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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우위의 중국문화기행 1 - 세계문화산책 01
위치우위 지음, 유소영.심규호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확실히 중국인 저자의 책이라 그런지 한국 사람이 쓴 중국문화기행과는 깊이가 다른 느낌이다.
자국인을 위한 책이다 보니 지역이 어디인지 정확히 나오지 않아 중간에 검색을 자주 했다.
중국 여러 지역의 역사적 내력을 쉬운 필체로 소개하고 같이 실린 사진들도 볼만 하다.
소동파나 주희 등 유명 학자들도 당대에는 이른바 소인배들의 심한 투기 질투에 시달렸고 결코 인생이 녹록치 않았음을 확인했다.
중국인 저자라 그런지 당대의 정치 현실과 더불어 실감나게 위인들의 심정을 잘 풀어낸다.
강희제의 피서산장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근면하면서 비상한 두뇌의 탁월한 지도자를 가진 국가는 얼마나 행복한가를 보여준다.
하나같이 형편없는 명나라 후대 황제들과, 뛰어난 청나라 초기의 황제들은 극명하게 비교되어 과연 명의 국운이 다할 수밖에 없었음이 실감난다.
구한말에 고종이 아닌 강희제 같은 뛰어난 지도자를 가졌다면 조선은 식민지를 피할 수 있었을까?
<인상 깊은 구절>
34p
강희제는 수리에 반대하는 조서를 내렸다.
"진이 장성을 축조한 이래, 한, 당, 송 역시 항상 수리를 하였는데, 그렇다고 어찌 당시인들 변방의 환난이 없었단 말인가? 명말 나의 태조께서 대병단을 이끌고 파죽지세로 돌격하니 모든 길이 무너지고 이를 당해낼 자가 없었다. 이로써 오직 덕을 쌓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국토 수호의 유일한 방법임을 알 수 있다. 백성의 마음이 기쁘면 나라의 근본을 얻게 될 것이니, 변경이 절로 굳건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리의 뜻이 모여 성을 이룬다"는 의미로다. 고북, 희봉구 일대는 짐이 모두 순시해 본 곳으로 훼손된 부분이 많긴 하나, 지금 이를 수리하려면 노역을 동원해야 하니 어찌 백성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욱이 장성은 남북 수천 리에 달하니 병사들을 얼마나 양성해야 이곳을 지킬 수 있단 말인가?"
(뻔한 말 같기는 한데, 나라를 굳건히 만든 황제의 말이라 그런지, 애민 정신과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느껴진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지만 역사에 획을 긋는 위인들은 범인과는 다른 뛰어남을 가진 듯하다)
102p
차이위안페이는 20세기 초엽에 이른바 예술 교육으로 종교를 대치하자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나는 최고의 예술 교육 역시 종교의 풍모를 지닌다는 것을 바로 이곳에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178p
객관적인 경물은 단순히 심미적인 부분을 제공할 뿐이다.소동파는 자신의 정신적 역량을 통해 황저우의 자연 경물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런 의미 부여를 통해 생명이 없던 자연 형식이 아름다움으로 번한다. ... 현대의 신문들이 충분히 직업적 도덕의식을 갖추지 못한 데다 이에 상응하는 법적 규제가 없는 상황에서 마음대로 찬사와 비난을 일삼는 것과 마찬가지다. 해를 입은 사람들은 하소연할 곳이 없고, 전후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신문의 내용이 바로 여론이라고 생각한다.
310p
집단적 성향이 강한 문화적 인격체는 나날이 진부해지고 암담해졌다. 문화는 별다른 목적 없는 낭비로 변하고 꽉 막힌 도덕적 완성의 추구는 오히려 총체적인 부도덕을 낳는다.
360p
그 사회에서 개인이란 별 의미가 없었다. 단지 왕조의 총애를 받거나 유배된 신하, 아비의 아들이나 아들의 아비, 친구 사이의 친교관계에 속한 한 점, 뭇 사람의 입방아에 기진맥진한 육신, 상하 좌우로 배열된 어느 한 곳의 좌표, 사회라는 거대한 물결 속의 한 방울, 온갖 윤리 관념의 조합과 집합이 있을 뿐이었다. 이렇듯 생명의 실체는 있을 수 없었으며, 개인의 영혼 또한 존재할 수 없었다.
(10년 동안 유배되어 장안으로 돌아오라는 조서를 받고 기뻐서 먼 수도까지 상경했더니, 기다리는 것은 황제의 신임이 아니라 더 먼 곳으로 보내라는 명령이었다. 결국 당의 위대한 문장가 유종원은 당시로서는 황무지나 다름없었던 광서성의 류저우에서 생을 마감한다. 왕조시대의 백성은 지위가 높으나 낮으나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존재하고 주체성을 갖고 살기가 참 어려웠을 듯하다)
403p
그는 단식 끝에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임종 직전 그는 자신을 위해 직접 명정을 썼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기성, 미성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氣라도 산하가 되어 본조(송조)를 강건케 하리라."
(진회에 의해 하이난 섬으로 유배되어 가족에 대한 핍박을 피하기 위해 단식하다 죽은 조정이라는 이의 글이다. 뻔한 수사 같아도 죽음을 앞두고 쓴 글이라 비장함과 기개가 있고, 죽기 직전까지 국가에 대한 강렬한 충성심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