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 스토리 - 뇌는 어떻게 감정과 의식을 만들어낼까?
수전 그린필드 지음, 정병선 옮김, 김종성 감수 / 지호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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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사진도 많고 편집 상태도 우수하다
독자가 보기 편하게 잘 구성한 것 같다
전체적인 내용도 크게 어렵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마음을 확 빼앗는 흡인력은 다소 부족하게 느껴진다
중립적인 집필 태도 때문인 것 같다
뇌과학이라는 분야 자체가 단정적인 말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아무래도 저자는 조심스런 태도를 취한다
감동적으로 읽은 "빈 서판" 을 쓴 스티븐 핑커 이야기가 자주 등장해 반가웠다
위대한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의 이름을 따서 언어 연구하는 침팬지에게 님 촘스키라는 이름을 붙여 줬다는 대목에서는 새삼 촘스키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느낄 수 있었다

신경과학이란 참 흥미진진한 학문이다
배우는 건 많은데 정작 환자에게 해줄 것은 없다는 말처럼, 인간의 뇌라는 가장 신비로운 부분에 대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으나 실제적으로 환자에게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하는 분야다
프로작처럼 획기적인 치료법이 개발된다면, 인류의 삶의 질은 월등하게 향샹될 것 같다
당장 치매로 고통받는 노인과 그 가족들이 혜택을 볼 것이다
죽는 순간까지 온전한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인간의 존엄성은 크게 올라갈 것이다
신경학자들이 좀 더 많은 연구를 통해 실제적으로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
노화와 더불어 뇌에 대한 연구가 나날이 활성화 되고 있으니, 내가 노인이 됐을 무렵에는 의학의 혜택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아인슈타인의 뇌가 실은 일반인의 뇌와 별 차이가 없다는 말은 여러 차례 들었다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인류 최고의 천재라는 이 과학자의 뇌는, 결정적인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기껏해야 뇌의 뉴런 연결이 많다는 정도인데, 이견이 많기 때문에 100%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한다
저자는 뇌의 신비를 특정 영역에 국한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비판한다
그 대답이 옳은 것 같다
뇌는 특정 부분에 특정 기능이 할당된 단순한 평면도가 아니다
여러 가지 상황이 맞물려 돌아가는 복잡하기 짝이 없는 유기체다
그러므로 당연히 살아 있는 아인슈타인의 뇌와 죽어 있는 뇌는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물질로 존재하지 않는 전기적 결합이나 활동들이 죽은 후에까지 보존될 리가 없지 않은가?
뇌는 전기로도 신호를 전달하지만 다시 화학적 물질로 바꾸어 전달하며, 호르몬을 통해 신체를 조절하기도 한다
너무나 복잡하고 유기적인 관계로 얽혀 있는 뇌를 한 가지 논리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뇌란 노화와 더불어 인체가 갖는 가장 신비롭고 정교한 매커니즘일 것 같다

과거에는 인간의 마음이 심장에 있다고 생각했다
긴장을 하거나 기쁨을 느끼면 심장이 두근거리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곳이 심장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정신 활동이 뇌에서 일어나며, 단순히 지적 활동 뿐 아니라 감정까지도 뇌의 작용이라고 생각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참으로 놀랍다
지금도 생각은 머릿속에서 일어나지만, 마음은 가슴에 있다고 믿는데 말이다
저자의 지적처럼 지적 활동보다 더 신비로운 것은 마음의 작용인지도 모른다
감정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인공 지능을 만든다면 감정까지 느끼게 할 수 있는가?
인공 지능은 자신이 누구이고 정체성을 인지하는 의식 수준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뇌에 관한 의문점은 아직도 끝이 없다

정신병이 약물로 조절된다는 생각도 획기적인 발상 같다
특히 우울증을 치료하는 프로작의 발명은 현대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 프로작이라는 단어가 일상 생활에서 쉽게 등장한다
우울증은 간단히 말해 세로토닌이 부족해서 생기는 감정인데, 프로작은 시냅스에서 세로토닌이, 재활용을 위해 분비된 세로포 다시 uptake 되는 것을 막는다고 한다
뉴런의 연결 부위인 시냅스 주변에 계속 머물게 하는 약이다
이것은 세로토닌의 수치를 늘려 주는 치료제가 아니기 때문에 증상을 없앨 수만 있다고 한다
감정 상태를 약물로 치료할 수 있다니,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감정을 발생시키는 뇌과학이 좀 더 발전한다면 불쾌한 기분을 없애는 수준까지 갈 수 있을까?

파킨슨 병은 알려진대로 도파민이 부족해서 생긴 병이다
도파민은 운동 신경과 기억력을 관장하는 물질이므로 이게 부족하면 운동실조와 기억력 감퇴에 시달린다
권투 선수 알리가 대표적이다
도파민이 많아서 생긴 병은 정신분열증이다
뇌를 각성시키는 이 물질이 너무 많이 분비되면 뇌는 환청이나 환각 같은 혼란 상태를 겪게 된다
파킨슨 병의 치료제로 L-dopa를 복용하게 되면, 부작용으로 환청 등이 들린다고 한다
치매의 대표적 종류인 알츠하이머 병은 아세틸콜린이 부족해서 생긴다
현재로서는 아세틸콜린을 외부에서 보충해 주는 방법 밖에 없다고 한다
일단 치매에 걸리면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고 가족들 역시 심한 고통을 겪기 때문에 빠른 해결책이 나와야 할 것 같다
저자에 따르면 파킨슨 병과 알츠하이머 병, 헌팅턴 병 등은 모두 단일 질환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한 가지 전달 물질을 보충하는 식으로는 완치가 어렵다고 한다
뇌란 참으로 복잡다단한 유기체인 셈이다

뇌에 관해 궁금한 사람이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편집 상태가 아주 좋기 때문에 읽기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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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5-03-08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 독자의 마음을 확 빼앗는 흡인력은 다소 부족하게 느껴진다
중립적인 집필 태도 때문인 것 같다"
이 책에서 뭔가 모자라다고 느꼈는데, 바로 그거였어요!

marine 2005-03-08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딸기님, 님도 그렇게 느꼈군요 그런데 고양이가 사자로 보이는 그 사진, 너무 귀여워요 우리의 속마음을 들킨 기분이 드네요 ^^
 
편집자 분투기
정은숙 지음 / 바다출판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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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보여 주는 신선함과는 달리, 책 내용은 그저 그랬다
알라딘의 여러 독자들에게 회자되는 책이라 기대를 너무 많이 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책 만드는 것에 대한 심정 토로를 기대했는데, 편집의 과정에 대해 보여 주는 소개서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좋은 책과 나쁜 책에 대해 예를 들어 가며 설명하면 좋았으련만, 아무래도 타 출판사의 책을 가지고 실명 비판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실은 마음산책이라는 출판사를 잘 모르기 때문에 잘 와닿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나온 책에 관한 책이라면 표정훈의 책이 가장 나와 잘 맞는다

안의 편집은 무척 신선하고 발랄했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겉표지 디자인은 다소 실망스럽다
"편집자 분투기" 라는 이 멋진 제목을 좀 더 돋보이게 할 수는 없었을까?
산만하고 엉성해 보이는 겉표지가, 만약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했더라면 손이 안 갔을 것 같다
그렇지만 각 장을 편집과 관계된 사진으로 나누는 아이디어는 신선했다
각 장의 제목을 보라색으로 한 것도 지루하지 않아서 좋았다

어린 시절 책을 좋아했기 때문에 막연히 책 만드는 일을 하면 어떨까 싶었다
문예지 기자나 출판사에서 일하면 좋을 것 같았다
요즘은 북세션 기자로 일하고 싶다는 충동도 든다
신문들이 책 소개에 많은 공간을 할애해 주기 때문에 출판 전문 기자로 일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소개하는 일로 먹고 살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흥분된다
물론 유력 일간지의 기자는 진입 장벽이 아주 높지만 말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종종 출판 관련 일을 꿈꾸었다
그런데 정작 출판사에 근무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실은 밥벌이를 해야 하기 때문에 돈 되는 책만 읽게 된다고 한다
나처럼 아무 이해 관계도 없이 그저 재미로 책을 보는 사람은 아무 책이나 기분 내키는 대로 읽으면 되지만, 책 만드는 일로 밥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돈이 되는 책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즉 아무 책이나 좋다고 만들 수도 없고, 밥벌이와 상관없는 책만 붙잡고 늘어질 여유도 없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 이 떠오른다
책을 직접 만들지 않고 그에 관한 글을 쓰는 표정훈 역시 직업의 애환에 대해 털어 놓으니, 밥 벌어 먹기 쉬운 직업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다른 직업을 갖고 책은 취미로만 읽을 수 있어서 다행스럽다
책 만드는 일은 스트레스 강도가 아주 높은 직업일 것 같다
시장의 변화에 민감해야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겪을 것이다
더구나 요즘처럼 책을 안 읽는 시대에, 종이책의 멸망이 예언되는 시대에, 독자의 입맛에 맞는 책을 만들어 판다는 행위는 보통 일이 아님이 분명하다
아침형 인간이 뜨면 저녁형 인간, 아침형 인간을 넘어서 등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걸 보고, 참 저런 책을 만들고 싶을까, 한심하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녀의 책을 읽고 보면, 출판 불황 시대에 그나마라도 독자의 선택을 받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라는 생각도 든다
출판사에서 잘 안 팔리지만 꼭 필요한 책을 베짱좋게 만들 수 있는 출판 환경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물론 독자들의 수준높은 선택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프랑스 같은 경우는 인터넷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이 모두 도서 정가제를 실시한다고 한다
안 팔리지만 가치있는 책에 대한 국가적 지원도 상당하다고 한다
무이자로 빌려 주기도 하고, 번역료를 일부 지원하기도 한다
도서관에만 집중하는 대신, 좋은 출판사를 찾아내 그 상황에 맞는 개별 투자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도서관에 대한 지원도 부족하다는 누군가의 비판이 생각난다
미국 같은 경우 수많은 공공 도서관에서 출판된 책의 상당 부분을 구입함으로써 출판사의 수지 타산을 맞춰 준다고 한다
꼭 필요하지만 많이 안 팔리는 책에 대해, 정부가 도서 구입비로 좀 더 높은 예산을 책정해 주면 좋을 것 같다
그래야 안 팔리지만 꼭 출판해야 하는 책들이 경쟁력을 얻지 않겠는가?
도서 정가제에 대한 문제는 뭐라고 표현하기가 참 어렵다
독자 입장에서야 싸게 파는 인터넷 서점이 좋지만, 동네 서점이 사라져 간다는 안타까움도 크다
다양한 형태의 서점이 존재해야 한다는 점에서 보면, 동네 서점이 생존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좋은 작가와 교섭하려면, 일단 그의 전작들을 꼼꼼히 읽고 작가와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라는 저자의 충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경제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자신의 작품 세계를 잘 이해해 주는 출판사도 작가에게는 퍽 중요할 것 같다
편집자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고 그것에 대해 감동할 줄 안다면, 작가 역시 믿고 맡기겠다는 안도감이 생길 것 같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야 그저 출판만 해 준다면 감지덕지겠으나, 예술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면 어떤 출판사에서 출판하느냐도 꽤나 중요한 일일 것 같다
또 자신이 잘 아는 분야의 책을 출판하게 된다는 말도 실감이 난다
출판사의 성격에 따라 선택된 주제에 관한 책을 출판하겠지만, 그 속에서도 실은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 쪽으로 기울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즐겨 읽는 책들을 다시 한 번 붙잡아 보라고 한다
또 자기 취향과 맞는 출판사를 선택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편집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어쩌면 홍보일지도 모른다
요즘 같은 정보의 홍수 시대에 살면, 너무나 좋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독자에게 전달되기 힘들 때가 많다
편집자는 저자의 좋은 책을 독자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중계해 주는 매개자다
요즘처럼 광고가 홍수를 이루는 시대에 살면, 무엇보다 매스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다
아직까지 TV 광고를 하지는 않지만, 가능하면 언론에 많이 노출될수록 독자의 관심을 갖게 된다
책은 문화 산업이라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신문의 서평도 중요할 것이고, 인터넷 서점의 독자 리뷰도 중요한 몫을 하게 된다
그러나 알바 리뷰까지 성행하는 현실은 참 안타깝다
결국 책의 가치를 출판사 스스로 훼손하는 꼴이 아닌가?
독자와 출판사의 쌍방간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해지면, 구입 가능한 독자층을 좀 더 정확하고 좁게 잡을 수 있기 때문에 성공 확률이 높아질 것 같다
일본 같은 경우는 소수의 열혈 독자들을 위한 맞춤 출판이 활발해서 작은 규모의 출판사도 많이 운영된다고 들었다
특히 오타쿠 문화가 활발하기 때문에 여러 종류의 책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도 베스트셀러만 살아 남는 부익부 빈익빈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조금씩 꾸준히 팔리는 체제가 됐으면 좋겠다

편집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아쉬운 점은 편집자의 일상을 보는 재미가 없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북디자인에 관한 얘기도 많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출판에 관한 또다른 역작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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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ngkiller 2005-04-01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참 많이 읽으시네요.^^ 리뷰 하나하나 꼼꼼히 읽고 댓글을 달아드리고 싶은데 내용들이 워낙에 방대해 도저히 엄두가 안나네요.ㅎㅎ

RAJAH 2005-04-20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에 마침표가 없네요. ㅋㅋ 독특한 스탈이신 것 같아요. 리뷰 잘 읽고 갑니다~

필터 2005-09-03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가어코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어느때는 이런 책이 왜 이렇게 인기가도를 달려야 하나 싶은 책도 많지요. 과연 왜 그래야 하는지...그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는 책 같거든요....나나님~즐거운 주말 되세요.
 
그대가 꿈꾸는 영국 우리가 사는 영국
김인성 지음 / 평민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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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혹은 재밌는 책을 읽었을 때의 기쁨은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멋진 사람과 데이트를 했을 때의 기분과 비슷하다
김인성은 참 글을 잘 쓴다
더구나 재밌기까지 하다
내가 보기에 이 여자는 일상에서도 유머 감각이 풍부할 것 같다
점잖은 척 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수준있는 유머를 글로 풀어 쓰는 저자의 문장 실력이 참으로 부럽다
지난 번 영국 문학 기행도 아주 재밌게 읽었는데, 이번 수필은 더욱 재밌었다
일상 생활을 담은 가벼운 수필집이라 더 신나고 재밌었을 것이다
이런 책들은 많이많이 팔려야 하는데, 홍보가 시원찮은 것 같아 속상하다

무엇보다 저자의 깊이 있는 통찰과 균형감각이 마음에 든다
서문에서 지적한 바대로, 외국 생활을 하다 보면, 특히 선진국에서 살면 무조건 좋은 쪽으로 피상적인 관찰을 하기 쉽다
잠깐 머물다 간 외국인이 낯선 사회의 깊은 속내까지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이미지에다 경험들을 끼워 맞춰 해석하기 쉽다
자연스레 후진국에 가면 부정적인 생각이 강해지고, 선진국에 가면 별 거 아닌 것도 다 좋게 보이기 마련이다
그만큼 그 사회가 갖는 진짜 속성을 파악하기가 힘들다는 얘기다
저자는 이런 점을 경계하면서 조심스런 글쓰기를 시도한다
나는 저자의 이런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태도가 참 좋다
미국 체험기를 읽어 보면 일방적인 찬사이기 쉬운데, 적어도 저자는 그 점에서는 자유로울 듯 하다

영국은 대단히 보수적이고 계급 의식이 확실한 나라라고 한다
민주주의 시대에 왜 아직도 군주제를 유지하는지 참 신기할 때가 많았는데, 귀족층이 기득권 세력이기 때문에, 또 국민들 역시 그들의 기득권을 인정해 주기 때문에 절대 없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식민지를 겪으면서 양반 계급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고, 미국 역시 신세계를 건설하면서 기존의 세습 귀족들이 사라졌지만, 조금씩 바뀌어 온 영국은 간단히 말해 귀족 세력이 몰락할 만한 지각 변동이 없었던 셈이다
그러므로 이 나라의 계급 의식은 생각보다 아주 뿌리깊다
귀족이란 노동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이다
전문직 역시 고급 노동자일 뿐이다
유치원 보모 주제에 왕세자와 결혼했다고 시기와 질투를 한 몸에 받은 다이애나도 유명한 귀족 집안 출신으로, 사립 여학교 졸업 후 스위스에서 교양 수업을 받았다고 한다
즉 대학을 갈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다
케임브리지를 졸업한 찰스 왕세자와, 고졸인 다이애나가 학벌 차이로 말이 안 통했을 거라는 분석은, 우리나라 사람만이 할 수 있을 거라는 저자의 뼈있는 지적이 이어진다
귀족들은 개인차를 무시한 채 한꺼번에 모아 놓은 교실에서 검증되지 않은 선생들의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다
최고의 교육은 세기의 지성들을 직접 집에 모셔다 놓고 1:1 수업을 하는 사교육이다
더군다나 전문 기술을 얻기 위한 법학이나 의학 따위의 교육을 굳이 대학에서 받을 필요도 없다
찰스 왕세자만 해도 영국 왕실 최초의 대학 졸업생이라니, 그들이 대학 교육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만 하다

일전에 신해철의 인터뷰 기사에 이런 얘기가 실렸었다
영국은 계급을 중시하기 때문에 자신의 계급을 사랑하고 굳이 다른 계급으로 올라 가려고 애쓰지 않는다
우리처럼 신분상승에 목매달고 내가 안 되면 자식이라도 이 계급에서 벗어나겠다고 발버둥 치지 않기 때문에 경쟁도 적고, 자기가 속한 계급의 독특한 문화가 형성된다고 했다
모든 문화와 제도에는 장단점이 함께 존재할 것이다
신분 상승을 위해 발버둥 치는 우리 같은 사회는 경쟁이 치열하긴 하지만, 대신 본인이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높은 곳으로 올라 갈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돈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반면 영국 같은 계급 사회는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절대 귀족으로 우아하게 대접받을 수는 없다
이것을 천박하지 않은, 보수적인 영국 사회의 좋은 점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겠으나, 나같은 서민들 입장에서 보면 죽는 날까지 자신이 처한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운명의 굴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선진국에 대한 동경 때문에 일단 영국적인 것은 좋은 것으로 취급하는 우리의 편견을 벗어 던지고 보면, 이 나라는 사회가 안정적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람을 맥빠지게 하는 절망감이 있는 것 같다

정통 영국식 영어라든가,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에 덧씌워진 막연한 동경, 군주제와 귀족 계급에 대한 환상 등 겉보기에 그럴듯한 이미지가 꽤 많다
이런 편견에 얽매지이지 않고 가능하면 객관적으로 글을 쓰려고 애쓴 저자의 노력을 높이 산다
에든버러에서 학교를 다니는 두 아이들의 왕따 문제도, 단순히 외국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방인에 대해 특별히 더 배타적인 모든 나라 시골의 보편성임을 간파한 저자의 분석력도 대단하다
런던만 해도 인종의 전시장 같아 한국인 한 둘이 끼어 든다고 특별히 이상해 보일 게 없지만, 에든버러 마을에 유색인종이라고는 자신들을 포함해 딱 셋 뿐이었다고 하니, 자식들이 겪어야 할 심리적 압박감도 컸을 듯 하다

미국도 그렇지만 영국 역시 변호사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집을 사고 팔 때조차 변호사가 대리한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임대할 때도 회사에 의뢰해 집의 구석구석에 대해 목록을 작성하고 나갈 때 일일히 확인한다고 한다
법원에서 변론하는 변호사는 법정 변호사, 부동산 매매 등의 계약 때 대리하는 변호사를 서면 변호사라고 한다
변호사를 이렇게 분류할 정도니, 영국인들의 삶에 변호사들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짐작이 간다
법 보다는 말이나 주먹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우리네 관습에 비춰 보면, 집을 사고 파는 일상적인 일에서도 변호사를 필요로 하는 영국인들의 모습은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인정머리가 없고 일처리가 경직될 염려는 있으나, 직접 당사자들끼리 목소리 높일 일 없이 대리인을 통해 법적으로 해결하면 되니까 오히려 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대신 우리나라 같으면 안 들어도 될 수임료를 꼬박꼬박 지불해야 하지만 말이다

이 책이 2002년도에 출판된 것이니, 2탄이 나와도 좋을 것 같다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 김영희의 독일 이야기도 지겹도록 반복했으니, 이 정도 수준의 글이라면 두 번째 책 정도는 내도 괜찮을 것 같다
다음 번에는 출판사에서 홍보를 좀 열심히 해서 책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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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5-03-07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드콤플렉스 만큼 계급에 대해서도 알레르기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노동자 계급이란 용어에 많은 사람들이 어색해합니다. 마치 빨갱이?의 아류인 듯, 뇌세당한 듯 저어하는 듯합니다. 어차피 품팔고, 무진장 일하고 있는 현상황을 노예보다 나을 것이 없다. 그리스의 노예는 차라리 이렇게 많이 일하지 않았다라는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현실을 바로 보았으면 합니다. 일계급 특진이나, 로또 당첨 만큼 능력을 십분발휘하여 바늘구멍을 뚫을 수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점점 확율이 낮아지는 것도 현실인 듯합니다. 단순하고 깔끔하고 열심히 생활하는 사람들이 더 어렵게 살아야 하는 것은, 대물림하여야 한다는 것은 고통이지요. 어쩌면 고통이 심해 피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똑바로 쳐다볼 수록, 제정신에서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기에 자꾸 멀리보고 잊어버리려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졸부근성과 천민성을 가지고 있는 자산계급은 공익을 조금이라도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외국부자들 문화를 조금이라도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그저 돈밖에 모르는 장사치로 전락한 느낌이 듭니다. 기부나 독특한 문화가 아니더라도 식민지-전쟁-압축근대화를 겪어서인지 자기밖에 모르는 것 같아요.(학문적 연구 나름대로 의미있는 저변을 넓히기 위해서 공익을 위해 할 일들이 무진장 많을 것 같은데.)

시대상황에 따라 현실은 어쩔 수 없겠지요. 몇년이 될지 몇십년이 될지 몇백년이 될지 어찌 알겠습니까? 계급이 어떻든, 보수적이든 개혁적이든 현실의 처지를 인정하고 그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각, 다문화적인 관점에서 내 것보다 남의 것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marine 2005-03-07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문화적인 관점이야 말로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한국인들에게 꼭 필요한 말 같습니다 전 노동자 계급이라는 말에 별다른 거부감을 갖지 않는데, 그것을 듣는 분들이 예민한 반응을 보이더군요
 
적대적 공범자들
임지현 지음 / 소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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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신선했다
그런데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는 도통 짐작이 안 갔다
책을 읽어 보니, 참으로 기가 막힌 제목이 아닐 수 없다
부시와 빈 라덴이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하듯, 박정희와 김일성 역시 권력 유지를 위해 상대방의 지속을 원했고, 오늘날 한국의 민족주의와 일본의 민족주의도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느닷없이 등장하는 북한측의 도발을 이상하게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자신들이 원하는 좌익 성향의 진보 정권이 들어서려면 선거 기간 동안 조용히 있어야 할 북한이, 오히려 갑작스런 도발을 시도하므로써 안보라는 걸림돌을 만들어 우익 쪽에 유리하게 만드는 북한의 의도가 자못 궁금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북한 지배층과 남한 우익 세력의 적대적 공범 관계가 유지됐던 것이다
서로를 비난함으로써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상대는 반드시 있어야 할 존재다
실상 남북 모두 통일 자체를 원한다기 보다는 통일이라는 명분 속에서 개인을 희생시키면서 권력을 강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통일은 그저 수사에 불과하다는 저자의 말이 실감나게 다가온다

일본의 민족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이 일본에 대해 민족주의적인 적대감을 지속시키면, 일본 역시 그것에 대한 방어로써 자신들의 민족주의를 강화시킨다
일본 우익 세력의 교과서 파동도 실은 한국의 민족주의에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고구려사 역시 마찬가지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
과거 고구려 영토에 대한 역사적 주권을 주장하는 한국 민족주의에 대한 대응으로써 중국 역시 고구려사를 자신들의 변방 정권으로 포함시키려는 무리한 시도를 하고 있다
민족주의가 강화되면 될수록 힘의 논리가 지배할 것이므로 결국 가장 손해를 보는 쪽은 국력이 약한 우리가 될 것이다
그러면 또 국력을 강화시키자는 주장이 나올 것이고, 동북아의 적대적 긴장 관계는 영원히 해제되지 않을 것이며, 북한과도 일전을 벌이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저자는 세습적인 희생자 의식을 버리고, 희생자가 먼저 묶인 끈을 풀자고 권한다

민족주의가 제국주의의 힘을 닮고 싶은 모방의 하나라는 말에도 동의한다
국력이 약해서 당한 것이므로 힘을 키워 제국주의에 대항하자는 것이 민족주의의 요체가 아닌가?
우리를 강조하는 민족주의는 외국인 노동자와 장애인, 여성, 탈북자, 연변 교포 등을 타자화 시킨다
우리라는 테두리를 치면 그 바깥 쪽에 있는 사람들은 차별받게 된다
자유와 평등을 구현시켰다는 프랑스 대혁명이나 미국 독립 혁명도 비백인을 배제시켰다는 점에서 시민적 민족주의라는 굴레를 벗을 수 없다
저자는 21세기 포스트 민족주의를 향한 자세로써 시민의 주체로써 자신을 타자화 시키는 연습을 하라고 권한다
우리라는 테두리 안에 합법적으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도 다른 범주를 적용하면 타자화 되서 차별받을 수 있다
관동 대지진에 분노하기 전에 조선에서 벌어진 중국인 학살에 대해서도 분노할 수 있는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는 부분에서, 민족주의를 뛰어 넘어야 한다는 주장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나치즘과 파시즘의 등장을 보면서 대체 아무런 권력도 없던 저들이 어떻게 갑작스레 역사의 전면에 등장해 세계 대전을 일으켰는지 무척 궁금했었다
이 책은 대중독재라는 개념을 통해, 1차 대전 이후 패전국 국민으로 전락한 독일과 이탈리아인들이 그들을 열렬히 환호하고 정권을 쥐어 줬음을 명백하게 보이고 있다
전근대가 신체적 형벌 등을 매개로 대중을 지배했던 반면, 근대는 과학과 기술을 토대로 좀 더 교묘하게 권력을 행사한다
나치즘과 파시즘은 아래로부터의 지지를 획득했다고 한다
자본가와 결합하여 노동 계층을 억압할 것 같은데, 실은 일자리 창출이나 빵의 공급과 같은 사회적 뇌물 공여를 통해, 일상에서는 불만이 표출되지만, 전체적인 체제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형식을 이끌어 낸 것이다
특히 이러한 대중 독재는 후진국의 근대화라는 당면 과제 앞에서 힘을 발휘한다
일단 경제적 성장을 이루고 보자는 명분 아래 대중은 독재자를 찬양한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들은 자연스럽게 배제되고, 대중들은 권력에 의해 개인의 삶을 억압당하면서도 국익을 위해 헌신한다는 착각 속에 빠진다
박정희식 개발 독재가 갖는 명분도 전형적인 후진국의 근대화론에 입각한다
국익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킨다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소비는 문화로 정착되어 권력의 지배를 당연시 하고, 오히려 독재자를 찬양하게 된다

민족주의가 갖는 지배적 속성과, 국가주의와 결합하여 파시즘적 문화를 만들어 낸다는 저자의 주장에는 공감한다
그렇지만 이미 세계가 자본주의로 재편성 된 후 뒤늦게 뛰어든 후진국들은 과연 어떤 식으로 근대화를 이룩해야 할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박정희를 그리워 하는 우익들은, 짧은 시간 내의 산업화를 개발 독재의 정당성에 대한 근거로 들이댄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가 아니었다면 과연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가능했을까?
식민지와 분단이라는 현실 속에서, 후진국의 근대화를 단시간 내에 이루어야 했던 한국의 특수 상황에 대한 저자의 대안이 아쉽다
국가주의가 단시간의 성장을 가져 왔다는 평가에 대해서 지나치게 인색하지 않았냐는 아쉬움이 생긴다
물론 과거에 효용성이 있었다고 해서 오늘날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근대를 넘어 탈근대로 가자는 저자의 주장에는 공감하지만, 과거의 성장 동력에 대한 평가가 너무 인색한 것 같아 한쪽으로 치우쳤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고구려사를 변경사로 보자는 주장도 무척 신선하다
민족이나 국가라는 개념이 근대의 소산이라고 보면, 고대사를 오늘날의 관점으로 재단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한민족의 조상이 되는 예맥족이 세운 나라라고 해서 역사적 주권을 내세우는 우리나, 현재 중국의 영토 안에 있기 때문에 변방 정권으로 보겠다는 중국이나 고구려라는 나라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비판에 동의한다
결국 고구려사는 동북 아시아 공통의 역사로서 의논되야 한다는 것이다
국경의 개념으로 제한하지 말고 변경으로서 연구하자는 주장은, 고구려라는 나라의 본질을 중시한다는 측면에서 동의한다
서로 자신들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오늘날 중국과 한국의 힘의 대결은, 현재의 관점으로 고대사를 재단한다는 우를 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말처럼 쉬운 문제인지는 의문이다
일단 변경사라는 개념조차 생소한데 국가를 넘어선 연구가 가능할지 모르겠다
유럽 연합이 설립된 후 국가의 개념을 넘어서 각 지방의 역사를 연구하는 붐이 일었다는 일례는 우리에게 좋은 선례가 될 것 같다

전체적으로 어려운 얘기가 많았다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주장에는 쉽게 동의할 수 있으나 과연 그 대안은 무엇이냐, 또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단정지을 수가 없다
선명한 주장들과는 달리, 그것을 뒷받침 하는 근거들이 워낙 방대하고 학술적인 서술이 많아 읽는데 약간의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에 함몰되어 우리가 아닌 이들을 타자화 시키고 그들을 차별한다는 문제 제기만으로도 나에게 충분한 각성을 불러 일으켰다
더구나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고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나 연변 교포, 탈북자, 장애인 등, 국민의 범주에서 벗어난 객체들과 특별히 다를 게 없다는 새로운 자각도 생긴다
이를테면 나 자신은 당당한 국민의 한 사람이라 생각했으나, 실은 나 역시 차별의 논리로 재단당할 수 있음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흑인들을 무시하는 한국인이, 백인에게 차별당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 민족이라는 거대한 명분 속에 성적, 계급적 투쟁을 하찮시 한다는 저자의 비판에도 깊이 공감했다
가장 큰 문제로 나머지 문제들이 서열화 되어 하부 구조로 종속된다면, 자신들이 비판하는 제국주의와 다를 게 뭐가 있겠냐는, 민족주의에 대한 저자의 비판을 새겨 들을 필요가 있다
식민지 시대에 민족과 정신을 강조하는 식민지인 엘리트들이, 국가 권력을 빼앗긴 대신 문화 권력이라도 잡겠다는 심리가 숨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나는 아웃사이더인데, "나의 조국" 이 나와 무슨 상관있겠냐는 버지니아 울프의 탄식이 새삼 실감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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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5-03-05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임지현이 엮은 책만 두 권을 내리 읽었는데요
평가를 좀 보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국수적 민족주의를 벗어난 동아시아 연대를 꿈꾸는 진보적 소장학자들'의 외피를 쓰고, 일본 극우파의 논리와 연결되는 글을 쓰는 부류들이 좀 있는 것 같아서 말예요.

marine 2005-03-07 0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못하면 조선일보나 우익 세력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높은 편이죠 특히 일제 잔재 청산에 대해 일부 친일파만 처단하면 다냐는 식의 논리는 잘못 이용될 가능성도 높구요 그렇지만 그 사람의 진심은 그게 아니라고 믿어요 책에서 진정성이 보이더라구요 자기 논리를 너무 확대해서 전개하면 다소 엉뚱한 쪽으로 나갈 가능성도 있지만요 스스로도 그걸 경계해야 할 것 같아요

prongkiller 2005-04-01 1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개념조차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 주제에 소모적인 논쟁만 일삼고 있는 학계의 모습을 보면 하루하루 치가 떨립니다. 어떤 정치체제 혹은 사상이든 그 속성은 굉장히 다중적이기 때문에 극단적인 맹신은 굉장히 해롭다고 봅니다.
 
국민으로부터의 탈퇴 - 국민국가 진보 개인, 반양장
권혁범 지음 / 삼인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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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재밌게 읽은 책이다
민족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자는 주장을 처음 접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박홍규의 평전들을 읽으면서 막연하게 국가주의에서 벗어난 아나키즘을 접하기도 했는데, 제대로 된 책을 읽은 것은 처음이다
첫 페이지를 넘길 때만 해도 문장이 어렵고 지루했지만, 정리를 하며서 조금씩 진도를 나가다 보니 곧 책에 빠져 들게 됐다
반대 입장을 취하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민족주의를 처음 인식하게 된 나로서는 이 책이 상당히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내 안에서 민족주의를 거부하는 코드가 내제되어 있기 때문에 이론화 된 책을 만나 반가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늘 독재 정권의 파시즘도 못마땅했지만, 우리 안의 파시즘 역시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주화를 위해 자기 삶을 뒷전으로 미뤄 놓고 학생 운동에 헌신하는 바로 그 사람들의 조직이 실은 대단히 권위적이고 위계 질서로 이뤄진다는 모순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또 하나의 문화" 에서 펴낸 동인지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민중이라는 관념에 대해서는 그토록 많은 애정을 쏟고 안타까워 하면서도, 정작 자기 옆에 존재하는 아내의 힘든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문제 의식조차 갖지 않는 남편의 사상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다는 것이다
민중의 삶은 그토록 안타까우면서 자기 아내가 바깥일과 집안일의 이중고에 시달리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는 이 책을 통해 일상의 파시즘이 얼마나 개인을 강력하게 구속하는지, 또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얼마나 강력한 이데올로기인지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어느 정도 미국에 대해 환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요즘이야 워낙 반미가 유행이다 보니, 미국에 대해 새삼 기대할 것도 없어졌지만, 학생 시절에 미국이나 유럽에 관한 책을 읽으면 괜한 선망을 갖곤 했다
물질적인 풍요 보다는 그들의 성숙된 시민 사회의 모습이 늘 부러움을 일으켰다
이를테면 미국 대학은 연줄이 없어도, 이민자나 유색인종이어도 실력만 되면 얼마든지 교수로 채용해 준다거나, 프랑스는 파업을 하면 시민들이 연대하여 함께 문제를 풀어 나간다거나, 스웨덴이 여성의 50%가 공직을 차지할 때까지 여성 할당제를 실시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서구 사회는 나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우리나라가 서구 사회에서 이미 실천하고 있는 자유와 평등, 인권, 복지 등의 개념을 빨리 이룰 수 있도록 그들을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서구 사회에 대한 어두운 모습을 접하게 되면, 따라야 할 모범이 사라져 버리는 느낌이 들어 참으로 허탈하곤 했다
정말 인간 사는 세상은 다 그렇고 그런 것인가, 유토피아란 머릿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인가, 하는 회의가 들었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서구의 근대성이라는 것도 식민주의에 바탕한 부분이 많고 근대성이라는 개념 자체도 국가주의를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으므로, 반드시 따라야 할 모범은 될 수 없다
그러나 일정 부분은 분명히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실현시키고 있으므로 단순히 민족주의적인 코드로 그것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저자의 주장에 적극 동의한다
근대와 탈근대 등을 개념적으로 세밀하게 나누는 것은 관념 놀이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간단히 말하면 이런 것이다
이슬람 세계의 여성 인권 탄압은 문화 상대주의라는 개념을 넘어 선,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훼손시키므로 반드시 시정되야 할 부분이다
부브카 등으로 얼굴을 가리고 정상적인 사회 활동을 못하는 그녀들의 현실은, 단순히 자국 문화를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볼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슬람 여성들의 인권들을 말하면 서구 편향주의라는 시각으로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사람들이 있다
저자는 바로 이런 부분을 경계한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강력한 국가주의 코드를 세 가지 원인으로 분석한다
식민지 과정을 통해 시민 사회의 탄생을 겪지 못하고 근대 사회로 진입했기 때문에 나라의 힘을 길러야 다시는 지배받지 않을 거라는 위기 의식이 강하다
또 분단된 후 독재 정권들이 반공을 최우선시 했기 때문에 국가 안보를 핑계로 국가의 개인 지배를 당연시 해 왔다
마지막으로 집단주의와 혈연, 가문 등을 중시해 온 유교 문화의 특성이 국가주의를 개개인에게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게 했다
국가 중심의 발전을 통해 산업의 근대화는 이룩했으나, 문화의 근대화는 실천하지 못한 셈이다
근대화가 서구 중심의 시각에서 보는 한계가 있다고 하나, 자유와 평등, 인권, 복지 등의 인류 보편적 가치 추구를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비하시켜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사실 애국심, 국력을 기르자는 표어, 올림픽이나 월드컵에 대한 과도한 열정 등 우리나라의 국가주의는 일상에서 흔히 발견된다
이러한 국가주의는 민족주의와 맞물려 절대선의 경지에 이른다
즉 비판하는 것만으로도 죽일 놈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집단주의 문화가 아주 강력한 사회다
장유유서와 충효의 강조를 통해 위계질서와 권위의식을 중시한다
튀는 사람을 싫어하고 다양성의 조직화를 통한 하나보다는, 동일인의 복제를 통한 하나를 추구한다
신문에서는 걸핏하면 국론분열을 걱정하고 국론통일을 외치지만, 7천만이 모인 사회에서 국론이 하나로 통일된다는 것 자체가 환상이고, 전체주의적 발상인지도 모른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차이를 가진 사람을 배척한다
여성이나 장애인, 제 3세계 노동자, 동성연애자, 동거 커플 등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을 흔히 접할 수 있다
사회가 인정하는 기준에서 벗어나면 폭력에 가까운 시선을 견뎌야 한다
우리의 집단주의 정서는 국가주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반미나 촛불시위, 월드컵 과열 현상 등에 대한 분석을 읽으면서 언론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봤다
지하철 노조 등이 파업을 할 때마다 신문이나 뉴스가 왜 저렇게 선정적인 보도만 하는지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왜 파업이 일어났는지 그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대신, 시민의 발을 볼모로 판치는 집단 이기주의라든지, 출근길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시민들의 모습만 내보내는 식으로 정부 기관의 대변인 같은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월드컵 역시 마찬가지였다
월드컵 기간 내내 축구 말고는 볼 게 없을 정도로 온 언론이 오직 월드컵에만 초점을 맞췄다
왜 축구 잘 하는 게 국력과 연관되는가?
내가 제일 의문시 하는 점이었다
함께 즐기는 축제는 좋지만, 온 국민이 하나되어 마치 국운이라도 걸린 듯 신문과 TV에서 떠들어 대는 광경은, 축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은 국민이 아닌 듯한 소외감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일본의 국가주의는 제국주의 등으로 폄훼하면서 정작 우리의 국가주의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 의식도 갖지 않는 이중적인 태도를 왜 언론은 비판하지 않는가?
언론이란 여론을 종합하고 사회를 선도하는 매체가 아니라, 상업성과 권력을 쫓는 또 하나의 집단일 뿐이라는 회의가 든다
아무 것도 아닌 일이 한 번 뉴스나 신문에 오르기만 하면 엄청난 일로 확대되서 엉뚱한 아우라를 뒤집어 쓰게 된다
이은주 자살 관련 보도를 보면서, 돈이 되면 더 이상 쥐어 짤 게 없을 때까지 기사거리를 만들어 내는, 그래서 결국은 그 사건이 아무 가치도 없는 게 되버리면 그 때서야 버리는 언론의 상업적이고 무책임한 태도에 고개를 흔들었다
신문과 TV를 신봉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어리석은 짓인지도 모른다

저자의 설득력 있는 비판을 읽으면서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것은 과연 국가의 해체가 가능할 것이냐는 문제다
박정희식 독재는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빠른 산업화를 이룩했고 결과적으로 오늘날 민주주의와 인권 등에 관해 논할 수 있는 경제적 토대를 만들었다
국가주의를 벗어나면 약육강식으로 표현되는 국제 사회에서 개인은 온전하게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
특히 우리나라 같은 약소 민족에게 국가는 최소한의 방어벽으로 작동하는데, 국가를 넘어선다면 어떤 대응책이 있을 것인가?
과연 국가와 민족의 경계선을 넘어선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는 가능할 것인가?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을 읽어 보면 세계화란 지식인들의 성급한 환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인류 보편의 가치를 실현한다는 발상은 아직은 유토피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헌팅턴 역시 촘스키 같은 자국의 지식인들이 미국이라는 거대한 집단의 이익을 넘어서는 것에 대해 많은 우려를 표명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세계화, 넒은 의미의 세계 평화라는 것이 과연 실현 가능하냐는 얘기다
미국 패권주의를 비판하지만 정작 우리 역시 국가의 힘을 길러 국제 사회에서 발언권을 높이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힘이 있다면 미국처럼 타 국가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대한민국은 분단 국가라는 한계도 안고 있다
국가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은 무엇인가?
저자는 여기에 대한 해답까지 주지는 못한다
사실 이 문제는 보다 많은 담론을 통해 찾아야 할 근본적이고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저자의 문제 의식 제기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이라고 본다
또한 이 문제는 한 사람의 책 한 권으로는 주장될 수 없는 거대한 차원이라고 생각한다

비판에 머문 한계점도 분명히 있지만, 우리가 절대시 하는 국가나 민족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다는 점만 가지고도 이 책의 가치를 높이 산다
절대악이나 절대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비판받지 않을 이데올로기나 주장 따위는 애초부터 없는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좀 더 자유롭게 비판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해 주는 열린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다양성의 인정이 국론분열 등으로 매도되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집단이나 국가 등에 개인이 함몰되는 것을 경계한다
더 나아가 양심이나 성적 취향, 종교관 등의 문제로 국가나 집단으로부터 억압되는 일이 사라지길 바란다
사회란 결국 개인이 모여 굴러가는 것이다
공동체의 문제에 대해 나는 그저 힘없는 개인에 불과할 뿐 아무 잘못이 없다는 식의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
우리 안의 파시즘, 일상의 파시즘에 대해 눈감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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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5-03-05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이 책 보관함에 담아갑니다. ^^

클리오 2005-03-05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삼인에서 계속 이런 문제의식의 책을 내는 것 같네요...)

marine 2005-03-05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 제 서재에서 처음 인사드립니다 재밌게 읽으실 거예요 ^^
클리오님, 삼인 출판사가 이런 책을 많이 내나 보네요 다른 책도 읽고 싶어졌어요 ^^

우상 2005-07-13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혁범 선생님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여기서 뵙는군요..얼른 사서 읽어봐야 겠네요.선생님에게 배우던 시절이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