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무 이름 사전
박상진 지음 / 눌와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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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 펀딩에 참여, 기다린 보람이 있네요.
어제 받자마자 그동안 이름에 담긴 뜻이 궁금했던 나무들 위주로 펼쳐 읽으며 행복했습니다.
책 표지도 마음에 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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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블 이야기
헬렌 맥도널드 지음, 공경희 옮김 / 판미동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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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누구나 겪게되는 소중한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자연을 통해 치유 극복한 이야기가 감동스럽고, 의미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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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Calendar 송기엽의 야생화 2014 하루하나 미니갤러리
송기엽 사진, 새순기획 문화사업부 기획 / 새순기획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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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것과 야생화에 관심을 둔 누군가를 위해 두 권 주문했다. 우리 야생화는 천여 종이 넘는다. 365일에 한가지씩 실으면 다 싣지 못하겠다 싶었다. 그런데 복수초만 5일 동안, 눈을 뒤집어쓴 모습으로만 담는 등 생각보다 한정적이다. 돈이 좀 아깝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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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2024-03-10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에게 파셔요~
 
안중근 불멸의 기억
이수광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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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허기 때문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두 대원을 남겨놓고 산을 내려갔다. 굶어 죽으나 일본군에게 죽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배를 움켜쥐고 몇 시간을 헤맨 끝에 간신히 마을을 찾았다. 집이 일고여덟 채밖에 되지 않는 화전 마을이다. 나는 삽짝이 열린 집으로 들어가 주인을 불렀다. 그러자 문이 덜컹 열리고 몽둥이를 든 우락부락한 사내가 뛰어나왔다. "너는 러시아에 입적한 자가 분명하다. 너희 때문에 우리가 다 죽게 생겼어."

집주인이 몽둥이로 나를 때리고 사람들을 불러 묶으려고 했다. 러시아에 입적했다는 것은 러시아 국적을 취득한 자를 말한다. 나는 그들과 싸울 수가 없어서 황급히 몸을 피했는데 골목에 일본군이 있었다. 가슴이 철렁하여 재빨리 피하려는데 일본군이 소리를 지르며 나를 향해 총을 쏘았다. 다행히 탄환이 뺨을 스쳤으나 맞지는 않아서 산속으로 정신없이 뛰었다. '이제는 동포들도 우리를 배신하는구나.' - <안중근 불멸의 기억> 중에서
 

<안중근 불멸의 기억>(추수밭 펴냄)의 한 장면이다. 무장투쟁에 패배, 동지들과 함께 살길을 모색하던 안중근은 이렇게 죽음의 고비를 넘긴다. 이듬해 10월, 안중근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처단한다. 이야기를 조금 거슬러 올라가보면.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일본의 협박과 강제로 을사늑약이 체결되는 등 국운이 풍전등화에 이르자 안중근은 민족의 살길을 모색하고자 상해로 떠난다. 그 무엇보다 나라를 구할 구국영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그는 귀국 후 청계동에서 진남포로 이사(1906년), 삼흥 학교를 설립하고 돈의 학교를 인수하여 구국영재 양성에 나선다.

한편으로 안창호와 이준 열사 등의 애국지사들을 초빙하여 강연회를 열어 애국심을 고취하는 계몽운동을 펼친다.

그런 중에 이준 열사가 헤이그에서 분사하고 그 때문에 고종황제가 강제로 퇴위 당한다.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토 히로부미는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체결하고 대한제국의 군대까지 해산해버리고 만다. 이에 분노한 안중근은 적극적인 항일투쟁을 결심한다. 그리하여 만주를 누비며 의병을 모아 최재형 등과 함께 무장투쟁(항일운동)을 시작한다.

"나는 얀치헤의 의병과 홍범도 부대와 연합하여 국내 진격작전을 전개하면 국권회복을 앞당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에 일본군은 대규모 병력을 두만강 일대에 배치하는 등 수비를 강화한다. 안중근은 두만강 일대를 넘나들며 일본 수비대를 공격, 국내 진격작전을 벌이지만 그러나 결국 참담하게 패배하고 만다. 독립군들의 의기는 충천했지만, 소지한 총이 제각기 다르다거나 전투력이 떨어지는 등 여러 조건에서 일본보다 훨씬 불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립군(의병)들을 더욱 곤경으로 빠뜨린 것은 일본이 독립군들을 잡고자 민간에 심어둔 밀정과 이런저런 이유로 일본에 협력하는 사람들인 '일진회'. 이는 일본인으로 그치지 않았다. 독립군에게 밥 한 덩이라도 베풀면 마을 전체 일본군의 보복을 당하기도 했기 때문에 밥을 주고 안심시킨 다음 일본군에게 신고하여 사지로 몰아넣는 동포도 많았다.

또한 러일 전쟁 후까지 계속된 러시아와 일본 간의 민감한 문제들로 러시아에 거주하던 고려인(한인)들이 살해당하거나 강제 이주되는 등, 무참하게 희생되기도 하는데 이 역시 독립군들을 힘들게 한다. 그리하여 독립군들은 졸지에 '러시아에 입적한 자'가 되어 몰매를 맞거나 죽임을 당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때의 참담함을 안중근은 또한 이렇게 회상한다.

"…그 동포의 집에서 며칠 동안 쉬며 비로소 옷을 벗자 거의 다 썩어서 몸을 가릴 수가 없을 뿐 아니라 이까지 득실거렸다. 나는 6월 23일(1908년) 이후 12일 동안 회령군을 벗어나지 못하고 폭우 속에서 길을 잃고 지냈다. 하룻밤도 집에서 자지 못하고 산속에서 뒹굴며 겪은 고초는 붓 한 자루로 기록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 노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남은 안중근, 동지들의 원혼 때문에 참담하고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며 방황하던 그는 1909년 2월 7일, 김기룡 등 11인과 함께 "3년 안에 어떤 일이 있어도 민족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와 매국노 이완용을 처단하리라. 거사가 성공하면 침체에 빠진 독립운동이 활력을 찾을 수 있으리라"며 손가락을 끊어 혈서로써 '대한독립'을 결의한다. 그 유명한 '단지동맹'이다.

그리고 몇 달 후인 10월 26일 하얼빈역. 우리 민족의 원흉이자 동아시아 평화를 짓밟은 이토 히로부미는 안중근의 저격으로 사살, 처단된다. 당시 안중근 의사의 거사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세기의 사건으로 일본의 침략과 만행이 전 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된다. 우리의 항일투쟁에 새로운 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러시아와 중국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범행의 동기는 무엇인가?"
"첫 번째 대한제국의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두 번째 대한제국 황제를 강제로 폐위시킨 죄, 세 번째 을사5조약과 정미 7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 네 번째 무고한 조선인을 학살한 죄, 다섯 번째 정권을 강제로 빼앗은 죄,…여덟 번째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한 죄,…열다섯 번째…" - 책속에서

안중근 의사는 일본의 법정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의 일방적이고도 강압적인 분위기의 재판을 받으면서도 시종일관 의연한 자세로 '이토 히로부미를 반드시 처단해야 하는 15항목'과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이유)를 조목조목 설파함으로써 일본과 세계인들을 놀라게 한다. 당시 세계 언론은 이 세기의 재판-사형까지 6차례-을 연일 톱뉴스로 다뤘다고 한다. 

20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의거 100주년을 기념하며! 

돌아오는 10월 26일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안중근 불멸의 기억>은 이를 기념하는 책이다.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팩션형 역사서를 정착시켰다는 평을 듣는 이수광씨, 책은 두 갈래로 영웅 안중근과 인간 안중근을 우리와 만나게 한다.  

한 갈래는 저자가 안중근과 당시 러시아에서 독립군의 대부로 알려졌던 최재형의 흔적을 찾아 떠난 10일간의 여정이다. 저자는 수많은 독립군들이 항일투쟁을 하던 만주와 연해주 일대를 기행하며 그들의 흔적을 찾아 들려준다. 그 땅은 또한 100여 년 전 일제의 탄압과 굶주림에 지쳐 모여든 수많은 한인들이 살던 곳이다. 그들의 흔적도 들려준다. 

저자의 마지막 여정은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4분 안중근 의사가 교수형을 당한 여순감옥서. 교수형이 집행되는 순간 시신은 교수대 아래에 있는 침관으로 굴러 떨어지게 되어 있는데 이 침관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관과 많이 다르단다. 침관의 길이는 겨우 1m. 그러니 시신은 구겨져서 들어가야 한다. 일본은 이처럼 사자에 대해서도 인권을 침해했다. 

안중근도 마찬가지, 그 역시 침관에 구겨진 채로 박혀 삶의 마지막을 끝냈으리라. 책에는 이 침관 사진이 실려 있다. 안중근 의사가 이런 침관에 구겨진 채로 묻혔다는 사실을 안 그 순간 책을 더 이상 읽을 수 없었다. 어떤 표현조차 할 수 없을 만큼의 먹먹해지는, 치오르는 분노, 이 비장한 슬픔들을 어찌 설명할까?

<안중근 불멸의 기억> 나머지 한 갈래는 안중근이 회상하는 자신의 서른두 살 삶이다. 사형을 하루 앞둔, 자신의 삶 그 마지막 밤인 1910년 3월 25일, 안중근 의사는 잠을 이루지 못하며 자신의 생애를 반추하며 기억의 파편들을 끌어 모은다.

3천석 지기 부유한 집안 장손으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란 유년시절, 일본군의 총과 화약을 구해 총 쏘기에 몰두한 나머지 당시 어지간한 호랑이 몰이꾼들보다 총을 잘 쐈던 청소년기, 결혼과 성령에 충만한 전교활동, 거사를 준비하고 실행하기까지 등 안중근의 삶이 순서적으로 그려지는데 안중근의 회상 형식이라 이야기는 훨씬 진실하게 와 닿는다.

옥중 안중근은 아내와 자식을 그리워한다. 또한 동지들이 처참하게 죽어간 현장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아내의 품속을 그리워한다. 그는 또한 하얼빈 거사를 앞두고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리하여 거사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아내의 품속에서 편안하게 살아갈까 흔들리기도 한다. 이제까지 알고 있던 민족의 영웅 안중근을 달리 생각하게 하는 부분들이다.

그리하여 '어? 정말 안중근이 이랬을까?' 처음에는 이런 반감도 있었다. 그런데 책을 모두 읽고 며칠 동안 자꾸 생각나는 것은 정작 안중근 의사의 이런 인간적인 모습이다. 안중근 뿐이랴. 우리에게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는 또 다른 사람들도, 군복도 무기도 없이 두만강과 백두산 일대에서 이름없는 들풀로 피고지던 수많은 의병들 또한 그랬으리라.

저자는 안중근 유적지 답사를 통해 영웅 안중근을 우리에게 만나게 하는 한편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집필했다는 <안응칠 자서전>을 바탕으로 안중근의 내면 세계를 세심하게 묘사한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영웅으로 부각된 인간 안중근을 만나게 한다. 안중근에게 감화를 받은 일본인 간수 '치바 도시치'의 이야기 또한 드라마틱하다.

저자는 이 책을 쓰고자 3년간 현지를 답사했단다. 때문일까? 저자가 안중근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감동적인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면서 누군가의 나래이션을 듣는 듯,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다니는 것처럼 생생하게 와 닿는다. 하얼빈 의거를 하기까지의 과정과 당시 러시아의 정치 상황까지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단지동맹비와 단지동맹터, 안중근 의사의 사진이 걸린 안중근 의사가 머물던 집, 여순감옥서와 침관, 안중근의 가족과 면회를 동생 공근·정근이 면회를 하고 있는 장면, 이토 히로부미는 파렴치한 독재자요 안중근을 월계관을 쓴 영웅이라고 보도한 영국 <더 그래픽> 보도 기록 등, 책에는 당시의 기록 사진과 저자가 답사 중에 찍은 사진 또한 풍성하다.
 
'우리는 안중근의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10월 26일이 안중근 의사가 자신의 삶을 던져 민족의 원흉을 제거한 날이라는 걸 몇이나 알까? 우리들은 영웅들을 역사 속에 박제화 시켜놓고 나라와 사람을 구하는 일은 그들이나 하는 거창한 것이라고 여기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책을 읽으며 분분하던 생각들이다. 작가는 압록강 철교 위에서 탄식한다.

"목숨을 버리고, 가족을 버리고 치열하게 독립 투쟁을 한 선열들에게 부끄러워해야 한다. 역사를 반성할 줄 모르는 민족은 또다시 역사의 횡포를 만날 것이고, 역사를 통찰할 줄 모르는 민족은 미래로 전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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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견문록 - 에디오피아에서 브라질까지 어느 커피광이 5대륙을 누비며 쓴 커피의 문화사
스튜어트 리 앨런 지음, 이창신 옮김 / 이마고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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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정액을 말린다, 커피를 금지 시켜라!

"영국 신사들은 지난 800년 동안 혈기왕성한 사나이로 수많은 아들딸의 아버지 노릇을 해오면서 기독교 국가 가운데 가장 능력 있는 남성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놀라운 성적 위업이 종말을 고하려 한다. 커피라는 야만적 음료가 정액을 말려버리는 바람에 남성들은 몸에 물 한 방울 남지 않은 채로 콧대만 높아졌고 단단한 것이라고는 관절밖에 남지 않았다... 60세 미만의 모든 사람에게 커피를 금지하고..."- 책 속에서 

아내에게 커피콩을 충분히 대주지 못하면 이혼을 당해야 했던 나라 터키 오스만 제국. 그리고 1674년 런던의 한 여성단체는 커피를 금지 시키는 것만이 자신들의 성생활을 보호 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며 런던 시장에게 이런 탄원을 했다.

이 단체가 제출한 9장에 이르는 탄원서는, 당시 현실을 반영해 대단히 설득력 있는 이유로 커피를 금지 시켜야만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다. 영국 여성들이 성에 대해 다른 나라보다 지나치게 민감했던 것이 아니라 당시 얼마나 사람들이 커피에 중독됐는지를 알려 주는 일화다.

한때 유럽 역사는 커피가 있는 카페에서 좌우됐다. 카페(커피)는 예술가의 사랑과 정치, 그리고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진다. 커피가 우리에게 치명적인 중독을 일으키는 것만큼 커피를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것들은 자극적이며 혹은 죽음(?)까지 불사하기도 한다.

커피와 인류의 뒤엉킴의 역사들

커피의 뒤에 바짝 붙어 그 뒤를 좀 따라가 볼까.

1500~3000년 전, 오로모족(에디오피아 왈로족)은 경쟁 부족인 봉가족에게 포로로 잡히고 말았다. 라이벌 봉가족의 포로가 된 오로모족은 고지대인 하레르 노예시장에 팔려나가게 되는데 오로모족이 가져온 동그랗고 거친 로부스타 원두는 고지대에 적응해 길쭉하고 향이 풍부한 아라비카 원두가 됐다.

오로모족은 주술이 뛰어나 주변의 부족들이 두려워했는데 최근까지도 주술사의 무덤에는 커피나무를 심는 풍습이 남아 있다. 커피는 처음부터 신과 닿아 있는 인간의 내면인 주술에 이용되었던 것이다.

하레르의 원두는 다시 홍해를 거쳐 알모카에 이른다. 이곳은 1200년경 이슬람 수행자 알샤드힐리가 처음으로 커피를 끓였다고 추정되는 곳이다. 그리고 커피 무역으로 번성하면서 궁전이 즐비했고 왕자들은 황금 방석에 앉아 수많은 노예를 부렸다. 그리고 샤드힐리 추종자들은 아라비아 반도를 돌면서 커피향을 풍기며 종교의식을 거행했다. 터키가 예멘을 정복한 1400년대에 이르러 모카에서 나온 커피가 이슬람 세계에 널리 퍼졌다. 이것이 바로 모카 커피의 기원이다.

커피가 좀 더 넓은 세계로 전파되는 계기는, 터키의 오스만 제국 술탄 가운데 가장 악독했던 무라드 4세(1612~1640)와 관련이 있다. 이 악독한 술탄은 사복으로 시내를 돌다가 카페에서 물담배와 함께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고는 이들이 정부를 비난한다고 여기고 커피와 물담배를 금지 시켰다.

물담배와 커피를 단 한 모금이라도 넘겼다 싶으면 목을 잘랐는데 그 수가 무려 10만이라나? 결국 커피 상인들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 이탈리아, 프랑스, 오스트리아로 커피가 확산됐다.

인도에서는 원숭이나 고양이가 먹고 배설한 똥이 최고급 커피로 불티나게 팔려나간다는 이야기나 프랑스인들이 진하고 독한 커피를 좋아하는 건 변비 때문이라는 등등의 우리가 알지 못했던 커피 이야기들이 흥미롭다.

커피에 반하다. 커피도 커피광의 애정에 감동하다?

<커피 견문록>은 특이한 이력으로 태어난 책이다. 커피광인 저자 스튜어트 리 앨런은 커피와 인류가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가 궁금하여 지구의 4분의 3인 3만 킬로미터를 커피를 찾아 돌아다녔다.

저자는 국경과 분쟁도 불사한다. 섹스와 죽음을 찬양하기 위한 종교 의식에서 제물로 반드시 커피가 사용되었던 에디오피아에서는 무슬림으로 변장해 의식에 동참한다. 커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은 그야말로 커피를 감동시킬 만하다. 

저자는 이 책 한권으로 '커피사회인류학자'라는 영광스런 명칭까지 얻었다. 커피광 스튜어트 리 앨런의 열정 덕분에 가려져 있던 커피의 역사가 속속 밝혀진 것이다. 그간 커피에 관련된 책들이 주로 커피의 통상적인 역사만 훑는 것이었다면 이 책은 커피 뒤를 바짝 따라붙는 듯한 느낌을 준다. 커피와 관련 있는 지역에 착 달라붙어 이야기들을 남김없이 싹싹 긁어냈다고 할까?

그런데 한편으로 자꾸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편의 즐김을 위해 한편은 혹사 당한다. 브라질의 커피 농장의 노예 이야기는 더욱 씁쓸하다. 지난 200년간 300만 명의 아프리카 노예가 커피농장에 동원됐고, 현재 브라질에 사는 노예의 직계 후손들은 문맹률이 10배 이상이며 극심한 빈곤에 시달린다고 한다.

사실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내가 감미롭게 즐기고, 적당한 중독까지 자처하던 커피, 특히 뜻 깊은 인연과 나누고 싶던 커피가 이런 수많은 과정을 거쳐 나에게 왔다니. 어른이 된 후 즐겨오던 커피의 이면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이 책은 썩 유용했다. 누군가와 만나면 당연히 선택하던 커피. 더러는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즐기기도 하던 커피가 이제는 달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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