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신 택리지 : 충청도 - 두 발로 쓴 대한민국 국토 교과서 신정일의 신 택리지 5
신정일 지음 / 타임북스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나라 지리정보를 만날때면 어느 부분에 촛점을 맞추어야하는걸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된다. 지리학적 특성일까 아니면 문화, 인물 ,여행이 되어야하는걸까 그렇게 이러저러한 생각들이 이어지면서 내가 한달에 사달이는 책만해도 상당하다. 하지만 항상 뭔가 부족하기만했다. 그러던차 만난책이 신정일님의 신택리지였다. 학창시절 역사시간에 무슨내용인지도 모른채 작가와 제목만을  외워두었던 책중 하나였던 이중환의 택리지가 생각나매 나의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었다.

 

여기에서 이중환의 택리지부터 알아보자면  정감록과 함께 조선후기에 가장 맣이 필사된 베스트셀러였단다. 현장에서 건져올린 생생한 지리정보들이 역사 문화 생활과 연계되며 장사하는 사람들, 풍수를 연구하는 사람들 산수 유람가들등 다양한 소구대상층들에게 어필했기 때문이란다. 그 다양성들이 현재에 적용되어 한 지역에 대한 모든것들이 포괄되어 있던책이 바로 신정일의 신택리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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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0권의 기획이라는데 난 작년 여름 살고싶은곳을 첫 인연으로 전라도와 경상도편에 이어 4번째로 충청도편을 만났다. 충청도는 부모님의 고향이자 나의 고향이요 남편의 고향이기도하다. 하지만 등잔밑이 어둡다고 찾아가고싶은곳을 꼽을때면 항상 등한시했던곳이었다. 충청도하면 다른곳에 비해 특색이 없다 느껴지기도 했다.

그곳을 조선 역사속에서의 의미를통해 진가를 재조명하며 지금의 모습과 연계해가면서 지리적 특성과 풍수지라학적 모습들은 물론 여행의 길라잡이로까지 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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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는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물품은 영남과 호남에 미치지 못하나 산천이 평팡하고 아름다우며 서울과 가까워 예부터 양반이 많이 살았단다 또한 조선 개국당시 조선의 도읍지로 낙점되기도 했었으며 서쪽은 바다와 인접해있어 바다물품들도 풍족했다. 한마디로 살기가 편안했던 땅이었음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기반을 둔채 인문지리 내지는 역사지리학의 측면에서 이 책을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의도 그대로 생활모습에서의 땅의 의미와 명당으로서의 풍수지리학  조선 위인들의 면면과 여행답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그 땅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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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충청도의 12대 길지부터 찾아보자면 서쪽으로 서산시 운산면의 보원사와 아래쪽으로 내려와 부여군 외신면의 무량사,  충청도의 동쪽인 충주시 소태면의 덕은리에서 가장 아래쪽으로 내려온 보은군 외속리면 한계리등으로 총 9개지역의 테마를 선정 충청도의 역사와  특성들을 조목조목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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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리지 팔도총론 충청도의  들머리에 실린 기록에 위하면 충청도는 충주와 청주에서 한 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란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하였고 삼국시대에는 시대상황에 따라 영토 변경이 잦았던 땅이기도 하다.   태조 4년에 충청도라는 이름을 얻어 지금에 이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백제의 제 2,제3의 도읍인 웅진과 사비성의 중심이었기에 충청도를 논할때면 백제왕국이 터로서 역사와 문화를 조명하고 

 조선시대 선비와 고종이 왕이 되기까지의 남연군 묘에 얽힐 일화등이 그 중심축을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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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첫번째는  가야산의 앞뒤에 있는 열고을을 일컫는 내포땅이었다. 충청도에서 가장 좋은곳으로 예산 당진 서산 홍성등이 이곳에 속한단다. 조선시대엔 임진왜란과 병자혼란의 두차례 난리때에도 적군이 들어오지 않았던 땅이요 지금은 삽교호 방조제가 완성되며 새로운 지형을 만들어낸곳이다. 1913년 4월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은행인 호서은행 예산에 세워졌으며 풍수지리가 일컫는 명당의 조건을 모두 갖춘 천하의 길지인 남연군묘가 있는곳, 추사 김정희와 윤봉길 의사의 고향이요 서산은 한해 농사지어 세해 먹고살수 있는 땅이었단다. 그곳은 또한 만해 한용운의 숨결이 어려있는곳이었고 다산의 정취가 곳곳에 묻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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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의 왜목마을 갯벌과 가야산 보덕사 남연군묘의 모습이다)

 

 

공주는 백제의 두번째 도읍지로 장수왕에게 한강 유역을 삐앗긴 백제가 475년에 새로이 건설한 땅이었다. 그후 538년 지금의 부여인 사비서으로 도읍을 옮긴 백제는 122년간 새로운 부흥기를 맞은후 멸망하게된다, 그 땅은 이후 조선시대에 와서는 갑신정변의 주역인 김옥균을 키워냈다. 그 역사와 더불어 마곡사 갑사.고란사 매월당 김시습의 흔적이 남아있던 무량사 까지 유서깊은 사찰이 있었으며 택리지의 저자인 이중환의 고향이기도했다.   

 

 



 

 

충청도는 또한 주요한 어업전지기지로써의 역활을 담당하는 대천항과 강경포구 내륙지방의 관문이었던 부강포구도등이 있고  여러 물줄기가 이어지는 속리산 , 민족의 정기가 이어지는곳 계룡산,  갑천의 발원지인  대둔산등이 있었다.

 

 



 



 

 

또한 껍데기라는 시인으로 유명한 신동엽, 옥천의 정지용 생가. 현충사의 이순신, 천안 병천의 유관순 ,조선상고사의 신채호와 조선 최고의 학자 송시열등이  얽혀있는 지역이기도했다.  신정일의 신 택리지의 매력은  내고장이자 내고향에 대한 오랜 역사를 알아가매 더욱더 애착을 가지게 만든다. 12대 길지를 통해 얼마만큼 살기 좋았던 땅이었는지를 알려주고 그 유래에서 오래전 역사를 들추어내며, 한곳 한곳 천천히 내딛는 걸음속에서  우리 위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업적를 찾아간다.

 

인문서요, 지리서요, 역사서요, 인물서였으며 답사길라잡이로서의 여행서까지 참으로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찾아보는 다양한 매력들은  참으로 많은것들을 보게 만들고 느끼게 만드는 여러 시선들을 만들어 주기에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에 완벽한 길라잡이요, 인문서였다.  

 

 



 

 

 



 

 

그 책을 만나고  우린 첫번째로 소개한 내포땅으로  첫번째 여행코스를 잡았었다.

 


(서산 마애삼존불상)


 


( 서산 개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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