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마음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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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큰일이나 안 좋은 일이 없어도 마음이 무거울 때가 많다. 슬프기도, 아련하기도 한 이 감정은 수시로 나를 찾아온다. 어떨 땐 만개한 꽃이나 아장아장 걸어가는 어린 아이를 볼 때도 그렇다.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자연과 인간의 물리적 생과 사가 나를 허무하게 만든다. 무겁기에 더 가벼운 곳으로의 도약을 꿈꾸지만, 태생적 무거움은 가벼움과 상극이라 그것도 쉽지 않다.

 

그런 나에게 크리스티앙 보뱅의 가벼움은 지극히 명쾌했다. 어찌 보면 이 소설이 도덕과 책임이 결여된 화자의 변명과 합리화로도 읽힐 수 있지만, 난 이 글을 그렇게 보는 사람과 다시는 상종하지 않을 각오를 할 정도로 보뱅의 글에 푹 빠져버렸다. 이 책의 모든 문장에 나를 투과해 내 삶을 바꾸고 싶을 정도였다.

 

읽으며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여러 이름을 가진 주인공 뤼시의 엄마처럼 속에서 웃음이 솟구쳐 나왔다. 그만큼 보뱅은 내 기분을 크고 좋게 상승시켜 주었다. 각 에피소드 마다 기발한 생각과 그 가벼운 마무리가 철학적이면서도 현실적이었다. 그렇게 살아도 되는 인생에 우리는 스스로 너무 많은 굴레와 책임을 씌어 버린 것이다.

 

[적절한 보폭, 가볍게 존재한다는 것, 아무것도 안 하는 것, 요약할 수 없는 삶, 있는 것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기술, 바로 그때가 되면 생각하는 것이다, 무성의한 익숙함, 내 마음을 통과했던 사람, 사소한 것들에 깃들어 있다, 지울 수 없는 희극적 요소, 바라보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다, 기다림 피곤 지루함으로 이루어진 투박한 삶, 감정을 넘어 선 그 너머 다른 곳, 어쩔 수 없다는 말에서 해방되고 싶다, 거리두기의 기술, 나의 그늘에 안녕을 고한다, 내 안의 가출소녀, 다른 무언가에 다다를 시간, 가끔은 일단 저질러야 한다, 이해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듣지 않으려고....]

 

이런 보뱅의 글들에 오래 머물 것 같다.

회전목마를 타고 빙글빙글 돌아가며.



이 책이 좋고 봄꽃이 만발해 집 밖으로 나왔다. 천변 가에 활짝 핀 벚꽃에 살짝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곧 보뱅을 생각하며 나를 가볍게 만들었다.

 

요즘 산책길에서 지팡이나 워크를 끌고 혼자 걷는 여자 노인에게 달라붙는 괴물을 많이 볼 수 있다. 그 괴물은 2명이나 3명이 짝을 지어 다니며 할머니를 감싼다. 그들은 힘없이 겨우 걷는 할머니에게 바짝 붙어 자기들이 다니는 교회에 오라고 꼬드긴다. 옆에서 살짝 듣고 있으면 그 말들이 가관이다. 나라면 저 사람들에게 짜증을 낼 것 같은데 할머니들은 다 착하셔서 조용히 듣고 있다. 다른 사람의 가벼움을 무거움으로 만드는 사람이야 말로 천국에 갈 수 없을 텐데 정작 저 사람들은 모르는 모양이다.

 

보뱅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가벼움은 어디에나 있다

여름의 도도한 서늘함에

침대맡에 팽개쳐둔 펼쳐진 책의 날개들에....

가벼움은 어디에나 있다.-p. 68

 

내가 하는 산책길에도...

그러니 방해하지 말고 꺼져줄래?

너희는 늑대를 길들일 수 없어!]

 

이번 봄엔 매년 수백 장씩 찍는 봄꽃 사진을 찍지 말고 되도록 눈에 담자고 했지만 그래도 몇 장을 찍고야 말았다. 올해는 진달래가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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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5-04-11 2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글이 너무 좋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오늘이 벌써 4월 11일이네요 막 4월이 된 게 엊그제 같은데요 오늘 날씨 참 좋더라고요 주말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페넬로페 2025-04-11 21:1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오늘 공원에 가니까 벚꽂, 개나리, 진달래가 지고 있고 철쭉이 피기 시작하더라고요.
내일은 비가 온다고 합니다.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시고
주말 즐겁게 보내시길요^^

카리나 2025-04-12 0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덕분에 접한 보뱅의 글은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가벼운 책의 무게도 좋은데...그 가벼움에 어울리지 않게 인생의 많은 것을 성찰하게 하는 글이에요.
곱씹을수록 행복해지는
가벼운 마음~
모든 것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페넬로페 2025-04-12 10:39   좋아요 0 | URL
보뱅의 책에 이제야 제대로 입문했어요.
많은 분들이 좋다고 하셨는데
왜 그런지 알겠더라고요.
어떤 삶의 방향 같은 것도 있고,
내가 그렇게 살지 못해도 조금은 그렇게 살아도 된다는 위로도 받았어요.
맞아요.
곱씹을수록 행복한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다른 책들도 하나씩 읽어 보겠습니다^^

독서괭 2025-04-12 1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저도 가벼운 마음 참 좋았어요! 봄꽃이 아름답네요~ 벚꽃은 주말 지나면 다 질 것 같아 아쉽습니다.

페넬로페 2025-04-12 14:39   좋아요 1 | URL
네, 정말 좋더라고요.
오늘 돌풍을 동반한 비가 내린다는데
꽃잎도 같이 떨어질 것 같습니다.
독서괭님
귀요미들과 주말 즐겁게 보내시길요^^

새파랑 2025-04-12 16: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벼운 마음이라는 제목과 책의 내용과 표지까지 3박자가 완벽한 작품입니다~!! 자유로운 영혼의 보뱅을 느끼기에 최적의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페넬로페 2025-04-12 18:12   좋아요 1 | URL
제목도 좋고, 책의 내용도 모두 외우고 싶을 정도로 의미가 많았어요.
다른 보뱅의 작품도 기대가 됩니다^^

서니데이 2025-04-13 2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주 날씨가 계절을 앞서간 것처럼 기온이 올라가더니 다시 이번에는 추워지네요.
저희집 앞에는 금요일부터 벚꽃이 피기 시작했는데, 바람이 많이 불어서 아쉬워요.
가볍고 즐거운 책도 좋고, 읽으면서 생각할 것 있는 책도 좋은 것 같아요.
페넬로페님,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5-04-13 22:19   좋아요 1 | URL
오늘 저는 전주에 와 있는데 하루종일 바람이 엄청 불었어요.
요즘 날씨는 정말 갈피를 잡지 못하겠어요. 벚꽃도 작년이 더 예뻤던 것 같아요. 내일은 또 비소식이 있고 꽃샘추위가 있다고 하네요.
서니데이님,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시기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