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소돔과 고모라, 할버슈타트에 무슨 일이?
- 《1945년 4월 8일 할버슈타트 공습》
알렉산더 클루게(Alexander Kluge) 지음 | 토마스 콤브링크 주해
이호성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1)
“그 상품들은 아래 도시로 떨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아주 비싼 물건들이지요. 실용적 관점에서 보아도 고향에서 많은 노동력을 들여 생산한 것을 산이나 빈 들판에 그냥 버릴 수는 없습니다.”(81)
이 인용문만을 보면 UN이나 국제인권단체에 속한 사람이 난민들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가의 사람들에게 구호물자를 전하는 임무를 맡은 상황을 떠올려볼 수도 있겠다. 숭고한 임무를 부여받은 사람의 자부심 어린 진술처럼 보이니 말이다. 여기에서 ‘상품’이란 무엇일지 짐작할 수 있는가? 바로 폭격기에 매단 폭탄을 의미한다. 자, 다시 위의 인용문을 읽어보자. 어떤 느낌이 드는가? 이 말을 한 인물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8공군 여단장이었던 프레드릭 L. 앤더슨으로, 그가 한 독일 기자와 했던 인터뷰에서 가져왔다.
《1945년 4월 8일 할버슈타트 공습》의 작가 알렉산더 클루게는 독일의 소도시 할버슈타트 출신이다. 독일 작가이자 영화감독, 방송 제작자로도 활동했다. 무엇보다 전후 독일을 대표하는 비판적 지식인으로 여겨진다. 유대인 철학자 테어도어 아도르노와도 아주 가까운 교우관계를 맺었고, 그를 통해 프리츠 랑을 만나 영화계에도 입문하게 되었다고 한다. 클루게가 1932년 생이므로, 고향 할버슈타트가 연합군의 폭격기가 떨어뜨린 ‘값비싼 상품’으로 불타오를 때 겨우 13살이었다. 이 책은 할버슈타트 폭격 당시 살아남았던 여러 시민들의 증언도 기록하고 있다. 클루게의 경험담은 이 책의 해설을 담당한 토마스 콤브링크의 재인용으로 등장한다.
“고폭탄의 폭발은 깊게 파인 자국을 남긴다. (...) 1945년 4월 8일 그런 것이 떨어져 파고드는 것을 나는 10미터 떨어진 곳에서 경험했다.”(197)
지금의 체코지역에서 태어난 작가 프란츠 카프카는 1912년에 이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 할버슈타트를 방문하면서 자신의 일기에, ‘완전히 오래된 도시’로 묘사했다. 또 ‘사람들이 창 안에 기대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운 것을 본 적이 없다’고도 기록해 놓았다.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 도시는 서기 804년에 카를 대제로부터 주교령으로 지정되어 종교적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오랜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던 독일 북부의 작은 도시는 1945년 4월 8일, 30분 가량 이어지던 공습으로 고폭탄 504톤과 소이탄 50톤이 투하된 후 도심의 80%가 파괴되고, 2000명 가까운 희생자를 냈다. 작가 클루게는 이 폭격 속에서 살아남았지만, 시청사를 포함하여 도심부가 빈터로 변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숱한 잔해와 수많은 시신, 피의 냄새를 맡았으리라. 이 기록들이 소위 연합군의 ‘적국 시민’이 남긴 기록이므로, 그 피해가 과장된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당시 연합군에 소속되어 있던 미래의 유명 작가의 말도 들어보자.
내가 떠올린 이 작가는 바로 커트 보니것이다. 그는 제2차 대전 당시 육군 정찰병으로 참전했다가 치열했던 벌지 전투에서 독일군에게 붙잡혀 포로가 되었다. 이후 그는 독일의 동부 지역 도시인 드레스덴에서 전쟁포로 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여기 있을 때 저 유명한 ‘드레스덴 폭격’을 직접 경험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25년 후에 쓴 소설이 바로 《제5도살장》이다. 지금은 드레스덴이 독일의 반도체 산업을 이끌고 있는 첨단 도시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방공호도 거의 없었고, 담배 공장이나 클라리넷 공장 정도가 전부였던 낙후된 중소도시였다고 한다. 폭격이 시작되자 보니것은 지하 2층의 거대한 고기 저장소로 몸을 피했는데, 폭격이 끝나고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는 도시가 사라져있었다고 했다. 참고로 작가 맬컴 글래드웰은 《어떤 선택의 재검토》에서 ‘영국 공군이 수행한 3일간의 폭격으로 650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드레스덴 중심지를 파괴하고 민간인 2만 5000명을 죽였다’고 언급한 바 있다.
《구약 성경》의 「창세기」에는 타락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하느님이 보기에 이 도시의 사람들이 엄청난 죄를 저질러 의인이 남아있지 않았기에, 유황과 불을 소나기처럼 퍼부으며 도시를 멸망시켜버렸다. 자신이 창조한 세계를 파괴해버리는 도착적이고 모순적인 신에 관한 이야기는 제쳐두자.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 힌두교의 신들 역시 창조와 파괴 행위를 하나의 우주 원리처럼 받아들이고 있지 않던가. 그렇다면 적국의 시민 클루게와 연합군 소속 보니것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값비싼 합성 마그마’에도 끄떡없이 하느님이 지켜주었던 ‘의인’이었던 것일까. 물론 이들이 살아남은 이유는 오로지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이 운에 관한 이야기는 다른 주제의 책에서 이야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클루게의 전후 기록문학의 성격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기로 한다.
전쟁과 자본주의의 논리
위에서 인용한 미 8공군 여단장 앤더슨의 말에는 전쟁의 본질에 관한 중요한 진실이 담겨있다. 클루게는 본문에서 할버슈타트의 여러 시민들이 남긴 증언과 자신이 기록한 내용을 종합해두었다. 하지만 이는 공습에 대한 분석보다는 1차 사료로서 중요성이 드러난다. 클루게의 기록들이 갖는 의미와 중요성은 주해를 맡은 콤브링크의 도움으로 좀 더 생각해볼 수 있다. 콤브링크에 따르면, “클루게는 공중전이 수요와 공급 체계를 통해 규율된다는 점과 이것이 경제 분과의 하나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 말하자면 공중전을 도덕적 이유에서 좀처럼 정당화할 수 없을지라도 사람들은 실업을 감수하지 않으려 한다.”(222) 이 진술은 클루게가 주목하고 지적하고자 했던 전쟁의 본질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준다. 말하자면 할버슈타트 공습을 포함한 폭격전, 나아가 전쟁은 전쟁을 치르지 않는 후방의 고향에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산업이라는 말이었다. 이는 전쟁이 어떤 근사한 명분을 내세우든, 혹은 얼마나 참혹하고 잔인할 수 있든, 우리의 일자리가 보전되고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대중은 한 전쟁에 한쪽 눈을 감고 찬성표를 던질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클루게는 전쟁 뒤에 가려진 자본주의의 논리를 이토록 생생하게 간파해내고 있었다.
그러면 연합군의 폭격 정당성을 주장하는 연합군 측의 진술도 살펴보자. 당시 준장이었던 로버트 B. 윌리엄스는 “도시를 파괴함으로써 거기 사는 주민들의 저항 정신을 없애버려야 합니다”(185)라고 말했다. 일견 그럴듯한 견해다. 전쟁은 한편으로는 심리전이기도 하다는 맥락에서 그렇다. 그리고 전쟁을 최소한의 노력으로 빠른 시기에 종결짓는다면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이들의 논리도 그럴듯해 보인다. 이 논리는 독일 도시들을 폭격했던 미 공군의 두 군부집단(폭격 마피아)의 논리를 보여준 맬컴 글래드웰의 저서 《어떤 선택의 재검토》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논리다. 이 두 집단의 차이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쓸 것인가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이 논리는 제2차 대전, 혹은 지금까지도 적국의 시민들로 하여금 사기를 떨어뜨림으로써 전쟁을 더 효과적으로 빠르게 종결할 수 있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 준다. 곧 적국의 시민들을 대상화함으로써 이들을 폭격대상으로 삼는 데 어떤 도덕적 논의도 불필요하게 만들어주는 효과를 발휘한다.
맬컴 글래드웰도 책에서 자세히 묘사하고 있듯이, 연합군이 독일 도시를 폭격할 때 우선 적용했던 폭격 방식으로 우선 ‘도살자 해리스’라고 불렸던 영국 공군 사령관 아서 해리스의 ‘융단 폭격’방식을 꼽을 수 있다. 해리스는 앞서 보니것이 경험했던 드레스덴 폭격을 직접 지휘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여기에 이 폭격의 효과를 보다 높이기 위해 불에 잘 타는 목재가 많은 지역, 특히 구시가지의 빈곤한 지역을 중심으로 폭격이 계획되고 작전이 수행되었다. 할버슈타트의 구시가지는 30여년 전 이곳을 방문했던 카프카가 자신의 일기에 남겼던 것처럼 중세식 목골조 건물이 많고 인구가 조밀한 지역이었다. 여기에 고폭탄뿐만 아니라 합성 마그마나 다름없던 소이탄(화염방사 폭탄)을 떨어뜨렸다고 생각해보라. 소이탄은 하버드 대학의 화학 교수가 ‘점성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달라붙어 복사에너지를 전달한다’는 목표로 일본에 사용하기 위해 개발한 무기다(맬컴 글래드웰, 《어떤 선택의 재검토》 7장 참조). 이를 쉽게 풀어 이야기하면 소이탄은 불꽃이 작게 나뉘어져도 불을 끄기 매우 어려워 달라붙은 모든 대상을 끊임없이 태우는 무기다.
또 소이탄(혹은 네이팜탄)은 베트남 전쟁 당시 숲과 민간인을 불태우는데 무수히 떨어졌던 폭탄인데,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전쟁 당시 미 공군이 인천의 월미도와 주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 때 사용했던 무기이기도 하다. 이 무기는 주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에 더욱 두렵기도 하다. 여기서 내가 주목한 문제는 이 무기가 ‘적국 시민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과 모순이 된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은 미국의 우군이었음에도 우리 시민들은 소이탄으로 무차별 폭격을 받았다. 한 마을에 함께 살던 일가친척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고 생각해보라. 여기에는 미 군부가 주장하는 어떤 엄정한 도덕적 근거도 찾아볼 수 없다.
내가 보기에 폭격 마피아들에게는 오직 현재 전쟁이 일어나는 지역이 어디인가만이 중요하다. “우리에게 도시는 전혀 아무런 의미도 없었습니다.”(82) 이 말은 앞에서 언급했던 미 8공군 여단장 앤더슨의 진술이다. 클루게의 기록에 앤더슨은 이런 말도 덧붙인다. ‘폭격에 ‘침착한 접근’이란 없으며, ‘의심 속의 접근’만이 존재 한다’고 말이다. 그러니까 앤더슨으로 대표되는 폭격 마피아들의 논리는 ‘적군이거나 적군과 내통할 수 있다고 보이는 모든 시민들을 싹쓸이하듯 폭격’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논리다. 여기에 어떤 도덕적 정당성이 들어갈 여지가 있을까? 이들이 하는 말이 다 ‘개소리’라고 여기는 이유다. 오히려 앞에서 ‘값비싼 상품(폭격기에 매단 폭탄)을 산이나 빈 들판에 그냥 버릴 수는 없다’고 했던 프레드릭 앤더슨의 대답이 솔직하게 들린다. 이 폭격 마피아들이 주장하는 도덕적 정당성은 그 자체로 모순적이며 부실한 주장일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만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콤브링크의 해설에 따르면, 클루게 역시 ‘사기 저하용 폭격’이라는 생각이 무의미하다고 이야기한다. 그 근거는 당시 폭격을 직접 경험한 사람으로서 그가 지적하는 대목에서 찾아볼 수 있다. 클루게는 폭격을 당하는 도시의 시민들이 처한 극단적이고 무력한 상황을 언급한다. ‘방어력이 전무한 상태에 있는 시민들과 폭격기 비행단 사이에 존재하는 동등하지 않은 부당한 관계’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아주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콤브링크가 곁들인 설명을 덧붙이자면, ‘주민들은 항복 할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공격자와 공격당하는 자 사이에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는 접촉을 할 수 없기’(211) 때문이다.
또 현실적으로 폭격을 위해 ‘값비싼 상품’을 잔뜩 싣고 이륙한 폭격기들은 실제로 주민들이 항복 신호를 보내와도 발견하기 어렵고, 항복 신호를 보았다고 해도 이들이 현장에서 폭격을 중단할 권한은 없다. 지상에 있는 사람들의 삶과 죽음이 오가는 이 순간에, 몇 시간이나 걸릴 수 있는 비행단 책임자들의 판단을 기다릴 수 있는 폭격수는 아무도 없다. 뿐만 아니라 폭탄을 잔뜩 싣고 돌아와서 착륙하는 행위는 또 다른 자살행위나 다름없이 위험한 행위다. 그러니 이 ‘상품’들은 이륙한 이상 ‘반드시’ 투하되어야만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모든 행위의 제약은 보다 큰 범주에서, 그러니까 자본주의 체제 아래의 전쟁이라는 범주 아래에서 이해될 수 있다. 파괴에 대한 도덕적 책임은 후방의 고향에서 일자리를 유지하고 경제를 부흥한다는 실질적인 효과에 비하면 논의 대상 자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클루게의 《할버슈타트 공습》은 바로 서방에서 수행하는 전쟁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이런 맥락을 제공한다.
전후 독일인들이 안게 된 도덕적 딜레마
독일 시민에 대한 공습의 도덕적 정당성에 대해, 위에서 언급한 ‘도살자 해리스’(영국 공군 사령관 아서 해리스)의 논리는 ‘독일이 먼저 도시들을 공습하기 시작했고, 따라서 독일 시민의 이익에 관해 고려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볼 때 이들의 인간에 대한 이해와 도덕적 감수성의 수준은 딱 이정도 수준에서만 작동했다. 얼마나 좋은 학교를 졸업했고, 얼마나 많은 책을 읽은 것과 무관하다. 또 이들이 가정에서 누구보다 자랑스럽고 훌륭한 가장이자 부모였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이러한 조건과 별개로 현실은 보니것이 포로로 있던 드레스덴에 융단 폭격으로 싹쓸이하도록 지시했던 지도자의 도덕성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1942년 영국 공군 선전 영화에서 아서 해리스가 구두로 한 표현을 콤브링크가 재인용한 대목을 다시 보자.
“나치들은 마음대로 다른 누구나 폭격할 수 있는데 절대로 거꾸로 폭격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상당히 유치한 미신을 가지고 이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로테르담, 런던, 바르샤바와 거의 반백(半百)에 가까운 다른 장소에서 상당히 어리석은 자기 이론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바람의 씨를 부려놓았는데, 이제 그들은 폭풍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189)
나는 이 대목이 특히 소름이 돋았는데, 문득 생각나는 장면에 대한 기시감 때문이었다. 《구약 성경》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가 등장한다. 하느님이 물로 세상을 멸망시킨 이후 노아에게 했던 말이 떠올라서다. 영어판 성경에는 이 대목이 ‘The fire next time!’이라고 적혀있다. 이 표현은 ‘이번에는 물로 했지만, 다음에는 불로 멸할 것’이라고 전하는 하느님의 경고의 메시지였다. 나는 이 대목에서 해리스의 모습이 ‘보복하는 신’과 오버랩되었다. ‘도살자 해리스’는 자본주의를 작동시켜주는 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어서다. 아서 해리스는 내가 좋아하는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에 등장하는 한 인물도 떠올리게 한다. 누구와 닮았을까? 나는 해리스의 진술을 읽으면서 ‘나의 다리를 물어뜯어 갔으니 너는 나의 복수를 받을 것이다’라고 외치던 선장 에이해브의 광기를 떠올렸다.
전후 기록문학으로서 클루게의 공습 기록을 높이 평가한 인물은 같은 독일인이었던 W.G. 제발트(Sebald)였다. 이 책의 해설을 담당했던 콤브링크의 언급에 따르면, ‘제발트는 공중전에 관한 모든 소설과 이야기들의 실제적인 숫자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중전에 대한 질적 분석이 더 중요하다’(200)면서 클루게의 《할버슈타트 공습》을 높게 평가했다고 말한다. 실제로도 연합군의 독일 도시 공습에 관해 강연하고 정리한 《공중전과 문학》에서 제발트는 클루게의 기록을 상당히 비중 있게 언급했다. 제발트는 《할버슈타트 공습》가운데, 폭격 직후 방공삽을 들고 영화관을 치우려 했던 영화관 직원 슈라더 부인의 이야기를 인용하는데, 이 부분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슈라더 부인은 영화 상영이 시작될 오후까지 폭격으로 아수라장이 된 영화관을 치우려고 했다. 그녀는 영화관 지하실에서 발견한 불에 탄 시체 부위를 모아 빨래용 솥단지에 담으며 주변을 정리했다는 것이다(《공중전과 문학》, 61면). 이 이야기의 진실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불타는 도시 한 가운데에서 살아남았지만 ‘판단이 중지’된 인물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가 이런 상황이었다면 달리 어떻게 행동할 수 있을까?
제발트가 제기하는 또 다른 물음 가운데 전후 독일인들이 안게 된 도덕적 딜레마가 있다. 수백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간 민족이 이를 응징하려던 연합군의 폭격을 받은 상황에서 시작해보자. 콤브링크는 ‘히틀러를 권좌에 올려놓은 이 독일인들이 가해자인가 아니면 피해자인가’를 물었던 제발트의 문제의식을 가져온다. 콤브링크는 이런 도덕적 책임에 관한 질문이 ‘할버슈타트 공습’과 같은 사건들에 대해 독일인들이 이야기를 꺼내길 주저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희생자는 자신에게 벌어진 부당함을 고발할 수 있고 다른 이들에게 해를 입힌 사람은 그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 자기 말을 들어줄 누군가를 찾기 힘들다.”(189)고 말이다. 이런 상황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인권을 유린하며 자원과 재화를 약탈했던 일본 정치계 및 군부의 입장과도 조금 다른 결을 갖는다. 이들은 피해 보상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언제나 자신들도 ‘피해자’임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이야기하는 ‘피해자’에는 순수한 일본인들만이 포함되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까다롭고 안타까운 상황 속에 있다.
제발트는 《공중전과 문학》에서 공중전에 대한 양적 분석 말고도 질적 분석이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고 앞에서 언급했다. 그 이유 가운데 한 가지를 생각해보면, 피해 보상에 대한 문제보다 희생된 자국 국민에 대한 애도가 전무한 상황 때문이다. 제발트는 희생자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고 있는 상황, 이들에 대한 애도가 없는 독일 사회에 분노하고 이를 비판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폭격을 받는 도시의 시민들은 이 순간 항복 할 수 있는 길이 근본적으로 차단되어 있었다. 또 폭격 이후에도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꺼낼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이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망각되어 갔다. 할버슈타트 공습 당시에 ‘불 폭풍’ 한 가운데 있던 당사자로서 클루게는 이러한 도덕적 딜레마를 자신과 당시 시민들의 증언으로서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공중전과 폭격에 대한 양적 분석만으로 도덕적 우월성을 결코 논할 수 없다. 콤브링크가 인용한 볼프강 벤츠의 《국가사회주의 백과사전》에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국 공습으로 독일 시민 약 60만 명이 사망했다’고 언급되어 있다(188). 우리는 나치에 의해 사망한 600만 명의 유대인과 독일 시민의 희생자 수를 단순히 비교하여 도덕성을 결정할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미국이 일본에 두 개의 원자 폭탄을 떨어뜨리기 전에도 1945년의 6개월 간 일본의 도시 67개국을 공습했으며, 원자폭탄과 더불어 수 십 만 명의 희생자를 낸 것도 일본이 적국이어서 정당하고 당연한 것이었을까? 우리는 제발트의 지적을 염두에 두고 이런 문제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이를 계속 이야기해야만 한다.
전쟁에 당연한 것이란 없다: 상상력이 필요한 이유
클루게가 《할버슈타트 공습》을 발표한 이후 제발트와 같은 지식인들의 인정을 받았겠지만, 많은 이들의 비판과 의구심도 받았을 테다. 특히 가해국의 시민이 제기하는 이런 문제는 특히 민감한 사안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할버슈타트의 영화관 직원 슈라더 부인의 이야기는 믿기 힘들거나 과장된 이야기라고 의심할 수도 있겠다. 반면 기록문학으로서 그리고 폭격이 이루어지고 있던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작가의 이야기이므로 독자는 아무런 의심 없이 믿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기록문학, 다큐멘터리 작업은 으레 진실이라고 여겨지는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고 여겨지지만, 콤브링크는 기록문학의 본질적인 문제도 놓치지 않고 언급한다. 바로 여러 사건과 글의 소재를 작가가 선별하고 조합한다는 문제다. 콤브링크는 작가가 개입하기 때문에 작가의 주관적인 관점이 융합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문제에 대한 클루게의 입장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무언가 더 그럴듯하게 보이면 보일수록 더 미심쩍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저는 항상 현실인 듯한 태도를 취합니다. 그러나 저는 현실이란 가장 거짓말을 잘하는 자라고 보기 때문에 저에게는 종종 오류들이야말로 소위 팩트로서 더 정확한 증거가 됩니다.”(207)
따라서 아무리 핍진성을 전제로 하는 기록문학, 다큐멘터리 작업이라고 해도 내게는 작가가 어느 지점에 서서 문제를 바라보는가를 독자는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만약 ‘절대 현실’이라는 것이 있다면, 다큐멘터리의 현실은 이 절대 현실과 맞닿아 있는 어느 지점에서 형성된 하나의 ‘구성된 현실’이라는 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전쟁의 현실에서 ‘당연한 것’은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여기에 기록문학 작가에 의해서 재구성된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사건을 제시해도 누군가에게는 ‘그렇다면 다른 방식의 폭격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공중전을 정당화한 이들의 논리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아마도 이들이 지나치게 ‘자본주의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들이 불합리해서가 결코 아니다. 다만 당신이 자본주의가 어때서? 라고 묻는다면, ‘자본주의만이 옳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은 것이다. 오로지 ‘모비 딕’에 대한 복수를 꿈꾸며 이 한 가지에만 미쳐 있는 에이해브 선장의 일신주의적 광기와 무엇이 다른가 묻고 싶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작가 알렉산더 클루게나 제발트뿐만아니라 독일인들이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반드시 마주하고 극복해야할 문제이기도 하다. 클루게가 기록해놓은 대목 가운데 한 독일인 기자가 미 공군 여단장 프레드릭 앤더슨과 했던 인터뷰 중 질문하는 대목이 나온다. 기자는 독일 도시 폭격에 대한 대화를 나눈 후, 앤더슨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 공격이 미칠 영향에 대해서 상상해보신 적이 있습니까?”(83)라고. 물론 이들은 폭격 전에 면밀하게 상상해보긴 했을 것이다. 불에 잘 타는 목재가 많이 있는 구시가지에 집중적으로 폭격할 때 만들어지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가져오는 ‘굴뚝효과’에 대해서 말이다. 이 거대한 불기둥은 도시 주변의 신선한 공기를 계속 화재 지점으로 끌어와 부채질할 것이라는 점을 치밀하게 상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독일 기자가 정말로 물었던 것은, 소돔과 고모라처럼 불타게 될 도시에 있던 수많은 ‘죄인’들이 폭격으로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았냐는 질문이었다.
다시 정리하면, 전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들여다보아야 하며,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공중전과 공습은 산업화된 문명을 굴러가게 하는 바퀴의 한쪽 축이었다. 자본의 논리는 전쟁의 국면에서 도덕적 정당성을 무화시키는 절대 교리인 셈이다. 그럼에도 폭격에 희생당한 모든 이들을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 이점이 알렉산더 클루게의 《1945년 4월 8일 할버슈타트 공습》이 내게 준 강력한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