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션이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전, 여행을 가게 되면, 남편은 운전을 하고 나는 옆에서 지도책을 보며 길안내를 했다. 고속도로와 국도를 이용할 수 있는 경로가 여러 색깔과 번호로 복잡하게 표시되어 있는 지도책 한권쯤은 어느 차에나 구비되어 있던 시절이었다. 지도에서 가리키는 선만 놓치지 않는다면 무난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잘못 보기라도 하면 어느 순간 다른 길로 빠져버려 되돌아가야 하는 길을 찾느라 다시 지도책을 들여다봐야 했다. 실시간 교통 정보를 알 수 있고, 친절한 목소리로 10m 앞의 경로까지 알려주는 시스템을 갖춘 요즘 시대에 그 지도책은 기능을 상실했다. 고속도로는 이정표뿐만 아니라 분홍이나 초록으로 갈림길을 표시해주고 지하철이나 버스의 도착 시간도 알 수 있다. 온갖 과잉 친절로 세상 살기가 편해졌지만, 딱 그만큼 인간들의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빼앗기고, 점점 기다림을 못 견디는 호모 사피엔스가 되어 간다. 우리는 지도를 들여다 볼 여유도, 지도를 따라 길을 찾아가야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NPR 해외통신원으로 활동하며 뉴델리, 예루살렘, 도쿄 등 30개국의 다양한 도시에서 뉴스를 전하던 작가 에릭 와이너. 그는 어느 날 자신이 불행한 나라들의 다양한 도시에서 같은 소식만 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이제까지와는 반대로 아무도 소식을 전한 적이 없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의 정체를 밝혀보기로 결심한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뉴스에는 행복보다는 불행한 내용이 더 많다. 오랫동안 불행한 소식만을 전하던 저자 에릭 와이너는 아무도 소식을 전한 적이 없는 행복한 나라를 찾아보기로 한다. 그는 10개의 나라를 소개하며 행복이 무엇인가를 말해주려 한다. 여러 가지 행복의 조건, 변수, 사회적 매커니즘, 데이터, 사람, 환경, 문화 등을 살펴보고 비교하며 행복을 찾아다닌다. 그러나 그 결과로 완성된 행복의 지도는 깔끔하지 않고 뒤죽박죽이다. 지도에서 행복을 찾기가 쉽지 않다. 낙원보다는 어둠을 더 많이 보여주어 이 책이 행복에 대한 책이 맞는지 헷갈리게 한다. 저자의 전략적 작전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저자 자신도 결국 행복의 지도를 완성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행복의 조건은 무수히 많다. , 관용, 가족, 즐거움, 만족, 정체성, 장소, 문화가 어느 정도 갖춰져 있어야 한다. 좋은 것만 있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적당한 불행, 모순, 실패, 권태, 어둠도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돈은 얼마나 있어야 하며, 불행은 몇 번을 겪어야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욕망의 성취와 절제의 경계는 무엇이며, 행복은 나의 내면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밖에서 찾아야 하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여기서 불행하면 이곳을 떠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민주주의 국가에서만 꼭 행복한 것은 아니다. ‘관용은 훌륭하지만, 쉽사리 무관심으로 변질될 수 있고(p50)' '화제를 바꾸는 것은 현실도피의 다른 말(p366)'일 수도 있다. 이처럼 행복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상대적이고 비율적인 것이다. 개인마다, 나라마다 작동되는 행복의 원리와 비율의 숫자는 다 다르다. 선택한 비율의 결과가 무조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도 아니고, 그 경계가 명확하지도 않다. 행복, 참 어렵다.

 

행복해지는 것이 어렵지만 에릭 와이너는 우리에게 나름의 방법을 제시한다(사실 우리가 다 아는 것이다). 행복하게 살려면 자신의 삶을 통제해야 하고, 시기심을 가지지 않아야 한다. 신뢰와 예의가 있어야 하며 행복 추구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다른 사람의 문제는 곧 우리의 문제이고, '사회 속에서 자신이 차지한 위치보다 사회 전체의 질이 더 중요하다(p351)’.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사회, 환경, 문화의 질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개인의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되며, 사회적 시스템이 제대로 균형 있게 작동되어야 한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타인이 행복해야만 하고, 그것을 위해 같이 가야하는 것이 최고의 행복 추구이다. ‘이기적인 이타주의(p327)’의 힘은 그만큼 세다.

 

[따라서 행복의 가장 큰 원천은 타인이다. 그럼 돈의 역할은 뭐지? 돈은 우리에게 타인에게서 고립시킨다. 돈 때문에 우리는 주위에 실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벽을 쌓아 올린다. 우리는 학생들이 들끓는 대학 기숙사에서 아파트로, 다시 단독주택으로 차츰 옮겨 간다. 아주 돈이 많다면, 아예 넓은 땅을 사서 저택을 짓기도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신분이 상승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벽을 쌓아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다. -p190]

 

요즘 날이 더워 밤에 산책을 한다. 10시나 11쯤 내가 사는 동네를 걷는다. 동네의 어디를 가든 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코로나 시국을 어떻게 견뎠는지 몰라도 전염병이 잠잠해지자 밖으로 나와 신들린 듯 술을 마신다. 혼자보다는 여러 사람들이 어울려 술을 마시고, 그 사람들의 표정은 즐거워 보인다. 매일 같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도 만나고, 쿠팡맨도 볼 수 있다. 각종 음식을 배달하는 분들과 학원 셔틀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들도 있다. 개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도 많고 잠투정을 하는 아이를 재우려는 고단한 엄마도 있다. 그들은 행복할까? 우리는 시기심이 없고, 타인을 존중하며 예의와 신뢰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들에게 사람을 틀에 가두지 않는 문화, 아니 적어도 사람이 이 틀에서 저 틀로 자유로이 오갈 수 있게 해주는 문화(p289)’가 있는가? 전직 대통령이 낙향한 사저 앞에서, 현직 대통령이 살지도 않은 집 앞에서 확성기를 틀어놓고 떠들어대는 이 나라에 신뢰는 찾아볼 수 없다. 예의도 없으며, 서로간의 존중도 없다. 시기심으로 가득 차, 그것은 다른 사람을 헐뜯는 무기가 된다. 우리는 안다. 지금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그렇지만 불행만을 가슴에 싸안고 질주한다.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 데 필요한 문화적 요소는 신뢰와 관용이다.

이방인을 믿고, 반대 세력도 믿고, 심지어 적도 믿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을 상대로 도박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민주주의란 결국 거대한 도박이 아니고 무엇인가? -p321]

 

 

 

"우리 다 행복했으면 좋겠어.

쨍하고 햇볕 난 것처럼 구겨진 것 하나 없이.“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중 염미정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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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6-26 18:0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스스로가 지금 행복하다는 생각을 갖는게 가장 중요한데 그러기가 쉽지만은 않은거 같아요.

‘행복의 가장 큰 원천은 타인이다.‘ 이 말이 맞는거 같아요. 좀 이기적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불행을 겪어봐야 이게 행복이구나 라고 알 수 있는거 같아요. 그래서 책을 통해 불행(?)의 간접 경혐도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

페넬로페 2022-06-26 20:04   좋아요 5 | URL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하루에도 몇 번씩 행복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새파랑님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미미 2022-06-26 20:1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저자의 책이군요!!^^*
페넬로페님 글을 읽으니
행복은 아날로그적인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편리‘보다는 ‘과정‘을 경험하며
얻을 수 있다고요. 관계도 그렇고 삶의 목적도...편리하고 완벽한 것보다는 부족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따라오는것?

페넬로페 2022-06-26 21:08   좋아요 4 | URL
네, 알고보니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의 저자더라고요. 미미님 말씀처럼 아날로그적이고 인간적이라야 사람간의 소통이 더 잘될 것 같아요. 행복을 찾는 방법이 많지만 지금 이대로는 어림 없어요 ㅠㅠ

그레이스 2022-06-26 20:4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더 나은 집으로 옮겨가는것 같지만 타인으로부터 벽을 쌓고 있는 중이라는 말 완전 동의합니다.

페넬로페 2022-06-26 21:09   좋아요 4 | URL
네, 정말 그렇죠!
높이 높이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지만 그렇게 살아 남는다고 행복할 것 같진 않아요^^

mini74 2022-06-27 11:3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불행하지 않아도 우울증이 온다고 하더라고요. 가끔 불행하고 자주 행복하면 좋겠어요. 시기심 ㅠㅠ 버려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아요 해방일지 대사 넘 좋네요.

페넬로페 2022-07-09 00:08   좋아요 4 | URL
완벽한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저 비율적으로 행복이 불행보다는 더 높은 수치였으면 하고 바랄 뿐이예요.
해방일지 대사 다 좋아요^^
오늘 하루 미니님께서 행복하시길 바래요**

바람돌이 2022-06-27 12:3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결국 행복은 사람관의 관계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내 주변에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나. 좋아하는걸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나 이런거..... 가족이든 친구든.... 주변에 ˝여기는 사람을 너무 배려하지 않아˝라며 늘 투덜거리는 2인이 있거든요. 아 진짜 싸대기 하나 날리고 한마디 하고 싶어요. 제발 너네나 다른 사람 좀 배려 좀 해봐라. 너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1도 없으면서 어쩜 그렇게 받을려고 악을 쓰니... ㅎㅎ

페넬로페 2022-06-27 15:57   좋아요 3 | URL
어디를 가나 그런 사람 꼭 있습니다. 숟가락 하나 얹는것도 귀찮아하면서 나중에 젤 말 많은 사람요. 영화의 대사처럼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요 ㅠㅠ
이 책은 행복을 개인적인 것으로 두지 않고 여러 조건에 대해 얘기해 좋았습니다**

scott 2022-06-27 23: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의 행복은!

여기, 알라딘 서재
그리고 책들 ㅎㅎㅎ

고인플레 시대에 행복은
누군가 나에게 기프티콘 쏴주는 것! ^ㅅ^

페넬로페 2022-06-28 09:37   좋아요 2 | URL
네, 저한테 행복은 책이고 가족입니다.
인플레가 생각보다 심하고 오래 갈 것도 같고요. 행복할 수 있는 여건이 점점 줄어 들어 걱정입니다^^

희선 2022-06-28 01:5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뉴스 안 보지만, 인터넷 기사만 제목만 봐도 좋은 이야기보다 안 좋은 이야기가 더 많더군요 자신만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도 생각하고 살면 좋을 텐데... 이렇게 말해도 저도 그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힘들면 다른 사람은 생각도 못하니... 사람마다 바라는 것도 달라서 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어렵겠지만, 많이 바라지 않고 작은 것에도 기뻐하면 좀 나을지도... 이것도 잠시뿐일지 모르겠네요 남과 견주지 않으면 좀 낫겠습니다 너는 너, 나는 나...


희선

페넬로페 2022-06-28 09:42   좋아요 4 | URL
시기심이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가기도 하고 시기심으로 더 발전하고 성장하기도 한다는데 아무래도 전자의 경우가 절대 많겠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다 같이 가야 하는게 맞아요. 근데 각자 사는 게 힘드니 잘 안되는 것을 탓할수도 없고~~희선님 말씀처럼 작은 것에 감사하고 그러려니 하며 사는 마음들이 모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 같아요^^

mini74 2022-07-08 18: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저도 책과 가족이 행복 아니 똘망이도 포함 행복이랍니다 ㅎㅎ 축하드려요 *^^*

페넬로페 2022-07-11 00:42   좋아요 1 | URL
똘망똘망 똘망이와 함께 미니님, 언제나 행복하시길 바래요.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2-07-08 18: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축하드려요. 행복하세요~^^♡

페넬로페 2022-07-11 00:43   좋아요 0 | URL
그레이스님, 감사합니다.
우리 무지무지 행복하자구요**

새파랑 2022-07-08 19: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또 당선~!! 나나와는 전혀 극단의 책인거 같지만~! 축하드려요 ^^

페넬로페 2022-07-11 00:45   좋아요 2 | URL
나나와 극단인 것 같지만, 이 책의 내용도 좀 혼란스러웠어요.
그만큼 행복은 어려운 것인가봐요.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우리는 책을 통해 행복을 찾아보아용~~
감사합니다**

희선 2022-07-09 02: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 님 또 축하합니다 더워도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희선

페넬로페 2022-07-11 00:46   좋아요 1 | URL
희선님, 감사드려요**
날씨가 정말 덥네요.
건강 유의하시고, 이번 주도 우리 행복하게 보내요**

scott 2022-07-12 00: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이달의 당선 이관왕 축하드립니다

알라딘에서 행복의 지도는!

매주 언제 날라올지 모르는
기대별점 1000냥 받고 장바구니 털귀!^^

페넬로페 2022-07-12 13:5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scott님!
우리들의 행복은 책읽기인데
날씨가 넘 덥습니다 ㅎㅎ

thkang1001 2022-07-12 08: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이관왕 선정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무더운 날씨에 건강 잘 챙기시고 행복한 한 주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2-07-12 14:05   좋아요 1 | URL
thkang님,
매번 축하해주셔서 감사해요^^
더운 여름에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