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하지 못한 나에게도 백수시절이 있었다. 마침 그때는 평생 은행에 잘 다니다가 뒤늦게 사업에 뛰어들어 2년 만에 쫄딱은 아니고 집 빼고, 거의 가진 재산을 탕진한 아버지로 인해 집안의 가세가 많이 기울어진 시기였다. 부모님에게 눈치가 보이고 미안하기는 했지만 당장 취업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백수생활에 젖어가고 있었다.
백수라 당연히 시간이 많아 자연스럽게 중, 고등학교 동창 중 백수생활을 하는 친구들과 자주 어울렸다. 대학을 다닐 때는 각자의 인생에 몰두하느라 잘 만나지 못했었다. 그 시절의 백수는 나처럼 취업을 하지 못한 능력제로 백수, 적당히 놀다 선을 봐서 결혼하기를 원하는 자발적 백수, 임용을 기다리고 있는 교대나 사범대 출신의 국가적 백수로 나누어진다.
친구 H의 부모님은 5층짜리 건물을 소유하고 있었고, 당신들은 1,2층에서 목욕탕을 운영했다. 살림집은 5층에 있었는데 H는 자발적 백수에 속하는 친구였다. 새벽부터 목욕탕을 지켜야 하는 부모님을 대신하여 두 남동생을 케어하고 집안 살림을 도맡아했다. 부모님이 지인들의 모임이라도 가야 하면 언제라도 카운트 업무도 봐야했다.
우리 백수 친구들은 자주 H의 집에 모였었다. 1층에 들어서며 친구의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리면 항상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셨다. H의 집 5층 창문엔 긴 줄에 연결된 바구니 하나가 달려 있었다. 우리가 오면 친구가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고 바구니를 창문으로 통해 1층으로 내린다. 그러면 친구의 부모님은 목욕탕 고객들을 위해 준비한 찬 음료수를 가득 담아주시고 친구는 줄을 5층으로 끌어올린다. 친구가 김광석의 노래를 좋아해 우리는 그의 노래를 들으며 찬 음료수를 마셨다.
H는 시간이 많고, 자신의 집 1층에 공중목욕탕이 있음으로 하루에 한 번씩 목욕도 했다. 그 시절 목욕탕엔 매일 목욕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곳에서 친구는 사람들과 안면을 트고 서로 등을 밀어주는 사이가 된다. 대학에서 국문과 박사과정을 밟는 A언니도 그 중 한명이었다. 목욕탕에 오는 아줌마들과 달리 아직 결혼하지 않은 미혼여성들이었기에 서로 더 잘 맞아 친해지게 되었다.
백수인 우리들은 H에게 A언니를 소개받고 언니를 리더로 한 독서모임을 하기로 했다. 책선정은 A언니가 했는데, 우리가 제일 처음 읽은 책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사상사 판 『상실의 시대』였다. 내가 대학 다닐 때 주로 읽은 책은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나 황석영, 조세희 작가의 시대소설이었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어머니’같은 읽으면 가슴에 불기둥이 솟아오르는 러시아소설도 있었다. 과 선배들의 주도하에 사상서적으로 세미나도 많이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때 처음 읽은 하루키의 글로 소설에 시대의 문제의식이 들어있지 않아도 소설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점심에 돈가스를 먹었다’라는 일기에나 적을 수 있는 문장이 버젓이 소설 속에 들어있을 수 있는가?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만의 것에 만족하고 묵묵히 걸어가는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도 마음에 들었다. 다른 사람에게 집착하지 않고,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주인공의 쿨한 성격이 너무 좋았다. 그렇다고 이기적인 것도 아니었다. 충분히 사랑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착한 사람이기도 했다.
[하루키 본인의 캐릭터가 상당 부분 반영된 듯한 이런 주인공은 사실 그의 작품에 꽤 자주 등장한다. 이를테면 휴일에는 자신만의 순서에 따라 세탁과 청소를 한 뒤 혼자 파스타를 능숙하게 해 먹을 것 같은 인물. 집에 클래식과 재즈 LP판이 잔뜩 쌓여 있고 좋아하는 브랜드 한두 군데에서만 꾸준히 옷을 사 입을 듯한 인물. 자신의 취향과 질서로 쌓아 올린 세계가 확고하면서도 그것을 타인에게 자랑하기는커녕 오히려 수줍어할 듯한 인물. 말하자면 하루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인물 말이다.
-‘아무튼, 하루키’, p.62/166]
중학교 때부터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며 성장하고 일문과를 나와 지금은 일본어 번역가로 활동하는 ‘아무튼, 하루키’의 저자 이지수는 단연 하루키 작가의 오래된 팬이 맞다. 하루키의 글과 함께 그녀의 삶이 지나왔으니 말이다. 이지수의 일상 모든 곳에 하루키 소설의 문장이 존재해서 언제라도 끌어올 수 있을 정도로 하루키는 저자의 ‘길’이 되어주었다. 이 책은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읽혔다. 내 젊은 날의 소중한 한 부분도 소환해주어 고맙기도 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저자의 지인과 함께 나눈 ‘양을 쫓는 모험’에 대한 대담이 약간 지루해 아쉬웠던 것 빼고 나머지는 다 좋았다.
최근에 민음사판의 『노르웨이의 숲』을 다시 읽었는데 20대에 느꼈던 그 감정은 들지 않았다. 하루키 소설은 젊었을 때 읽어야 한다지만 단지 내가 나이 들어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어떤 책을 하도 많이 읽은 나머지 삶의 곳곳에서 그 책의 문장들이 머릿속에 자동 재생 될(12/166-’아무튼, 하루키)‘정도로 이지수 작가가 좋아하는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도 마찬가지였다. 주인공의 캐릭터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만 미흡하고 맥락없는 서사와 약간의 억지스러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동안 좋은 소설을 많이 읽어왔고, 특히 최근에 읽은 안톤 체호프의 단편과 비교되어 더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은 마음에 들며 나 또한 그렇게 살기로 매번 결심을 한다.
[주인공이 강한 의지를 가지고 “내가 이걸 바꿨고, 내가 이렇게 변했어!”라고 피력하지 않잖아. 끝까지 거리를 두는 점이 읽는 사람을 편하게 해줘. 멋져 보이는 느낌은 거기서 생기는 것 같아. 메시지를 주입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주인공 “나”는 좋거나 싫은 것도 없지. 이런 과정 끝에 이렇게 됐다, 하고 산뜻하게 끝내잖아. 익숙한 구조에 신선하고 세련돼 보이는 이야기, 산뜻한 거리감. 근데 다 떠나서 처음 읽었을 때는 확실히 취향에 매료되었던 것 같아
-p.136/166, ‘아무튼, 하루키’ 중에서]
백수시절 독서모임은 오래가지 못했다. ‘상실의 시대’말고는 어떤 책을 더 읽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우리는 벚꽃을 구경하러 가기도 했다. 그 날에 찍은 사진에 한껏 멋을 낸 우리들이 벚꽃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모습이 찍혀있다. 내 머리에는 벚꽃 잎이 몇 장 떨어져 있다. 잠깐의 백수시절을 마감한 후 난 여지껏 지겨운 밥벌이를 하고 있다. 정말 지겹고도 지겹다.
내가 처음 만났던 하루키의 소설은 글보다는 색깔로 남아있다. 강렬한 빛이 있는데도 많은 것이 흐릿했던 내 젊은 날의 모습을 나타내주는 것만 같다. H는 연애결혼을 했다. 지금 내 옆에는 ‘봄날의 곰만큼 사랑해’를 남발하는 친구가 있다. 아무튼, 하루키는 여전하다.
[모든 건 스쳐 지나간다. 누구도 그걸 붙잡을 수는 없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p. 143,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