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멜표류기 - 낯선 조선 땅에서 보낸 13년 20일의 기록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3
헨드릭 하멜 지음, 김태진 옮김 / 서해문집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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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조선에 흘러든 하멜과 그의 동료들이 지닌 서양 문명 지식과 기술을 잘 받아들였더라면, 조선은 더 빨리 개화했고, 식민지가 되지 않았으며, 남북 분단이 일어나지 않았으리라고 가정한 옮긴이의 바람은 너무 비약이 아닌가? 하멜이 남긴 기록은 조선 왕조를 비난하려는 글로 읽기에는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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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9일 오후에 서기와 일등항해사 그리고 하급선의下級船醫가 제주 목사에게 불려갔다. 그곳에 가 보니 긴 붉은 수염을 한 어떤 사람이 있었다. 목사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물어 와서 우린 ‘우리와 같은 네덜란드 사람‘이라고 대답했더니, 총독이 웃으며 우리에게 그는 조선 사람이라고 손짓 발짓으로 설명해 주었다. 많은 이야기와 손짓 발짓을 주고받은 끝에 그때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이 사람은 우리말로 떠듬떠듬 우린 ‘어떤 사람‘이며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우린 그에게 ‘암스테르담에서 온 네덜란드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또 ‘어디에서 출발하여 일본으로 가던 중 전능하신 하나님이 길을 막아 폭풍우에 5일 동안이나 갇혀 있다가 이 섬까지 표류하게 되어 지금은 자비로운 조처만 바라고 있다.‘고 대답했다.

우리 쪽에서 그에게 그의 이름과 국적, 어떻게 해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그는 ‘나의 이름은 얀 얀스 벨테브레Weltevree이고 드 레이프De Rijp 출신이며, 1629년 홀란디아Hollandia 호를 타고 고국을 떠났으며, 1627년 오버커크Ouwerkerck 호를 타고 일본으로 가던 중, 조선 해안 근처에서 역풍을 만나 식수가 부족해서 보트로 육지까지 왔다가 우리들 중 세 사람만이 주민에게 잡혔고 나머지 사람들은 보트를 타고 도망쳐 배까지 가 버렸다.‘고 대답했다.

17년 전 혹은 18년 전에 만주의 침략이 있던 때에 그의 두 동료(드 레이프 출신 데릭 히스버츠와 암스테르담 출시느이 얀 피터스 버바스트)는 죽었다. 그들은 벨테브레와 함께 동인도 제도에 도착했었다.

그에게 어디에 살고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 때문에 이 섬에 왔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자기가 ‘서울에 살고 있고 왕으로부터 적당한 식량과 의복을 지급받고 있으며 이곳에 보내진 이유는 우리가 누구이고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를 알아 보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그는 또 덧붙여서 여러 차례 왕과 관리들에게 일본으로 보내 달라고 청원했지만, 왕은 항상 ‘당신이 새라면 그곳으로 날아갈 수 있겠지만 우리는 외국인을 나라 밖으로 보내지 않는다. 당신을 보호해 주겠으며 적당한 식량과 의복을 제공해 줄 테니 이 나라에서 여생을 마치라.‘고 대답하면서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를 위로하면서 만약 우리가 왕을 만나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통역을 만나서 기뻤던 마음은 곧 슬픔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는 약 57, 8세로 보였는데 놀랍게도 모국어를 거의 잊고 있어서 아까도 말했듯이 처음에는 그의 말을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약 한 달 정도 같이 지내다 보니 그가 다시 모국어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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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민주주의
최경봉 지음 / 책과함께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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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 민족주의를 넘어서 어문 민주주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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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에 대비된 비주류 문자의 이름이었지만, 나라를 빼앗긴 사람들에게 ‘한글‘은 독립의 의지를 일깨우는 이름이기도 했고 민족의 얼을 상징하는 이름이기도 했다. ‘대한제국의 문자‘라는 의미는 새롭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고, 상처 입은 민족적 자존심을 치유하기 위해 ‘한글‘에는 ‘큰‘, ‘위대한‘, 또는 ‘유일한‘이라는 의미가 덧붙었다.

그만큼 한글은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위대한 증거물이었다. 민족의 정체성이 위기에 처할수록 이 위대한 증거물의 의미는 더 크고 풍부해졌다. 일제강점기에 한글 반포일을 기념해 한글날을 제정한 것은 그 증거물의 의미를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고, 한글날은 갈수록 희미해져가는 우리말과 우리 정신을 지킬 것을 다짐하는 날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글이 문자의 이름이면서 우리말의 이름이 된 것은 자연스러웠다. 한글을 지키는 것이 곧 우리말을 지키는 길이었던 상황에서 말과 글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지 않았을까? 지금까지도 우리는 한국어를 지칭하거나 우리가 쓰는 문자를 가리킬 때 한글이라는 말을 쓴다. 언어의 용법이 언어 사용자의 역사적 경험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때, 이는 단순한 혼동은 아닐 터이다. 한글과 한국어를 혼동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언어의식에는 한글과 한국어를 분리해 생각할 수 없었던 역사적 경험과 상처가 착종되어 있다.

이처럼 한글의 역사적 의미가 강조되고 그 의미가 확장되는 상황에서는 언어와 문자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법이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언어 문제에 관한 논쟁의 저변에는 한글과 관련한 역사적 경험과 상처가 도사리고 있고, 역사적 경험과 상처의 기억은 언어의 문제를 언어의 문제가 아닌 것으로 만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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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간이 들려주는 일본의 고대
토노 하루유키 지음, 이용현 옮김 / 주류성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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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건너온 시문집 『문선』을 읽고, 유제품을 먹던 고대 일본인들의 생활상을 목간으로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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