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것들은 어디로 가는가 - 모두가 쉬쉬하던 똥 이야기 사소한 이야기
리처드 존스 지음, 소슬기 옮김 / Mid(엠아이디)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버려진 것들은 어디로 가는가

(원제: Call of Nature)

리처드 존스(Richard Jones) 지음 | 소슬기 옮김 | [MiD]

 

이것은 삶의 순환같은 것이다.’

: 똥딱정벌레를 좋아하는 곤충학자의 따끈따끈 똥이야기

이번에는 40 이상 똥을 찾아다닌 영국의 곤충학자의 이야기가 모여있는 책으로 시작한다. 우리 주위의 아이들 중에는 이야기하면 눈을 반짝이며재미있는(?) 이야기를 기대하거나 웃음을 터뜨리는 아이들이 있다. ‘ 동물들의 대사배설물이라고 있기에, 지구 상의 모든 존재의 삶에 필수불가결한 구성요소라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보여주는 호기심어린 반응은 사실 저자인 리처드 존스의 표현대로 우리의 본능적인 혐오감과 무지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른들이라고 별반 다를 것은 없어보인다. 배설물에 대한 성인들의 혐오감과 무지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읽은 <버려진 것들은 어디로 가는가> 마디로 똥을 둘러싼 생태 이야기쯤으로 표현해 있다. 나는 책을 크게 부분으로 구분해본다. (1) 우선 저자는 똥에 관한 생물학적인 지식들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인분을 비롯하여 여러 동물의 배설물에 얽힌 과학 뿐만 아니라 헤라클레스의 신화에 등장하는 소똥이야기를 비롯하여, 역사적인 사실(배설물 처리 동물의 배설물 용도 )들을 폭넚고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 (2) 뒤이어 저자는 보다 집중하여, 똥생태계를 소개한다. 곤충학자로서 자연스레 따끈따끈(?)’ 생태계의 중요한 구성원인 곤충인 똥딱정벌레를 비롯하여 똥파리, 반날개, 나비, 구더기 등이 등장하고 있다. (3) 책의 후반으로 가면서 앞서 소개한 개체들이 환경과 맺는 관계를 노련한 생물학자의 시선으로 보다 폭넓게 조망하고 있다. 생태학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똥생태계의 중요성을 알리는데 집중하며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똥딱정벌레에 대한 곤충학자의 애정

책에 등장하는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곤충은 공식적으로 신비쇠똥구리이다.”(242)

신비쇠똥구리에 대한 저자의 언급으로 시작한 이유는 책의 전반을 통해 단순히 곤충학자로서를 넘어선 대상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똥에 의존하는 다양한 동물 중에 똥딱정벌레는 생존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중요한 존재라고 저자는 소개한다. 소년 시절부터 똥이 있는 곳을 찾아 다니며, 똥을 발견하면 관찰하고 파헤치기를 40 넘게 곤충학자에게도 특별히 애정이 가는 대상이 바로 똥딱정벌레류인 것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 방목용 목초지였던 집주변을 식물학자였던 아버지와 자주 저녁 산책을 하며, 주변을 탐사하고 다녔다. 어린 시절의 기억 중에서 저자는 엄청난 수의 금풍뎅이를 발견했던 일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공중으로 날아오른 녀석은 손바닥에서 이륙하는 작은 헬리콥터 같았고, 나는 피부에 닿았던 바람의 추억을 지금도 대부분 느낄 있다. 그리고 녀석들이 날아가며 남긴, 부드럽게 붕붕대는 음이 두뇌 뒷부분 어딘가에 있다. 어린 시절의 어느 여름 저녁이 남긴, 축복받은 추억의 소리이다.”(259)

저자가 본격적으로 딱정벌레 연구를 시작하게 것은 성인이 한참 후의 일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사실 딱정벌레가 곤충학자인 리처드 존스의 삶에서 떨어져본 적은 없어 보인다.

 저자에 의하면 똥딱정벌레는 소똥구리과, 금풍뎅이과, 똥풍뎅이과에 속하는엄청나게 다양한 곤충으로 9,000-10,000 정도가 알려져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많고 다양한 종류의 딱정벌레가 지구 생태계에서 번성한 이유가 무엇일까가 문득 궁금해진다. 수많은 종류의 딱정벌레 사례는 사실 진화론적 세계관과 창조론적 세계관의 논쟁에서 등장하기도 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창조론적 세계관에 대한 진화론적 세계관의 비판 하나는 신이 세계의 모든 것을 창조했다면, 이렇게 다양한 딱정벌레를 설계하신 신의 의도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물론 성격에 대한 보다 복잡한 논의는 고민하지 않겠지만, 여기서 비판이 되는 스피노자의 자연의 법칙 내지 섭리로서의 신적 질서 의미하기 보다는 의인화된 기독교적 대상으로 제한해서 말이다.

숭배의 대상으로서 저자가 애정을 갖고 바라보는 딱정벌레류 소똥구리는 사실 기원전 2000 고대 이집트 왕국 시대에 이미 숭배 애호의 대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나 흥미로운 것은 당시 이집트 사회에서 소똥구리는 부적과 목걸이, 브로치 등의 장신구에도 널리 사용되었다고 하는 점이다. 책에는 다양한 딱정벌레를 비롯한 생물체의 그림이 담겨있는데, 나는 중에서도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고대 이집트의 1.5미터, 높이 1미터짜리 거대한 진왕소똥구리 석상 (<그림29>, 247) 주목해본다. 전에 어디에선가 이와 비슷한 그림을 적이 있다. 사실 당시에는 문양이 후대인들이 고대 이집트의 문양을 빌려 디자인한 그림이 아닐까하는 생각만 잠깐 적이 있었는데, 저자에 의하면 석상은 기원전 330 무렵에 만들어진 진품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소똥구리는 당시 고대 이집트 인들에게 숭배의 대상이었다는 놀라운 사실과 함께 말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검정색 소똥구리가 경외의 대상이었던 이유에 대해 저자는 실마리를 조바심내는 독자들에게 바로 알려주지 않고, 후반에 슬며시 공개한다.

작물과 수확의 계절성에 따른 삶의 순환, 풀의 성장과 방목용 목초지, 또는 하늘을 굴러가는 태양의 신비스러운 일주기를 고대 이집트인들이 소똥구리와 연관지었든 아니든, 그들은 소똥구리에게 감탄하고 박수를 보냈다.”(318)

아울러 자신의 몸무게에 비해 50배나 무거운 경단 나르는 장사들은 고대 이집트 인들에게 정력 화신으로 보였던 것일까? 아니면 주거형 딱정벌레와 같이 경단 땅에 묻고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고 돌보던 똥딱정벌레류처럼 속에서 엄청난 힘으로 지표면을 뚫고 나오는 모습을 통해 사자의 귀환내지는 불멸의 존재 모습을 보았는지는 정확히 수는 없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 인들은 보다 자연의 일부로서 똥을 둘러싼 생태계, 그리고 소똥구리의 생태에 보다 밀접한 관찰과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저자가 인정하듯 똥파리를 비롯하여 기타 똥에 의존하는 생물체들과 같이 똥딱정벌레들은 진정한 똥장인 주요 구성원인 것이다.

 

똥으로 덮힌 침묵의 맞지 않기 위하여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똥과 똥의 주민들에게 충분한 관심을 갖게 된다면, 아직도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새롭고 신나는 것들을 발견할 있을지도 모른다.”(278)

저자의 말을 통해 저자가 연구하는 대상에 대한 애정과 흥분이 충분히 전달될 정도다. 또한 똥과 똥의 주민들 결국 개체들과 환경에 대한 관계를 의미하고 있는데, 이는 결국 저자의 생태학적 관심을 드러내주고 있는 부분이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저자는 책에서 똥과 똥의 주민 대한 생물학적 지식만을 전달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보다 폭넓은 관점에서 개체와 환경사이의 관계에 주목하고,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똥의 주민에게 하나의 환경이지만 결국 똥은 대지에 속해있다. 저자는 우리가 발을 딛고 서있는 환경으로서의 대지 중에서도 중요성을 특히 강조한다.

어떤 시점이 되면 똥과 흙의 경계는 완전히 흐려진다. 부엽토는 썩어가는 유기물의 잔해를 끊임없이 휘저은 것이라고 주장할 있는데, 어쨋거나 지렁이는 여기에 등장한다. () 가축이 풀을 뜯는 들판에서는 똥에서 흙으로 변하는 정도를 감지하기 어렵다. 흙이 똥을 포함한다. 똥은 흙이다.”(294)

흙은 우리가 쉽게 발견하는 동식물 생태계의 기반이되는 환경이라고 있다. 여기에서 나아가 저자는 이런 생태계를 인간이 본의아니게 교란할 있고, 결과는 상당히 심각할 있다는 우려를 드러낸다.

이러한 개체-환경과의 생태관계를 교란한 사레를 저자는 역사에서 다시 소환한다. 때는1700년대 말에서 1800년대 초에 걸쳐 영국에서 추방된 영국죄수들이 호주에 거주하기 시작했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데려온 소들의 배설물을 제대로 처리할 있는 똥딱정벌레가 없어서 목초지가 똥으로 덮히는 재앙이 될뻔한 사례를 언급한다. ‘호주 똥딱정벌레 프로젝트라고 불렸던 계획은 결국 생태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소들의 배설물을 처리할 있는 똥장인 도입하는 과제였던 것이다. 사례는 외래종의 도입에 따른 토종 생물들의 멸종위기와 같은 경각심을 다시금 일깨워주며, 우리가 현재 보유하고 누리고 있는 생물권의 자원을 돌보고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해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나아가 저자는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 에서 DDT 교훈을 통해 우리에게 경고했듯, 가축들에게 투입되는 항기생충제 이버멕틴의 사례나 그밖의 화학약품들에 대한 경고를 여러 페이지에 걸쳐 놓치지 않고 있다. 결국 가축들의 기생충을 없앤다는 명목으로 투입되는 기생충약으로 가축 체내의 기생충을 제거할 있을 지언정, 이러한 화학약품들은 거의 변하지 않고 체외로 배설물과 배출되어 똥에 의지하고 살아가는 똥생태계를 크게 교란시키고, 위험에 빠뜨릴 있음에 저자는 경종을 울리고 있다. 항기생충제 이버맥틴의 경우만 보더라도, 결국 독이 똥을 배출함으로써 똥딱정벌레의 성체 유충의 행동을 크게 변화시키거나, 개체를 감소시켜 똥의 분해가 다시금 지연되는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1800년대에 호주의 목초지가 똥으로 덮힐 뻔한 것처럼, 똥딱정벌레에 의해 똥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언제든 똥으로 뒤덮힌 침묵의 다시금 우리를 찾아올 있을 것이다.

화학약품에 의한 생태계 교란과 더불어 오늘날 인간에 의해 진행되어온 여러 포유류의 멸종은 다른 결과를 초래할 있다. 여러 거대 포유류의 멸종에는 배설물에 의존하는 수많은 똥생태계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게 된다. 현재 아프리카의 똥딱정벌레들이 감소할 것으로 우려하는 이유도 사실 거대 포유류의 멸종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이렇게 똥딱정벌레들의 앞날이 어두운 것은 사실 사람이 파괴한 진짜 결과이다’(348)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자신이 특히 애정을 갖고있는 딱정벌레들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한다.

특히 딱정벌레가 보여주는 창을 들여다봄으로써 우리 인간도 일부를 이루고 있는 생태계가 어떻게 작동하고 실패하는지 있다. 딱정벌레들은 환경이 얼마나 건강한지 알려주는 지표이자, 생태계의 회복력을 측정하는 척도이면서 생물권에 다가오는 재앙에 대한 조기경보 시스템이다. 우리는 딱정벌레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며 특히 똥딱정벌레는 자세히 관찰할 가치가 있다.”(349)

 

 

버려진 것들은 어디로 가는가 - 정리

저자 리처드 존스의 평생에 걸친 연구와 애정이 담긴 책을 읽으면 우리가 아는 똥이 아닌 새롭게 바라보게 해준다. 목초지 혹은 목장에서 소똥을 발견한다면, 언젠간 나도 똥을 좀더 바라보고 관찰하고 파헤쳐보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여기에서 금빛의, 혹은 청록색의 풍뎅이나 소똥구리를 발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가지고 말이다. 책에서 우리는 똥을 이용하는 자연계의 섭리와 지혜를 새롭게 바라보게 해주고 있고, 버려진 것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온다 관점을 나뿐만 아니라 다른 독자들도 얻게 되리라 확신한다. 저자의 흙은 똥이다라는 표현처럼 결국 똥은 우리다라고까지 말할 있게 되었다. 거부감을 느낄 사람이 있겠지만 나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가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고, 잇닿아 있다는 관점에서 표현한 말이다. 어쩌면 산업혁명 이후 우리를 둘러싼 환경, 자연으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소외시키기 시작한 이래로 우리의 자연에 대한 무지는 심해지고, 지구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더욱 무뎌지고 있는 형국이다. 기원전 2000 소똥구리를 숭배했던 고대 이집트인들이 알고 있던 것보다 월등한 지식을 소유한 우리이지만, 어쩌면 우리는 자연에 대한 우리의 애정과 이해는 이들보다 형편없을지도 모르겠다. 똥은 단순히 배출되어 비료로서 자연계에 역할을 하는 것을 넘어 이후의 새로운 생명활동에 관여하는 중요한 자원이기도 하다. 버려진 의존하는 똥딱정벌레의 사례에서 충분히 있듯이 똥에서 새로운 먹이 사슬이 발생하고 자연의 순환과정은  이어진다. 여기에 우리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지혜를 좀더 배워야할지도 모르겠다. 책을 통해 똥과 똥딱정벌레로 대표되는 환경과 개체와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선은 나아가 새로운 생태학적 시각을 넓히고 우리의 삶을 지켜나가는데 중요한 지침이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버려진것들은어디로가는가 # #딱정벌레 #생태학 #생물학 #MID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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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항상 연기가 폴폴 날아다니던 맨하탄을 걷다가 찍어둔 필름 사진으로
시아노프린트용 필름을 다시 제작하고, 감광유제를 직접 만들어
붓으로 바르고 노광한 후 얻어낸 이미지.
 
 
 
아직은 많이 서툴지만 암실에서 이루어지는 일반적인 흑백톤의 인화보다 
제약이 더 많고, 그 만큼 더 간단하게 작업할 수 있다. 
흑백사진은 암실에서 후처리 작업을 의도에 맞게 조절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좀 더 넓은 만큼 어느 정도의 시간을 두고 기술을 읽혀야한다.
 
시아노프린트는 제작한 필름을 인화지 바로 위에 밀착인화지를 만들듯이 밀착하여 노광하므로 필름과 인화지 사이에서 후기작업을 할 여지가 없다.
필름을 만들 때, 애초에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볼 수는 있겠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산책하던 어느 저녁
서로에게 집착하듯 떨어질 줄 모르고 사랑을 표현하던 커플을.
이 커플은 분명 한 시간이 넘게 입을 맞추고 있었다. 
내가 산책하러 들어갔다가 나올 때까지도 같은 강도의 입맞춤을 하고 있었으니까.
 
 
사진의 왼쪽 끝에 내 그림자가 부러운 듯 덩그러니 놓여있다.
그땐 그랬다. 해가 넘어가는 석양으로 늘어진 긴 그림자를 보며
이들도 마치 물처럼 길게 흘러흘러 가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사진에 해당하는 텍스트를 사진과 많이 띄어놓은 이유는 사진을 볼 때 텍스트를 시야에서 보이지 않도록 의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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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주사위와 슈뢰딩거의 고양이 - 상대성이론과 파동방정식 그 후, 통일이론을 위한 두 거장의 평생에 걸친 지적 투쟁
폴 핼펀 지음, 김성훈 옮김, 이강영 감수 / 플루토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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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주사위와 슈뢰딩거의 고양이

(원제: Einstein’s Dice and Schrodinger’s Cat)

핼펀(Paul Halpern) 지음 | 김성훈 옮김 | 이강영 감수 | [플루토]

 

 

들어가며

오늘날 아인슈타인은 말할것도 없고, 많은 일반인들이 슈뢰딩거에 대해서도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특히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이나, 애매모호함의 상징이 되어버린 슈뢰딩거의 고양이 역설 이미 대중문화에 자리잡은지 오래다. 지난 백여년 간의 물리학사를 되돌아볼 , 사람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얄궂은 입장을 공유하며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아인슈타인의 주사위와 슈뢰딩거의 고양이 바로 20세기 현대물리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인 물리학자들의 우정과 연대, 반목과 화해의 이야기이자 현대물리학사의 국면에 대한 흥미롭고 귀중한 기록이기도하다. 그리고 물리학자 사이를 매개하는 이야기의 중심에는 자연의 모든 힘을 통합하려는 통일이론 있었다. 책은 1900년대 양자역학 상대성 이론이 태동하던 시기에서 시작하여 최근의 힉스입자 발견 중력파 검출 등의 최근 물리학 소식까지 아우르며 인류가 존재의 기원 우주의 근본에 대한 이해라는 노력의 현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 사람은 20세기 양자역학의 정립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준 장본인이다.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 발견, 슈뢰딩거의 파동역학 정립으로 사람은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양자역학이 보어와 하이젠베르크가 주축이된 코펜하겐 해석’, 자연의 무작위성 확률 대변되는 철학적 해석이 많은 물리학자들로부터 지지를 받게 되자,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는 이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공동의 전선을 구축하게 된다. 사람은 우주의 질서에 우연이 배제된 결정론적 법칙이라는 명료함과 객관성에 의해 유지된다는 믿음을 공유하고 자연의 여러 힘들을 통합하려는 노력에 전념하게 된다. 책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을 중심으로 일어난 사건들을 이들 사이에 오고간 편지 사료들을 조사하여 재구성하고 있다.

 

 

 

스피노자라는 유령과 스피노자의

아인슈타인은 대중에게 너무나 알려진 아이콘으로서 그가 상대성이론이나 광전효과, 브라운 운동 등의 발견 이론 정립 뿐만 아니라 생의 후반에 통일이론 정립에 매진했음을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반면 슈뢰딩거도 아인슈타인과 같은 입장에서 서로 경쟁하고, 연대하며 통일이론을 추구했다는 사실은 새롭게 알게 되었다. 나아가 책에서 더욱 흥미로웠던 부분은 사람 모두에게 의식/무의식 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인물이 다름아닌 스피노자라는 사실이다. 물론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 사람은 모두 철학적으로 스피노자, 쇼펜하우어, 마흐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으나, 시기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스피노자가 나머지 사람에게 영향을 크게 미친 것은 분명해보인다. 그런데 하필 스피노자인가? 네덜란드의 유대인으로서 이른 나이에 유대교단 으로부터 저주와 함께 파면을 당했다고 하는 이단아 스피노자, 파면 렌즈 깍는 일을 하며 독립적으로 자신의 철학체계를 세운 사람에게 세기의 천재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가 경도되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자연에는 우발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신성의 필연성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고 행동하도록 결정되어 있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재인용(163)

 

저자 핼펀이 스피노자의 에티카에서 인용해놓은 부분을 보면,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가 평생토록 취했던 철학적 입장, 다시말하면 우주에 대한 근본적 설명에 애매모호함이나 주관성을 배제하려고 했던 입장의 실마리가 보인다. 우연을 거부하고 결정론적인 믿음을 갖게 데에는 분명 스피노자의 치밀한 철학체계에서 영감을 얻은 바가 것이다. 스피노자의 에티카 보더라도, 책은 짧은 스피노자의 생애의 상당 기간동안 엄밀한 기하학적 증명 방식을 빌어 자연의 법칙이라는 신과 인간에 대한 논증을 완성해나간 책이다. 공교롭게도 20세기가 태동하면서 등장한 양자역학의 애매모호성 스피노자의 엄정하고 객관적인 신의 세계와 양립불가능해보였다. 다시말하면 스피노자의 완벽한 자연 법칙, 스피노자의 신에 무한한 신뢰를 가진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에게 양자역학은 불합리해 보였을 것이다. 사람 모두 양자역학의 성립에 중요한 기여를 장본인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스피노자의 유령은 이들에게 향후 입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저는 존재의 질서정연한 조화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는 스피노자의 신을 믿지, 인간의 운명과 행동에 관여하는 신은 믿지 않습니다.

New York Times, 1929 4 25일자에서 아인슈타인의 인용 (164)    

 

아인슈타인의 말을 음미해보면, 그리고 향후 70년이 넘는 인생에서 그가 궁극의 통일이론을 발견하기 위해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스피노자의 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했음을 읽어낼 있다. 결국 스피노자의 신은 아인슈타인 뿐만 아니라 슈뢰딩거에게도 일종의 종교와도 같은 위치에 있었다고 있다. 물론 슈뢰딩거는 아인슈타인보다 좀더 쇼펜하우어와 힌두교의 베단타 철학에 경도되어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쇼펜하우어를 서구 최고의 학자라고 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쇼펜하우어도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음을 고려한다면, 통일이론을 추구한 슈뢰딩거의 행보도 설득력을 갖는다. 나아가 자연의 모든 법칙을 기하학적 원리를 통해 표현하겠다는 포부를 가졌던 아인슈타인에게 스피노자는 일종의 교리였을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아인슈타인이 실증적인 증거에 대한 고려없이 순수 수학적인 세계에 침잠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듯하다. 대중적으로는 나날이 인기를 더해가던 시기에 학문적으로는 물리학계로부터 점점 고립되어가던 아인슈타인의 입장을 좀더 이해할 있을 같다. 나는 이것이 스피노자라는 유령이 아인슈타인에게 영향이라고 본다. 저자는 보다 명료하게 스피노자가 아인슈타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이 양자물리학에서 확률을 거부하고, 수십 년에 걸쳐 매끈한 통일장이론을 추구했던 것은 분명 그가 스피노자의 개념을 열렬히 고수했던 데서 비롯된 것이다.” (164-165)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의 인간적인 면모

그러나 어쩔것인가? 우리 모두는 결국 사람인 것을.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 역시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다. 사람의 가정 생활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가정과는 사뭇 달랐다. 사람 모두 화려한 여성 편력과 복잡한 관계를 유지했던 인물들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 문화에서 정해놓은 규범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규범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우리 모두는 실수를 하기도하고, 어느 순간 잘못 판단하여 다른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나치가 독일에서 실권을 잡고 오스트리아를 합병 하던 , 슈뢰딩거는 영국에서의 임기를 끝내고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대학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나치에 동조하지 않았던 슈뢰딩거는 자신의 교수직을 지키기위해 나치 치하의 오스트리아를 지지한다는 편지를 썼던 일은 분명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만한 일이겠지만, 거대한 폭압적 세력 앞에 자신의 운명을 맡길 수밖에 없는 개인의 고충을 이해할 수는 있을 것이다. 나치의 입장에서 믿음직스럽지 못하게 보였던 슈뢰딩거는 편지에도 대학 명예교수직마저 박탈당하고 만다. 아마도 이러한 불안감과 좌절감으로 인하여 슈뢰딩거는 더욱 스피노자, 쇼펜하우어 그리고 베단타 철학 종교적/철학적 질문에 침잠하는 것으로 저자는 보고 있다.

 

통일장 이론에 매진하던 아인슈타인의 말년, 아인슈타인은 슈뢰딩거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낸다.

 

모든 (자신의 통일장 이론에 대한 노력) 옛날의 돈키호테와 비슷한 느낌을 풍기는 같군. 하지만 실재를 나타내야 한다는 요구사항을 유지하고 싶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네.

: 슈뢰딩거에게 보낸 1950 09 03일자 편지에서 인용(399)

 

세상물정에 어두워 보이는 아인슈타인이라도 편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자신의 노력에 대한 숱한 회의를 했음을 짐작해볼 있다. 현재의 시점에서 아인슈타인의 행보를 되돌아볼 , 통일이론을 구축하려는 평생의 노력은 결국 무산되었다. 세기의 천재였지만, 또한 인간이기에 그리고 어쩌면 벗어나기 힘든 자신의 입장과 종교에 가까운 집착으로 인하여 실패는 예견되었을 있다. 하지만 일흔이 넘도록 자신의 신념과 열정에 따라 사망하기 전날 까지도 연구할 있었던 아인슈타인은 인간으로서 하나의 모범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 사람이 공통의 목표를 향해 노력을 경주했지만, 이들 사이에 언제나 우정이 가득했던 시기만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1947 슈뢰딩거가 통일장 이론을 완성했다는 언론 발표 이후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 사이의 관계가 급속히 악화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슈뢰딩거는 아일랜드 더블린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업적에 대한 압박과 언론사들의 선정적인 보도로 인하여 아인슈타인의 감정을 건드린 부분이 있다고 보인다. 심지어 상대방을 표절로 고소할 생각까지도 했다는 사실도 당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이후 사람이 다시 편지를 주고 받기까지 꼬박 3년의 세월이 필요했다는 점도 나에겐 천재들이 결국 완벽하지만은 않은 인간의 모습으로 다가오기까지 한다. 저자는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 사이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사람의 관계를 보면 사람은 애정이 넘칠 때도 있었지만, 배신의 순간도 있었다. 사람은 순간의 환영을 쫓다가도 자신을 진정으로 아껴주는 사람을 찾아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둘도 없는 단짝이었던 것이다.”(423)

 

 

 

나가며

저자 핼펀은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의 관계를 중심으로 바라본 현대물리학사의 모습을 면밀한 자료조사와 이야기 실력으로 흥미롭게 풀어내었다. 특히 사람이 서로에게 또는 다른 과학자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보다 친근하게 천재 물리학자의 개인적인 생각에 다가갈 있었던 기회였다. 저자가 성실하게 통일 이론과 관련하여 설명해주고 있는 부분은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많지만, 통일장이론에 관해서는 학문적 소수파에 속했던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본 현대 물리학의 발전 과정을 가까이서 있었기에 무엇보다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궁금증을 가진 부분 하나는 불확정성에 관한 아더 에딩턴의 해석에 있다.

양자적 불확정성이 (하이젠베르크가 주장했던 것처럼) 자연의 근본적 속성이 아니라 인간이 절대적인 정확도로 측정할 능력이 없기 때문”(289)이라는 에딩턴의 해석은 현재 물리학계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가 궁금해진다. 주장은 아직 하나의 견해에 머물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은 결코 절대적인 정확도에 미치지 못하리라는 것이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만약 그렇다면 물리학 교과서도 바뀌어야 하지 않은가.

 

다른 궁금증 하나는 저자인 핼펀이 슈뢰딩거가 말년에 지도하고 이후에 디랙과도 연구한 레오폴드 핼펀이라는 인물을 거론하는 부분(411) 있다. 성이 동일한 폴과 레오폴드라는 사람의 관계가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다. 물론 책의 주제와 상관없을 것이지만, 가끔은 책의 주제보다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엉뚱한 곳으로, 옆길로 새는 과정에서 나만의 책읽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분명 저자는 부분에 나름의 의미를 담아 기록해두지 않았을가 하는 짐작을해본다. 저자 핼펀은 슈뢰딩거의 마지막 연구조교라는 레오폴드 핼펀의 아들일까?

 

책을 덮으며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의 관계를 다시금 떠올려본다. 현대 물리학사에서 놀라운 업적을 남겼던 사람이지만, 이들도 1 2 세계 대전을 겪고, 나치의 영향을 직접 경험했던 사람들이기에 각자 연구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 속에서 이루어낸 결과물들이라는 점을 염두해둔다. 아울러 이들도 결국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기에 숱한 과오와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사람은 무기력하거나 좌절감을 겪으며 상당한 시간을 뚜렷한 결과 없이 견뎌내었던 점도 잊지 말아야 같다. 저자가 언급한 바와 같이 사람은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둘도 없는 단짝과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둘을 묶어주는 힘은 통일장 이론이었으며, 이들이 수없이 주고 받았던 편지들은 존재 사이의 힘을 매개해주었던 교환입자 같기도 하다. 어쩌면 사람은 슈뢰딩거 자신이 언급했던 고양이 역설 사고실험에서 얽힘 대상이 되는 입자와도 같은 존재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떨어져 있어도 서로가 서로에게 즉각적으로 영향을 주는 그런 존재들 말이다.    

 

 

 (C) 표지/일러스트: 이다은

 

 

 

 

#사이언스올 #과학 #우수과학도서 #리더스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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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철학자의 생각법 - 사유의 풍경으로 걸어 들어가다
로제 폴 드루아 지음, 백선희 옮김 / 책세상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

로제 드루아 지음 |  백선희 옮김 |  [책세상]

 

 

 

 

 

로제 드루아는 <일상에서 철학하기>, <사물들과 함께 하는 51가지 철학 체험>등과 같이 일반독자들이 철학에 친숙하게 다가갈 있도록 책을 작가이자 철학자라고 있다. 철학자라고 하면 사변적인 이야기로 책을 채우는 사람일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로제 드루아는 그렇지 않은 같다. 장황하고 어렵게 글을 쓰곤 하는 다른 프랑스 철학자들과 달리 그의 글은 간결하고 명확하다. 철학책 읽기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이 철학에 부담없이 다가갈 있도록 안내하는 철학저술가로서 그만한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하다.

 

 

걷기와 철학하기의 유사성

머리만이 아닌 온몸으로 철학을 해보는 그만의 철학하기 방식은 결국 저자로하여금 우리의 가장 평범한 일상의 풍경으로 다시 눈을 돌려 우리 곁에 철학을 데려왔다. 바로 걷기와 철학을 함께 시도해보는 것이다. 드루아가 독자에게 걸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해볼 것을 권하는데, 바로 우리가 걷는다는 행위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라는 주문이었다. 저자가 표현하는 걷기의 메커니즘은 우리가 추락하기로부터 걷기 행동을 개시한다는 것이다.

 

 

추락이 시작되다가 만회되고 다시 촉발되다가 모면되는”(106) 행위가 바로 걷기 행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발을 내딛고 몸이 앞으로 나아가면서 반대쪽 발이 나아가지 않으면 우리는 넘어지게 된다. 다른 발의 행동이 보조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바로 추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하나는 걷기의 메커니즘을 철학에 비유한다. 걷기와 철학은 항구적인 추락과 만회라는 유사한 움직임 속에 자리하고 있다. 생각은 어느 곳보다 철학의 훈련 속에서 스스로 붕괴될 위험을 촉발하며, 새로운 솟구침, 도약으로 자신에 저항하길 멈추지 않으며 나아간다.”(22)  결국 저자는 우리의 걷기와 철학하기가 무한히 균형을 잃었다가 되찾는 과정을 통해 나아가는 이라고 정리한다. 철학하기에서 균형을 깨는 계기는 우리에게 명백하게 보이는 대상이나 사실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행위 내지는 태도로부터 비롯된다. 따라서 우리가 철학하는 과정은 바로 사고의 요동, 의혹을 통해 기존의 가치를 뒤흔드는 과정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리고 이러한 양태가 걷기의 메커니즘을 닮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걷기는 철학자에겐 필수불가결한 도구이자 과정이라고 있고, 지구 위에서 이동하는 인간만의 유일무이한 특성이기도 하다. 따라서 로제 드루아는 걷기 그리고 철학하기의 풍경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로부터 시작하여 ·서양을 넘나들며 걷기와 철학하기의 유비를 책에서 전하고 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우리 인류가 이동 도구에 보다 의존하게 되면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될까? 영화 < 투더 퓨처>에서 미래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청소년들이 타고다니는 날으는 보드 모습과 유사한 풍경들을 현재 우리 사회에서 엿볼 있다. 불과 10 전만 해도 바퀴 하나 또는 달린 발판 이동기구, 또는 전동 자전거를 타고다니는 사람은 거의 수가 없었지만, 이제는 심심치않게 도시의 한복판에서 이러한 이동기기들을 타고다니는 젊은이들을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번씩은 우리의 머나먼 미래 세대의 경우, 걷는 일을 잊게 되지나 않을까하는 노파심이 들기도 한다. 로제 드루아도 분명 우리의 걷기가 우리 인류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요소로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저자 자신도 우리가 이상 걷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멈출 것이라고 단언 한다. “인간의 걷기가 점차 소멸하는 분명 모든 측면에서 인류의 소멸이 것이다.”(208)라고 까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걷기행위를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중력에 저항하는 인류의 고유한 행동이라고 수도 있지 않을까. 인류가 지구의 표면에서 살아가고 있는 , 모든 인류는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없다. 하지만 인류는 발로도 서야하고, 중력에도 저항하는 방식으로서 다리를 단단한 대지 위에 버티고 서서 걷는 행동을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습득하게 되었다. 로제 드루아가 직립보행하는 인류는 걷기과정을 통해 생각하고 철학하는 일이 함께 발달해왔다고 보는 것처럼, 나는 인류가 중력에 저항하여 대지 위에 버티고 걷게됨으로써 의지(will)라는 것을 배로소 배울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게된다. 바로 자신을 억누르는 무형의 존재에 대한 저항행위로서 인간이라는 개체가 스스로 의지를 발달할 있었던게 아닐까. 이런 맥락에서 걷기란 인간이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고유한 속성이라는 드루아의 표현을 다시 확인할 수도 있다. 걷기의 리듬에 맞추어 우리의 사고도 진일보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빠른 교통수단을 타고 순식간에 이동하는 현대인들에게 걷는 행위, 산책과 같은 일은 인류가 인간다움 비로소 회복할 있는 마지막 보루로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마져 해보게 된다. 우리에게 철학을 친숙하게 만들어준 로제 드루아의 책은 걷는행위 잃어가는 혹은 잊어가는 듯한 현대인들이 주목해보고 함께 사유의 풍경 걸어 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20면)
"인간은 걷기 시작하면서 말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22면)
"걷기와 철학은 항구적인 추락과 만회라는 유사한 움직임 속에 자리하고 있다. 생각은 그 어느 곳보다 철학의 훈련 속에서 스스로 붕괴될 위험을 촉발하며, 새로운 솟구침, 새 도약으로 자신에 저항하길 멈추지 않으며 나아간다."

(23면)
"어떤 경우건, 생각하기와 걷기는 서로 닮았다. 생각 또한 불안정한 균형을 통해 나아간다. 무한히 균형을 잃었다가 되찾으면서 멀리 나아간다."

(106면)
"추락이 시작되다가 만회되고 다시 촉발되다가 모면되는..."
==> 인간의 직립보행이 지니는 고유한 속성의 표현

(107면)
"철학적 사유는 여러분이 지각하는 것, 그 명백한 사실을 불안정하게 흔드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207면)
"걷는 모터는 자기 삶을 살 위험이, 일하는 모터처럼 돈을 벌어 오지 않을 위험이 있다."

(208면)
"인간의 걷기가 점차 소멸하는 건 분명 모든 측면에서 인류의 소멸이 될 것이다."

(210면)
"왜 여전히 걸을까? 인간의 여행에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 한 발짝은 미미하나 길은 무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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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리미널 씽킹 - 변화를 원한다면 지금부터
데이브 그레이 지음, 양희경 옮김 / 비즈페이퍼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기적의 리미널 씽킹

(원제: Liminal Thinking:

Create The Change You Want By Changing The Way You Think)

데이브 그레이(Dave Gray) 지음 | 양희경 옮김 | [비즈페이퍼]

 

 

(리미널 씽킹이란 무엇인가)

저자에 따르면 리미널liminal이란 단어는 문턱 의미하는 라틴어 리멘limen’에서 유래했다. 리미널 변화의 단계, 또는 변화의 기간을 의미한다. 리미널 씽킹을 풀어말하면 경계에서 생각하기 의미한다고 한다.

 

 

우선 책의 전반부에서는 우리의 개인 집단에서 형성되어 있는 무형의 실체의 믿음체계 관해 해부를 하며 들여다본다.  과연 우리가 믿음이라고 하는 심리적 기작을 통해 형성되는 진실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찰해볼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의 모든 행동은 이러한 신념체계 기반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대로 행동은 이성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성 사람의 행동을 부추기지 못한다. 사람을 행동하게 하는 것은 감정이다.”(136)

시간이 지나며 깨달은 사실은 변화를 꾀하지 못하게 막는 제약의 대부분이 오직 마음속에만 존재한다는 것이다.”(224)

 

 

표현을 다르게 표현하자면 우리의 행동은 우리가 취사선택하여 진실이라고 받아들여진 믿음 우리의 감정과 욕구가 유착되어 이루어지게 된다는 관점이 것이다. 그리고 어떤 행동에는 나름의 결과가 있을 것이고, 결과가 타인과의 관계나 회사의 기업활동에 해당되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결과가 우리에게 바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결과가 긍정적이면 좋지만, 우리 사회가 매번 우리가 바라는 대로 결과를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99% 우리가 우려하는 대로 나타나기 쉽상이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의 믿음체계 적절하지 못하다면, 믿음을 바꾸어야할 것이 당연할 듯한데, 이게 쉽지가 않다. 그럼 이런 문제점들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몸을 움직일 있겠는가에 대한 물음에 저자가 제안하는 것들로 이루어지고 있다.

 

 

 

책의 전반에 소개되는 우리의 믿음 본질과 믿음체계 대한 분석 그리고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행동수칙들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은 따로 정리하지는 않겠다. 책이 얇고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저자가 요구하는 대로 변화를 열망하는 마음만 있으면 충분하다 것이다. 여기까지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약장수같은 느낌이 없지않지만, 저자 데이브 그레이가 믿음이 우리를 제한한다.”(81)라고 간결하게 써놓은 문장에서 자신의 경우를 바로 떠올릴 있었다. 어떤 사람의 수행능력이나 행동여부 등을 살펴보면, 의외로 심리적인 원인 기인한 경우가 많다는 점을 나의 경험을 통해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저자의 견해대로 나의 믿음 나의 경험과 나의 판단에 의해 취사선택되어 형성된 체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자기충족적 예언이 되어 나의 행동을 제어하곤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개개인이나 집단의 행동이나 변화를 이야기할 개인 또는 집단심리적인 연구결과에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믿음이라는 무형의 대상이 형성되는 과정이 다분히 심리적 과정이 관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정신과 영혼을 가진 인간이기에 그러하다. 상당히 많은 일상의 영역에서 나를 지배하는 것은 나의 믿음’, 신념체계에 관계된다. 따라서 저자가 누누이 강조하듯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고 배우려면 자신의 잔을 비우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바로 자신을 비우라는 말을 상기하며 저자의 말을 계속 따라가며 읽어나간다.

 

 

책은 우리가 가질 있는 의혹 중요성을 인지하며, 모호하고 방향성없는 상태를 벗어날 있는 길을 제시해주는 책으로 읽힐 있다. 뇌신경학자/심리학자 등의 전문가들의 견해가 아니라(이들은 대상의 상태, 현상을 분석하거나 이해하는데 도움을 수는 있지만), 저자는 우리가 다른 어떤 무언가를 하고 결과를 얻을 있는가에 대한 길안내를 자처하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구체적인 사실들과 방법론들은 개별적으로 새로울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책에서 내가 주목해보게 되는 것은 바로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에 대한 인간적인 관심때문이다. 저자는 바로 인간이라는 대상의 욕구 감정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책이 다른 경영서와 다른 차별적인 특성은 바로 인간이라는 요소에 대한 성숙한 이해에 기반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개인의 욕구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금기시해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과연 우리의 욕구와 감정은 부정적인 것인가? 나는 이전에 이런 의문을 가져보지 못했던가를 새롭게 자문해보기도 했다. 책의 개별적인 사항에 대해 새로울 것은 없어도, 저자의 경험과 숱한 고민을 통해 제시하는 인간적인방법론은 나름대로 타당하다. 구체적인 저자의 실천법을 여기서 일일이 정리하지는 않겠다. 다만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 자신이 노력을 기울인 리미널 씽킹, 경계에서 생각하기의 요체가 무언인가를 다시 정리해둔 부분을 여기에 다시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경계에서 생각하기는 우리의 일상에 혼돈 상태를 도입함으로써 기존 모델에 의도적으로 훼방을 놓는 방법이다. 일부러 혼돈으로 뒤엉킨 상태를 만듦으로써, 과거 모델보다 효과적으로 작동할 있는 새롭고 흥미로운 모델을 도출할 있게 해준다. (…) 새로운 기회를 맞으려면 여러분은 복잡함을 포용해야 한다. 경계에서 생각하기는 모호함과 불확실성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줌으로써 변화의 길로 항해하게 하는 방법이자, 어느 정도의 파괴 없이는 어떤 실체적인 창조도 있을 없음을 깨닫게 하는 방법이다. (227-228)

 

 

저자의 설명을 언어로 이해하고 표현하자면, ‘경계에서 생각하기 고인 물의 물꼬를 있는 변화를 주어 흐름 변화를 촉발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다시 정리할 있을 같다. 과정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도 필요하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것이다.

 

 

책에서 저자는 경계에서 생각하기가 중요한지를 개인에서 출발하여 사회적인 의미로까지 확장하고 있다. 경계에서 생각하기가 중요한 이유는 우선 (어느 광고의 문구처럼) 당신이 중요하기 때문이고, 나아가 가족, 친구가 중요하기 때문이며, 모든 구성원들이 속한 사회가 중요하고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 전부가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불교 선종의 가르침을 언급하기도 저자의 리미널 씽킹의 가치는 마치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교훈과도 닮아 있다. 이토록 중요한 나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출발점이 바로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고, 이것이 만사의 근본이라는 관점에서 말이다.

 

 

책을 덮으며 책을 다시 환기해보면, 저자 데이브가 말하는 믿음, 믿음 거품은 다른 말로 패러다임으로 번역해볼 수도 있겠다. 개인이든 사회든 각각 지니고 있는 믿음 체계, 독트린, 주의가 바로 이러한 아닐까. 우선 믿음은 (취사선택되어) 만들어지는 모델이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믿음이 창조해낸 공유세계 바꾸려면 당연히 이러한 믿음체계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나름의 관성을 가지고 있기에, 하나의 행동 강령으로서 스스로를 방어하고 보존하려는 힘을 갖는다. 따라서 기반이 되는 믿음을 바꾸어야만 하는데, 결국 이것은 당사자 바로 자신이 스스로를 바꾸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패턴, 실패와 파멸의 고리 속에 있는 자신을 인식하고, 여기에 변화의 물꼬를 트는 , 시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데이브가 책에 쏟아부은 노력과 에너지의 실체라고 정리해보고자 한다.

 

 

책에서 제시하는 9가지의 실천법은 책을 확인하라. 가장 인상적이고 개인적으로 주목하는 실천법 가지는 자신을 비우고, 멈추어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일 것이다. 이는 타인의 욕구와 감정이 드러날 있는 안전지대를 만듦과 동시에 타인과 나와 공유할 있는 세계를 구축하는 과정일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나는 모든 사람들이 드러난 문제점들을 바라보고 해결할 있는 지적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중요한 것은 고인 물의 물꼬를 트는 것이다. 행위가 바로 인도의 쉬바 역할처럼 (기존의 것을) 파괴하는 일이다. 여기서의  파괴는 파괴를 위한 파괴가 아니라, 새로운 것의 건설이라는 전제가 되는 파괴를 의미할 것이다. 변화의 순간, 전환기의 기회를 가져다주는 사고방식이 바로 리미널 씽킹으로 이해해볼 있을 것이다.

 

 

"믿음이 우리를 제한한다."(81면)

"이성은 사람의 행동을 부추기지 못한다. 사람을 행동하게 하는 것은 감정이다."(136면)



"시간이 지나며 깨달은 사실은 변화를 꾀하지 못하게 막는 제약의 대부분이 오직 마음속에만 존재한다는 것이다."(224면)

"경계에서 생각하기는 우리의 일상에 혼돈 상태를 도입함으로써 기존 모델에 의도적으로 훼방을 놓는 방법이다. 일부러 혼돈으로 뒤엉킨 상태를 만듦으로써, 과거 모델보다 더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새롭고 흥미로운 모델을 도출할 수 있게 해준다. (…) 새로운 기회를 맞으려면 여러분은 복잡함을 포용해야 한다. 경계에서 생각하기는 모호함과 불확실성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줌으로써 변화의 길로 항해하게 하는 방법이자, 어느 정도의 파괴 없이는 그 어떤 실체적인 창조도 있을 수 없음을 깨닫게 하는 방법이다." (227-228면)

"만약 어떤 일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16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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