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 아웃사이더의 심리학
다니엘 스미스 지음, 김현경 옮김 / 마리서사(마리書舍)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남들이 가지 않는 길에 선 당신이 프로이트를 읽어야 하는 이유!
프로이트는 타고난 아웃사이더였다.
심리학부터 정신의학, 사회학, 교육학, 범죄학, 문예비평까지, 우리가 관심을 갖는 모든 분야에 이보다 더 막강한 영향을 기친 철학자를 본 적이 있는가!
철학자들 가운데서 가장 많은 수수께끼를 간직한 인물이기도 하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우리의 생활에 가장 많이 스며들어 있기도 하다.

프로이트의 아웃사이더의 기질은 자신의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어 가난한 삶의 살면서 시작이 되었다.
유대이라는 그의 배경과 경적인 이유, 그리고 아버지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반유대주의자들에 공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1896년에 프로이트의 아버지가 사망했다. 아버지의 죽음은 프로이트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쳤고
신경증을 앓고 있던 프로이트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증상과 아버지의 죽음 사이의 상관관계를 깨닫고 엄격한 자기 분석을 시행했다. 자기가 꾼 꿈과 어린 시절의 기억을 살펴보는 일도 포함되었고 도전적이고 괴로우면서 신나는 일이 되었다.

1896년에 정신분석학이 처음으로 등장했고,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만들어 내었다
정신적인 치료방법인 압박 기법을 중단하고 자유연상 기법을 시작하기도 했다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이라는 책을 펴냈다.
꿈의 해석은 내용이 주관적이고 성적이어서 다른 사람들의 비난을 샀다. .
히스테리를 성적인 근원에 초점을 두는그의 이론은 그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브로드와도 헤어지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사회 문학 이론가 토드 뒤 프레인에 따르면 "역사상 주요 인물 증 프로이트만큼 거의 모든 중요한 원리들에 대해 환상적인 오류를 범한 사람은 없다."라고 말했다.

프로이트는 오류를 범했지만 언제 난 틀린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 프로이트가 제시한 성 발달의 고정된 패턴을 다른다는 이론은 수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실제로 학계에 이전에는 거의 없었던 불완전하게 형성되었지만 과학적인 활력을 불어 넣었다.
프로이트의 개념들은 불신을 받고 그 오류가 드러났다, 그렇지만 무의식 모델의 세부 사항은 과학적으로 뒷발침 할 수 없을지 몰라도 그는 무의식의 역할을 밝혀 냈다. 프로이트는 전 세계의 대학 학부에서 비과학적인 측면에서 자주 언급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동성애를 폭넓게 수용했다. 하지만 동성애를 수용했던 그의 태도가 바뀐 것은 동성애자들에게서 이성애 성향을 저해하는 병균이 계속 발생하면서이다. 동성애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그가 죽은 후에도 논란거리가 되었다.

 프로이트는 딸을 잃었고 연이어 4살 된 손자까지 잃었다. 그는 그 후로 자신도 질병을 앓아 수술을 하고 불편한 삶을 살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20년대 말 유럽에서 반유대주의 감정이 급증하면서 극단주의 정치가 눈에 띄게 대두되고 있었고, 제1차 세계대전 후에 프로이트의 저서들은 나치 집회에서 "본능적인 삶에 대한 미화, 그런 영혼을 파괴하는 짓을 그만두고, 인간 정신의 고귀함을 지지하자!"라는 구호와 함께 불태워졌다.
프로이트는 강력한 지지자들을 모으는데 엄청나게 성공했지만, 삶은 게속된 관계의 파탄으로 유명했다. 조카인 존과의 우정도 불화로 이루어 졌고, 비밀위원회에 있었던 그들과도 관계가 좋지 않게 끝났다. 프로이트가 아들처럼 생각했던 비유대인 카를 융과도 해피 엔딩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 25년 두 번의 세계 대전은 프로이트의 삶을 힘들게 했다. 개인적인 소송과 전쟁은 그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1938년 프로이트는 건강 상태가 안 좋았다. 히틀러의 추종자들에게 딸 안나가 체포되자 프로이트의 지인들이 그의 가족을 런던으로 피신시킨다. 프로이트는 영국에서 있는 힘을 다해 새로운 인생을 다하려고 했다. 계속 연구하고 품격을 갖춘 공인으로서 역할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1939년 프로이트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3주 후 9월 23일 숨을 거뒀다. 프로이트와 그의 주치의의 합의에 의해 모르핀 주사를 연달아 놓았다. 자신의 죽음을 자기가 주관한것인것인가.

프로이트라는 인물이 약간은 사기꾼같았다.그가 환자를 대했던 치료법에서 그랬다. 억압적인 방법을 썼기 때문이다. 그의 치료법은 납득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환자들을 치료하는 방법을 시도 하면서 그가 갈등하고 고뇌했던 프로이트를 알수가 있었다.
유대인으로 태어나 나치주의자들에게 받았던 수모들, 그리고 정확한 증거를 내세우지 못해 논란의 중심에 섰던 프로이트,
아웃사이더의 길을 걷게 되었던것은 가난한 환경과 반 유대인으로서 그가 받았던 수모때문이었을것이다.

프로이트가 죽은지 75년이 되었다. 여전히 그는 논란의 중심에 서있고 프로이트의 에게서 비롯된 개념들은 현대인의 생활에 깊숙히 스며들어 있다. 사람들은 아직도 프로이트에게 관심이 많다. 나 또한 프로이트에게 관심이 있기에 선뜻 이책을 보게 되었다. 정신분석하계의 아버지로 불리던 프로이트 그의 전생애가 이 책에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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