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윤동주의 77주기, 우리에겐 부끄러움이 남아 있나

-안소영의 장편소설시인/동주밤이 선생이다를 읽으며

 



오늘이 윤동주 시인의 77주기라고 한다. 시인은 차가운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1945216일 눈을 감았다. 몇 년 전에 읽었던 안소영 작가의 시인/동주를 들춰보다가 식민지의 땅에서 스물여덟 해를 살다간 시인의 발자취를 다시 발견했다. 아이러니한 점은 그가 태어난 곳(중국 길림성 용정)과 눈을 감은 곳(일본의 형무소)이 한반도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의 생애를 떠올리면 무심한 이런 사실에도 안타까움이 더한다.

 


시인/동주를 읽게 된 것은 저자의 다른 역사소설 책만 보는 바보(2005)를 읽고부터였다. 책을 너무나 사랑하여 간서치라는 별명을 스스로 짓고 또 그렇게 불리었던 이덕무. 그의 삶 또한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울 만큼 가난하고 힘겨운 나날들이었다. 사람과 자연을 부단히 사랑하고 긍정했던 그는 현실에서 너무나 무력했다. 서자출신으로 오랫동안 관직을 얻을 기회도 없었다. 추운 겨울날 구멍 뚫린 창과 문으로 들어오는 매서운 바람을 견디기 위해 소장하던 논어로 이불을 삼고, 한서로 바람을 막았다 했다. 후대 사람이 이덕무의 삶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이 일화는 일견 낭만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그 삶을 살아냈던 본인과 가족들에게는 그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고된 시련이었을 테다. 안소영 작가는 이렇듯 바람 부는 날 심지를 꼭 붙들고 있는 촛불처럼, 엄혹한 세계에서 삶을 견디어 내던 인물들에 눈길이 가고 손길이 더 갔던 모양이다. 시인/동주중에서 시인이 습작기에 썼던 초 한 대라는 시가 소개되어 있어 다시 눈으로 읽어 보았다.


 

초 한 대 -

내 방에 풍긴 향내를 맡는다.

 

(...)

 

염소의 갈비뼈 같은 그의 몸,

그리고도 그의 생명인 심지(心志)까지

백옥 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

불살라 버린다.

 

(...)

 

매를 본 꿩이 도망가듯이

암흑이 창구멍으로 도망간

나의 방에 풍긴

제물의 위대한 향내를 맛보노라.

 


(시인/동주에 인용된 시 초 한 대(1934)에서 재인용함, 79)

 


시인 곁에는 머리가 비상하고 총명한데다, 신춘문예 당선까지 했던 동갑내기 친구 송몽규가 있었다. 위에 인용한 시는 송몽규가 임시 정부 군관 학교에서 독립군 간부 훈련을 받기 위해 떠난 후, 윤동주가 썼던 시라고 한다. 어둠을 밝히는 촛불과 같은 친구의 앞날을 예감했을까. 자신의 열일곱 번 째 생일을 며칠 앞두고 쓴 이 시에는 혼자 남은 시인의 감상이 담겨 있는 듯하다. 국사 시간에 들은 기억으로 1930년대면 일제의 수탈정책이 더욱 극성을 부리던 시기였다. 이러한 습작시를 썼던 소년 윤동주도 현실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주시하고 있었을 것이다. 쳐내야할 세력이 바로 눈앞에서 모든 이들의 삶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1910년에 출생해서 1937년에 요절한 시인 이상 역시 나라가 사라져버린 땅에서 태어나 살았던 인물이다. 책 속의 여러 정보와 상황은 시인의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상상만으로 그의 삶을 파악했다고 하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었다.


 

윤동주 시인의 작품에 등장하는 정서 중 흔히 이야기 되는 것이 염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나라는 사라져버렸고, 친구 몽규는 보장된 미래에 연연하지 않고 독립군이 되는 길을 떠났다. 식민지에서 태어난 피지배인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혜택을 받았던 지식인으로서 자신은 어떤 길을 가야할까를 자문하지 않았을까.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았을 그는 내게 거울 앞의 시인으로 보였다. 참회록(1942)이란 제목의 시에는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앞에 선 화자가 등장한다. 밤마다 녹슨 거울을 닦아보아도 부끄러운 나의 모습만 비친다. 나는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할까. 막막하고 외로운데다, 답답한 현실이 시야를 가린다. 또 일본 유학 중에 쓴 것으로 보이는 쉽게 씌어진 시. 일본식 육첩방 집에 앉아 있던 비오는 어느 날 밤, 자신의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져도 되는지 자문하며 또 부끄러움을 느꼈을 시인을 상상해본다.


 

(...)

땀내와 사랑 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


(시인/동주에 인용된 시 쉽게 씌어진 시(1942)에서 재인용함, 229)


사전에서 부끄러움과 관련한 단어를 무심코 찾아보니 여러 연관어가 나온다. 자괴감, 자괴지심, 수치심, 망신, 모욕, 수줍음, ‘볼 낯이 없다’, ‘떳떳하지 못하다등등. 윤동주 시인이 간직했던 부끄러움의 정서를 보다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어가 있을까 궁금했다. 우선 나는 시인의 시대를 온전히 상상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학창시절에 그토록 싫어하고 멀리하던 시/문학을 성인이 되어 찾아 읽게 된 경위가 새삼 궁금해진다. 물론 무엇보다 책을 읽는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시를 한번 읽어보라고 권한 것도 한 가지 이유다. 시든 소설이든 문학을 조금씩 접하면서 점점 시적 상상력이란 표현을 점점 많이 접하고 있다. 내게 문학적 상상력, 시적 상상력은 우선 공감을 통해 타인의 삶에 접근하는 수단으로 여겨진다. 문학 고유의 자리라는 것이 있다면, 나는 이것이 문학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 앎의 기회를 가져다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는 성경 속의 표현도 있지 않은가. 어쩌면 이러한 내용들은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다 나오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문학은 기본적으로 언어를 전제하기 때문에, 문학은 분명 역사 시대의 산물이다. 인간 한 명 한 명은 타인들과 이루는 사회 속에서 상호작용하면서 축적된 기억의 총체라고 할 수 있겠다. 과거에 문학을 생산한 사람은 그가 남긴 기록을 통해 미래의 인간과 조우한다. 내가 작품을 통해 시간을 거슬러 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상상력을 통해서. 우리가 온전히 윤동주 시인의 심정을 복원할 수는 없어도, 시에 드러난 그의 심정을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다. 다시 말해 소설과 시를 생산하는 방식은 구체적인 과정에서 많이 다를지 모르지만, 타인의 시선과 감정을 상당부분 느낄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점이 문학과 다른 분야와의 뚜렷한 차이점일 것이다.

 


윤동주 시에 나타나는 부끄러움의 정서와 시적 상상력을 떠올리다가 문학비평가 황현산의 산문 한 편이 생각났다.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에 실린 칼럼 한 편이다. 2009년에 있었던 용산 철거 현장의 참사를 보고 남긴 글 그 세상의 이름은 무엇일까였다. 그는 시위자 다섯 명과 경찰 한 사람의 생명이 사라졌는데도, 이 철거를 지시한 사람들이나 이 문제의 해법을 지닌 이들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음에 놀라고 이를 이야기한다. 이들은 그저 입을 다물고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림으로써 문제의 진원지로부터 시간적·공간적으로 멀어지기를 기다렸던 모양이다. 황현산이 이 칼럼에서 재인용한 시인 진은영의 용산 멜랑콜리아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죽음도 시신도 슬픔도 전혀 없었던 것처럼 완벽하게 청소되어...


 

(밤이 선생이다, 문학동네, 2013, 33, 진은영의 시 용산 멜랑콜리아를 재인용함.)


 

황현산은 이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해도 정작 비극은 사람들이 부끄러움이란 것이 뭔지 모르는 상태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현대인들에게 닥친 실존적인 위기가 바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능력의 소멸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시대가 다르고 상황이 다르지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일본식 이름을 써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부끄러움을 느꼈던 청년 시인의 마음이 사라져가는 것을 상정해볼 수 있다. 현대인들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타인의 슬픔과 상처를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간다면, 인간을 고립과 소외로 몰아가는 것은 결국 인간 자신이 될 것이다. 인간 소외는 인간에게 상상력이 소멸되어버린 결과라 하겠다. 타인의 슬픔과 상처에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상상력 말이다. ‘부끄러움은 바로 이러한 상상력을 지닌 이들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 될 테다. 문학 연구자는 아니지만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적 상상력이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부끄러움이 뭔지 아는 능력이야말로 시적 상상력의 가장 큰 효용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르게 말하면, 인간에게 시적 상상력은 인간이란 종의 생존에 결정적인 징후가 된다.


 

윤동주 시인의 77주기를 맞아 소설 시인/동주을 펼쳐 인용된 시인의 시들을 모처럼 따라 읽어보게 되었다. 학창 시절에 배웠던 시의 정서를 떠올리다가 문학 비평가 황현산의 글까지 다시 찾아보았다. 몇 년 전에 이 책들을 읽을 때는 문학/시적 상상력에 대한 개념이 없었는데, 이제는 왜 시인이 용산 참사를 이야기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나처럼 둔한 사람에게 황현산 선생은 친절하게 그 이유도 일러주었다.


 

이 높고도 활달한 감수성의 인간들이 용산에서 그 열정을 거둬들이지 못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가장 진한 슬픔과 가장 깊은 상처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 그 슬픔과 상처가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사람들 자신의 슬픔이고 상처이며,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슬픔이고 상처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을 잊어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밤이 선생이다, 문학동네, 2013, 32)

 


이것이 바로 시적 상상력의 본질이 아닌가. 그리고 고통 받았던 이들의 아픔과 상처를 함께하지 못했던 이들이 느끼는 부끄러움의 기반이 아닐까. 이 칼럼이 발표된 지 13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삶은 조금 나아졌을까 궁금하다. 아니면 적어도 윤동주 시인이 부끄러움을 느꼈던 80년 전보다 우리의 삶은 더 나아진 것이 있을까. 물론 눈에 보이는 것들’(살림살이)은 나아진 것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어떤가? 이렇게 적고 보니 이제 시를 읽는 일이 내게 어떤 의미와 지향을 보여주는지 조금 더 명료하게 눈에 들어오는 듯하다. 시를 읽는 일만으로도 우리는 상상력을 통해 부끄러움의 연대를 이루어내고 타인과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들처럼 시를 쓰지 못해도 말이다



또 시를 읽는 행위는 이 부끄러움의 연대를 기반으로 집단 혹은 공동체의 기억을 형성하는 일일 것이다. 공동체의 기쁨과 긍지뿐만 아니라, 집단의 상처와 고통의 역사를 기억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을 덮어버리고 잊어버릴 때, 인간은 서로를 고립시키고, 서로를 더욱 힘들고 고통스럽게 만들 것이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서로 만날 여지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타인에 대한 공감력이 사라져버릴 때,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예를 들면 인간과 기계는 구분이 없어지지 않을까. 그러므로 우리에게 시 읽기란 개개인이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는 저항행위이며, 우리가 스스로에게 여전히 부끄러움이 남아있는지 묻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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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2-17 15: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 줄 알았으면 어제 영화 <동주>라도 볼 걸 그랬습니다.
왜 아무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을까요?
하루 지나 여기서 보다니.
부끄럽네요.ㅠ

초란공 2022-02-17 21:21   좋아요 1 | URL
아 저는 영화 제목이 생각이 안났어요. ㅜㅜ
아마 70주기 80주기에는 행사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기 저기서 작은 행사를 하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코로나 때문에 조용히 지나갔을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