 내면적인 핸디캡을 극복하고 원만한 소통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청소년 성장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기에 진정한 성장소설로 읽혀지고 꾸준히 사랑받는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 된 듯하다. 여러 곳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2008년 겨울 책따세 추천도서로도 선정되었으니, 좋은 책은 확실히 독자가 알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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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8-12-25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책에대해 정리가 되는 느낌입니다. 멋져요 님

순오기 2008-12-26 05:46   좋아요 0 | URL
중학교 독서회에서 토론했던 도서라 발제하느라 정리를 신경 쓴 듯...^^

가시장미 2008-12-27 0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이 책을 못 보고 넘기네요.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계속 미루다가 결국은...
아는 동생한테 선물하려고 샀던 책인데, 그것만으로도 마치 읽은 것 같은 착각을 ㅋㅋ

순오기 2008-12-28 21:59   좋아요 0 | URL
읽어보세요~ 후회하지 않을거예요.^^
 
내가 사랑한 야곱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1
캐서린 패터슨 지음, 황윤영 옮김 / 보물창고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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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뉴베리상을 받은 작품이라는데 이제라도 접할 수 있어 엄청 고마웠던 책이다.^^  
내가 열네살 미국소녀의 성장소설에 열광하는 이유는, 누구나 흔히 경험했을 소재를 잔잔하게 풀어간 솜씨에 있을 것이다. 자라면서 형제 자매간 라이벌 관계나 비교당해서 피해의식을 가졌다면 누구나 공감할 소재를 밀도 있게 그려냈다. 우리와 문화가 다르다 해도 보편적인 통과의례는 다르지 않은 듯, 성장기 피해의식에 충분히 공감했다.

성서에서 하느님이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고 공공연히 밝힌 '에서와 야곱'의 관계를 쌍둥이 언니 '사라 루이스'와 동생 '캐롤라인'으로 설정해, 신의 선택을 받지 못했던 에서의 관점에서 '사라 루이스'가 화자로 등장한다. 사라 루이스가 느끼는 소외감과 마음의 상처에 감정이입이 된 독자는, 세심한 심리묘사와 상황전개에 마치 루이스가 된 것처럼 집중하게 된다. 그렇다고 이 책이 기독교에 대한 이해를 전제하거나 기독교적 요소에 거부감을 갖게 하는 것은 없다. 종교적인 부담감 없이 사라 루이스의 감정에 발맞추어 동행하면 되는 것이다.

체서피크만의 라스섬에 사는 브래드쇼 부부는 아들을 원했지만 쌍둥이 자매를 낳았고, 건강하게 태어난 언니보다 위태롭게 태어난 동생에게만 모든 관심이 집중되었다. 늘 부모의 사랑과 애정 표현에 목마른 열네 살 사라 루이스의 갈증을 채워줄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직 튼튼한 몸과 착한 마음을 가진 루이스는 스스로 알아서 가정을 위해 헌신했고, 학교 생활보다 즐겁고 신나는 게잡이에 열정을 바쳤다. 호들갑스럽게 표현하진 않지만 늘 부모님이 고마워한다는 것도 아는 살림밑천 큰딸이다.  

가계에 보탬이 되는 언니 덕분에 동생은 재능을 살려 성악을 레슨을 받는다. 루이스는 당연하다는 듯 인정하지만,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는 캐롤라인을 미워한다.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미움을 표현하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끝없이 미움을 키워간다. 이런 상황이 독자에게 자연스레 공감된다. 딱히 캐롤라인이 미운 짓을 하는 건 아니지만, 뛰어난 자가 갖는 은근한 교만이 묻어난다. 그렇지만 캐롤라인은 지혜롭고 재치있는 처신으로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있다.

사라 루이스의 마음에서만 들끓는 감정의 응어리들이 못내 안타깝지만 착한 아이 마법에라도 걸린 듯, 루이스는 당차게 항변하거나 거부하지도 않고 상황에 순응해간다. 이런 게 조금은 답답하고 딱해서 뭔가 변화가 있거나 반전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항상 단짝이었던 콜과 게잡이를 하며 나눈 대화는 유머 수준이 달라 통하지 않는 상황이 오히려 더 우습다. 초반에 콜이 이해하지 못하던 루이스의 고급 조크는 물건너 가고, 콜 수준에 딱 맞는 할아버지의 유머로 루이스만 찬밥이 된다. 이런 사소한 일들을 참 맛깔나게 풀어가는 작가의 역량이 놀랍다. 루이스 엄마 아빠와 괴팍스런 할머니조차 개성 강한 빛나는 조연으로 등장해 책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섬에 교사로 왔다가 성실한 아버지에게 필이 꽂혀 불편하고 가난한 섬 생활에 만족하는 엄마의 삶을 루이스는 이해하지 못했다. 더구나 캐롤라인과 콜이 결혼했을 때 배신감이 들었고, 결국 모든 걸 캐롤라인에게 뺏긴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하지만 선장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비로소 자기 삶에 눈뜨게 된 루이스는 모든 것이 새롭다. 늘 하느님께 선택받지 못한 피해자라는 생각에만 빠졌던 루이스에게 번쩍, 번개가 치듯 할아버지의 말씀은 인생 좌표를 바로 보게 했다.  

   
 

 "네 동생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어. 그래서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었던 거야. 사라 루이스, 아무도 네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말하지 마. 기회는 남이 주는 것이 아니라 네 스스로가 만드는 거야. 얘야, 하지만 먼저 네가 원하는 것이 뭔지를 알아야 한단다."

 
   
모든 것에 기회가 있었던 엄마는 섬을 택했지만 루이스가 어떤 선택을 하든 말리지 않겠다는 응원을 받는다. 루이스는 섬을 떠나고 싶었지만 마음 밑바닥엔 항상 두려움이 있었다는 걸 깨닫지만, 캐롤라인 보다 더 보고 싶을 거라는 엄마의 말에 비로소 캐롤라인의 그림자에서 벗어난다. 부모의 사랑과 관심에 목말랐던 루이스에게 엄마의 한 마디는 모든 상처를 치유하는 약이었고, 루이스는 비로소 온전한 자기 삶을 살게 된다. 루이스가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자기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면 행복도 빨리 찾았을 텐데 아쉬움도 있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섬에서 나와 공부한 루이스는 간호사가 되어 자신이 원하던 산골로 간다. 그곳에서 굴에게 노래를 불러주던 아빠의 미소를 가진 남자, 요제프에게 필이 꽂혀 세 아이를 두고 상처한 그와 가정을 이룬다. 결혼 후 아들을 낳고 이웃의 쌍둥이 출산을 돕던 루이스는 생명이 위태로운 둘째를 살리기 위해 몰입하느라, 잊고 있던 첫째가 바구니에 잠들어 있음을 깨닫는다.

"그 아기를 안아 주세요. 할 수 있는 한 오래 안아 주세요.
 아니면 아기 엄마가 안아 주게 하세요."


위태롭게 태어난 동생 때문에 항상 뒷전으로 밀려야 했던 자신의 성장기를 보상하듯, 루이스는 자기 출생과 똑같은 아기에게 연민을 느끼며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기를 소망했으리라. 사라 루이스의 그 마음을 알기에 주착없이 흐르는 내 눈물을 훔치지 않았다.

이 책은 열네 살 사라 루이스가 상처를 극복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찾는 마무리로 잔잔한 감동을 준다. 성장기 피해의식을 버리고 내가 선택한 인생이 얼마나 눈부실 수 있는지 진정한 성장을 보여준다. 청소년기의 독자라면 이런 관점에서 충분히 자극받고 고무될 책이다. 하지만 난 엄마니까 부모의 말과 행동이 자녀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발견하고, 애정표현이나 칭찬과 격려에 인색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 독서였다. 내 아이들이 엄마인 나에게 상처받는 일은 없는지 세심하게 살펴야겠다. 또한 자기 삶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불끈 일어나도록 힘을 주는 엄마가 돼야지 또 한번 다짐하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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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12-25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제목과 표지가 늘 끌렸어요. 저는 성경에 등장하는 야곱이 참 좋아요. 부족한 게 많은데 그래서 더 인간미가 있거든요. 이 책도 역시 찜이에요~

순오기 2008-12-26 05:49   좋아요 0 | URL
참 좋은 책이라 청소년들에게 정말 읽히고 싶어요.
성주는 아직 읽지 않았는데 책따세 추천도서라면 잘 읽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