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비딕

허먼 멜빌 지음  |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1] 어렴풋이 보이는 것들(Loomings)

 


모비 마라톤 시작하며

 

올해는모비 Moby-Dick 우리에게 남겨주었던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1819-1891) 태어난 200주년 되는 해이다. 중년이 되어 처음 읽어보는 모비 읽으면서 정말 놀라운 책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소설에서 주인공인 이슈메일이 고래잡이 배를 타는 코넥티컷 주의 낸터킷이란 섬은 당시에 이미 포경업의 발상지라는 위상만 남기고 산업이 내리막길을 향하던 곳이었다. 현재 낸터킷 섬에서 매년 개최한다는 모비 마라톤이라는 행사의 이름을 따서 (행사에 참여는 못하지만) 나도 모비 다시 읽기 해보려고 한다. 행사에서는 참가자들이 쉬지 않고 일간 모비 읽는다고 하는데, 나는 이와 반대로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135개로 이루어진 () 대한 독후기를 남기는 일을 꾸미게 되었다. 그러므로 모비 읽은 후에는 135편의 독후집을 남기는 일이다. 길면 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하나의 () 읽으면서 나의 특기인 옆으로 새기, 딴생각하기 모아놓은, 무척이나 쓸모없지만(?) 흥미로운 여행이 같다.   

 

우선 어릴 읽었던 아동문고판 모비 보면 고래나 포경업에 관련한 자세한 지식은 모두 빠져있고, 줄거리만 나와있다. 나는 거대한 장편 소설을 문장으로 어떻게 요약해볼 있을까 생각해본다. 아마  커다란 고래를 스토킹하다가 소설의 화자를 제외한 모든 이가 몰살당한 이야기정도로 정리해볼 있지 않을까? 하지만 전체 작품을 읽는다는 일은 쓸모없어 보이는 부분이라도 저자의 의식을 따라가는 행위이기에 무의미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안개비가 내리는 우산 없이 돌아다니다 어느 순간 옷이 흠뻑 젖어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 이제 나의 쓸모없는 시도에 대한 의미부여는 여기서 마무리하고 문장부터 따라가보려 한다.

 

1장에서는 인물과 시작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등장한다. 자신을 이슈메일이라 소개하고, 고래잡이 배를 타러 낸터킷 섬으로 가는 길에 배를 놓쳐 뉴베드포드 항구에 일간 머물러야 하는 상황을 전한다. 여기서 자신이 고래잡이 배를 타러 바다로 왔는지, 그리고 일개 선원으로 지원하는 이유를 비롯하여 화자의 인물됨을 있는 단서를 멜빌은 마련해두었다. 참고로 독후 마라톤의 모든 번역은 작가정신출판사의 김석희 번역가의 번역을 따르려고 한다.

 


 

문장 ‘Call me Ishmael’ 대해

 

언젠가 어느 영문학과 교수님이 번역소프트웨어를 놓고 문장으로 농담을 했던 기억하고 있다. 어느 유명 회사의 번역소프트웨어로 문장을 넣었더니 내게 전화해줘, 이슈마엘이라고 했다나. 물론 딥러닝과정을 통해 좀더 개선할 여지는 있겠지만, 아직 상황 판단이나 맥락에 대한 정보 혹은 수혜자의 의도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그것도 구체적으로), 모든 작업에 대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 힘들다는 깨달음을 주고 있기도 하다. 아무튼 문학사상 유명한 문장 순위에 오를 만한 문장에 대한 번역을 김석희 번역가는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라고 시작하고 있다. 여기서 ‘~라고 해두자라는 표현이 주는 미묘한 뉘앙스를 좋아한다. 말하자면 화자의 이름이 정말 이슈메일인지 아닌지 보다는 보편적인 상징을 지닌 인물임을 드러내주고 있는 같아서이다. 옮긴이 주석에 따르면 이슈메일 구약성서 <창세기> 나오는 이스마엘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인의 조상 아브라함 그의 하녀였던 하갈사이에서 태어난 이스마엘 아브라함 본처인 사라역시 아들을 낳자 집에서 쫓겨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따라서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스마엘 방랑자또는 세상에서 추방당한 라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지고, 따라서 소설의 이슈메일역시 이러한 보편적인 상징성을 지닌 인물로 있겠다. 오랜 세월 세계를 떠돌았던 유대인의 모습이 마치 구약성서에 예정된 신의 섭리의 일부로서 보일 있겠다는 점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다시 보면 이슈메일 운명은 이미 소설의 문장에서 이름지어짐 통해 고난과 역경이 준비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도 있겠다.

 

과거 스페인에서  국토회복운동(레콩키스타, Recongquista)’으로 알려진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유대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디아스포라로서 살아야만 했던 운명을 소설의 문장을 읽다가 떠올려 보았다. 조사를 해보니 레콩키스타 이미 700년대 초부터 시작하여 15세기 (1492)까지 7세기 동안 , 현재 스페인 지역의 이베리아 반도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이슬람국가를 축출하고, 기독교 국가의 영토를 회복하려고 했던 운동을 가리키는데, 과정에서 구약성경에 비중을 두는 유대교 역시 탄압의 대상이 된다. 유대인들은 기독교로 개종을 하거나 아니면 이베리아 반도를 떠나야만 하는 선택의 기로에 있었으며, 결과 자신이 독실한 유대교인임을 드러내지 않거나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과 이를 거부하고 유럽 전역에 유대인들이 퍼져나가게 되는 실마리를 제공한 역사적 사건이다.

 

 

세계를 방랑하는 유대인 디아스포라를 생각해본다

 

오늘날 유대인들의 영향력은 한계를 가늠하기 힘들다. 인류의 유산(서양 문명에서) 속에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유대인들과 연관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중세 시대의 국토회복운동과정에서 특히나 고통받았을 유대인들은 유럽 전역으로 이주하게 되는데, 영향을 우리는 고스란히 받고 있다. 스페인에서 네덜란드로 건너간 유대인들의 후손에는 철학자 스피노자도 있고, 수상록으로 알려져있는 프랑스인 몽테뉴 또한 모계 쪽에 유대인의 핏줄이 있다. 한편 여러 사상가가 철학자, 문인들 또한 유대인들이 많이 있는데, 예를 들어 한나 아렌트, 아도르노, 발터 벤야민도 유대인이었다. 이탈리아인 프리모 레비도 조상들이 이탈리아 북부(토리노) 이주해와 정착한 유대인의 후손이었고, 다른 이탈리아 문인 나탈리 긴츠부르크나  카프카 역시 프라하의 유대인이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유명한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는 어떤가. 현대 물리학의 기반을 마련한 아인슈타인도 유대인이었으며, 양자역학의 기반을 마련한 닐스 보어도 유대인의 피가 섞여 있었으며, 줄리안 슈윙어나 리처드 파인만(리투아니아계 유대인) 또한 유대인의 후손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언어학자 촘스키나 신경과학 의사였던 올리버 색스는 어떤가. 영국에서 성장한 올리버 색스는 유대인으로서 그는 우리에게 감명깊은 글을 남긴 있다. 밖의 수많은 유대인의 후손들이 생의 흔적을 많이 남겨놓은 셈이다.

 

언젠가 유대교 신비주의혹은 영지주의(Gnosticism)’ 대한 이해가 되면 이와 관련하여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이와 관련한 자료를 읽다가 내가 흥미있게 기억하는 부분은 작가 허먼 멜빌과 카뮈 또한 영지주의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받았다 대목이었다.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멜빌이 모비 에서 구약성서 많이 의지하는 것을 지적하며 이는 멜빌 집안의 청교도적인 배경 때문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여기에는 멜빌이 간접적으로 영향받은 영지주의적인 배경을 고려할만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부분은 기회가 되면 이해를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물과 상상력, 물의 마력

 

굳이 시인이자 과학철학자인 바슐라르를 언급하지 않아도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의 근원을 마련해준 물질이며, 따라서 모든 생명체의 고향이라고 말해볼 수도 있겠다. 1장에서 화자인 이슈메일은 나를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나는 바다로 나가게 됨을 설명하고 있다. 논리적으로 해명할 수는 없지만, 물이 끌어당기는 마력 대해 화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가령 당신이 시골에, 호수가 많은 어느 고지대에 있다고 하자. 어느 길이든 마음에 드는 오솔길을 골라서 걸어간다고 하자. 당신이 택한 길은 십중팔구 골짜기로 내려가 시냇가 웅덩이에 이르게 것이다. 웅덩이에는 마력이 있다. 가장 얼빠진 사람을 가장 깊은 몽상 상태에 빠뜨린 다음, 사람을 일으켜 세워서 발길 닿는 대로 걸어가게 해보라. 지역에 물이 있다면, 사람은 틀림없이 물이 있는 쪽으로 당신을 데려갈 것이다. (…) 누구나 알다시피, 명상과 물은 영원히 결합되어 있다.”(32)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화자 자신이 물에 끌리는 정황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샘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잡지 못해 물에 빠져 죽은 나르키소스의 이야기도 곁들이면서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우리 인생의 모습에 비교하기도 한다. 물에 비친 우리의 모습이 잡을 없는 삶의 환영이자 모든 것의 열쇠라고 까지 말하고 있다. 불가피하게 이런 근거없는 실체를 쫓는 존재들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며, 실체임을 저자는 간파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의 엉뚱한 생각이긴 하지만 멜빌은 낮은 곳으로 향하는 본성을 주목해본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고지대의 호수에서 흘러내린 물이 낮은 곳의 웅덩이로 모이게 되는 물을 언급한 대목 뿐만 아니라 바다로 나갈 일개 선원으로 간다라고 말하며 선장이나 요리사 등의 직책을 맡은 자리 아닌 정직한 노동을 하는 자리가 자신이 편하게 지낼 있는 자리임을 표방하고 있다. 이러한 실마리들은 일면 저자 멜빌이 삶에 대해 가진 무의식적인 태도와도 닿아있다고 생각한다.  권위나 사회의 규범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이를 이용하거나 활용하는 위치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낸 자세로도 읽혀진다. 이런 태도는 세상에 노예 아닌 사람이 있는지 묻고 싶다’(35)라고 언급한 대목에서 더욱 보강되고 있다. 부분은 특히나 당시 미국이 노예문제 몸살을 앓고 있었으며, 모비 출간된 시점(1851) 남북전쟁(1861-1865) 발발한 시점과 동떨어진 시간이 아니듯이 문장은 당시에 논란의 여지가 많았을 것으로도 보인다. 실질적인 의미에서든, 상징적인 의미에서든 멜빌이 1장에서 밀어넣은 문장은 노예제도 대한 문제의식을 분명히 반영하고 있으며, 사회 규범에 대한 반발심 발로로 수도 있겠다. 당시 사회 통념을 벗어나 현상의 본질을 보려는 멜빌의 지성을 엿볼 있는 대목이었다.

 


 

정당한 대가를 받는 일과 미국적 가치관의

 

옮긴이가 언급하고 있듯이 멜빌은 없는 신의 섭리에 세계를 맡기고, 앞에 자신의 죄를 깨닫고 겸허하게 행동해야 구원받는다 청교도적인 흐름 속에서 있었으며, 보다는 자유로운 신흥 교리를 주장하는 유니테리언 파에 속했던 아버지의 영향도 물론 무시할 수는 없을 같다. 아무튼 낮은 곳에 겸허하게 임하려는 청교도적인 자세는 본성과도 상당한 친화도를 보여준다. 그리고 나아가 거대한 있는 바다로 나아가며 자신은 일개 선원으로 배를 타려는 이유를 이러한 맥락 속에서 정당화하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일반 선원으로서 대가를 받는 대해 언급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대가를 받는 -이것을 무엇과 비교할 있을까? 돈이야말로 지상의 모든 악의 근원이고, 부자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없다고 우리가 진지하게 믿고 있음을 생각하면, 사나이가 멋진 활동으로 돈을 받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36)

 

대목은 성경에 나온 바대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갈 없다는 명제와 돈벌이라고 하는 현실적으로 상충하는 문제가 미국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해결되어 가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보여주기도 한다. 내가 이해한 바가 맞다면 이런 국면은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도 확인할 있다. 신교도(프로테스탄트)들의 경제활동과 도덕적인 모순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로서 정당한 노동이라는 전제에 주목했던 정황을 여기서도 엿볼 있다. 모비 지극히 미국의 정신을 담고있는 소설이라고 한다면 이런 부분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현대의 미국인들에게, 특히 부를 거머쥐고 있는 미국의 기독교인들에게 도덕적인 정당성을 부여한 맥락을 확인해볼 있다는 말이다.

 

아울러 이슈메일이 고래잡이 배를 타게된 또한 이미 오래 전에 계획된 신의 섭리 표현한 것도, 그리고 이를 다르게 운명이라는 보이지 않는 경찰관으로 표현하고 있는 부분도 청교도적인 정신 흔적이라고 있을 같다. 어쩌면 신비주의적인특성을 포함하는 이런 대목은 미국의 기업인이 성공하여 부자가 되면 이건 분명 신의 섭리이므로 정당성을 부여받는 심리와도 연결지어볼 있다.거대한 사기극에서 이원석은  미국적인 자기계발의 배경과 등장을 이야기 하는데, 19세기 미국의 정신세계를 언급한다.시크릿으로 대변되는 신비적 자기계발 언급하며 미국적 자기 계발 맥락을 가지로 정리한다. 하나는 신비적 자기계발 다른 하나는 윤리적 자기계발 계보이다. 저자 이원석에 따르면 윤리적 자기계발 청교도의 토양 위에서 이신론의 줄기가 뻗어나고 이에서 자조사상이 피어난 이며, ‘신비적 자기계발 유니테리언과 초절주의를 경유해서 시사고 운동으로 모습이 드러난 ’(52)이라고 하였다.  벤자민 프랭클린으로 대변되는 정당한 노동 대한 대가를 당연시하는 , 근면할 것을 중요한 덕목으로 삼은 윤리적 자기계발 계보와 관련지어보면 , 모비 에는 이슈메일이 일반 선원으로 고래잡이 배를 타고 고된 노동으로 받는 대가에 대해 긍정하고 있는 모습이 겹쳐 보인다. 하지만 자신이 바다로 나가 고래잡이 배를 타려고 하는 지에 대해서는 이런 신비주의적 분위기 에도 기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분명히 이런 윤리적이고 정신적인 태도는 유럽인들의 태도와는 분명히 구별되는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이런 모습들은 오늘날 미국인들의 말과 행동에서 여전히 찾아볼 있는 특징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비 1장은 쉽사리 지나치기에는 다양하고 중요한 정보를 주고 있는 부분으로 천천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의 현재성 현재 미국의 오래된 미래

 

1장을 읽다가 한번 놀란 대목은 이슈메일이 신의 섭리 의해 고래잡이 배를 타게된 이유를 언급하며 운명 삶이라는 연극의 무대감독으로 비유하면서 제시한 연극 프로그램이었다


미합중국 대통령 선거전

이슈메일 아무개의 고래잡이 항해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전투


대목(37) 현대 미국의 행보 와도 너무나 닮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특히나 전세계에 대한 영향력이 커져버린 미국 사회에서 중요한 행사이자 하나의 되어버린 미국 대통령 선거를 떠올리게 한다. 아울러 아직도 미국이 개입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문제들을 생각해보면 모비 그토록 다양한 현대적 맥락에서 비유와 상징을 통해 해석될 있는지, 면면을 찾아볼 있는 실마리가 이미 1장에 들어있다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고래의 불길한 이미지 죽음에 대한 예견일까

 

1장을 마무리하며 멜빌은 유령 같은 고래의 이미지로 여운을 남기고 있다.

 

목표를 향해 나를 내몬 멋진 공상 속에서 둘씩 짝을 지어 영혼의 깊은 곳으로 헤엄쳐 들어오는 고래의 끝없는 행렬이 보였다. 그리고 행렬 한복판에, 하늘로 우뚝 솟은 덮인 산처럼 두건을 거대한 유령이 하나 떠다니고 있었다.”(38)

 

여기서 나는 하늘로 우뚝 속은 덮인 이미지를 어디서 보았을까 궁금해졌다. 1장에 앞서 책에 소개된 미국 포경선 헨리 롱펠로호의 항로와 이슈메일이 타게될 피쿼드호의 항로를 참조해보면 상선 선원이자, 해군의 선원, 포경선을 탔던 허먼 멜빌은 아프리카를 지날 킬리만자로의 덮인 산이나, 일본 근해를 지날 눈이 덮여 있던 후지산을 적이 있지 않았을까 상상만 해보게 된다. 여기서 언급하고 싶은 점은 백색 주는 공포와 불길함에 대한 연관성 혹은 암시이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죽음 천착한 작가라고도 불리는데, 그만큼 죽음이라는 문제가 톨스토이에게 인생의 문제였다는 반증일 것이다. 특히 광인의 수기에서  주인공이 하인과 멀리 떨어진 곳의 영지를 매입하러 가는 길에 머물었던 하얀 에서 경험한 발작증세와 겨울 속에서 사냥을 하다 사방이 눈으로 덮힌 벌판에서 길을 잃고 경험했던 발작에 대한 묘사는 톨스토이 자신의 경험에 근거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여기에서 백색 주는 상징은 죽음 혹은 죽음에 대한 공포 암시하고 있다고 있겠다.

 

마찬가지로 1장의 마지막 부분에 멜빌이 언급해 놓은 하늘로 우뚝 솟은 덮인 떠다니는 거대한 유령으로 표현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내게 다가왔다. 흰색 고래 떠올리게 하는 묘사로부터 죽음으로 이어지는 불길한 암시를 저자가 설정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1 독서를 마무리하며

 

1장을 아주 천천히, 생각을 하며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적어가다 보니 앞으로의 독서 후기를 적는 일이 만만치 않겠다는 불길한징조를 보게 된다. 이렇게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건만, 모비 저술 구조를 다시금 생각해보면, 스스로도 권에 대한 독서 후기를 이렇게 느린 속도로 읽으며 길로 새는 일이 어쩌면 책과 닮아 있다는 위안도 가져본다. 어쨌거나 과정은 동안 해왔던 독서 경험을 정리하는 장으로 활용하는 계기가 같기도 하다. 아울러 과거에 읽었던 다른 책들과 새롭게 연결 지으며 새로운 독서 신경을 만들어가는 기회가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모비 읽으며 느꼈던 놀라움을 조금이라도 놓치지 않고 기록해두고 싶었던 바람인지도 모른다. 모비 마라톤 올해 안에 끝낼 있을까 하는 고민을 잠깐 하기도 했지만 이상 문제를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어쨌든 재미있는 경험이 되지 않을까.  

 


 

[참고도서 자료]

모비 ,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각가정신]

나의 서양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창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막스 베버 지음, 박성수 옮김, [문예출판사]

<위키 백과> 영지주의중에서 현대의 영지주의항목 (https://ko.wikipedia.org/wiki/영지주의)

거대한 사기극, 이원석 지음 [북바이북]

이반 일리치의 죽음/광인의 수기, 레프 톨스토이 지음, 석영중·정지원 옮김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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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지 2019-05-29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리게 읽으며 연결 짓기를 통한 학문적 독서 후기가 시선을 끕니다. 소논문을 들여다보는 듯해요.

초란공 2019-05-29 12:21   좋아요 1 | URL
떠오르는 대로 쓰다보니 메모만 해두고 방치해둔 모양새같기도 합니다.^^ 두서없는 글을 읽어주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