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가는 길이 아름답다. 온 천지가 단풍으로 물들었고, 약간 춥지만 오히려 시원한 느낌이 들어 좋다. 많이 걷기 위해 언젠가부터 집 가까이에 있는 도서관이 아니라 30분 정도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교육청 소속의 구립 도서관에 다닌다. 그곳은 웬만한 책은 거의 구비되어 있고, 희망도서를 신청해도 2주 만에 도착 알림을 주어 이용하기에 편한 장점도 있다. 도서관에 도착해 체온을 재고, 핸드폰으로 QR체크를 하고 매번 그렇듯 서가가 있는 2층이나, 3층으로 올라가야 했지만 오늘따라 입구에 있는 키오스크에 눈길이 갔다. 언제부터 이것이 서 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오늘 뭐 읽지? 나도 몰랐던 나의 도서 취향은?”이라는 문구에 혹해 햄버거 가게에 온 것처럼 스크린을 터치하기 시작했다.

 

요즘 가장 관심이 많은 것은 무엇인가요?

-여행, 진로, 기획 마케팅, 리더십, 지식 상식, 정치/사회, 시간관리, 심리 (시간관리)

 

요즘 어떠세요?

-슬퍼요, 이별했어요, 외로워요, 답답해요, 불안해요, 사랑하고 있어요, 힘들어요, 떠나고 싶어요, 용기가 필요해요, 행복해요, 무기력해요, 심심해요, 고민이 있어요, 힐링이 필요해요.

(힐링이 필요해요)

 

지금 연애 중인가요? 아니면 결혼을 하셨나요?

-선택 안함, 솔로, 연애 중, 결혼 생활 중...(결혼 생활 중)

 

나이대는 어떻게 되세요?

-10, 20, 30, 40, 50, 60, 70, 어린이 (비밀)

 

당신의 성별을 알려주세요!

-여성, 남성 (여성)

 

책을 읽을 때 선호하는 장르가 있나요?

-문학, 실용, 아무거나 (문학)

 

질문 받는 순서대로 터치하자 마지막 스크린에 4권의 책이 나에게 제시되었다. 그 중 한 권이 최은영 작가의 내게 무해한 사람이었다. 시간관리에 이 책이 필요하다고? 많이 의아했지만 나머지 책들은 별로 읽고 싶지 않았고,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를 너무 좋게 읽었던지라 결국 이 책을 빌려왔다.

 

최은영 소설, ‘내게 무해한 사람7편의 단편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는 제목의 소설은 없지만 표제로 이 문장이 사용되는 이유는 알 수 있었다. 일곱 편 소설의 소재와 장소는 모두 다르지만, 그것은 연결되어 있었고, 작가가 하고 싶은 말들이 소설들 속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었다.

 

[나는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고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이 주는 고통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몸으로 느꼈으니까....

 

나쁜 어른, 나쁜 작가가 되는 것처럼 쉬운 일이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쉽게 말고 어렵게, 편하게 말고 불편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과정에서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느끼고 싶다. 그럴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이 될 수 있기를. -p324]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불편하다. 쉽지 않고 어렵다. 가족, 친구, 연인 사이에, 그리고 학교, 사회에서 무수히 자행되는 폭력이 있고, 상처가 있으며, 사람과의 어긋나고 이해되지 못하는 관계가 있다. 내가 살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나의 마음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어느 정도까지 그 사람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얼마까지의 인내를 가지고 다른 사람의 상처를 보듬어주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나 자신의 아픔과 고통은 뒤로한 채, 타인의 감정을 먼저 살펴야 하고 이해해야 하지만 그때마다 억눌린 나의 감정과 자유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내가 한 만큼 타인 역시 나를 위해 그만한 고통을 감수하며 노력해줄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대체로 그러한 기대와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로 인한 실망과 오해는 관계의 끝을 가져오기도 했다.

 

사람에게서 받을 수 있는 상처는 여러 가지이다. 매 맞아서, 말로, 눈빛으로, 생각이 달라서, 이해받지 못해서, 관습에 얽매어, 서로의 선택으로, 누군가의 마음에서 지워지고 죽어서, 외로워서, 아파서.......

 

내게 무해한 사람의 소설들은 모두 과거를 회상한다. 지나온 지금 후회와 먹먹함이 가득하고, 과거에서 벗어나려는 노력과 자유가 있다. 계속 이어지는 관계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결국 내게 무해한 사람이란 과거의 결과로 평가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누군가와 과거의 관계에서, 무해한 사람이었는지, 상처를 주는 사람이었는지 그 사람에 의해 판단될 것이다. 현실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항상 어렵고 막막하다. 나의 최선을 다한 행동과 선택이 미래에 무해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무해하다는 말은 너무 건조하다.

 

[피조물에게서 위안을 찾지 마십시오. 수사가 되었을 때 나의 담당수사는 그렇게 말했다. 감실 앞으로 나아가세요. 하느님께 이야기하세요. 그의 말에 나는 일정 부분 동의했으며 신에게 나의 존재를 의탁하고자 했다. 신의 현존에는 분명 그가 말한 위안이 존재했다. 그런데도, 그런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밤. 나를 오해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이용할지도 모를, 그리하여 나를 낙담하게 하고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피조물에게 나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싶은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고 나의 신에게 조용히 털어놓았던 밤이 있었다. p209, '고백중에서]

 

시간관리에 힐링이 필요한 사람에게, 이 소설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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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1-15 17: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셨군요. 시간관리를 필요로 하는 페넬로페님에게는 안맞는 책인거 같아요. 이 책 읽으면 힐링 보다는 좀 센티멘탈해질거 같은데 😅

페넬로페 2021-11-15 19:00   좋아요 4 | URL
네, 이 책이 시간 관리와는 영 맞지 않았어요.
그대신 이 기회에 최은영작가님 책 읽게 되어 감사해야 할 것 같아요 ㅎㅎ
센티멘탈과 먹먹함이 동시에 오는 책이었어요~~

행복한책읽기 2021-11-16 01: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째요. 서두가 강렬하여 시간관리와 힐링이 필요한 사람이 읽을 만한 책으로 기억되겠어요 ^^;;
세상 무해한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요? 의도치 않았는데도,
상처 주고 상처 받게 되는 것이 그냥 인생 같아요. 저도 페넬로페님처럼 자신이 없네요. ㅡㅡ

페넬로페 2021-11-16 10:42   좋아요 2 | URL
최은영 작가의 이 좋은 책에 제가 이런 서두를 붙여도 되나 고민을 했지만 있는 사실 그대로 얘기해야하니까 그냥 썼어요 ㅎㅎ
무해하다는 말이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그렇게만 살수 없으니 요즘은 마음을 비우고 나는 완전한 인간이 아니라는 인정을 하니 편하게 되더라고요~~
당연히 사람사이에는 상처라는게 남을것 같아요^^

독서괭 2021-11-16 01: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니 나이대는 왜 비밀인 거죠??🙄
시간관리에 최은영이라니 뭐지.. AI가 시간에 쫓기지 말고 뒤를 돌아보며 살라고 하는 걸까요..
최은영<쇼코의 미소>는 저도 재밌게 봤는데 다른 책은 못 읽어 봤네요. <내게 무해한 사람> 제목은 많이 들어봤는데 페넬로페님 리뷰 보니 무해하다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면서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페넬로페 2021-11-16 10:49   좋아요 4 | URL
저도 쇼코의 미소를 좋게 읽고 작가의 문장도 좋아해요. 이 소설이 지금 제가 읽고 있는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과도 통하는 것 같아요. 어디서나 사람이 살아가면서 마음이 어렵고 힘든것은 마찬가지인것 같아요.
근데 전 끝까지 무해하다는 말이 좀 건조한것 같아요. 해를 좀 입어도 좋을수도 있는것 아닌가요^^
말씀하신대로 왜 제가 나이는 비밀로 했을까요 ㅎㅎ

희선 2021-11-16 02: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무슨 책 볼지 모르는 사람한테는 저게 도움이 되겠습니다 딱 맞다고 할 수 없을지라도 저 기계가 추천해주는 책을 보고 책에 관심을 가질지도 모르잖아요 저런 기계 재미있네요

‘피조물한테서 위안을 찾지 마라’ 마음에 새기고 싶은 말입니다 이 책 봤는데 그 말 그냥 넘어간 듯합니다 제가 볼 때는 모르고 나중에 저런 말도 있었구나 하네요

사람은 다 해가 없을 수 없을 듯합니다 다 상처를 주고받고 살겠지요 아니 그것만 있지 않네요 따듯한 마음도 주고받겠습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1-11-16 10:55   좋아요 4 | URL
자주 도서관에 다니면서도 처음으로 한번 이용해봤는데 재미있었어요. 담엔 모든 조건을 저와 다르게 터치해서 추천하는 책도 읽고 싶어졌어요. 같은 책을 읽어도 사람마다 마음가는 문장은 다 다르다는 것이 늘 새롭고, 전 그것이 좋아요. 사람이 다 달라야 하는거잖아요~~
희선님 말씀처럼 저 역시 해가 있고 없고가 아닌 그저 따뜻하고 선하게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scott 2021-11-16 17: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최은영 작가가 이번에 대산 문학상 수상 하면서 가장 핫 한 작가로 부상 한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사이트에서 알고리즘으로 책 추천 받으면 10의 10은 제 취향과 다르게 나옵니다 ㅎㅎㅎ

무해한 사람,,,SNS로 의사소통 하는 시대에 타인의 마음 보다 오로지 내 안의 상태만 집중 하게 되버린것 같습니다. ^ㅅ^

페넬로페 2021-11-16 18:08   좋아요 3 | URL
아, 작가가 이번에 대산문학상 받았군요~~그 작품도 읽어보고 싶더라고요.
어떤식으로든 사람들은 소통하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하는데 그것이 녹록하지 않고 그 결과로 상처를 주고 받고 ㅠㅠ
그래서 점점 자신 안으로 들어가는 것 같아요. 그게 좋지 않은건데도 어쩔수 없어서 안타까워요^^

서니데이 2021-11-16 18: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간 관리가 필요한 사람에겐 자기계발서가 좋은데, 소설을 말해주다니.
힐링은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겠네요.
잘읽었습니다. 페넬로페님,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페넬로페 2021-11-16 19:53   좋아요 2 | URL
다르게 생각해보면 사람에게 들이는 노력이 시간이고 그에 따른 기쁨이 힐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요 ㅎㅎ
서니데이님, 즐겁고 편안한 저녁 시간 보내시길 바래요**

서니데이 2021-11-17 17: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구름이 많고 어제보다는 조금 더 기온이 내려간 날이었어요.
편안한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따뜻하고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페넬로페 2021-11-17 20:38   좋아요 4 | URL
오늘 날씨가 구름이 많아 아무래도 조금 기분이 다운되는것 같아요.
서니데이님, 남은 저녁시간도 편안하시면 좋겠어요^^

서니데이 2021-11-18 21: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수능시험날이었는데, 어제보다 많이 따뜻했습니다.
편안한 하루 보내셨나요.
페넬로페님, 좋은 밤 되세요.^^

페넬로페 2021-11-18 23:35   좋아요 2 | URL
오늘 수능일인데 다행히 날씨가 따뜻해 좋았습니다.
서니데이님,, 오늘도 행복하셨죠!
좋은 꿈 꾸시길 바래요^^

stella.K 2021-11-19 18: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한 번 읽어야할 것 같군요.
사람을 이해하는 건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특히 가까이 사는 사람과 잘 지내기란 정말로 어려운 것 같더군요.
그게 부모가 됐든, 배우자가 됐든, 자식이 됐든.
그렇다고 혼자 살 수도 없고.
단지 약간 위로가 된다면 나만 그러는 게 아니라는 정도...?ㅋ
가까이 있는 사람은 왜 그렇게 힘들까요.
사랑해서 결혼하면 안 되는 것 같더군요. 오히려 사랑하면 결혼하지 않는 것도
사는 방법중 하나는 아닐까 싶기도 해요.ㅋ

페넬로페 2021-11-19 19:07   좋아요 2 | URL
가까이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기가 정말 쉽지 않아요. 기대가 커서 그렇겠죠? 딸아이와도 참 삐걱대요. 사랑보다는 책임이 앞서 그런가봐요. 언제쯤 삶이 쉬워지고 가벼워질지~~
전 다음생엔 결혼하지 않을거예요.
그냥 사랑만하고 살고 싶어요^^

stella.K 2021-11-19 19:11   좋아요 2 | URL
맞아요. 연애만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사람이 더 잘 사는 것 같더라구요.ㅋㅋ

페크pek0501 2021-11-20 13: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사 놓은 줄 알고 나의 계정에서 검색해 보니 안 샀네요. 푸하~~~
왜 샀다고 생각했을까요?

페넬로페 2021-11-20 13:43   좋아요 2 | URL
저도 그럴때가 많아요.
페크님의 페이퍼에서 말씀하신대로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 접속사가 많아 고치려고 해요~~
이래저래 글쓰기가 많이 어려워요 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