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H2O인가?

장하석 지음 | 전대호 옮김 | [김영사]

 


과거엔 물이 H2O가 아니었다는 거죠?’

 



 한동안 기다려온 과학철학자 장하석 교수의 책 Is Water H2O? 이 번역되어 나왔다. 번역서 제목도 간결하게 물은 H2O인가?. 학창 시절에 밤새 만화와 무협지를 열심히 보고 수업시간에 줄곧 졸았던 사람이라도 물이 H2O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다. 그런데 세계적인 과학철학자가 물이 H2O인가?’라고 묻는 제목의 책을, 그것도 두께의 압박을 보여주는 책 한 권으로 썼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런데 장하석 교수는 어려운 과학철학(과학도 어려운데 철학까지...)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진지하게 생각해보기 위해 당연하게 보이는이 주제를 소재로 가져온 것이다.


 

이 주제에 대해 내가 현재까지 정리한 사항은 과거에 물이 두 가지 측면에서 H2O가 아니었다는 것과 현재, 그리고 앞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 물이 H2O라는 점이다. 이 과거와 현재(혹은 미래)를 관통하는 두 가지 기준은 인류의 기억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은유적 측면과 근현대 이후의 과학적 측면을 가리킨다.


 

‘20세기 후반의 급진적인 사상가라고 불렸던 이반 일리치는 자신의 저서 H2O와 망각의 강(사월의책, 2020)에서 바로 전자의 측면에서 물을 고찰한다. 이 관점에서 과거에 물이 H2O이 아니었다는 점은 물이 신화적 상상력을 품은 존재물로서 인류의 역사 속에 함께 했기 때문이다. 그의 저서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과거에 인류의 선조가 인식했던 물은 마오리 신화에서처럼 창조와 생성의 근원이었고, 죽은 자를 강물에서 씻기던 행위에서 정화의 기능을 가진 신성한 재료였다. 죽은 이들의 기억을 씻어낸다는 신화적 상상력 속의 레테의 강은 생명체의 기억, 곧 역사를 품은 재료였다. 따라서 인류의 선조에게 물은 단순히 우리가 과학시간에 배운 H2O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반 일리치에게 화학식 H2O이란 상징으로서의 기호는 물의 신성함과 기억이 상실된 질료로서의 물을 의미한다고 이해된다.


 

과학적인 측면에서 과거에 물이 H2O가 아니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과거에 과학자들은 물이 수소와 산소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화학 실험을 통해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명한 화학자 돌튼은 물의 성분이 HO라고 주장했다. 과학 분야에서 물이 우리가 알고 있는 H2O가 될 수 있었던 계기는 또 다른 걸출한 화학자 아보가드로가 제시한 주장 때문이었다. 이번에 출간된 물은 H2O인가?의 배경이 될 만한 설명은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지식채널, 2014)8장에 이미 간결하게 소개가 되어 있다. 장하석 교수는 이 책에서 돌튼 대 아보가드로, HO H2O의 대결구도에서 어떻게 물이 H2O가 되었는지를 역사적 맥락에서 짚어주면서 동시에 원자의 실재론 철학의 맥락으로 이어갔다. 또 저자는 아보가드로가 물이 H2O라고 주장했던 1811년 이후, 이 지식이 받아들여지기까지’ 5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그러므로 과거 어느 한 때에 과학사적 장면에서도 물은 H2O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저자의 신간에서는 이러한 측면을 보다 심도 있게 들려주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오늘날 물이 결국 H2O가 된 이유 두 가지는 앞에 설명한 배경의 결론적인 변화 때문이다. 이반 일리치의 주장대로 오늘날 물은 과거에 지녔던 역사성을 상실했다. 나아가 인류는 물에 대한 가치를 망각하고, 단순히 산업과 생활의 편의만을 위해 필요한 대상으로 취급했기에 이제는 상징적인 의미로 물이 H2O로 영구히 환원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겠다. 마찬가지로 과학적인 의미에서도 과학의 지식축적과 측정도구의 발달로 과학자 집단에 의해 물이 H2O로 받아들여 진것이다.


 

아마 이번에 출간된 장하석 교수의 신간에서는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에서 간결하게 보여준 물에 얽힌 과학사와 쟁점들을 보다 다양한 측면에서 본격적으로 접근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저자는 이 주제와 관련해서 우리는 정말 물이 H2O라고 확신할 수 있나?’라는 또 다른 주제에 대해 어떤 답을 내놓고 있을지 궁금하다. 앞서 언급한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에서 저자가 또 주목했던 지점은 다원주의(pluralism). 저자는 과학 연구의 역사에서 기존의 지식에 의문을 갖고 다른 관점을 용인하며 새롭게 기존의 지식을 검토하도록 하는 이 감각이 중요한 교훈이 된다고 말했다. 정답만을 찾고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은 우리의 주입식 교육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므로 과연 물이 H2O일까?’라고 묻는 일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교육적인 차원에서 볼 때 여전히 경직되어 있는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도 참고할 만한 사항들이 많을 것이란 기대를 이번 신간에 해본다.


 

장하석 교수가 주목하는 이 다원주의적 태도는 최근에 읽은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의 글에서도 줄곧 돋보이는 관점이다. 장하석 교수와 굴드 교수의 다원주의적 시각에서는 과학사에서 등장했던 다양한 가설과 지식이 비록 오늘날에는 잘못된 지식으로 판명되더라도, 각자 나름의 가치를 용인한다. ‘지금은 틀렸지만, 당시에는 나름의 이유로 옳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태도다. 인류의 지성사는 이렇게 서로 다른 견해가 모두 하나의 링 위에 올라 경합을 벌이는 과정에서 빛을 발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미 출간된 저자의 저서를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나 역시 다시 질문해볼만한 문제이긴 하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점은 다양한 주장과 가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어떤 경우에도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다. 다양성이란 특징이 단지 생태학적인 관점에서만 자연에 유익한 것이 아니라, 인류의 지성사, 나아가 앞으로 인류의 생존 가능성에까지 유익한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개인적으로 물이 H2O인가?’하는 주제에 흥미를 갖게 된 계기는 과학철학자 팀 르윈스의 책 과학한다, 고로 철학한다(MID, 2016) 통해서였다. 이 책은 장하석 교수의 동료인 저자가 쓴 대중을 위한 과학철학서였다. 르윈스는 이 책의 4장에서 바로 물이 H2O인가?’라는 주제를 가져와 과학적 실재론과 관련지어 설명을 한다. 여기에서 저자는 이 질문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장하석 교수의 물은 H2O인가?을 언급했다. 팀 르윈스 교수는 이 부분에서 과학자들이 여전히 물은 단순히 H2O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는 중이라고 언급하는데, 이 대목이 흥미로웠다. 그는 이렇게 언급한다.


 

철학자이자 과학사가인 장하석 교수가 지적하는 것처럼, 우리는 단순한 H2O분자 덩어리를 물로 여기지 않는데, 그 이유는 흔히 물을 구성하는 것으로 여기는 성분에는 여러 이온이 같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과학한다, 고로 철학한다, 158면에서 인용)


 

나아가 저자는 이 문제에 대해 우리가 진리라고 알고 있는(그리고 학교에서 배워서 물이 H2O라고 알고 있는) H2O가설보다 더 나은 과학 이론이 현재로서는 없기 때문이라고 정리한다. 따라서 팀 르윈스는 물이 H2O인가?’라는 명제가 화학자들이 거의 만장일치로 동의하지만, 여전히 논쟁의 여지는 있다는 말도 남겨두었다. 따라서 이반 일리치가 자신의 책에서 다소 낙담한 듯한 어조로 태초에 지구가 꼴을 갖추지 못하고 미완의 상태였던 때이래로 물은 그저 H2O일 뿐이다.”(H2O와 망각의 강, 17)라고 말하긴 했지만우리에게는 아직 물에 얽힌 이야기가 단지 역사적인 질료로서 끝나지는 않을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고 본다. 앞으로 물의 정체성을 밝히는 일에 우리의 상상력도 더 필요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물이 인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잊혀 진 물에 대한 기억과 물의 가치를 되살리는 일도 함께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장하석 교수의 온도계의 철학(동아시아, 2013) 함께 언급해둔다. 이 책 역시 두께의 압박이 있지만, 어차피 천천히 읽어야 할 책이다. 우리가 온도를 말할 때, ‘온도란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과학전공자들도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말이 많은 과학자들에게 말을 줄이게 하는 방법에는 시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에 아마도 온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추가하면 될 것 같다. 그만큼 간단해 보이는 이 질문에 쉽고 명쾌하게 답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 책은 온도라는 개념과 온도계의 발명, 그리고 과학에서 측정이란 행위, 나아가 과학 행위란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과학의 발전 혹은 진보라는 맥락에서 생각해볼 기회를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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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6-16 0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멋지고 매료되는 서평입니다.
에테르라고 믿던 것을 깬 아보가드로의 이야기며 굴드의 이야기는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을 상기 시켜주네요. 이반 일리치에 대해서는 읽고 싶었는데 이 책 좋네요 :-)
서평에 별 5 요~

초란공 2021-06-16 00:27   좋아요 1 | URL
과찬의 말씀입니다 ^^;; 아직 설익은 이해와 비문이 난무하네요~ 편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초딩 2021-06-16 00: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서평 즐겨찾기 기능 있음 좋겠어요 ㅎㅎㅎ

초란공 2021-06-16 00:27   좋아요 2 | URL
저도 요새 있었으면 하는 기능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