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다의 엄지 - 자연의 역사 속에 감춰진 진화의 비밀 사이언스 클래식 29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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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의 엄지

: The Panda's Thumb (1980)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 지음 | 김동광 옮김 | [사이언스북스]

 



스티븐 제이 굴드정치적 읽기

 


40여 년 전에 고생물학자 및 진화 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가 쓴 자연사 에세이를 틈나는 대로 읽고 있다. 첫 번째 에세이집 다윈 이후(1977)를 읽고, 두 번째 책으로 판다의 엄지(1980)를 읽고 있다. 과학계에서는 10년만 지나도 새롭게 발견된 사실과 얻게 된 통찰이 쌓여 만만치 않은데, 이 시점에서 굴드의 에세이를 읽는 이유는 뭘까. 그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줄곧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굴드는 미국 자연사 박물관이 발간하는 월간지 자연사 Natural History에 매달 에세이 한 편씩, 한 번도 거르지 않고 27년 동안 기고했다고 한다. 무슨 할 이야기가 그렇게 많았을까 싶지만, 그는 과학뿐만 아니라 역사와 문학, 건축 등의 문화예술 분야, 자신이 좋아하는 야구를 비롯한 스포츠에도 강한 호기심과 박식함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의 에세이에서는 주요 연구 분야인 고생물학을 비롯하여, 진화론, 현대 진화 생물학, 유전학 등을 글의 중심에 놓되, 언제나 인간이라는 요소를 잊지 않았다. 굴드가 글을 쓰며 줄곧 유지하는 자세는 과학 행위란 역시 인간이 하는 일이란 명제다.


여성의 뇌(14)라는 제목의 글에서 굴드는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인 시각을 도마 위에 놀려 놓는다. 작가 조지 엘리엇의 작품 미들 마치 Middle March의 서문으로 시작하여 끝을 맺는 이 에세이는 유럽의 일류 과학자 집단이 여성의 열등성을 증명하기 위해, 과학이라는 이름의 정교한 장치를 활용한 역사를 짚어본다. 저자는 인간이 하는 과학이란 무엇인지 자신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과학은 추론을 통한 실천이지 무수한 사실들로 이루어진 목록이 아니다. 따라서 숫자 그 자체는 전혀 중요하지 않으며, 여러분이 무수한 사실들로 이루어진 목록이 아니다. 여러분이 그 숫자를 이용해 무엇을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206)


 

과학행위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보다 더 명확하고 중요한 메시지가 있을까 싶다. 나는 다윈 이후에 이어 이제 두 번째 책을 읽고 있을 뿐이지만, 저자가 끊임없이 제기하는 문제들에서 보이는 일관된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상식이나 인간 사회에 줄곧 이어지는 편견과 오해를 붙들고 자세히 들여다보며 이야기했다. ‘라마르크는 과연 무능한 진화론자였을까?’, ‘다윈이 20년 넘게 자신이 완성한 자연선택설을 발표하지 않고 묻어 둔 이유가 보다 확실한 증거를 모으기 위함인가?’와 같은 질문들이 그러한 예다. 또 후손의 눈으로 조상의 지식과 결정을 소급하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시대적·사회적 배경과 맥락 속에서 이들이 주장한 논리가 나름대로 타당하고 심지어 합리적이기까지 했다는 결론도 내린다.


하지만 굴드가 자신의 글에서 줄곧 드러내는 문제의식은 보다 근원적이며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쟁점들이며, 나아가 서양 사회의 차별과 배제의 오랜 역사와 닿아있다고 본다. 보다 구체적으로, 굴드는 백인 남성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 사회가 오랜 역사를 거쳐 구축해온 기득권 유지 장치의 단면을 끊임없이 조명한다. 서양사에 대해 아직 이해가 부족하지만, 개인적으로 인류사에서 기록으로 남아 있는 차별과 배제의 증거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서 이미 흔히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자신과 다른 존재들을 야만인이라고 부른 전통이다. 사실 야만인은 말 그대로 잔인한 짐승 같은 존재에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우리와 다른 언어와 문화를 향유하는 자들에 대한 무지와 혐오에 오만함이 더해진 비하 행위의 다른 이름일 테다. 동양인들에 대해 유럽인들이 째진 눈제스처를 하는 행위, ‘흉노족훈족과 동일시한 사례는 단지 유럽의 백인 남성 기득권 사회가 끌어들여 활용한 장치의 곁가지 정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굴드는 서구 사회에서 이렇게 통용된 차별과 배제장치를 다양한 맥락에서 소환하며, 이러한 사회적·정치적 장치들을 과학적 태도로 비판한다. 진화론에 대한 왜곡된 해석으로 굳어진 우생학을 비롯해서, 인간중심적 우월주의, 백인(남자)의 인종적/성적 우월성, 유전자 결정론적 시각, 머리 크기와 지능의 관계 등을 끊임없이 글 속으로 끌어들인다. 굴드는 왜 이러한 주제들에 매달렸던 것일까? 에세이를 읽어가면서 점점 궁금해졌다. 아마도 그 이유는 이 소재들이 자신의 문제의식을 건드렸고, 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듯 서구 사회의 편견과 여기에 기인한 차별과 배제의 행태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반응했다. 바로 서구 문명사회가 은밀히 구축하여 규범화 하고 강요해온 구별짓기의 전략이다. 무엇보다 백인 남성이 전략적이고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왜곡하여 끌어들인 장치들을, 굴드는 과학자의 눈으로 직접 들여다보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굴드의 눈에 비친 서구문명의 차별과 배제전략은 왜/어떻게 생겨났던 것일까. 나는 그 이유에 대한 실마리가 백인 기득권층의 두려움과 혐오라고 본다. 예를 들면, 19세기에 미국의 일류 자연학자였던 루이 아가시(Louis Agassiz)의 인종차별적인 면모를 보여준 16(빅토리아 시대의 숨은 결함)에서 그 단서를 엿볼 수 있다. 아가시는 보스턴 소재 래드클리프 대학의 창설자이자 초대 학장, 하버드 대학교 비교 동물학 박물관을 건립했던 명망 있는 지식인이자 인정받는 보스턴 시민이기도 했다. 역사탐정의 면모로 굴드는 아가시가 흑인을 처음 만난 후 남긴 기록의 무삭제 원본을 복원하여 에세이에 소개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 기록은 아가시가 이 글을 쓴 후 헌신적인 아내의 검열과 삭제를 거쳐 130년 넘게 아가시의 인종차별적 면모가 가려져있었다. 흑인에 대한 동정을 보내면서도 혐오 또한 숨기지 않았다. 그는 혼혈아를 만들어 내는 것은 (...) 자연에 대한 범죄입니다.”(238)라고까지 썼다. 굴드는 아가시가 남긴 기록을 다음과 같이 간단히 요약한다. “루이 아가시는 백인의 우월성이 희석되지 않도록 모든 인종을 따로 격리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236) 나는 아가시의 글에서 상대방(흑인)에 대한 혐오뿐만 아니라 두려움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구 사회의 기득권층, 특히 백인 남성들이 강렬하게 지녔던 이 두려움과 혐오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는 유명한 공상과학영화의 한 장면에서 상징적으로 떠올릴 수 있겠다.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에 등장하는 다스베이더(Darth Vader)로부터 말이다. 그는 영화 대부분에서 줄곧 검은 가면과 망토 속에 가려진 상태로 등장한다. 강력한 악의 힘을 다루면서도 그가 줄곧 느끼는 두려움이다. 굳이 언어로 풀어 놓는다면 진실에 대한 두려움정도가 아닐까. 인간이 갖는 근원적인 감정으로서 이 두려움은 죽음과 같은 절대적 무지에 대한 두려움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와 더불어 자신의 비밀과 추악함이 밝혀지는 사태에 대한 두려움도 있을 것이다. 백인 남성이 구축해온 문명 속에서 공기처럼 누려온 이 기득권 유지와 둘러싼 비밀이 사실은 근거 없음으로 드러나게 된다면, 이러한 사태는 이미 힘을 가진 집단에게는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다.


결국 세상의 절반은 거대한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과학과 종교의 힘을 빌려, 여기에 맞는 논리를 만들어내야 했다. 오로지 자신의 비밀 유지를 위해서 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세상의 다른 절반의 삶을 좌우할 수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남녀만의 차별뿐만 아니라 모든 인종에 대한 차별도 고려해야 하므로, 우리의 삶은 절반에 훨씬 못 미치는 백인 남성 기득권 사회가 다른 모든 존재를 장악하고자 했던 시도의 영향을 받아온 셈이다. 굴드는 자신의 글에서 줄곧 인간우월주의적 시각, 유전자 결정론, 인종 및 성차별적 시각의 역사를 문제시한다. 저자의 양심의 눈에 끊임없이 비쳐진 것은 어쩌면 서양인들의 잠재의식 속에 흐르는 기만죄의식의 감정(곧 백인의 죄책감, white guilt)을 덮고자한 방어기제였다.


물론 굴드는 서양 백인들의 차별과 배제의 오랜 역사를 언급하지만, 이것이 서양 문화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게 되었다. 전 지구는 이미 서양화되어 있어서, 오늘날 각 민족, 각 인종의 다양성은 심각하게 줄어들고 획일화되어 버렸다. 때로는 서양인들의 편견일부를 우리는 아무런 문제없이 받아들이기도 하며 상식이 된 것들도 있다. 진화를 진보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는 미묘한 해석도 그러한 예다. 또 우리 중 많은 이들이 동남아시아인들을 바라보았던 시각을 떠올려볼 수 있다. 분명히 많은 이들이 백인을 보는 시선과도 크게 차이가 난다. 굴드는 이렇게 통용되며 사람들에 심어진 편견에 주목하고 꼼꼼하게 이를 이해하고자 한다. 이 행위를 바탕으로 자신의 관점에서, 직접 판단을 내린다. 따라서 그는 서양 기득권 세력이 구축해온 세계 질서를 비판하고 이 도도한 인식의 흐름을 바꾸어보고자 했던 사람, 양심적이고 반성적인 서구 지식인의 한 명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작가 제인 오스틴은 정교하고 정확한 언어, 섬세한 시선과 재치로 18세기 영국의 중상류층 여성들의 삶을 다루었다고 한다(아직 그녀의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다). 그녀의 작품과 생애를 기반으로 한 영화를 몇 편 보면서 느끼는 점은, 오스틴의 작품에는 영국 사회가 마련해놓은 질서 안에서 여성들이 겪었을 삶의 모순을 치밀한 심리와 함께 묘사해 놓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큰 흐름에서 볼 때, 여성 주인공들은 백인 남성이 구축하고 강요하는 사회의 규범 내에서 발생한 오해와 이해 부족에 결과한 편견으로 고통을 받는다. 작가 오스틴의 삶도 이런 배경 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오스틴이 이러한 규범과 편견을 민감하게 감지하고 기록했으며 이에 저항했다는 점이다. 단순히 더 좋은 조건을 가진 남자들을 만나기 위해 여성들이 겪는 에피소드가 아닌, 여기에 오스틴이 지녔으며 작품을 통해 드러냈던 정치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제인 오스틴의 이야기를 불쑥 꺼낸 이유는 굴드 역시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인 편견을 민감하게 감지하고 이에 반응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에세이에서 서양 기득권자 집단이 자신들의 목적에 맞추어 왜곡하고 이용했던 진화론또는 다윈주의에 얽힌 스캔들을 소재로 삼되, 미묘하면서도 때론 유쾌하게 문제제기를 한다. 그렇다면 스티븐 제이 굴드가 고생물학계의 제인 오스틴과 같은 면모를 지녔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앞에서 굴드가 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언급했던 내용을 인용한 바 있다. 굴드의 과학은 결국 이 행위가 인간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적 행위이기도 하다는 점을 말한다. 서양의 기득권 집단이 줄곧 주장해온 논리 역시 무지’, ‘죽음’, ‘비밀에 대한 두려움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여기에 뿌리를 내린 편견이 만들어낸 정치성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굴드를 읽는다는 것은, 과학이 비정치적이어야 한다는 교훈을 배우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정치적으로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를 묻는 일이 될듯하다. 과학이란 내가 어떤 근거와 자료로 대상 혹은 현상을 바라보고 해석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을 포함한다. 나는 어떤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 할 것인가, 나아가 세상을 바라볼 때 나는 어디에 발을 딛고 설 것인가 하는 위치 선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굴드 읽기는 내가 어디에 받을 딛고 설지를 끊임없이 묻고 배우고 수정하는 과정이라고 읽힌다. 이점이 굴드를 읽으면서 중립적으로 읽을 수는 없다고 판단한 이유다.    



"과거에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사태로 자주 인용되는 사례가 하나 있는데, 핀의 머리에 천사가 몇 명 올라갈 수 있는가를 둘러싼 논쟁이 바로 그것이다. (...) 하나의 핀이 유한의 수를 수용할 수 있는지 아니면 무한의 수를 수용할 수 있는지를 놓고 논쟁을 벌인것이라는 사실... 한 신학 체계에서는 천사의 실체 여부가 매우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201)

"브로카와 그의 학파는 (...) 어느 개인이나 집단이 다른 개인이나 집단보다 우수한 이유를 설명하는 문제를 뇌의 크기와 지능의 상관 관계를 통해 해결 할 수 있음을 입증하고 싶었던 것이다." (201)

"과학은 추론을 통한 실천이지 무수한 사실들로 이루어진 목록이 아니다. 따라서 숫자 그 자체는 전혀 중요하지 않으며, 여러분이 그 숫자를 이용해 무엇을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206)

"우리는(특히 타처럼 키가 작은 사람들은) 높은 지능이 키가 큰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212)

"트리소미 21은 대개 몽고 백치, 몽고증, 다운 증후군 등의 이름으로 불려 왔다." (219)

"그들은 익살꾼 연기자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뛰어난 모방력을 가지고 있다." (224)

"아시아 인의 지적인 힘은 인정하지만 그 능력은 혁신적인 천재의 능력이라기보다는 남의 것을 잘 흉내 내는 능력에 불과하다는 식의 설명을 분인 것이다." (225)

- 다운증후군을 연구했던 다운 박사의 아시아인에 대한 시각

"브로카의 발언은 실제로는 특정 시대의 사회적 차별에 불과한 것을 생물학적으로 이미 결정되어진 것인양 호도하는 보편론이라는 전체 맥락에서 판단할 필요가 있다." (212)

"저는 이 퇴보하고 퇴화한 인종을 보면서 연민의 느낌을 받았고, (...) 그 운명에 동정심을 느꼈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들이 우리와 같은 혈통이 아니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습니다. (...) 신이시여, 이러한 접촉으로부터 저희를 지켜 주소서!" (235)
- 미국 래드클리프대학의 창설자이자 초대 총장, 하버드 대학교 비교 동물학 박물관을 세운 루이 아가시의 메모

"굴복하지 않고 용맹무쌍하고 자긍심이 강한 인디언, 그들은 유순하고 비굴하고 모방하기 좋아하는 니그로에 비해, 또는 교활하고 잔꾀에 능하고 겁쟁이인 몽골 인종과 얼마나 다른가!" (233)
- 루이 아가시가 <크리스천 이그재미너 Christian Examiner>(1850)에 발표했던 글 중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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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6-15 0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굴드의 좀 오역된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단속평형이론은 아주 매력적이었습니다.
그의 좋은 책이 많군요 ^^

초란공 2021-06-15 09:32   좋아요 0 | URL
네~ 제가 굴드를 읽기 시작했을 때 이미 절판된 책이 많아서 아쉽네요^^;; 날씨가 후덥지근하고 눅눅한 느낌입니다. 비가 올 모양인가봐요~ 유쾌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