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중국 지리 오디세이
호아상.팽안옥 지음, 이익희 옮김 / 일빛 / 2007년 11월
평점 :
제목이 신선해 오래 전부터 읽고 싶던 책인데 연수도서관에서 발견하고 읽게 됐다.
인문지리학인 줄 알았는데 과학적 내용도 많이 포함되어 다소 지루하기도 했다.
내가 관심있는 분야는 중국의 지리가 아니라 지리로 보는 중국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한국은 유교적 전통이 강해 서양의 자연과학적 탐구와는 다르게 인문적 자연 관찰이 대부분이었던 듯 하다.
이런 전통 속에서 북송의 심괄과 명나라 서하객이라는 지리학자의 자연과학적 지리 탐사가 인상적이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특출나게 뛰어난 천재들이 있는 모양이다.
이른바 움직이는 호수라는 롭 노프와 누란 왕국, 황하와 양자강의 발원지, 타클라마칸 사막과 티벳 고원, 히말라야 산맥, 정화의 원정, 법현과 현장의 서역기행 등을 흥미롭게 읽었다.
땅덩어리가 크고 역사가 오래된 만큼 중국은 비교적 균질적인 한반도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변화무쌍 하고 다채롭다.
대부분 재밌게 읽었는데 마지막 장의 서복과 아메리카 발견설은 책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심각한 문제다.
서복이 동쪽으로 가서 일본에 정착하고 야요이 시대를 열었으며 그가 곧 진무 천황일 가능성을 제시한다.
야요이 시대라면 한반도의 도래인들이 일본에 문화를 전해줬다고 국사책에서 수도 없이 배우던 내용이 아닌가.
중국인 저자의 책이라 그런지 야요이 시대는 곧 중국의 진한 문화와 일치한다고 쓰여 있다.
아무리 한반도의 중계지 역할을 강조한다 해도 한반도 역시 중국으로부터 문화를 전수해 받는 입장이니 근본적으로는 중화 문명의 이동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서복이 곧 진무 천황이라니 견강부회도 너무 심하다.
전설을 역사로 만드는 것이 아마추어 역사가들의 특징이 아닌가.
그래도 서복은 좀 낫다.
다음 장의 아메리카 발견설은 낙랑이 북경에 있었다는 주장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어느 사회나 얼치기 재야 사학자들이 있는 모양이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5세기에 법현이 인도로 불경을 구하러 가서 돌아올 때 해류의 흐름을 타고 멕시코의 아카풀코라는 곳에 갔다는 것이다.
그 증거라는 것이 여행기에 나온 태평양을 시사하는 문장들과 그들이 도착했다는 야파제라는 곳의 지명과 아카풀코가 유사하는 것 뿐이다.
반박하는 주장에 따르면 태평양의 심해를 의미한다는 문장들은 인도양에 대입해도 아무 문제가 없고, 야파제와 아카풀코는 전혀 다른 고유 명사일 뿐이라고 한다.
심지어 베링 해협을 통해 아메카 인디언들이 북미로 들어온 후에도 태평양 한가운데를 건너 은나라 사람들이 중미로 넘어가 올멕 문화를 일구었을 가능성을 논한다.
그러면서 이런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에게 사고 훈련이 될 수 있는 좋은 과제라고 넘어간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무책임한 발상이라니!
역사는 엄연한 과학이고 엄격한 논증을 거쳐 연구되어져야 하는 학문이다.
이런 식의 무책임한 주장은 올바른 역사 발전에 매우 해가 된다.
가끔 우리나라 역사책을 읽을 때도 그렇지만 중국 역시 여전히 자국 위주의 민족주의적 역사관을 넘어서지 못하는 느낌이 든다.
서양 저자의 책들은 좋은 책만 번역돼서 그런지 몰라도 훨씬 객관적이고 민족국가에 함몰되지 않아 읽기가 편하다.
<인상 깊은 구절>
159p
전체적으로 볼 때 중국 고대 지리학의 발전 속도는 비교적 느렸다. 걸출한 지리학자들은 대거 배출되었지만 그들의 지리 고찰 활동은 종종 정치와 종교 등의 목적을 위한 부산물쯤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제한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어려웠다. 다른 측면에서 중국 고대의 일부 지리서는 작가가 직접 연구와 경험을 통해 저술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역사적으로 관련 있는 문헌 자료나 소문을 채집해 만들었기 때문에 사실적인 지리적 면모를 갖출 수 없었다. 서재에 꼼짝 않고 앉아서 천하 지리의 형세를 머리와 손으로만 연구하는 방법은 당시 중국에서 상당히 유행처럼 퍼졌고 상당 부분 중국 고대 지리학 발전에 영향을 끼쳤다.
162p
서하객의 유람이 특별한 것은 일반 문인의 단순한 '산수 유람' 수준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장건이나 법현처럼 정치나 종교적인 목적에서 유람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순수하게 자연을 탐구하려는 목적이 있었기에 모든 지리적 흔적을 대단히 세심하게 수집해 나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