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중학생
타무라 히로시 지음, 양수현 옮김 / 씨네21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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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08년 겨울 책따세 추천도서이고, 2009년 행복한 아침 독서에서도 청소년 추천도서로 선정한 책이다. 막내의 중학교 학부모 독서회 4월 토론도서이기도 하다. 가정을 잃어버린 중학생이 겪은 만만찮은 세상살이를 중학생과 같이 읽기에 딱 좋은 책이다. 일본에서 꽤 유명하다는 개그맨 타무라 히로시 삶의 기록으로, 중 2학년 여름방학 날 집이 없어지고 가족이 해체된 참담한 상황인데도 유쾌하게 진행되고 부담없이 읽힌다.  

파산한 아버지는 "매정하다는 건 알지만, 앞으로는 각자 알아서 열심히 살아주세요. 해산!" 이라는 한 마디로 가족 해체를 선언한다. 이런 참담할데가~ 어이가 없어 말이 안나오는 상황, 다섯 살 위인 형과 네 살 위인 누나는 함께 지내자고 하지만, 경제력이 없는 타무라는 형제의 곁을 떠나는 것이 유일한 형제애라는 생각에 친구 집에서 지내겠다고 설득하고 공원생활을 시작한다.

겉표지를 벗기면 바로 ’마키훈(돌돌 감긴 똥 모양) 공원’에서 찍은 타무라의 사진이 나온다. 이 책 덕분에 유명해진 공원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타무라는 한 달 정도 저 응가미끄럼틀에서 살았다. 잠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동네 악동들에게 똥귀신으로 불리며 대치한다. 먹을 게 없어 자판기 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찾아 헤매거나, 배고픔에 공원의 풀을 씹어 먹는다. 표지에 나온 것처럼 골판지를 물에 불려 씹으며 배고픔을 잊기도 했다. 비가 오면 그 빗속에서 목욕을 했고, 빨래를 해서 철봉에 널었다가 녹이 묻어 버리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생존비법을 터득해 갔다. 풀밭에 볼일을 보다가 똥개와 기싸움을 벌이기도 했고, 빨아 널은 빨래가 바람에 날려 자기가 싼 똥 위에 떨어지는 황당함도 경험했다. 비둘기 먹이로 주는 식빵가장자리를 얻어 ’감사히 먹겠습니다!’소리치고 먹는 배짱도 가졌다. 공원생활은 철부지 소년을 강하게 만들었다.  


공원생활을 한달 쯤 견딘 타무라는 우연히 길에서 만난 친구 요시야에게 부탁한다. "사정이 좀 있어서 집이 없어졌어... 지금 엄청 배가 고픈데 밥 좀 주면 안 될까?" 처음 만난 요시야 가족은 친절했다. 타무라의 사정을 듣고 같이 살자고 받아주었고, 형제들도 부르라고 할만큼 따뜻한 분들이었다. 그 후 이웃들과 힘을 모아 삼남매가 살 수 있도록 집을 마련해 주었다. 세상은 이렇게 사랑을 베푸는 이웃이 있기에 살만한 곳이다. 

타무라는 5학년 때 엄마가 직장암으로 돌아가셨지만 죽음의 실체를 몰랐다. 언젠가는 엄마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는 엄마를 만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죽어서 엄마를 만날 수 있다면 죽는게 훨씬 낫다고 생각할 만큼 삶의 의욕을 잃었다. 학교에 지각하기 일쑤였고, 모든 일에 흥미를 잃어 고등학교 진학도 포기했다. 하지만 엄마를 볼 낯이 없으니 고등학교까진 졸업해달라는 형의 간청과 특훈으로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아버지가 해산을 선언하면서 포기한 아버지 역할을 형이 감당했고, 돌아가신 엄마 역할을 누나가 했다.

타무라는 따뜻한 이웃 뿐 아니라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그 중에 고1때 담임이었던 쿠도씨는 삶의 의미와 목표를 잃은 타무라의 마음을 열었다. "15년으로 충분하다. 인생에는 괴로운 일이 더 많다. 이제 아무것도 경험하고 싶지 않다" 는 타무라의 말을 듣고 편지를 보냈다. 진심이 담긴 선생님의 편지를 읽고 타무라는 울었다. 나를 좋아한다고 말해주는 사람, 내 존재가치를 발견하고 말로 표현해 준 사람이 있어 살고 싶었다. 삶의 의미와 목표를 되찾았고, 무엇보다 자신이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삼남매는 계속 도움을 받으면 나중에 갚을 빚이 많다고 지원을 사양하고 궁핍생활에 돌입했다. 그동안 형이 주는 용돈 2천엔을 다 써버리고 저축할 생각도 못했던 타무라는 하루 300엔으로 살며 수돗물로 배를 채운다. 배고픔을 견디느라 터득한 삼남매의 ’맛의 저편’은 사실 눈물겨운 이야기인데도 웃게 된다. 나도 밥을 계속 씹어서 그 맛을 경험하려 했지만 50번쯤 씹으면 다 넘어가고 입안에 남는 것이 없었다.^^

자신의 청춘을 절반쯤 버리고 동생을 돌봐준 형과 누나 덕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개그맨 양성소(NSC)의 훈련 과정을 마쳤다. 형과 누나의 동생이면서 아들이기도 했던 타무라는 형제의 보살핌과 엄마와 함께 했던 따뜻한 추억으로 성장했다. 엄마를 칭찬할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과 그동안 사랑을 베풀어준 고마운 분들께 감사하며 글을 마친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긍정 마인드와 배려심에서 나온 행동은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걸 배웠다. 이 책이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며 만화와 영화로 만들어지고 250만부나 팔렸다는 건, 일본인의 마음을 울리고 공감을 얻었다는 증거다. 거품경제가 꺼진 일본에도 소득격차와 빈곤의 악순환으로 굶주리는 이들이 있다는 건 우리와 다르지 않다.  

타무라가 가족 해체의 위기에서 바르게 자라 성공한 인생의 모델이지만, 누군가의 도움과 보살핌이 없었다면 이뤄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자녀를 너무 온실 속의 화초처럼 키우지 않는가 돌아봐야 하리라. 어떤 상황에서도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정신과 삶의 지혜를 터득할 수 있도록 좀 내돌릴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내 자녀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거나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내는 것, 부모가 해야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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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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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이 책을 읽고도, 우리 엄마의 삶이 보여서 눈물 겨워 리뷰를 쓸 수 없었다. 어제 이 책을 다시 읽으며 여전히 눈이 빨개지도록 울었다. 시어머님은 이미 돌아가셨지만, 그래도 우리 엄마는 잃어버리지 않아서 다행이고 살아계셔서 고맙다고 위로받았다. 

2008년 11월 초판 이후 벌써 50만부를 찍은 ’엄마를 부탁해’는 엄마의 희생으로 가정이 유지되고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잊고 살았던 자식들을 깨우치는 책이다.  엄마의 기쁨이고 자랑이었던 이 땅의 자식들에게, 잊고 살았던 엄마의 존재를 일깨우고 사랑을 회복시켜 주는 바이블로 반드시 일독을 권한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로 시작하는 소설은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고, ’너’로 지칭하는 화자의 진술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소설 속의 ’너’가 바로 ’내’가 되기 때문이다. 작가 신경숙은 자신의 분신인 글쓰는 큰딸을  ’너’라고 지칭하여 작가와 독자가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도 내 이야기 같은 동일시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너무나 눈물겨운 우리 엄마 얘기는 최대한 자제하고 줄거리 중심의 리뷰를 쓴다.

이 책은 ’엄마의 존재와 부재’를 이야기 한다. 엄마가 존재할 때는 무심히 잊고 살았던 가족들이, 엄마의 부재로 인하여 그 존재를 깨닫는 참회록이다. 사람은 미련해서 무언가 갖고 있을 땐 그 소중한 가치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존재가 ’엄마’일 땐 이야기가 달라진다. 모체를 통해 세상에 온 자식은 세상의 전부였던 엄마를, 커가면서 서서히 멀리하다가 급기야는 잊고 사는 지경에 이른다. 내가 필요할 때만 엄마를 떠올리는 아주 이기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살면서 힘들거나 외롭고 지칠 때 ’엄마가 옆에 있으면 좋겠어!’라는 생각을 안 한 자식들이 얼마나 될까?

엄마를 잃고 나서야 하나씩 떠오르는 엄마와의 추억, 내 삶에 엄마가 얼마나 깊이 자리했는지 깨달으며 엄마에게 소홀했음을 참회하는 고백서로 읽힌다. 엄마가 무언가 물어 볼 때 얼마나 친절하게 답했는지, 엄마의 이야기에 얼마나 귀 기울였는지...  엄마에게도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고, 위로받고 쉼을 얻을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땐 이미 엄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형철아, 엄마가 미안하다!" 세상에 태어나 뭐든지 처음 하게 해 준 큰아들 형철. 큰아들만 끓여주려고 숨겨두었던 라면 항아리를 닦으며 철철 눈물 흘리던 엄마. 첩을 데려온 아버지가 대문으로 들어올 때 샛문으로 집을 나갔던 엄마, 큰 아들이 그 여자가 싸주는 도시락을 먹지 않는다는 걸 알고 찾아와 매질하던 엄마. 네가 밥을 먹어야 내가 덜 슬프다던 엄마. 내 아들이 있는데 내가 왜 집에서 나왔나? 깨닫고 돌아와 첩을 몰아냈던 엄마. 내 새끼들 입에 먹을게 들어가는 게 제일 행복했던 엄마. 엄마를 기쁘게 하려고 검사가 되겠다는 아들의 꿈이 곧 엄마의 꿈이었지만, 동생을 책임지는 가장이 되어 꿈을 포기한 아들에게 죄인이었던 엄마. 나도 이런 마음인 엄마를 보고 살았다. 형철이처럼 일등하고 시험만 보면 척척 붙었던 우리 오빠가 뒤늦게 공부마칠 때까지 항상 죄인이었던 우리 엄마. 학교를 졸업하고 일찍 돈을 벌어야 했던 큰언니에게 지금도 미안해 하는 엄마. 글을 읽고 쓸 수 있었지만, 객지에 있던 언니 오빠에게 편지 보낼 땐 내게 불러주었던 엄마. 돈이 되는 일이라면 잠을 못자도 부지런하고 지혜로왔던 책 속의 엄마가 바로 내 엄마였음을 나는 안다.

"너는 딸이니께 많이 배워야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장독 항아리 뚜껑을 던져 깨뜨리면서 스트레스를 풀만큼 성깔있는 엄마였지만, 글을 모른다는 게 자존심 상해 학교를 보내주지 않은 부모가 원망스러웠던 엄마. 중학교를 보내달라고 애원하던 시동생 균을 학교에 보내지 못한 죄인이었고, 농약을 먹고 죽은 균의 살인누명까지 써야 했던 엄마. 내가 글을 알았다면 이렇게 살았을까? 생각하면서 딸은 많이 배워야 엄마한곤 다른 삶을 살 수 있다고 공부시킨 엄마. 그 딸이 쓴 책을 읽고 싶어서 복지사에게 읽어달라면서도 내 딸이 쓴 책이라고 자랑하지 못했던 엄마. 엄마도 하고 싶은 게 많았고 누리고 싶은 삶이 있었다는 걸,  엄마의 부재로 깨달은 참회는 안타까움을 더한다.

"나보다 먼저 가시오."  6.25때 징집을 피하기 위해 검지를 끊었고, 한데 잠을 자야 했던 당신은 밖으로 떠돌기만 했고,  가장이나 아버지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당신, 한번도 아내에게 따뜻하게 대하지 못한 당신, 아내가 아픈 것도 모른 척 늘 먼저 환자였던 당신, 늘 빠른 걸음을 따라 오지 못해 천천히 좀 가시오 사정했던 아내를 모른척했던 당신, 결국은 앞서 걷던 습관 때문에 서울역 지하철에서 아내를 잃어버린 당신, 그렇게 잃고나서야 철철 눈물 흘리며 참회하는 당신을 결코 미워할 수 없어서 제일 많은 눈물을 흘렸다.  ’나보다 3년 먼저 가시오, 아니 억울하면 사흘 먼저 가시오’ 했던 아내의 수의를 보며 통곡하는 당신은, 왜 살아생전에 아내의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주지 못했나, 왜 그 얘기를 들어주지 않았을까 땅을 치지만 이미 늦었다.

’곰소의 그 남자’ 없었다면 엄마의 삶이 얼마나 억울했을까? 유일하게 위로받은 대목이다. 엄마에게 이런 정인이 있었기에 엄마의 삶이 보상받는 거 같았고 억울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박소녀였던 엄마, 남편의 따뜻한 사랑이나 보살핌을 받지 못했지만 늘 대장부 같았던 엄마도 힘들때마다 찾던 사람이 있었다는 건 정말 뒤통수 칠 일이었지만, 그래서 다행이었다. 남편이 없을때 아이를 낳은 엄마, 사산한 넷째와 자살한 시동생 균의 시신도 묻어 준 그 남자. 죽을만큼 힘들때마다 찾았던 그 남자를 손목 한번 잡게 하지 않았던 엄마. 몰래 곰소로 도망쳤던 그 남자를 기어이 찾아낸 엄마. 엄마가 실종되었다는 걸 알고 찾았으나 치매가 되어 자기 이름이 ’박소녀’라고 말하는 곰소의 그 남자 이은규. 엄마에게도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같은 사랑이 존재했다는 것으로 위로받았다.

"어쩌려구! 셋이나 어쩌려구!" 사랑하는 막내딸이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을 때 경악하던 엄마. 사랑하는 딸이 양껏 자유로워져 더 많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살기 바랐던 엄마. 엄마와 손잡고 대학교를 가 준 딸, 서점이나 백화점에도 데려가 준 딸, "엄마는 밍크코트 입을 자격 있어요."라며 사 준 딸. 항상 기쁨이었고 자랑이었던 딸이 세 아이들에 파묻혀 사는게 안스러웠던 엄마는 피곤에 지친 딸을 무릎에 눕혀 쉬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당신의 친정으로 돌아가 엄마의 무릎에 지친 몸을 쉬는 엄마. 얼마나 많이 걸었는지 살이 패여 뼈가 드러난 발에서 파란 슬리퍼를 벗기고 고름이 흐르는 발을 감싸는 친정엄마 품에서 안식하는 엄마에게도 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걸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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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4-11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리뷰만 읽어도 다시금 눈물 나요. 시집 가서 애 낳고 살면 더 많이 아프고 더 크게 공감할 책이겠지요. 엄마는, 엄마가 보고 싶을 때 어찌할까요. 그걸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네요......

순오기 2009-04-12 18:51   좋아요 0 | URL
우리 엄마 얘기하면 눈물나니까 안 쓰고 줄거리만 정리한 리뷰.ㅜㅜ
 
미래의 작가를 위한 창작 노트 아동청소년문학도서관 5
손연자 외 지음, 신형건 엮음 / 푸른책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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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작가들의 창작노하우를 알려주는 책이다. 수록된 글 대부분은 '책읽는 가족'에 실렸던 글이라 초면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네 차례나 눈물을 찔끔거렸다. '창작노하우라며 어떤 내용이길래 눈물까지 흘려?' 청승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작가가 나와 같은 생각으로 글을 썼구나' 에 감격해서 눈물났고, 그 작품을 읽으며 울었던 생각이 나서 또 울컥했다. 책의 차례에 관계없이 특별히 눈물까지 났던 네 분의 작가들을 먼저 거론하고 싶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이경혜 작가. 딸의 중학교 동창이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다는 전화를 받고, 그 아이의 죽음이 가슴에 콱 박혀 사흘을 꼬박 울었다고 한다. 그 부모의 마음을 헤아렸고, 죽은 그 애를 작품 속에서나마 열여섯의 빛나는 삶을 행복하게 살게 하고 싶었다는 고백이 눈물겨웠다. 그 작품을 읽을 때 작가의 서문을 읽었음에도, 여기 수록된 그 글을 또 읽으며 눈물이 났다. 작가는 자신이 쓰는 글이 '어떤 영혼이 작가의 몸을 통로로 삼아 자기 이야기를 풀어 놓은 것'이라고 말한다.  

<밤티마을 큰돌이네, 영미네, 봄이네 집>이금이 작가. 큰돌이네를 쓰고 10년이 흐른 뒤에도 독자들의 후속편 요청은 작가에게 강한 영감과 자극을 주어 그 뒷 이야기를 쓰게 만들었다'고 한다. 나쁜 새엄마의 상징인 '팥쥐 엄마'를 등장시켜, 넉넉하고 푸근한 새엄마로 그려낸 작가의 마음이 읽혀졌다. 내가 정작 눈물을 흘린 건, 큰돌이 할아버지 이야기였다. 큰돌이네 시리즈 3권인 '밤티마을 봄이네 집'을 읽을 때, 태풍에 다 쓰러진 고추모를 일으켜 세우는 할아버지를 보며 꺽꺽 울었었는데, 작가도 같은 마음으로 울었다는 고백에 또 다시 뜨거운 눈물이 나왔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내 눈은 또 젖어든다. 힘없는 불구의 몸으로 아무 역할도 할 수 없는 것 같은 큰돌이 할아버지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일으켜 세우는 인생의 연륜이 깃든 노인으로 그려낸 것이 참 고마웠다. 작가의 가슴에 깃든 큰돌이네 이야기를 독자도 같은 마음으로 읽어내고 정들 수 있다는 건, 큰돌이네 가족 뿐 아니라 독자도 같이 성장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마사코의 질문>손연자 작가. 작가가 되겠다는 꿈이 없이 살다가, 아홉 살 딸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동화로 써 주었다가 등단하게 되었다고 한다. 박홍근님의 심사평에서 주제가 약하다는 말을 듣고서야 '동화에도 주제가 있구나' 깨달았다는 작가다. 하지만 중학교 때 교과서에 실렸던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읽고서 '모국어를 잊지 않는 것은 감옥에 갇힌 죄수가 열쇠를 가진 것과 같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가슴이 숙연해졌다고 한다. 우리도 그런 잔인한 세월을 겪었는데, 왜 우리 교과서엔 그런 작품이 실리지 않았을까? 하는 소박한 의문과 화두처럼 가슴에 들어와 있던 생각을 풀어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해마다 광복절이 되면 '마사코의 질문'을 읽는 내게는 손연자 작가의 절절한 마음과, 참혹한 우리 민족의 수난사에 눈물 흘리게 된다. '부끄러운 것을 잊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고 욕된 것을 잊는 것이 욕된 것'이라는 말씀을 되새기게 된다.

<들꽃초등학교>전병호 시인. 떠날 수 없는 사람들만 남아 피폐한 삶을 사는 전방의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눈물로 썼다는 시집, 나도 그 시집을 읽으며 수없이 눈물을 흘렸기에 시인의 마음을 같이 느낄 수 있었다.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없는 아이들,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버려진 아이들이 모여 쓸쓸하게 살아가는 곳, '이 아이들의 아픔을 달래 주지도 못하면서 무슨 시를 쓴다 하랴.'는 자각으로, 척박한 환경에도 꿋꿋하게 자라는 아이들의 희망찬 삶을 노래하고 싶어 시를 썼다고 한다. 동시집 '들꽃초등학교'를 보면 그네들의 삶이 보여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거론한 작가는 네 분이지만, 1부 창작노트에는 '산왕 부루'의 박윤규 작가, '마지막 왕자'의 강숙인 작가. '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 이준관 시인의 창작노트가 실렸다. 

2부는 작가편지로 '내 사랑 사북의 이옥수 작가'와 '길 위의 책의 강미 작가'가 주고 받은 편지와, '교환일기의 오미경 작가'와 '무덤 속의 그림의 문영숙 작가'가 나눈 편지, '플루토 비밀 결사대의 한정기 작가'와 '나의 아름다운 늪의 김하늬 작가'가 주고 받은 편지가 실렸다. 2부엔 교환일기 빼곤 다 내가 못 읽은 작품이라 안타깝게도 공감할 수가 없었다. 

3부는 작가 인터뷰로 독자와 문단의 주목을 받는, '쥐를 잡자'의 임태희 작가, '우리동네는 시끄럽다'의 정은숙 작가, '고양이 제국사'의 백은영 작가, '우포 늪엔 공룡 똥구멍이 있다'의 손호경 작가, '이젠 비밀이 아니야'의 유정이 작가, '고래와 래고'의 이옥용 시인 등 신인작가와의 인터뷰를 만날 수 있다.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겐 창작 동기와 과정, 작가로서의 꿈과 고민 등 창작 노하우를 알려 주는 책이다. 작품이 나오기까지 모든 게 궁금한 독자들의 궁금증도 풀어주고, 작품을 보는 안목을 키워주며 작가의 속내를 알 수 있어 친숙한 느낌을 갖게 되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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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학
이청준 지음, 전갑배 그림 / 열림원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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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31일 새벽 1시, 폐암으로 투병중이던 이청준씨가 세상을 떠났다. 장흥 문학기행을 갔을 때, 문화유산해설사가 자랑스러워 하던 문인의 고장 장흥 사람이다. 장흥은 풍수적으로도 문필가의 고장이라는데, 이청준씨는 동인문학상을 비롯한 내노라 하는 상을 두루 받았다.

이청준님의 작품은 여러편 읽어봐도 다른 책에 비해 술술 읽히는 편이 아니다.  아마도 작가의 건조한 문체 때문일거라 생각되지만, 그래도 어렵게 읽고 나면 가슴에 남는 그 묵직한 울림이 참 좋다. 인간의 원초적 삶의 아픔을 잘 보여준다고 할까? 그러면서 내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위력이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문학 교과서에 '선학동 나그네'가 실렸는데, 우리 큰딸이 고2였던 3년 전에 '서편제' 영화를 본 아이들이 없어 수업시간에 보여줬다고 했다. 우리애들은 방학마다 '거실을 영화관으로' 탈바꿈하는 엄마 덕에 웬만한 영화는 비디오로 다 봤기에, 우리 딸은 서편제를 본 유일한 아이였단다.  

책 제목은 천년학이지만, 실제 수록된 작품에 ’천년학’이란 단편은 없다. ’남도사람’ 연작소설로 ’서편제’와 ’소리의 빛’, ’선학동나그네’가 나오는데, 선학동 포구 맞은편 산줄기의 물에 비친 모습이 마치 한 마리 학이 비상하는 모습이라고 묘사했다. 각 편마다 연작의 맛이 살아나 읽는 재미를 더한다. 대중에겐 소설보다는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라는 영화로 알려졌고, 그 후속으로 임감독의 100번째 영화로 '선학동나그네'를 원작으로 한 '천년학'이 나왔지만, 서편제처럼 호응을 받진 못했다. 그래서 책도 서편제에 실렸던 작품들이 '천년학'이란 제목으로 나왔다. 장흥 선학동을 배경으로 한 서편제 다음 이야기로, 북장단을 맞춰주던 아들이 떠났다가 훗날 그들의 흔적을 더듬어 가는 이야기다.

가슴에 쌓아둔 원망의 한이 아니라 한을 풀어내는 소리가 된다. 바로 한을 소리로 풀어내면서 용서하고 화홰를 담아낸다. 우리 민족의 한을 어느 나라 말로 제대로 담아낼 수 있겠는가? 바로 우리 말과 글만이 온전히 담아낼 수 있으리라. 소리를 위해 딸을 장님으로 만든 비정한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고 살의를 품는 아들과, 그 아버지를 용서한 딸의 승화된 사랑이 담아내는 서편제의 그 울림이 오래 남았다.

동생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마음이 달라지고 비로소 용서하는 아들의 아픔도 마음을 적신다. 어쩌면 아버지를 떠날 때 이미 용서했는데, 본인이 자각하지 못하고 인정할 수 없어 괴로워한 것은 아닐지 내 마음도 아프다. 딸 송화는 이미 아버지를 용서하고 한을 풀었는데, 그 아들은 가슴에 한을 남겨두었기에 화해와 용서의 과정이 필연적이었음을 깨닫는다.

우리민족은 유독 아픔을 많이 겪은 역사를 가졌기에 '한의 정서'라는 말로 표현된다. 그 한의 정서가 개인이든 민족이든 서편제의 소리를 통해 승화되기를 기원한다. 영화관객과 소설독자의 이해도는 다를거라 생각되지만, 영화를 보고 책도 읽은 독자라면 작가가 의도하는 바를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오라비에게 나를 찾게 하지 마시오. 전 이제 이 선학동 하늘에 떠도는 한 마리 학으로 여기 그냥 남겠다 하시오. 그게 그 여자가 내게 남긴 마지막 당부였소. 그리고 그 여잔 아닌게 아니라 한 마리 학으로 하늘로 날아올라간 듯 그날 밤 홀연 종적을 감췄고 말이오..."  
   

예비 고딩인 아들이 읽어야 할 필독도서로 추천했는데, 거의 400쪽에 육박한 '당신들의 천국'을 읽었으니 수월하게 읽을 거라 기대한다. 고등학생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이 책 뿐 아니라 이청춘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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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2-04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줄에 이청춘씨라 적혀 있어요~
당신들의 천국을 사두고 못 읽었는데 이 책이 더 끌리네요. 서편제 영화로 못 봤어요. 익히 유명한 줄거리만 알고 있네요. 이 책도 담아가요~

순오기 2009-02-04 18:41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래서 고치려고 로그인했어요.
새벽에 써놓곤 그냥 잤더니~ 우째 이런 일이~ㅎㅎㅎ
 
청구회 추억
신영복 지음, 조병은 영역, 김세현 그림 / 돌베개 / 2008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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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개정판(30~46쪽)에 실려 있는 이야기지만, 예쁜 그림과 영문 번역까지 곁들여 나온 책이라 소장하고 싶었다. 결정적인 선택은 역시 ’책따세 추천도서’ 선정됐기에... 책따세에선 중3부터 읽을만한 책으로 추천했지만 굳이 학년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기엔 버거운 청소년들이 ’청구회 추억’으로 신영복 선생님을 만나면 좋겠다. 청구회 추억을 읽고 신영복 선생님이나 그분이 겪어낸 20년 감옥생활이 궁금해, 혹은 민주주의가 죽어 있던 암울한 시대를 알기 위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찾게 된다면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신영복선생이 사형선고를 받고 남겼던 아름다운 추억이야기다. 1966년 이른 봄, 서울대학교 문학회원 20여명과 함께 했던 서오릉 답청놀이에서 만났던 여섯 명의 초등학생들과 68년 7월 구속되기 전까지 가졌던 모임 이야기다. 선생이 통혁당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공허함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기억하기 위해 날마다 한장씩 주었던 휴지에 남긴 기록이다. 여섯 명의 아이들과 매월 마지막 토요일 6시에 장충체육관 앞에서 만나 같이 놀았던 추억여행으로, 첫 만남에 아이들에게 접근하려고 고도의 작전을 세웠던 신영복 선생을 만나는 것도 즐겁다. 변변한 옷차림이 아니었던 아이들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그들이 잘 대답할 수 있는 것을 물어보는 배려심, 그들의 반응에 즐거워하며 기꺼이 함께 한 선생의 인간적 면모를 느낄수 있다. 

어른도 아이들과 친구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같이 어울려 놀고 문화빵 100원어치 사서 나눠 먹으며,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듣고 어울리며 점점 건설적인 모임으로 발전하는 전형을 보여준다. 이들의 모임에 왜 청구회라 이름 붙였을까? 아이들이 청구초등학교에 다녔기 때문이다.^^  모임은 아주 모범적으로 운영되어 의견을 모아 한달에 100원씩 저금도 하는데, 아이들이 각자의 수고로 벌어온 10원씩 내고 나머지 40원은 신영복 선생이 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진학할 수 없는 이들은 7학년, 8학년으로 남아 있고, 이들이 중학교에 갈 수 있도록 학비를 지원해야 하나 고민했던 선생의 마음도 짠하게 읽히지만, 대체로 밝고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되는 아름다움이다. 

청구회는 독서에 가장 힘을 쏟았다. 매월 책 한 권을 모임도서로 기증했고, 아이들도 각자 책 한 권을 모아 ’청구문고’를 만들어 나갔다. 아이들은 토요일마다 저희들끼리 만나서 번갈아가며 책을 낭독하였고, 마지막 토요일엔 선생과 만나 독후감을 나누고 이야기를 듣지만, 어려운 일을 상의하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얼마나 행복한 모임이었는지는, 약속 한 시간 전에 나와서 기다리는 걸 보면 짐작이 된다. 선생이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미안해 30분 일찍 나가면, 아이들은 그보다 역시 한 시간을 앞서 나와 기다렸다.^^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마을 청소를 하고 마라톤을 하면서 스스로를 키워 갔다. 청구회가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육군병원의 문병사건이나 선생이 집으로 초대했을 때 오지 않았던 가난하고 순수한 소년들이 찡하게 울린다.

2년 이상 지속되었던 청구회는 선생의 투옥으로 중단 되었다. 중앙정보부에서 심문을 받으며 반정부 단체나 되는 듯 청구회명단을 내놓으라던 그들, 청구회 노래에 나오는 ’주먹 쥐고’라는 귀절을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폭력 암시가 아니냐고 추궁하는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하겠는가! 선생은 감옥에서 그들이 주었던 화사한 진달래 꽃잎 하나 가슴에 달고, 서오릉으로 외로운 산책을 꿈꾸며 20년을 견뎌내지 않았을까 짐작해 보았다.  

60년대 암울한 시대에 분홍빛 진달래처럼 피어났던 신영복 선생과 소년들의 아름다운 우정 알리고 싶어 영역했다니 고마운 일이다. 만년샤쓰와 엄마까투리에 그림을 그린 김세은 화가가 그린 그림은 예쁜 책으로 태어나는데 일조를 한 듯하다. 엄마까투리의 검고 굵은 선과는 다른 부드러운 그림은 청구회 추억에 동행하는 독자를 행복하게 해준다. 삽입된 그림과 청구회 소년들이 보냈던 편지사진, 아이들과의 만남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었던 고등학교때 미술선생님 그림(김영덕, 전장의 아이들)을 올린다. 





*이 책을 선물해준 세실님께, 소장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 고마움을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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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흙 2009-01-09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이군요. 책 느낌이 잘 전해져옵니다.

순오기 2009-01-09 15:35   좋아요 0 | URL
마음에 담겨 있던 이야기라 잘 전달이 되었나 봅니다.^^

마노아 2009-01-09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바람돌이님 리뷰 보고도 혹 했었는데 이번에 또 그 마음을 자극합니다. 순오기님 리뷰는 리뷰가 갖춰야 할 기본을 확실히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읽을 때마다 반성도 되고 자극도 됩니다. 좋은 리뷰가 또 좋은 책을 살리는 법이죠. 저도 이 책을 보관함에 담아가요. ^^

순오기 2009-01-09 15:36   좋아요 0 | URL
아하~ 바람돌이님 리뷰가 있었군요. 들어가서 봐야겠어요.^^
저는 책따세 추천도서는 무조건 신뢰해요. 사거나 읽고 후회한 적이 없거든요.^^

2009-01-09 2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시장미 2009-01-10 0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암울한 시대에 태어나신 게 억울할 뿐이죠. -_ㅠ 20년이라.. 아휴.. 정말 가슴에 한이 서리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도 사색을 통해 의미있는 시간을 갖는 다는 것 정말 대단한 일이죠. 이 책 정말 의미있는 책이군요. 저도 담아놓습니다. :)

순오기 2009-01-11 00:20   좋아요 0 | URL
그 암울한 시대가 여전히 진행중이라는게 더 암울하답니다.ㅜㅜ

꿈꾸는섬 2009-01-11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리뷰는 정말 책을 갖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하지만 이 책은 우선 마음에만 담아둬야겠어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제게 있고 아직 우리 아이들이 읽기엔 어리네요. 물론 제가 봐도 좋을 것 같지만요. 언젠가 기회가 되겠죠.

순오기 2009-01-11 00:21   좋아요 0 | URL
네~ 이 책은 중학생은 돼야지요. 도서관에서 좌르르 훑어보기도 좋아요.
저는 소장용으로 욕심낸 책이었는데, 내 돈주고 사긴 아깝고~ 그런 참에 잘 됐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