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프로젝트 - 무엇이 인생의 차이를 만드는가
헬렌 피어슨 지음, 이영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제목과 주제는 흥미로운데 내용은 출생 코호트 연구 과정이라 당황스럽다.

독자는 이해하기 쉬운 단순하고 명확한 결론을 원하는 반면, 저자는 이 연구의 어려움과 위대함을 비롯해 지난 70여 년 간의 긴 과정을 설명하는데 전 페이지를 할애한다.

원래 과학이란 간단 명료한 당위적 주장은 아니기 때문에 이해는 간다.

1일 1식, 이런 식의 주장이야 말로 사이비 과학의 특징이니 진정한 과학이라면 모호한 여러 증거들을 복잡하게 보여주는 수밖에 없을 듯 하다.

그렇지만 평범한 독자들을 위해 좀더 단순하고 알기 쉽게 주제를 요약해 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부제 <무엇이 인생의 차이를 만드는가> 의 답이 들어 있는 줄 알았다.

출생 코호트는 출생 당시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한 인간의 삶을 기록하면서 성공적인 삶을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거대한 작업이다.

수십 년에 걸쳐 추적 관찰을 해야 하니 보통 어려운 일은 아닌 듯 하다.

더군다나 국가에서 어서 연구하라고 자금을 넉넉히 대주는 것도 아니고 책을 보면 그야말로 사명감을 가진 연구자들의 눈물나는 노력으로 연구가 이어져 오고 있다.

안타깝게도 시간이 갈수록 사회적 이동은 어려워지고 있다.

흔히 말하는 계급의 고착, 빈부격차의 확대가 강화되는 것이다.

어떤 가정에서 태어났는가가 그 사람의 사회적 계급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팩터가 됨을 연구에서 보여준다.

간단히 말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면 계속 가난한 상태에 머물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큰 것이다.

약간의 희망이 있다면 부모의 양육태도도 중요하기 때문에 한국처럼 교육열이 높은 사회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는 듯 하다.

거기에 학교의 교육 의지가 있다면 높은 계급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출생 코호트의 결론이 복지제도 확대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가난이 계급 고착의 결정적인 요소임은 분명하니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 특히 양육 부분에 대한 국가적 투자가 중요하긴 할 듯 하다.

사교육의 병폐만 듣고 사는 나라에서 노동계층 부모의 무관심이라는 주제는 생소한 느낌마저 든다.

이미 알고 있는 육아 상식, 이를테면 임신 중 흡연은 저체중 출생아를 낳게 하고, 엎드려 재우는 것은 영아 돌연사 위험이 있고 하루 한 시간 이상 밖에서 놀게 하는 것이 신체 발육에 중요하다 등이 막연한 주장이 아니라 출생 코호트라는 긴 시간의 대규모 연구를 통해 밝혀져 오늘날 의학 교과서에 실리게 됐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현대의학의 강점은 실험을 통해 입증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 생각된다.


<인상 깊은 구절>

287p

부모의 직업, 학력, 소득보다는 부모가 좋은 '학습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아이의 지능과 사회성 발달에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밀레니엄 코호트는 '훌륭한' 가정교육의 범위를 더 넓히는 역할을 했다. 그 결과 대화하면서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따뜻하게 반응해 주고, 규칙적인 식사 시간과 취침 시간을 정해 주고, 부모의 권위를 지키며 훈육하는 것이 아이의 미래를 더 밝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체벌 같은 가혹은 훈육은 나쁜 결과를 낳았다)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의욕이 그 실행 방식만큼이나 중요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이들을 격려하고 책을 읽어 주고 밖으로 데리고나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좋은 학군으로 이사하는 것보다 결과적으로는 더 이득이 된다. ... 이미 부모들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코호트 연구들이 대개 그렇다. 새로운 법칙을 만들어 내기보다는,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고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등)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제시해 준다. 과학적 근거를 아는 것만으로도 부모의 결심은 더 단단해질 수 있다. ... 대개 과학은 단순한 핵심 메시지를 알려주거나 어떤 결과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310p

영국의 출생 코호트들이 아직까지 무사히 존재하는 이유는 연구자들이 영국인답게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일을 계속해 왔기 때문이다.

359p

과학자들은 인내심이나 끈기와 같은 자질들이 성공의 결정적인 예측 변수이기 때문에 어린 나이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결국, 행복하고 건강하고 부유한 인생을 살려면 지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사회적이고 정서적인 기술까지 기르고 닦아야 한다는 뜻이다. 직업에서 성공하고 삶의 난제들은 잘 해결하려면, 그저 머리가 좋기보다는 근면하고, 신뢰감을 주며, 임무를 완수할 수 있어야 한다.

362p

한 연구에서, 16살에 매일 신체 활동을 한 사람은 성인이 됐을 때 정신적으로 더 건강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예측 가능한 연관성이지만, 확실한 데이터가 더해지면 그 위력은 훨씬 강해진다. 지금 연구자들은 10대들이 언제, 얼마나 자주 남들과 교제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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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리 오디세이
호아상.팽안옥 지음, 이익희 옮김 / 일빛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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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신선해 오래 전부터 읽고 싶던 책인데 연수도서관에서 발견하고 읽게 됐다.

인문지리학인 줄 알았는데 과학적 내용도 많이 포함되어 다소 지루하기도 했다.

내가 관심있는 분야는 중국의 지리가 아니라 지리로 보는 중국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한국은 유교적 전통이 강해 서양의 자연과학적 탐구와는 다르게 인문적 자연 관찰이 대부분이었던 듯 하다.

이런 전통 속에서 북송의 심괄과 명나라 서하객이라는 지리학자의 자연과학적 지리 탐사가 인상적이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특출나게 뛰어난 천재들이 있는 모양이다.

이른바 움직이는 호수라는 롭 노프와 누란 왕국, 황하와 양자강의 발원지, 타클라마칸 사막과 티벳 고원, 히말라야 산맥, 정화의 원정, 법현과 현장의 서역기행 등을 흥미롭게 읽었다.

땅덩어리가 크고 역사가 오래된 만큼 중국은 비교적 균질적인 한반도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변화무쌍 하고 다채롭다.

대부분 재밌게 읽었는데 마지막 장의 서복과 아메리카 발견설은 책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심각한 문제다.

서복이 동쪽으로 가서 일본에 정착하고 야요이 시대를 열었으며 그가 곧 진무 천황일 가능성을 제시한다.

야요이 시대라면 한반도의 도래인들이 일본에 문화를 전해줬다고 국사책에서 수도 없이 배우던 내용이 아닌가.

중국인 저자의 책이라 그런지 야요이 시대는 곧 중국의 진한 문화와 일치한다고 쓰여 있다.

아무리 한반도의 중계지 역할을 강조한다 해도 한반도 역시 중국으로부터 문화를 전수해 받는 입장이니 근본적으로는 중화 문명의 이동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서복이 곧 진무 천황이라니 견강부회도 너무 심하다.

전설을 역사로 만드는 것이 아마추어 역사가들의 특징이 아닌가.

그래도 서복은 좀 낫다.

다음 장의 아메리카 발견설은 낙랑이 북경에 있었다는 주장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어느 사회나 얼치기 재야 사학자들이 있는 모양이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5세기에 법현이 인도로 불경을 구하러 가서 돌아올 때 해류의 흐름을 타고 멕시코의 아카풀코라는 곳에 갔다는 것이다.

그 증거라는 것이 여행기에 나온 태평양을 시사하는 문장들과 그들이 도착했다는 야파제라는 곳의 지명과 아카풀코가 유사하는 것 뿐이다.

반박하는 주장에 따르면 태평양의 심해를 의미한다는 문장들은 인도양에 대입해도 아무 문제가 없고, 야파제와 아카풀코는 전혀 다른 고유 명사일 뿐이라고 한다.

심지어 베링 해협을 통해 아메카 인디언들이 북미로 들어온 후에도 태평양 한가운데를 건너 은나라 사람들이 중미로 넘어가 올멕 문화를 일구었을 가능성을 논한다.

그러면서 이런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에게 사고 훈련이 될 수 있는 좋은 과제라고 넘어간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무책임한 발상이라니!

역사는 엄연한 과학이고 엄격한 논증을 거쳐 연구되어져야 하는 학문이다.

이런 식의 무책임한 주장은 올바른 역사 발전에 매우 해가 된다.

가끔 우리나라 역사책을 읽을 때도 그렇지만 중국 역시 여전히 자국 위주의 민족주의적 역사관을 넘어서지 못하는 느낌이 든다.

서양 저자의 책들은 좋은 책만 번역돼서 그런지 몰라도 훨씬 객관적이고 민족국가에 함몰되지 않아 읽기가 편하다.


<인상 깊은 구절>

159p

전체적으로 볼 때 중국 고대 지리학의 발전 속도는 비교적 느렸다. 걸출한 지리학자들은 대거 배출되었지만 그들의 지리 고찰 활동은 종종 정치와 종교 등의 목적을 위한 부산물쯤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제한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어려웠다. 다른 측면에서 중국 고대의 일부 지리서는 작가가 직접 연구와 경험을 통해 저술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역사적으로 관련 있는 문헌 자료나 소문을 채집해 만들었기 때문에 사실적인 지리적 면모를 갖출 수 없었다. 서재에 꼼짝 않고 앉아서 천하 지리의 형세를 머리와 손으로만 연구하는 방법은 당시 중국에서 상당히 유행처럼 퍼졌고 상당 부분 중국 고대 지리학 발전에 영향을 끼쳤다. 

162p

서하객의 유람이 특별한 것은 일반 문인의 단순한 '산수 유람' 수준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장건이나 법현처럼 정치나 종교적인 목적에서 유람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순수하게 자연을 탐구하려는 목적이 있었기에 모든 지리적 흔적을 대단히 세심하게 수집해 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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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우위의 중국문화기행 1 - 세계문화산책 01
위치우위 지음, 유소영.심규호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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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확실히 중국인 저자의 책이라 그런지 한국 사람이 쓴 중국문화기행과는 깊이가 다른 느낌이다.

자국인을 위한 책이다 보니 지역이 어디인지 정확히 나오지 않아 중간에 검색을 자주 했다.

중국 여러 지역의 역사적 내력을 쉬운 필체로 소개하고 같이 실린 사진들도 볼만 하다.

소동파나 주희 등 유명 학자들도 당대에는 이른바 소인배들의 심한 투기 질투에 시달렸고 결코 인생이 녹록치 않았음을 확인했다.

중국인 저자라 그런지 당대의 정치 현실과 더불어 실감나게 위인들의 심정을 잘 풀어낸다.

강희제의 피서산장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근면하면서 비상한 두뇌의 탁월한 지도자를 가진 국가는 얼마나 행복한가를 보여준다.

하나같이 형편없는 명나라 후대 황제들과, 뛰어난 청나라 초기의 황제들은 극명하게 비교되어 과연 명의 국운이 다할 수밖에 없었음이 실감난다.

구한말에 고종이 아닌 강희제 같은 뛰어난 지도자를 가졌다면 조선은 식민지를 피할 수 있었을까?


<인상 깊은 구절>

34p

강희제는 수리에 반대하는 조서를 내렸다.

"진이 장성을 축조한 이래, 한, 당, 송 역시 항상 수리를 하였는데, 그렇다고 어찌 당시인들 변방의 환난이 없었단 말인가? 명말 나의 태조께서 대병단을 이끌고 파죽지세로 돌격하니 모든 길이 무너지고 이를 당해낼 자가 없었다. 이로써 오직 덕을 쌓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국토 수호의 유일한 방법임을 알 수 있다. 백성의 마음이 기쁘면 나라의 근본을 얻게 될 것이니, 변경이 절로 굳건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리의 뜻이 모여 성을 이룬다"는 의미로다. 고북, 희봉구 일대는 짐이 모두 순시해 본 곳으로 훼손된 부분이 많긴 하나, 지금 이를 수리하려면 노역을 동원해야 하니 어찌 백성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욱이 장성은 남북 수천 리에 달하니 병사들을 얼마나 양성해야 이곳을 지킬 수 있단 말인가?"

(뻔한 말 같기는 한데, 나라를 굳건히 만든 황제의 말이라 그런지, 애민 정신과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느껴진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지만 역사에 획을 긋는 위인들은 범인과는 다른 뛰어남을 가진 듯하다)

102p

차이위안페이는 20세기 초엽에 이른바 예술 교육으로 종교를 대치하자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나는 최고의 예술 교육 역시 종교의 풍모를 지닌다는 것을 바로 이곳에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178p

객관적인 경물은 단순히 심미적인 부분을 제공할 뿐이다.소동파는 자신의 정신적 역량을 통해 황저우의 자연 경물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런 의미 부여를 통해 생명이 없던 자연 형식이 아름다움으로 번한다. ... 현대의 신문들이 충분히 직업적 도덕의식을 갖추지 못한 데다 이에 상응하는 법적 규제가 없는 상황에서 마음대로 찬사와 비난을 일삼는 것과 마찬가지다. 해를 입은 사람들은 하소연할 곳이 없고, 전후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신문의 내용이 바로 여론이라고 생각한다. 

310p

집단적 성향이 강한 문화적 인격체는 나날이 진부해지고 암담해졌다. 문화는 별다른 목적 없는 낭비로 변하고 꽉 막힌 도덕적 완성의 추구는 오히려 총체적인 부도덕을 낳는다

360p

그 사회에서 개인이란 별 의미가 없었다. 단지 왕조의 총애를 받거나 유배된 신하, 아비의 아들이나 아들의 아비, 친구 사이의 친교관계에 속한 한 점, 뭇 사람의 입방아에 기진맥진한 육신, 상하 좌우로 배열된 어느 한 곳의 좌표, 사회라는 거대한 물결 속의 한 방울, 온갖 윤리 관념의 조합과 집합이 있을 뿐이었다. 이렇듯 생명의 실체는 있을 수 없었으며, 개인의 영혼 또한 존재할 수 없었다. 

(10년 동안 유배되어 장안으로 돌아오라는 조서를 받고 기뻐서 먼 수도까지 상경했더니, 기다리는 것은 황제의 신임이 아니라 더 먼 곳으로 보내라는 명령이었다. 결국 당의 위대한 문장가 유종원은 당시로서는 황무지나 다름없었던 광서성의 류저우에서 생을 마감한다. 왕조시대의 백성은 지위가 높으나 낮으나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존재하고 주체성을 갖고 살기가 참 어려웠을 듯하다)

403p

그는 단식 끝에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임종 직전 그는 자신을 위해 직접 명정을 썼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기성, 미성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氣라도 산하가 되어 본조(송조)를 강건케 하리라."

(진회에 의해 하이난 섬으로 유배되어 가족에 대한 핍박을 피하기 위해 단식하다 죽은 조정이라는 이의 글이다. 뻔한 수사 같아도 죽음을 앞두고 쓴 글이라 비장함과 기개가 있고, 죽기 직전까지 국가에 대한 강렬한 충성심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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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추와 그의 사람들 역사 속에 살아 있는 인간 탐구 36
주보돈 지음 / 지식산업사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트렌디한 제목과는 달리 매우 학구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책이다.

역사는 궁극적으로 이야기라 그런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어떤 수준의 책이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놀라운 흡인력을 지닌 매력적인 학문임을 새삼 느꼈다.

김춘추 평전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 하다.

신라와 김춘추가, 외세를 끌어들인 매국노 수준으로 격하되고 있는 요즘 같은 시대에 정독해 볼만한 책이다.

당시 삼국은 비슷하다는 동류의식은 있었을지 모르나 하나의 민족이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고 오히려 신라가 백제를 통일한 후 당에 맞서 고구려 유민을 받아들이면서 투쟁하는 과정에서 삼한일통 의식이 생겨났다고 본다.

이게 정답일 듯 하다.

통일신라의 대표적 인물이라 할 김춘추는 백제 멸망을 일평생의 과업으로 삼고 끝없는 노력을 경주해 마침내 아들대에서 삼한통일을 이루어 낸 신라의 가장 출중한 왕이라 할 만 하다.

그 과정에서 처남인 김유신, 문장가 강수, 고승 원효와 자장 등의 도움을 받아 국가의 근본을 유교식 관료제로 바꾸어 나간다.

당과 일본, 고구려 등을 직접 방문하여 외교전을 펼친 꽤나 국제적이고 적극적인 정치가였던 듯 하다.

왕이 직접 타국을 방문해 외교정책을 이끈 예는 우리 역사상 매우 드물지 않을까 싶다.

세종대왕처럼 한국사에서 큰 위상을 차지해야 할 것 같은데 고대인이라 사료도 드물 뿐더러 일제 강점기 동안 식민지 치하의 현실을 당시 역사에 잘못 대입해 인식하는 바람에 매국노 취급을 받아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요즘은 통일 신라가 아니라 남북국 시대로 명명되는 듯 하다.

발해를 우리 역사로 받아들이는 것은 역사의 외연을 넓히는 것이니 좋은 일이지만, 한민족이라는 인식이 생긴 것은 신라의 삼국통일이 갖는 위대한 의의이니 합당한 역사적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


<인상 깊은 구절>

57p

공략전이 끝난 즉시 문무왕은 왕경으로 돌아와 군공을 포상하는 등으로 고구려와의 전쟁 결과를 정리하고 그 영토에 대해서 어떤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신라가 전쟁이 끝난 뒤 고구려 영역으로부터 곧장 주력 병력을 완전히 철수시킨 자체는 고구려보다는 백제의 영역에 대해 한층 더 크게 관심을 두었음을 의미한다.

60p

당은 아마도 서쪽 변경에서 일어난 토번의 발호나 요동 방면에서 고구려 유민의 움직임 등에 대비하려고 일시 고구려 옛 땅으로부터 병력을 철수시킨 듯 보이지만, 그것은 이어진 고종의 사망과 잇따른 왕위 계승의 문제 및 측천무후의 황제 즉위 등 당의 내정과 결부되면서 결과적으로 철군은 영구화되기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어느 정도 내부의 지배체제를 정비하자 사신을 파견해 사죄하려는 등 신라의 노력도 일부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 당이 그 구심의 구실을 하게 된 것은 큰 성과였다. 말하자면 동아시아에서는 당을 중심으로 일원적인 질서체계가 작동하는 새로운 세계가 성립되었다. 그것은 당나라 직전의 남북조 시기보다는 한층 더 강하게 중국의 정치적, 문화적 영향력이 작용하는 세계였다. 이는 전쟁에 직접 참여한 신라나 일본이 스스로 전후 당제를 한층 더 수용해야 하는 체제로 전환한 결과이기도 하였다. ... 신라는 시종일관 백제 땅을 차지한다고 굳게 믿어왔으므로 마침내 당과의 전쟁까지 불사하였던 것이다. 그만큼 신라의 백제 옛 땅에 대한 집착은 강고하였다. 이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을 적절히 활용하였고 마침내 성공을 거두었다. 결국 그와 같은 과정을 통해 얻어낸 산물은 '일통삼한'하였다는 의식이었다. 아마도 삼한이란 용어에 내재한 것도 원래는 삼한에 지나지 않았으나 통합 이후 삼국을 의미하는 인식으로 점차 확대된 것이었다. 그것은 통일 이후 곧 닥칠지도 모를 당과의 2차전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새로운 변화에 걸맞게 내부적인 체제 정비를 위해서도 필히 요구되던 인식이었다.

71p

이로 보면 당태종이 여왕의 폐위를 말한 것은 고구려 원정에만 깊은 관심을 기울이던 당이 신라의 요청을 거절하기 위한 구실이었을 따름이다. ... 신라 역사에서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의 즉위 자체는 순조롭게 진행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선덕여왕이 어떻든 즉위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를 지지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들 사이에 일정한 정치적 타협이 이루어진 결과였다. 

75p

김품석이 대야성에서 취한 그와 같은 일련의 행위는 신라사회에서 비난의 표적이 되었음이 틀림없다. 대야성 함락 소식이 전해지자 김춘추가 받은 충격의 정도는 <삼국사기>에 잘 묘사되어 있거니와, 이는 단지 그의 딸과 사위가 죽었다는 사실보다는 차라리 그들이 범한 행위로 말미암아 중앙정치에서 그가 입은 타격의 일단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었다. 이를 지금까지 김춘추의 개인적인 불행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심지어는 이후의 신라정치사를 김춘추 가문의 개인적인 슬픔을 국가적 불행사로 승화시키는 과정으로 이해하려 한 견해도 있으나 이는 피상적인 이해이다.

128p

당태종이 김춘추와 구두로 약속한 것이었을 따름이다. 당의 기록에 그런 내용이 전혀 남지 않게 된 것도 그런 실상을 반영한다. 군사 움직임의 결정권이나 주도권이 상호 공동으로 충분히 협의된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당에 있던 것도 마찬가지다. 이와 같이 그것을 대등한 입장에서 취해진 군사동맹의 성립이라 풀이하는 것은 지나친 현재적, 일방적 해석이다. 다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점은 당이 비록 구두이기는 하였으나 삼국 가운데 신라를 군사적 파트너로 삼겠다는 의사를 확실히 밝힌 사실이다. 이제 당은 오직 신라만을 우호세력으로 인정한 셈이었다. 신라의 당면 현실로서는 그 정도만으로도 상당한 외교적 실리를 얻은 성과였다. 

154p

신라는 실제로는 백제만을 통합한 상태이지만 관념적으로는 삼국을 통합하였다고 여겼다. 물론 영토의 한계는 뚜렷하므로 실상과는 차이가 나지만 그럴 만한 명분은 충분하였다. 그것이 바로 고구려 유민까지 포함한 삼국의 주민 융합책이었다. 통일 이후 중앙의 핵심 군단인 9서당을 편성하면서 각국의 유민을 골고루 섞은 듯이 보이도록 한 것도 그런 일환이었다. 고구려가 역사적으로 볼 때 삼한의 일원이 아니었음이 명백한 데도 억지로 그렇게 연결 짓고자 시도한 것은, 신라가 결과적으로 얼마나 일통삼한 의식에 집착하고 있었는가를 뚜렷이 증명해 주는 사례이다. (최근 일통삼한 의식을 하대에서 만들어진 의식의 산물로 보는 견해가 재기되기도 하였다. 사적지의 건비 시기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7세기 말 일통삼한 의식의 성립을 부정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므로 따르지 않는다.)

248p

진평왕대에 이르러 고양된 왕자의식으로 왕자가 이제 원래부터 일반귀족과는 혈족이 다르다는 의식으로 발전하게 되고, 이에 따라 기존 골품제상에서 골족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수반함으로써 급기야는 성골 관념이 출현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장기간에 걸치는 진평왕의 집권은 왕자의 성골의식을 더욱 굳게 하였을 것이고 이것이 곧 선덕여왕의 즉위를 가능케 한 중요한 명분으로 작용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것이 바로 여왕 지지파들에 의해 주장되었을 소위 聖骨男盡이다. ... 선덕여왕은 사실상 그야말로 실권이 거의 없는 존재였다. 그 까닭으로 선덕여왕의 개인적인 능력 여부와 상관없이 구조적으로 '여주불능선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신회의 중심으로 정치가 운영된 만큼 의장인 상대등은 다음의 왕위 계승권에 가장 근접해 있었다고 하겠다. 비담이 왕위 계승을 목적으로 반란을 일으킨 것도 여기에 근거한다. ... 이를 추진한 세력은 김춘추와 김유신이었다. 이들은 한편 여왕 즉위의 명분으로 이웃한 일본의 사례도 아울러 이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279p

이런 전반적 과정을 놓고 보면 당과의 전쟁이 벌어질 때까지도 신라가 삼국 통합의 의도를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음이 확실하다. 오직 백제의 영토를 장악하겠다는 강한 의욕만 넘쳐나고 있었을 뿐이다.

299p

아마도 김유신은 현실의 벽을 뛰어넘는 파격을 스스럼없이 단행하는 강한 소신을 가진 인물이었다. 사실 그는 사람의 현실적 능력에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그것은 지방민을 적극 활용하려 한 데에서 뚜렷이 보이는 사실이다. ... 김춘추에게는 즉위 이후에 벌어질 새로운 세계에 대한 대안이 갖추어져 있었으니 그것이 곧 유교적 인식에 입각한 관료제 국가의 건설이었다. 달리 말하면 이는 곧 골품체제의 부정인 셈이었다. 

337p

그렇지 않아도 백제의 공세로 맞았던 직전의 위급한 상황은 넘겼다고 하지만 위협이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인 데다가, 아무리 당의 요청이라도 파병 자체는 또 다른 위기를 불러올 공산이 컸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은 바로 얼마 전 신라가 백제의 공세로 심각한 위기 상황에 빠졌을 때 청병 요청에 대해서는 온갖 구실을 붙여 철저하게 외면한 바 있었다. 최후에는 파병하기로 결말이 지어졌다. 아마도 당의 승리를 예상하고서 차후 그로부터 여러모로 도움이 뒤따르리라 예상한 파병파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파병 주장파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645년 초 본격화된 당의 고구려 공격이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그로 말미암아 당의 도움은커녕 이제 머지않아 강적 고구려로부터 보복적 공세가 예상되는 국면을 맞아가고 있었다. 게다가 파병의 기간에는 당에서 진행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백제의 공세가 잠정 중단되리라는 기대가 바탕에 깔려 있었다. 그렇지만 백제는 당의 요구에 부응하지도 않았거니와 도리어 그 틈을 노려서 신라를 공격하였다. ... 선덕여왕은 반란군에 의한 해를 입어 사망한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비담은 선덕여왕의 임종이 가까워졌다고 여겨 이 후사를 노려서 난을 획책하였던 것 같다. ... 진덕여왕 즉위는 차기를 노린 김춘추의 입장이 강하게 스며들어 있는 선택이었다. 가능하면 자신이 즉위할 수 있는 명분과 토대를 튼실히 굳혀 가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충분한 사전 정지작업이 필요한 일이었다.

370p

비록 당이 내부의 사정으로 고구려 선공론에서 백제 선공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할지라도, 이십 년 가까운 기나긴 세월 동안 자나 깨나 백제 공격에 줄기차게 매달려 온 무열왕 김춘추로서는 당연히 자신의 노력으로 성사된 일이라 선전하였을 공산이 크다. ... 이후에도 당은 백제를 먼저 공격하자는 신라의 줄기찬 요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고구려 공격으로만 일관하였다. 당의 입장으로는 당장의 위협이라 판단한 것은 백제가 아니라 영토를 직접 접한 고구려였기 때문이다. 바다를 사이에 둔 백제는 당으로서는 현실적 위협으로 느낄 만한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게 보면 당태종이 김춘추와 밀약을 맺은 것도 사실 고구려 공격을 승리로 이끌기 위하여 신라의 병력을 거기로 끌어들이려는 수단이었을 뿐이다. ... 일단 강수가 사망한 뒤 그의 처가 귀향하기로 결정한 것은 왕경에 오래 거주하였으나 뿌리내리지 못한 상태였음을 뜻하거니와, 이는 일단 차별 의식이 존재함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 문무왕의 언설처럼 통일에 대한 공헌이 지대한 강수가 최후로 받았던 관등 사찬이 지방민이 받았던 최고위인 점과 일치한다는 점은 그가 지방민으로 인식되고 있었을 시사해 주는 사실이다.


<오류>

당의 초기 개국공신 세력은 559년 장손무기의 죽음을 끝으로

->559년이 아니라 659년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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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明 2018-05-17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춘추는 외교 전략을 통해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고, 삼한일통의 초석을 다졌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백제는 당 제국의 영향에 들어갔고, 고구려는 아직 건재한 상황에서 세상을 떠난지라 삼국 통일 전쟁에 당 제국을 끌어들인 ‘도박‘의 부담은 오롯이 아들 문무왕이 짊어져야 했지요. 그래서 저는 백제 고토의 통합을 완료하고, 나당 전쟁 발발 이전부터 전쟁에 대비한 문무왕이 부왕보다 더 대단한 인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직접 외국을 돌아다니며 국제적인 감각을 갖춘 아버지에게서 정치를 배웠기에 문무왕이 큰 업적을 이룰 수 있었겠지만 말이지요.
 
지상의 위대한 도서관 이상의 도서관 32
최정태 지음 / 한길사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도서관 기행이라는 독특한 주제라 선택했다.

저자의 직업이 사서라 도서관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넘치는 점은 좋은데 본격적인 연구와 조사는 아닌 말그대로 기행문이라 여행기 정도의 가벼운 서술이 아쉽다.

한가지 주제에 대해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좋은 글쓰기의 전형으로 조용준씨의 <유럽 도자기 여행> 편을 들 수 있겠다.

이 정도의 자료 조사와 시간 투자가 있어야 양질의 컨텐츠를 가진 "읽을 만한" 정보가 많은 책이 나오는 듯 하다.

이 책은 많은 정보를 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쉽고 대신 유명 도서관 열 두 곳을 소개해 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겠다.

도서관 사진의 도판도 좋은 편이다.

도서관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는 나에게 박물관 만큼이나 도서관은 흥미로운 곳이다.

그렇지만 진품을 직접 관람하는 것이 중요한 박물관이나 미술관과는 달리, 책은 어떤 형태를 취하든 그 내용은 동일하다는 점에서 희귀본을 얼마나 소장하고 있냐 보다 얼마나 많은 책들이 이용자에게 읽힐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듯 하다.

하버드 도서관은 장서수가 1600만권에 달하고 이탈리아 공공 도서관은 무려 6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한국인은 글 읽는 것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고 알려졌는데 현대의 도서관 수나 독서 인구를 보면 이것도 하나의 신화에 불과한 게 아닌가 싶다.

오히려 우리는 일부 식자층이나 책을 중히 여겼을 뿐 실상은 음주가무를 즐기는 민족이 아니었을까?

서구나 일본에 비해 도서관 수나 1인당 읽는 책은 매우 현저하게 떨어지는 반면, 아이돌이나 한류 드라마가 세계로 뻗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책에 나오는 유명 도서관들은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어 희귀본들이 많고, 장서수는 기본이 천만 권을 넘으며 건물 또한 매우 훌륭하고 무엇보다 사서가 단순히 책정리 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 행사를 주최하는 기획자들이다.

희귀본은 이제 와서 구할 수도 없고, 훌륭한 건물을 갖추기 위해서는 엄청난 돈이 들어가니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대신 도서관이 지역 사회의 문화적 구심점이 되는 것은 열심히 추구할 목표라 생각된다.

요즘은 도서관에서도 작은 행사들이 종종 개최되는 것 같지만 여전히 사서는 책 정리하고 대출해 주는 수동적 이미지가 강하다.

저자의 다른 책에서 봤던 내용인데 양질의 고급 인력을 많이 채용해야 도서관의 질적 수준을 높힐 수 있을텐데 인력에 투자하는 것을 가장 돈낭비로 생각하는 문화 풍토상 쉬운 목표는 아닌 듯 하다.

내가 학생 때만 해도 도서관은 시험 공부하는 독서실 기능이 가장 컸지만 지금은 책을 대출하는 종합자료실의 기능이 많이 강화된 듯 해 좋다.

이용객들의 편의를 위해 밤 10시까지 대출 서비스를 해 주고 희망도서도 빠르게 구입해 준다.

가족이 여러 권의 책을 빌릴 수 있는 가족대출 서비스도 좋고 관내 도서관끼리 상호대차 서비스를 지원해 주는 점도 매우 편리하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이용자 부담으로 택배 대출과 반납 서비스가 있으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인력 부족으로 실현이 어렵겠지만 현재도 장애인이나 영유아가 있는 부모에게는 시행되는 제도니 확대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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