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힘내세요!
5회 알라딘 리뷰대회에서 사랑님이 대상을 먹은 책이다. 제목만 보곤 시류에 편승한 그저 그런 책인 거 같아 읽어볼 생각을 안했는데, 사랑님 리뷰를 보곤 읽고 싶었다. 그래도 선뜻 구매하긴 신뢰가 안 생겨 중학교 도서실에서 빌려왔는데, 읽을수록 맘에 들어서 이사 간 이웃 언니에게 선물했다. 어제 심야에 이 책을 읽다가 내가 보낸 메모를 발견했다며 문자가 왔다.
"고마워, 눈물나게~ ㅠㅠ 메모까지 챙겨주고, 재밌게 읽다가 골프 얘기 나올 때 너무나 리얼해서 큰소리로 읽어줬더니 다 맞는 소리라며 둘이 막 웃다가 메모를 발견했어. 어디에 살든 그 마음 그 자리에^^ 알잖혀, 굿나~잇!"
이 언니는 내겐 '친정언니' 같은 언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막상 친정언니에게 하듯 하지는 못한다. 결국 마음만 그렇다는 얘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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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우리는 공주(공부하는 주부)였기에 만났고, 그 이후 뜻이 통하고 마음이 통해 1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했다. 속상한 일이 있으면 언니에게 얘기하며 펑펑 눈물바람을 하기도 했고... 갑자기 이사하게 된 언니는 나한테 말하러 왔다가 차마 입이 안 떨어져 말을 못했노라며, 이사 1주일 전에 전화로 알려 왔었다. 예전에 이사하려고 집을 팔았다가 나를 비롯한 이웃들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다시 철회한 사건이 있었기에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젠 어쩔 수없이 받아 들일 수밖에... 언니는 12월 말에 그렇게 이사를 했고, 지난 주엔 집들이를 갔었다. 점심을 먹고 지인의 문학상 시상식에 가야 돼서 배달한 영양밥에 파리여행에서 사온 깜찍한 찻잔에 커피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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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40대 후반이나 50대 중년들이 읽으면 '맞아, 맞아~' 공감하며 박장대소할 이야기들이 많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의 솔직한 이야기에 절로 빨려든다. 남자가 어쩜 이리도 섬세한 감성을 잃지 않고 사는지, 이렇게 살면 정말 재미있는 중년의 삶을 살겠구나,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프롤르그에 실린 부부의 대화에 공감의 쓰나미가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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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을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로 했다고 하자, 아내가 묻는다. "당신 진짜로 나와 결혼한 걸 후회해?" 나는 약간 주저하다 대답했다. "응, 가끔..." 아내는 잠시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바로 몸을 내 쪽으로 향하며 이렇게 말했다. "난, 만족하는데..." 내가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쭈뼛거리는데, 아내의 나지막한 말 한 마디가 내 가슴을 깔끔하고도 깊숙하게 찌른다.
"아주 가끔..." (8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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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휘모리님 서재에서 오이지군이 '그녀들'에 대해 얘기한다는 페이퍼를 읽었는데, 오늘 이 책에 나온 '그녀들' 얘기가 너무 재밌어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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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를 전공하더 그녀는 내게 유난히 작은 자기 손을 보여줬다. 그때 그녀는 내 앞레 장미꽃 백 송이를 들고 나타났다. 대학교 1학년 때, 대사가 단 두 마디에 불과한 '정신병자 3번'으로 출연한 사이코 드라마에서 내게 꽃다발을 안겨준 사람은 오직 그녀뿐이었다. 그녀는 버스비까지 모두 털어 꽃을 샀다며, 집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생전 처음 받은, 지금도 가슴 뛰는 차란한 유혹이었다. 난 버스 맨 뒷좌석에서 난생 처음 여자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피아노 건반의 한 옥타브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손 때문에 절망했다. 나도 내 손가락 마디를 잡아당기며 절망했다. 그녀는 손이 차가웠던 <라보엠>의 '미미'였다.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이 유난히 아름다웠던 '또 다른 그녀'는 내게 칼바도스름 마시던 '개선문'의 여인이었다. 나는 술을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그녀에게 칼바도스 대신 소주를 권했다. 매번 혼자만 취했다. 그녀는 취한 나를 혼자 놔두고 갔다. 요즘도 샴푸 광고를 보면 가끔 그녀가 생각난다. 그때 그녀도 공연히 세게 머리를 돌리곤 했다.그런데 왜 긴 생머리의 여인들은 머리를 항상 그런 식으로 돌려야만 할까?
이마가 유난히 예뻤던 의상학과의 그녀를 나는 '제인 에어'라고 불렀다, 나는 밤늦게 그녀에게 전화해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의 차이에 관해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연애모임이나 다름없는 독서클럽에 가입해 낭만소설이나 읽으며 엉뚱한 녀석들과 키득대는 그녀에 대한 나름의 복수였다. 이런 내 산만한 환상을 감당할 수 있었던 여대생은 없었다, 약간의 관심을 보이다가는 이내 짜증스러워하며 둘아서곤 했다. 한결같이.
아, '백설공주'도 있었다! 당시 내가 다녔던 고려대학에선 여학생들이 별로 없었다. 있어도 대부분 '이름만' 여학생이었다. 이미 남학생화된 여자들만 들어왔기 때문이다. 어쩌다 가끔 멀쩡한 여자가 들어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남자처럼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들은 남자선배를 '형'이라고 불렀다. 제길. 그러나 우리 백설공주는 달랐다. 세상에 고대에 어찌 그렇게 에쁜 여자가 있나 싶었다. 강의실 앞쪽의 그녀는 난장이들로 둘러싸여 항상 밝게 웃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여덟 번째 난장이었다. 난 강의실 뒤편에 앉아 그녀가 복사해준 노트로 시험공부를 하며 너무 행복해했다. 만약 그녀가 독이 든 사과를 먹게 되면 제일 먼저 달려가 키스하리라 다짐했었다. 그러난 난 겨우 여덟 번째 난장이었을 따름이었다. 결코 내 순서는 안 왔다. 그리고 백설공주는 난장이가 키스해서 낫는, 그런 '몹쓸'병에는 절대 걸리지 않았다.
(102-10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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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 자신을 버린 여인들에게 복수하려고, 가장 어려운 바흐의 음악을 듣고 가장 어려운 책을 읽으며 고통스럽게 보내면 그녀들이 자신을 버린 것을 후회하리라고 믿었단다.^^ 그러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며 괴로워하기로 마음 먹었는데, 그만 그 책을 통해 난생 처음 여인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고 한다.ㅋㅋ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 심리학'이란 부제가 붙어 있어 중년의 남자를 이해하거나, 내 남편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재미없는 인생을 사는 중년들이 어떻게 하면 스스로 재미있게 살 수 있는지, 한 수 가르쳐주기도 한다. 자신만의 '리추얼'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혹시, 당신도 아내와의 결혼을 '아주 가끔' 후회하시나요?
아니면, 남편과의 결혼을 '아주 가끔' 만족하시나요?
그녀들을 얘기하며 거론한 이 책을 다시 읽고, 그 음악을 듣고 싶은 밤이다.
이혼을 심각하게 생각하거나 남편 발뒤꿈치도 보기 싫을 만큼 '미움'이 들때 읽어보면 좋을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