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먼 평전과 제임스 글릭의 교양과학서 4부작




 

어렸을 때는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지나간 시간이 무척 아쉬운 일이다. 학창 시절에 읽은 책이 너무 없기 때문이다. 대신 성인이 되어 블로그와 온라인 서재를 통해 읽고 쓰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인가 싶다. 책을 읽지 않은 아이였기에, 위인전 역시 좋아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나마 그림이 들어간 장영실 위인전은 좋아했던 기억이 얼핏 나긴 한다. 하지만 이것도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였을 것이다. 게다가 위인전을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는 위인전을 읽을수록 이들이 나와는 동떨어진, 태생부터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만 굳어졌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한 사람의 일생을 제3자가 갈무리한 평전 류의 도서들을 읽게 되었다. 평전이라면 기본적으로 대상에 대한 작가의 숭배비판 혹은 평가가 들어가게 마련이다. ‘작가 연보가 아닌 이상 사실만 나열되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의 평전들은 상당수가 숭배의 대상으로만 그려지는 경우가 많아 아쉽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다. 우리나라의 위인들만 완전무결한 존재일 리 없는 것이다. 반면 외국 인물에 대한 평전은 꽤나 솔직하다. 개인적인 치부도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건 무엇보다 인물에 대한 개인사가 출간물에서 허용되는, 혹은 터부시되는 영역이 문화권마다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점이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부분이다. 위인의 모습과 성격이 어떠했는지 간에 그건 그 개인의 정체성을 이루는 요소일 뿐이다. 평전에서는 인물에 대한 다양한 모습을 보았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이다.


 

예를 들면, 수전 손택에 대한 평전 수전 손택(다니엘 슈라이버, 글항아리, 2020)이 바로 떠오른다. 이 책에는 제3자가 바라본 손택의 면모가 다층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손택의 천재적인 능력과 활동가적 지성인의 면모 등이 다루어져 있으면서도, 그녀의 인간적인 미숙함과 단점들(거짓말 잘하기 등), 심지어 찌질해 보이는 면모까지 기술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 문화계의 정서로는 익숙하지 않은 글쓰기 방식이다. 손택 개인의 치부가 평전에 담겨있다고 여길지도 모르나, 독자로서 나는 그녀를 함부로 폄하하거나 무시할 수 없다. 그녀의 삶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그 삶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은 까닭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의 상처뿐만 아니라 남성 중심의 사회 질서에서 겪고 느꼈을 고통들에 맞선 인물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위인에 대한 평전이라면 어땠을까? 기술되는 위인의 치부까지 노출되어 있는 평전이라면, 아마 그 저자는 후손들의 줄이은 소송제기로 곤란해졌을 것이 분명하다. 이는 문화권의 차이로 볼 수도 있고, 혹은 삶의 이해에 관한 관용도의 차이, 문화권마다의 정처 차이로 볼 수도 있겠다. 물론 정답이란 없는 문제다. 하지만 숭배로만 일관된 평전보다 독자에게 인물에 대해 보다 입체적으로 인물의 면모를 제시해주는 것이 평전의 역할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새해가 시작되고 첫 평전을 만나게 되었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의 삶을 다룬 평전이다. 사실 절판되었던 천재가 동아시아 출판사에서 파인먼 평전제목으로 새로 나오게 되었다. 십 수년 전에 나오고 절판되었는데, 다시 출간된다는 문구를 어느 책의 소개란에서 본 기억이 나는데 이제야 나오게 된 것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난주에 파인먼의 강연 몇 가지를 모은 책 과학이란 무엇인가?(승산, 2008)를 읽었는데, 마침 파인먼의 평전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새로 출간된 평전의 저자는 제임스 글릭이다. 미국에서만 100만 부 이상 판매된 교양과학서의 전설 카오스를 쓴 저자이다. 나에게도 그랬지만, 전 세계에 카오스’, ‘나비 효과라는 용어를 각인시킨 인물이 바로 제임스 글릭이지 싶다. 



































 

지금 다시 보니 동아시아 출판사에서 제임스 글릭의 저서 4권을 출간한 셈이다. 카오스를 비롯하여 인포메이션, 제임스 글릭의 타임 트래블, 그리고 이번에 출간된 파인먼 평전이렇게 제임스 글릭 4부작이 완성되었다. 이번에 평전이 나온 김에 이 4부작을 다시 역주행을 해볼까 한다. 파인먼 평전을 시작으로, 학창시절에 읽고 나서 기억도 안 나던 카오스, 그리고 읽다가 멈추었던 인포메이션를 이어서 읽어봐야지 싶다.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 제임스 글릭의 타임 트래블일 텐데, 저자가 역사적으로 시간을 이해하려던 인물들의 이야기 조사를 엄청나게 했다는 인상만 남아있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파인먼 평전은 번역자도 바뀌었다. 내가 믿고 구매하는 양병찬 번역가가 참여한 결과물이다. 올 초에는 파인먼 평전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제임스 글릭은 기본적으로 저널리스트다. 영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문학을 전공한 기자이자 작가가 과학 분야에 대한 방대한 교양과학서를 쓰고, 과학자에 대한 평전을 써낸 셈이다. 파인먼 평전의 구판인 천재를 읽어보았지만, 어떤 내용인지는 대강의 흐름만 기억이 난다. 하지만 철학, 역사, 문학, 예술, 과학 분야를 아우르는 저자의 폭넓은 자료조사와 글쓰기를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되는 것은 나뿐일까 싶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은 고등학교 때 동네 서점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다. 이후 파인먼의 교양서 몇 권을 읽어보았기에 파인먼을 좋아하게 되었다. 아마 파인먼에 대한 애정을 듬뿍 이야기하는 김상욱 교수도 학창 시절에 파인먼을 만난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을까 싶다. 학창 시절의 나는 처음에 그의 엉뚱하고 특이한 행동들에 흥미를 느꼈을 테지만, 이런 점들은 파인먼의 참모습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어쩌면 방송이나 기타 매체에서 파인먼이란 상품을 팔기 위한 표제로 파인먼의 기이한 행동들을 언급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일생 전체를 따라가는 일이다. 그 인물의 장점과 단점, 업적과 치부까지 모두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파인먼은, 어느 누구의 삶도 마찬가지이지만,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기이한 행동들로 단정하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그러한 특이한(?) 방식으로 물리학에 진정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에 대한 평전은 인물의 천재성을 충분히 보여주겠지만, 이와 더불어 실수투성이의 인간관계와 인간으로서의 불완전함도 아울러 보여준다.


 

나에게 한 인물의 평전을 읽는 일이란 묘사되는 인물에 대한 작가의 숭배비판모두를 접하는 일이다. 평전을 썼던 제임스 글릭의 입장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물에 대해 글을 쓰는 이는 대상에 대한 비판 이전에 대상에 대한 애정, 숭배가 전제된다. 내가 평전을 읽는 이유는 세계에 의도치 않게 내던져진,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의 살아감그 자체가 내게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때론 기술되는 인물의 천재성에 감탄하면서도, 인물의 인간적인 면모에 공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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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1-29 20: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예전엔 -만이라고 했었는데 뭐가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어요.
평전을 거의 못 읽고 있긴 합니다만 울나라에선 그런 경향이 있긴하죠.
성인용 위인전기. ㅋ 소송 골치 아프죠.
읽어보고 싶긴하네요.
김상욱 교수도 파인먼을 그렇게 좋아하던데..ㅋ

초란공 2023-01-29 20:57   좋아요 2 | URL
아 김상욱 교수도 있었네요. 저도 ‘파인만’이 익숙한데 언제부터 ’파인먼‘이 되었을까요^^;;

고양이라디오 2023-02-10 0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네요. 언제부터 파인먼이 된거죠?
파인먼씨 좋아하는데 이 책 꼭 읽어봐야겠네요ㅎ

제임스글릭의 책들도 기대가 됩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