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꿈꾸는 영국 우리가 사는 영국
김인성 지음 / 평민사 / 200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좋은 글, 혹은 재밌는 책을 읽었을 때의 기쁨은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멋진 사람과 데이트를 했을 때의 기분과 비슷하다
김인성은 참 글을 잘 쓴다
더구나 재밌기까지 하다
내가 보기에 이 여자는 일상에서도 유머 감각이 풍부할 것 같다
점잖은 척 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수준있는 유머를 글로 풀어 쓰는 저자의 문장 실력이 참으로 부럽다
지난 번 영국 문학 기행도 아주 재밌게 읽었는데, 이번 수필은 더욱 재밌었다
일상 생활을 담은 가벼운 수필집이라 더 신나고 재밌었을 것이다
이런 책들은 많이많이 팔려야 하는데, 홍보가 시원찮은 것 같아 속상하다

무엇보다 저자의 깊이 있는 통찰과 균형감각이 마음에 든다
서문에서 지적한 바대로, 외국 생활을 하다 보면, 특히 선진국에서 살면 무조건 좋은 쪽으로 피상적인 관찰을 하기 쉽다
잠깐 머물다 간 외국인이 낯선 사회의 깊은 속내까지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이미지에다 경험들을 끼워 맞춰 해석하기 쉽다
자연스레 후진국에 가면 부정적인 생각이 강해지고, 선진국에 가면 별 거 아닌 것도 다 좋게 보이기 마련이다
그만큼 그 사회가 갖는 진짜 속성을 파악하기가 힘들다는 얘기다
저자는 이런 점을 경계하면서 조심스런 글쓰기를 시도한다
나는 저자의 이런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태도가 참 좋다
미국 체험기를 읽어 보면 일방적인 찬사이기 쉬운데, 적어도 저자는 그 점에서는 자유로울 듯 하다

영국은 대단히 보수적이고 계급 의식이 확실한 나라라고 한다
민주주의 시대에 왜 아직도 군주제를 유지하는지 참 신기할 때가 많았는데, 귀족층이 기득권 세력이기 때문에, 또 국민들 역시 그들의 기득권을 인정해 주기 때문에 절대 없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식민지를 겪으면서 양반 계급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고, 미국 역시 신세계를 건설하면서 기존의 세습 귀족들이 사라졌지만, 조금씩 바뀌어 온 영국은 간단히 말해 귀족 세력이 몰락할 만한 지각 변동이 없었던 셈이다
그러므로 이 나라의 계급 의식은 생각보다 아주 뿌리깊다
귀족이란 노동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이다
전문직 역시 고급 노동자일 뿐이다
유치원 보모 주제에 왕세자와 결혼했다고 시기와 질투를 한 몸에 받은 다이애나도 유명한 귀족 집안 출신으로, 사립 여학교 졸업 후 스위스에서 교양 수업을 받았다고 한다
즉 대학을 갈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다
케임브리지를 졸업한 찰스 왕세자와, 고졸인 다이애나가 학벌 차이로 말이 안 통했을 거라는 분석은, 우리나라 사람만이 할 수 있을 거라는 저자의 뼈있는 지적이 이어진다
귀족들은 개인차를 무시한 채 한꺼번에 모아 놓은 교실에서 검증되지 않은 선생들의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다
최고의 교육은 세기의 지성들을 직접 집에 모셔다 놓고 1:1 수업을 하는 사교육이다
더군다나 전문 기술을 얻기 위한 법학이나 의학 따위의 교육을 굳이 대학에서 받을 필요도 없다
찰스 왕세자만 해도 영국 왕실 최초의 대학 졸업생이라니, 그들이 대학 교육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만 하다

일전에 신해철의 인터뷰 기사에 이런 얘기가 실렸었다
영국은 계급을 중시하기 때문에 자신의 계급을 사랑하고 굳이 다른 계급으로 올라 가려고 애쓰지 않는다
우리처럼 신분상승에 목매달고 내가 안 되면 자식이라도 이 계급에서 벗어나겠다고 발버둥 치지 않기 때문에 경쟁도 적고, 자기가 속한 계급의 독특한 문화가 형성된다고 했다
모든 문화와 제도에는 장단점이 함께 존재할 것이다
신분 상승을 위해 발버둥 치는 우리 같은 사회는 경쟁이 치열하긴 하지만, 대신 본인이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높은 곳으로 올라 갈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돈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반면 영국 같은 계급 사회는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절대 귀족으로 우아하게 대접받을 수는 없다
이것을 천박하지 않은, 보수적인 영국 사회의 좋은 점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겠으나, 나같은 서민들 입장에서 보면 죽는 날까지 자신이 처한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운명의 굴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선진국에 대한 동경 때문에 일단 영국적인 것은 좋은 것으로 취급하는 우리의 편견을 벗어 던지고 보면, 이 나라는 사회가 안정적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람을 맥빠지게 하는 절망감이 있는 것 같다

정통 영국식 영어라든가,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에 덧씌워진 막연한 동경, 군주제와 귀족 계급에 대한 환상 등 겉보기에 그럴듯한 이미지가 꽤 많다
이런 편견에 얽매지이지 않고 가능하면 객관적으로 글을 쓰려고 애쓴 저자의 노력을 높이 산다
에든버러에서 학교를 다니는 두 아이들의 왕따 문제도, 단순히 외국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방인에 대해 특별히 더 배타적인 모든 나라 시골의 보편성임을 간파한 저자의 분석력도 대단하다
런던만 해도 인종의 전시장 같아 한국인 한 둘이 끼어 든다고 특별히 이상해 보일 게 없지만, 에든버러 마을에 유색인종이라고는 자신들을 포함해 딱 셋 뿐이었다고 하니, 자식들이 겪어야 할 심리적 압박감도 컸을 듯 하다

미국도 그렇지만 영국 역시 변호사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집을 사고 팔 때조차 변호사가 대리한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임대할 때도 회사에 의뢰해 집의 구석구석에 대해 목록을 작성하고 나갈 때 일일히 확인한다고 한다
법원에서 변론하는 변호사는 법정 변호사, 부동산 매매 등의 계약 때 대리하는 변호사를 서면 변호사라고 한다
변호사를 이렇게 분류할 정도니, 영국인들의 삶에 변호사들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짐작이 간다
법 보다는 말이나 주먹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우리네 관습에 비춰 보면, 집을 사고 파는 일상적인 일에서도 변호사를 필요로 하는 영국인들의 모습은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인정머리가 없고 일처리가 경직될 염려는 있으나, 직접 당사자들끼리 목소리 높일 일 없이 대리인을 통해 법적으로 해결하면 되니까 오히려 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대신 우리나라 같으면 안 들어도 될 수임료를 꼬박꼬박 지불해야 하지만 말이다

이 책이 2002년도에 출판된 것이니, 2탄이 나와도 좋을 것 같다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 김영희의 독일 이야기도 지겹도록 반복했으니, 이 정도 수준의 글이라면 두 번째 책 정도는 내도 괜찮을 것 같다
다음 번에는 출판사에서 홍보를 좀 열심히 해서 책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울 2005-03-07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드콤플렉스 만큼 계급에 대해서도 알레르기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노동자 계급이란 용어에 많은 사람들이 어색해합니다. 마치 빨갱이?의 아류인 듯, 뇌세당한 듯 저어하는 듯합니다. 어차피 품팔고, 무진장 일하고 있는 현상황을 노예보다 나을 것이 없다. 그리스의 노예는 차라리 이렇게 많이 일하지 않았다라는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현실을 바로 보았으면 합니다. 일계급 특진이나, 로또 당첨 만큼 능력을 십분발휘하여 바늘구멍을 뚫을 수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점점 확율이 낮아지는 것도 현실인 듯합니다. 단순하고 깔끔하고 열심히 생활하는 사람들이 더 어렵게 살아야 하는 것은, 대물림하여야 한다는 것은 고통이지요. 어쩌면 고통이 심해 피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똑바로 쳐다볼 수록, 제정신에서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기에 자꾸 멀리보고 잊어버리려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졸부근성과 천민성을 가지고 있는 자산계급은 공익을 조금이라도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외국부자들 문화를 조금이라도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그저 돈밖에 모르는 장사치로 전락한 느낌이 듭니다. 기부나 독특한 문화가 아니더라도 식민지-전쟁-압축근대화를 겪어서인지 자기밖에 모르는 것 같아요.(학문적 연구 나름대로 의미있는 저변을 넓히기 위해서 공익을 위해 할 일들이 무진장 많을 것 같은데.)

시대상황에 따라 현실은 어쩔 수 없겠지요. 몇년이 될지 몇십년이 될지 몇백년이 될지 어찌 알겠습니까? 계급이 어떻든, 보수적이든 개혁적이든 현실의 처지를 인정하고 그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각, 다문화적인 관점에서 내 것보다 남의 것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marine 2005-03-07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문화적인 관점이야 말로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한국인들에게 꼭 필요한 말 같습니다 전 노동자 계급이라는 말에 별다른 거부감을 갖지 않는데, 그것을 듣는 분들이 예민한 반응을 보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