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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기쁨 - 길바닥을 떠나 철학의 숲에 도착하기까지
토머스 채터턴 윌리엄스 지음, 김고명 옮김 / 다산북스 / 2022년 2월
평점 :
나를 발견하고 스스로를 발현하기 위해 물어야 할 것들
-《배움의 기쁨》(2022)을 읽고
토머스 채터턴 윌리엄스 지음 | 김고명 옮김 | 다산책방
라디오에서 재즈 가수 빌리 할리데이(Billie Holiday)가 부른 <Strange Fruit>이 흘러나와 깜짝 놀랬다. 이 노래는 이제 막 읽은 《배움의 기쁨》이란 책에서 알게 된 곡이었기 때문이다. 이 곡의 제목인 ‘이상한 열매’는 백인들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하고 나무에 매달렸던 흑인들의 시신을 가리킨다. 차별과 수모를 당했던 흑인들의 아픈 역사를 말하는 노래다. 이 책의 저자는 미국의 문화비평가이자 작가 토머스 채터턴 윌리엄스다. 남부 흑인 노예의 후손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미국인들의 통상적인 표현으로 부모 중 한 명만 흑인이어도 자손 역시 흑인으로 취급되곤 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처럼 말이다. 저자 역시 학창시절 자신의 정체성을 속된 말로 ‘깜둥이’로 여기고 지냈다. 이 책을 읽은 후 이들이 이런 표현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일에 얼마나 큰 문제가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 이 표현은 혼혈인들을 ‘깜둥이’ 취급하는 자들에게는 타인을 혐오하는 관습에 젖게 한다. 반대로 이렇게 불리는 자들 곧, 당사자들은 ‘자기혐오’ 정서에 얼마나 빈번히 노출되며 심지어 이를 내면화시키는지 깨닫게 된다. 일부이긴 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현대 미국 흑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이 말이 얼마나 파괴적인 역할을 해왔는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평론가 자신이 읽고 글을 쓰는 직업을 갖게 되기까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일종의 자서전이기도 하다. 특히 미국이라는 특정한 공간에서 태어난 흑인의 정체성을 매개로 자신과 어버지의 삶을 연결시키며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미국 동부 뉴저지주에서 태어난 저자는 고등교육을 받고 교양을 쌓은 부모의 노력으로 중산층의 환경에서 성장했다. 집에는 1만 여권의 책으로 둘러싸인 서재가 있었고, 자녀가 교양을 쌓고 책을 읽는데 큰 관심과 열정을 지닌 부모가 있었다. 하지만 학교를 포함한 집밖의 세계는 정글이나 다름없었다. 학교와 농구장에서는 폭력이 일상이었고, 흑인 학생들은 자기 및 타인에 대한 혐오적인 힙합 가사를 능숙하게 따라할 줄 알아야 집단에서 무리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오면 매일 아버지와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며 대화를 해야 했지만, 집 밖에서는 외모와 자존심을 내세우고, 거친 욕설을 내뱉을 줄 알아야 했으며, 나아가 책과 배움 자체를 경멸하는 연기를 해야 했다. 저자는 이것이 사회 계층을 막론하고 흑인 사회에 팽배해 있던 문화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흑인 아이들이 내뱉던 가시 돋친 말들이나 거친 욕설들은 이 아이들이 그만큼의 심각한 내상을 입고 있음을 암시하는 징후였다. 저자는 이런 흑인 문화에서 학생들이 일종의 가면을 쓰게 되었고, 누구나 하는 연기를 해야 했다고 진단한다. 고등학교 시절 저자의 여자 친구 스테이시는 재능 있고, 아름다우며, 똑똑한 학생이었다. 그녀 역시 중산층 집안의 자녀였다. 하지만 그녀는 또래 흑인들이 공유했던 역할극에 참여하여, 스스로를 좁은 물에 고립시켰다.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력을 스스로 닫아버렸고, 결국에는 다른 흑인 학생의 아이를 임신하기에 이르렀다. 또래의 많은 흑인 학생들처럼 그녀의 미래도 이렇게 닫혀버렸던 것이다.
저자도 이렇게 또래들과 같은 역할을 연기했지만, 아버지의 관심과 격려로 책읽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결국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좋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저자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우물 안 개구리와 같았던 자신의 모습을 깨닫는다. 결국 새로운 환경에서 경험하며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눈을 갖추기 시작했다. 힙합 문화를 비롯하여 학창시절을 지배했던 흑인 문화와 정서를 되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항상 책을 들고 다니며 연필로 밑줄을 긋던 아버지의 삶에 대해서도 점차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가 대학교 2학년을 마치면서 철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고 집에 와서 아버지와 예술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이 기억난다. 아버지는 책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서, 순수한 즐거움을 위해 읽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저자는 책읽기가 순수한 즐거움이기도 해야 한다는 입장을 펼쳤던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아버지가 책을 이렇게 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되고 부끄러움과 아버지에 대한 부채감을 느끼게 된다.
“나는 소설을 읽을 때도 무조건 펜을 쥐고 밑줄을 그어 가면서 읽었다, 아들아. 밑줄 긋는 걸 좋아해서 그런 게 아냐. 뭐라도 지식을 건져서, 뭐라도 실용적인 지식을 건져서 내 인생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강박 같은 거였지. 모르는 게 너무 많은데 나한테 뭐라도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226)
저자는 아버지의 삶을 생각했다. 1930년대에 인종차별이 횡행하던 남부의 텍사스에서 아버지 없이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다. 홀로 용돈을 벌고 학교를 다녀야 했다. 1950년대에는 땅콩버터 한 숟가락으로 아침과 점심을 때우며 사회학 석사 과정에 입학하여 공부를 했다. 식비를 아낀 돈으로 책을 사 모았던 것이다. 아버지에게 책읽기는 그만큼 절실한 행위였다. 저자는 아버지의 책읽기를 이렇게 전한다. “파피(아버지)는 인생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듯이 텍스트와 사투를 벌였다.”(188) 또 아버지의 책을 펼치면 책장에서 “문제 제기, 행간의 해석, 동그라미로 표시한 난해한 표현의 정의, 주장의 해부와 파훼, 반박과 반론 제시와 전개를 여백에다 빼곡하게 적어놓은 글씨”(190)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자기 경멸적인 문화에 젖어 있던 흑인 학생이 책을 통해 교양을 쌓고, 세상을 다르게 보는 눈을 기르는 과정을 담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서재를 매개로 책과 체스, 부자 간 진솔한 대화를 통해 아버지를 이해하고 존경하게 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이 ‘배움의 기쁨’이지만 이 제목은 이 책의 진가를 다 담고 있지 못한 것 같다. 다소 협소하고 수동적인 느낌의 배움에만 그친 것 같아 아쉽다. 이 책은 배움의 효용뿐만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기준점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린 저자의 경험담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철학을 전공한 비평가답게 헤겔이나 니체, 하이데거와 사르트르의 실존 철학, 그리고 여기에 큰 영향을 준 작가 도스토옙스키를 넘나든다. 그는 학창시절 자신이 흠뻑 젖어 지냈던 흑인문화, 이를테면 소유물, 겉멋, 외모, 돈 등에 경도되어 있는 문화를 비판한다. 자신이 속했던 흑인 또래 집단은 피상적인 가치들만을 따르며 연기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 현상을 간파하는 기준점의 하나로 실존주의 철학을 언급한다. 그에 따르면 실존주의란 ‘우리의 행동이 우리를 규정하고, 따라서 우리가 우리 행동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철학’(240)이라고 소개한다. 흑인 집단에 속한 구성원들이 깡패처럼 되고자 각자 선택했다는 의미다. 각 개인이 ‘자신을 속여서 깡패 역할을 연기한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 앞에 놓인 선택지를 고를 수 있는 주체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저자에게 철학은 ‘자신에게 솔직하기’, 혹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를 알려주는 길잡이였던 셈이다.
우리는 모두 다양한 선택 앞에 서 있는 존재다. 깡패 연기를 하며 자신을 속이고 연기하는 삶을 계속 살아가길 선택할 수 있다. 또는 보다 넓은 세계에 호기심을 갖고 탐험하며 자신에게 진실한 삶을 살아가도록 선택할 수도 있는 셈이다. 누구나 원하는 답과 선택이 다를 수 있다. 다만 선택에는 그만큼의 책임이 따를 뿐이다. 때로는 우리가 내린 선택으로 다른 선택보다 훨씬 혹독한 환경에 처할 수도 있겠다. 삶에서 이런 선택의 고민을 해본 적이 있다면, 최근에 읽은 사르트르의 《구토》(1938)와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해본다. 이 소설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이 반영된 소설이다. 처음에 읽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배움의 기쁨》을 읽으면서 저자가 이야기해주는 경험과 사례들을 함께 떠올려보면, 실존철학의 구체적인 적용으로서 두 책 모두를 더욱 풍성하게 읽을 수 있겠다.
저자가 아버지의 서재에서 아버지와 나눈 교감, 장서들을 통해 배운 깨달음의 힘은 강력했다.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면서 흑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자존감을 어렵게 되찾았다. 아울러 힙합 문화로 대변되는 자기 경멸적인 흑인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신적 빈곤과 기계적인 순응 속에 미래가 닫혀버린 많은 또래들도 떠올린다. 저자는 우리가 자신에게 미치는 악영향으로부터 벗어나게 행동하는 방아쇠는 각자의 손에 놓여 있음을 환기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본질적인 삶의 문제 해결에 있어서 고독한 존재라는 점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배움의 기쁨》과 《구토》를 함께 읽으며 실감하게 된 실존주의 철학의 한 조각이다.
이 책은 단지 책읽기나 배움의 기쁨에서 끝나지 않는다. 아버지가 정성을 들여 모은 책들과 서재, 부모와 자녀 간의 친밀한 대화의 시간이 갖는 강력한 힘도 보여준다. 성인이 된 저자가 아버지의 서재에서 체스를 두다가 ‘아버지가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장면은 뭉클한 감동을 준다. 아버지의 생을 이해하고 비로소 공감하게 된 저자의 성숙함이 내게도 전해졌다. 또 인상적인 장면을 꼽는다면, 대학생이던 저자가 방학을 맞아 집에 와서 어머니와 산책하던 장면이었다. 어머니는 《햄릿》에 나오는 대사를 인용하며 아들에게 ‘자신에게 진실해라’고 당부한다. 이 대사는 《햄릿》의 등장인물인 폴로니어스가 멀리 떠나는 아들을 걱정하며 당부하는 대목에 나온다.
“무엇보다 이점 - 네 자신에 진실되거라.
그러면 당연히, 밤이 낮을 따르듯,
네가 누구에게든 거짓될 수 없다는 결론이 따르지.”
[《햄릿》, 김정환 옮김, 아침이슬, 2008, 33면]
흑인 문화 속에서 스스로 장벽을 치고 ‘연기’하기를 그만두고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자기 발견의 기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간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책임을 오로지 홀로 감당해야 하는 고독한 존재이지만,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지닌 존재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므로 《배움의 기쁨》은 배움의 기쁨과 개인의 성공담 그 이상을 보여준다. 바로 독자에게 ‘자기 자신에게 어떻게 진실할 것인가’를 묻고 생각할 기회를 준다.
[1] "어휴, 빈민가 애들 입양해서 키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니죠?" (20) - 백인인 저자의 엄마가 마트에서 만난 백인들로부터 들은 말들.
[2] "파피(아버지)는 특별한 사람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살았다. 자신과 같이 생긴 사람에게 무조건 광적인 혐오를 보이는 세상에서 존경받는 사람이 되길 원했다." (109)
[3] "초등학교 때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내게 상황을 좌우할 실질적인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149)
[4] "두 번째 시나리오는 나에게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는 것이었다. 자존심을 억누르고 호기심을 해방함으로써 타인을 통해 낯선 문물을 접하는 것." (149) - 바게트 빵을 몰라 창피함을 느낀 저자가 했던 생각들.
[5] "신을 믿지 않는 파피에게는 독서가 유일한 구원이었다. 파피는 단순히 책을 모으고 정독하는 수준을 넘어 책과 분투했다. (...) 파피는 인생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듯이 텍스트와 사투를 벌였다." (188)
[6] "내가 살던 곳에서 흑인에게 책이란 슈퍼맨에게 크립토나이트와 같은 것이었다. 심한 발진과 두드러기를 일으키는 무시무시한 알레르기원." (192)
[7]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자를 존중하는 법을, 여자를 철천지원수가 아닌 소중한 존재로 대하는 법을 배워갔다." (211) - 대학에 가서 변화해가는 저자의 모습들.
[8] "후자(흑인문화)는 철저히 소유물, 겉멋, 외모, 맞대응 등 피상적인 면만을 따지는 반면, 전자(철학)는 그런 허울을 뚫고 들어갔다. 철학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 자신이 플라톤이 말한 동굴에서 탈출한 죄수 같았다." (217)
[9] "그들(흑인들)이 존경할 수 있고 실제로 존경하는 것은 전능하신 돈이었다." (218) -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10] "윌의 본질은 깡패가 아니었다. (...) 다만 깡패가 됐을 뿐, 깡패가 되기를 선택했을 뿐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윌도 자신이 그런 사람이 아님을 알았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르트르가 말한 ‘자기기만‘이다. 자신을 속여서 어떤 역할을 연기하는 것." (242)
[11] "사르트르에 다르면 우리는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절대적으로 자유롭다. (...) 사르트르라면 우리 각자가 오로지 자유에 대해서만 노예일 뿐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244)
[12] "개인으로서 나를 발현하려면 반드시 내가 자라온 흑인문화를 장기간 이탈해서 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악영향으로부터 나 자신을 완전히 단절시켜야 한다는 결단이었다." (276) - 대학 졸업 후 바로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고 프랑스에서 일하기를 선택한 저자의 이유
[13] "논 노비스 솔룸 나티 수무스(우리는 누구도 홀로 태어나지 않는다.)" (282) - 저자의 대학 졸업식에서 아버지가 ‘공익에 대한 의무‘를 잊지 말라며 해준 라틴어 축사(키케로가 한 말)
[14] "우리가 대개 혼자서는 자신을 똑바로 볼 수 없으며 타인을 통할 때에야 비로소 자신이나 자신의 상황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거나 이해할 수 있다는 이치를 알아가고 있었다." (291)
[15] 거리에서 비싼 옷을 입고 쇼핑백을 가득 들고서 랩가사를 읊조리는 흑인을 보고 저자가 한 생각. "바로 그런 정신적 빈곤, 피상적 사고, 도덕적 미성숙, 기계적 순응이야말로 현재 흑인의 삶에 뿌리내린 근본적인 문제이자 이 책이 다루고자 하는 진짜 주제다."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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