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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2023년 가을호 - 통권 183호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3년 9월
평점 :
다시 만난 계간지 《녹색평론》
2023년 가을 183호
고등학교 시절에 기억나는 영어 선생님 한 분이 있다. 남학생들만 바글바글하던 교실(당시 한 반에 50명 넘었음. 연대 추정 금지!)은 언제나 산만한 편인데, 어느 날 그 영어 선생님께서 수업 중에 갑자기 책 한 권을 꺼내서 글 한 편을 읽어주겠다고 하셨다. 학원을 다니지 않았던 나는 영어는 못해도 수업을 집중하던, 겉보기 모범생이었는데 그날 선생님이 읽어주신 이야기에 꽤나 몰입했던 것 같다.
책에 실렸던 글은 짧은 여행기였는데,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거대한 대륙을 횡단하며 보고 생각했던 것들을 적었던 글로 기억한다. 그 이야기가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나중에 대학에 가서 그 선생님이 읽어주신 책을 다시 기억해냈던 것이다.
당시에 그 영어 선생님이 읽어주셨던 책이 바로 《녹색평론》이었다. 이 책이 생태, 기후, 자연에 관한 글들이 주로 실리는 계간지임은 대학에 들어가서야 알게 되었다. 이후에 꼼꼼하게 읽지는 않았지만 《녹색평론》을 정기구독해서 보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나의 생각과 관심사가 형성된 과정에는 이 잡지의 영향이 제법 클지도 모른다. 책과의 만남이 길지는 않았지만, 내게는 꽤나 중요하다고 믿었던 이슈들에 대해 이 책은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어서 좋았다. 환경문제나 과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무엇보다 《녹색평론》의 공이 클 것이다.
오랜만에 《녹색평론》을 구입해보았다. 그런데 오랜 시간 이 잡지를 내고 글을 쓰셨던 김종철 선생이 돌아가신 후, 몇 년 간 발간이 중단되었다가 최근에야 다시 복간되었다는 사연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이 잡지가 최악의 상황에서 복간된 것이지 모른다. 후쿠시마 오염수와 관련하여 세금을 들여 일본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대한민국 정부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으로 이런 엄혹한 시대에 《녹색평론》의 존재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지구 온난화나 환경오염 등의 문제가 이제 더 심각해졌지만, 《녹색평론》과 같은 책을 예전만큼 구입하지는 않을 듯하다. 관련 주제를 다루는 책들이 예전보다 훨씬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기회가 주어지면 자주 《녹색평론》을 읽어볼까 싶다. 외국인들이 바라보는 기후, 생태,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입장에서 나아갈 길이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이들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번 183호는 내가 큰 관심을 갖고 있는 ‘후쿠시마 오염수’에 관한 글을 포함하여 실천으로서의 민주주의가 큰 주제인 듯하다. 이제 기후와 환경은 정치와 분리불가능하다. 오늘날 모든 실천적인 학문의 분과가 ‘정치적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천천히 읽어보려 한다.
문득 고등학교 시절에 《녹색평론》의 글 한 꼭지를 읽어주셨던 영어 선생님은 어떻게 지내실지 궁금하다. 나에게 《녹색평론》과의 ‘느슨한’ 인연을 만들어주신 분이다. 지금은 은퇴하신지 꽤 되었을 것 같은데, 어디서든 건강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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