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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주변 - 중국의 확대와 고대 중국인의 세계 인식
홍승현 지음 / 혜안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어떤 계기로 이 책을 읽게 됐는지 기억이 안 난다.
오래 전부터 읽을 책 목록에 올려놓고 계속 미루다가 드디어 서고에 가 있는 오래 된 책을 읽게 됐다.
아, 정말 논문이 이렇게 재밌어도 되는 건가?
언제나 모호하기만 했던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기원과 확장 과정에 대해 화이사상과 조공-책봉 제도를 중심으로 명확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가려운 부분을 긁어 주는 느낌이다. (좋은 책에 어울리지 않는 너무 저렴한 표현일까?)
늘 궁금했던 부분이, 유럽은 로마 제국 멸망 이후 다시는 제국이 탄생하지 않았던 데 비해, 중국은 어떻게 이 거대한 나라를 5천 년 이상 유지해 왔는지였다.
중국 역시 로마가 게르만의 침략으로 무너졌듯, 5호 16국으로 대표되는 유목민족의 침략을 숱하게 받아 왔는데도 하나의 문화적 정치적 공동체로서 통일성을 이어온 게 너무 신기했다.
유럽에 기독교가 있다면 동아시아에는 유교와 한자문화권에 덧붙여 바로 이 화이사상과 조공-책봉 제도가 있지 않나 싶다.
중국의 시작은 황하 주변에서 유목민과 농경민이 잡거하던 시절부터 시작해 주나라가 성립되면서 왕이 다스리는 직할지가 예치라는 제도를 통해 점점 확대되어 나갔는데 높은 농경 생산력 덕분에 정치체제와 문화가 발달하면서 이른바 이적과는 분리가 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분리를 위한 구별이었으나 진시황으로 대표되는 황제권이 성장하면서 주변의 이족들을 문화적 포용을 넘어 직접 지배하는 세력권으로 포함시키기 위해 차별하는 화이사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중국이 항상 군사적 우위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는 다원적인 권력체가 존재한다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막기 위한 방편으로 조공-책봉제가 시행되었다.
중국으로서는 문화적 우월성을 내세워 이적들을 책봉하지만 내정은 자율에 맡겨 권위를 세우고 이적들 역시 중국의 책봉을 받음으로써 자국에서 정치적 위상을 높이는 윈윈 관계였던 셈이다.
물론 중국의 힘이 커지고 북중국의 혼란으로 점차 남하하게 되면서 주변국들은 중국의 직접 지배 체제로 편입되어 간다.
위진남북조 시대라고 하면 그저 혼란기라고만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중국의 세력권이 매우 확장된 시기였고, 특히 북중국을 지배한 전진의 부견이 중국인 황제 모델을 실제적으로 구현하려 했다는 점이 신기하다.
정말 부견이 비수전투에서 승리를 거둬 동진을 멸망시켰다면 오늘날 한족의 중국은 없었을까? 흥미로운 대목이다.
책 전체가 다 재밌지만 특히 낙랑군에 대한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
아직도 한4군은 중국 대륙에 있었고 평양의 낙랑군을 부정하는 이른바 재야 사학자라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 책에서는 매우 적극적으로 낙랑군의 중국 지배를 보여 주고 있다.
이족 지배에 대한 열망이 컸던 한 무제가 거의 유일하게 성공적인 중국식 군현 체제를 이식시킨 곳이 바로 낙랑이라는 것이다.
한나라의 힘이 약해지면서 낙랑은 점차 간접지배 형식으로 바뀌었으나 조위가 등장하면서 요동을 안정화 시키는 과정에서 낙랑군에 다시 한 번 지배력을 강화시켜 낙랑은 무려 400년 동안이나 안정적인 중국의 군현으로 남았고 그 후 고구려에 의해 멸망했으나 그 유민들은 고구려에 복속하지 않고 요동으로 넘어가 모용외에게 투항하게 된다.
그들은 왜 연으로 망명했을까?
저자는 낙랑을 일종의 무역거점으로 이해해, 낙랑의 지배층들은 중국과의 관계를 밀접하게 유지하면서 얻는 무역 이득이 컸기 때문에 안정적인 중국식 통치가 가능했고 고구려가 들어오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중국 쪽을 택했다고 설명한다.
요동으로 망명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낙랑이라는 지명을 유지했던 걸 보면 확실히 중국의 낙랑 지배는 다른 이적들의 변군과는 달랐던 것 같기도 하다.
오랫동안 미뤄왔던 책인데 아주 만족스럽고 흥미롭게 읽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