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과 뉴욕의 두 산책자가 걸으며 사유한 ‘두 도시 이야기’
- 테주 콜의 《오픈 시티》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출간
최근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소설 가운데, 도시를 거닐며 사유한 작품에 주목해본다. 하나는 우리나라 모더니즘 문학의 상징과도 같은, 소설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다. 이번에 출간된 책은 판형이 작은 핑크색 바탕의 양장본으로 나왔다. 표지와 글 속의 삽화는 동년배 작가 이상(책에는 필명인 하융으로 기재되어 있다)이 맡아 완성한 판본이다. 박태원과 이상은 각각 1909년과 1910년에 태어난 식민지 키드이자 지식 청년들이었다. 이 소설은 두 사람이 20대 중반이던 1934년에 30회에 걸쳐 일간지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되었다. 그런데 이 소설이 신문에 연재만 되었지 단행본으로는 정식 출간된 적이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 없다는 점이 흥미롭다. 소설의 주요 인물인 구보는 26세의 소설가다. 게다가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이었다. 다만 소속된 직장이 없고 미혼인 상태다. 여기에 중이염을 앓고 시력도 좋지 않아 도수가 높은 안경을 쓴 문학도의 모습을 상상해보게 된다. 제목이 말해주듯 소설은 한 소설가의 하루를 담고 있다.
이 책과 비슷하게 주인공이 산책하는 소설이 있는데, 이제 막 출간된 장편소설 《오픈 시티》다. 저자 테주 콜은 미국에서 태어난 유색인(흑인) 작가다. 이 작품이 그의 첫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이 소설에서도 주인공 ‘나’는 뉴욕을 걷는다. 그가 만난 장소와 풍경, 사람들과의 대화와 사유로 소설이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물론 박태원의 소설과 이 소설이 묘사하는 시대를 비롯해서 많은 부분이 다를 수밖에 없지만, 두 소설 모두 경성과 뉴욕이라는 도시를 걸으며 만난 장면들이 특별한 플롯 없이 전개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게다가 《오픈 시티》의 작가 이력이 남다르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 나이지리아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다시 미국에 와서 공부했다. 특히 미술사를 공부하고 졸업 후에 <뉴욕 타임스 매거진>에서 4년 간 사진 비평가로 일했다는 점, 그리고 현재는 하버드 대학에서 문예창작 교수로 재직 중인 점이 특이했다. 많은 부분에서 백인 지식인이 거쳤을 법한 경로를 밟았던 까닭이다.
두 소설에서 두 인물이 주로 하는 일은 그저 도시를 걸으며 눈앞의 풍경을 보고, 생각하는 일이다. 우선 도시적인 장소가 언급될 것이고, 장소가 간직하는 역사를 떠올려보기도 한다. 또 산책자는 모르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다가도 아는 사람과 마주하기도 할 것이다. 이 때 도시는 새로운 만남의 지점이 되고 대화의 장이 된다. 때론 오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는 오랜 기억을 불러오니 말이다. 두 청년이 각각 두 도시 한 가운데를 가로지를 때, 과거와 현재를 찬찬히 뜯어보기도 할 것이다. 걷기의 ‘목적 없음’은 오히려 모든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어디 갈까, 생각해본다. 모두가 그의 갈 곳이었다.”(《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22면) 하지만 두 청년의 도시 걷기는 매우 상반된 입장에서 출발한다. ‘구보씨’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상황에 중이염까지 앓고 있다. 자존심은 강하지만 궁핍한 청년이 바라본 하루가 담겨 있는 것이다. 식민지 현실 속에서 빈부격차와 같이 근대화가 가중시킨 여러 사회 현상들을 지켜보며 사유가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드는 느낌이 많이 든다. 예를 들면 갈 곳 없는 자신(구보)과 달리 안전지대에서 전차를 기다리는 이들을 보고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갈 곳만은 가지고 있었다.”(《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29면) 나는 이 기분이 어떤 느낌인지 아주 잘 알 것 같다. 구보는 번잡한 도시의 군중 속에서 ‘외로움과 애달픔’의 감정을 느끼는 인물이다.
반면 《오픈 시티》의 ‘나’는 정신과 의사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은 없는 인물이다. 대신 ‘유색인’으로서 자신이 지닌 정체성으로부터 세계를 탐구해나간다. 특히 미국이 주도한 국가 폭력의 역사가 도시의 기억과 교차하는 지점을 찬찬히 뜯어본다. 아직 끝까지 읽어보진 못했지만, 그가 펼치는 생각과 의식은 ‘구보씨’의 경우와 다소 다르다. 오히려 시선이 외부로 향하는 인상을 준다. 백인이 자행한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과 노예제도 문제, 나아가 9·11참사까지, ‘나’의 기억과 얽키며 교차한다. 두 소설 모두 특별한 플롯이 없기에, 산책하며 떠오르는 사유들을 병치하는 구도가 소설의 줄거리를 이룬다고 봐야할 것이다. 공간에 인간의 시간·역사가 더해진 ‘장소’와 만날 때, 이들의 사유는 또 하나의 출발점이 되어 방향을 전환하며 새로운 사유로 이어진다.
《오픈 시티》에서 흥미로운 점은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주목하는 W.G. 제발트와 J.M. 쿳시, 그리고 허먼 멜빌의 《모비 딕》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는 점이었다. 저자가 제발트와 쿳시, 그리고 멜빌에 주목한다는 것은 인종차별과 식민주의 역사에 대한 견해가 소설 속에 반영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여기에 프리모 레비를 비롯한 여러 문인뿐만 아니라 재즈 연주자들을 비롯한 예술가들도 언급된다. 사진가이자 사진비평가로 활동했던 《오픈 시티》의 저자 테주 콜의 관심사를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이 부분만 보아도 그는 ‘영국의 국보급 작가’라 불리는 제프 다이어와 비슷한 면이 있다. 제프 다이어 역시 미술 비평가 존 버거의 책 《사진의 이해》를 편집했고, 사진 비평서 《인간과 사진》과 《지속의 순간들》를 썼으며, 재즈 연주자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 《그러나 아름다운》을 쓰기도 했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테주 콜이 미술사를 공부하던 2007년에 출간된 그의 첫 데뷔작 《매일이 도둑을 위한 날 Every Day is for the Thief》은 아프리카 라고스 서민들의 삶의 현장을 일화 형식으로 포착한 중편소설이다. 이 소설의 형식이 특이했던 것은 소설의 텍스트에 사진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여 테스트-이미지를 병치시키는 구조를 선택했다는 점이었다. 다시 말해 사진이 등장하는 소설이었는데, 어쩌면 이 전에 이미 텍스트에 이미지를 활용하는 W.G. 제발트의 글쓰기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다. 그의 첫 소설이 글에 이미지를 사용한 작업이다보니, 최근에 읽은 《죽음의 도시 브뤼주》가 떠오른다. 이 소설은 19세기에 이미 최초로 소설에 사진을 적극 활용했던 작품이었다. 다만 여기에 사용된 도시의 이미지들은 대부분 당시 사진기술의 제약 때문에 사람은 모두 사라지고 도시의 풍경만 남은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또 사진들은 소설의 분위기나 복선을 보여주는 듯 상징적인 기호로서 사용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테주 콜의 첫 중편 소설을 확인하면 차이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저자에 관해 궁금했던 부분은 작가의 정체성이 작품에 어떻게 반영되거나 드러날까 하는 부분이다. 이는 소설을 다 읽고 더 생각해볼 일이다. 《오픈 시티》는 여러 면에서 나의 눈길을 끄는 요소들을 많이 지닌 작품이다. 아마도 올해 ‘나의 소설’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