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와 중국 고대사
심재훈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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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좋은 책들을 많이 읽고 있어서 참 기쁘다.

어렵고 지루해 보이는 제목 때문에 신간 신청을 해 놓고서도 계속 미뤄 뒀던 책인데 큰 맘 먹고 빌리게 됐다.

600 페이지 정도로 두껍지만 청동예기에 새겨진 명문의 자세한 고찰 부분을 건너 뛰면 힘들지 않게 금방 읽을 수 있다.

저자가 번역했던 "고고학 증거로 본 공자시대 중국사회"를 어렵게 읽은 기억이 나는데 다시 읽으면 훨씬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문헌 자료의 의존도가 크고, 그마저도 고려 중기의 삼국사기가 가장 이른 시기의 역사서인 우리나라와는 달리, 중국은 선진시대 자료도 풍부하지만 무엇보다 땅에 묻혀 있는 고고학 증거들이 많아 출토 자료만 가지고 중국 고대사를 구성하는 학자도 있다고 한다.

마치 고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국가들 연구하는 것처럼 땅 속에 이렇게도 많은 고고학 자료들이 숨어 있었다니 정말로 놀랍고 흥미롭다.

상이 하남성과 산동 지역 일부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반면 주나라는 섬서성부터 산동까지, 즉 동서 융합의 문화적 일체감을 이루어냈는데 바로 이 책의 주제인 청동예기를 통해서라고 한다.

마치 고대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를 세우고 거대한 장제전을 지었던 것처럼 고대 중국인들도 청동예기를 만들어 신분차를 드러내는 예치 사회를 건국했던 것이다.

주나라는 진과 같은 거대한 통일 제국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최상류층의 문화적으로 동일한 정체성을 가졌고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청동 예기라 할 수 있다.

또 강력한 일원적 군사체제는 아니었다 해도 주 왕실을 필두로 연합군을 구성해 이족을 정벌하는 통치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주 왕실의 청동예기 문화에 동참하려는 욕구가 화이사상을 만들어 그 소속감으로부터 벗어난 이들은 이민족이 되고 그것을 모방하는 이는 중화민족 안에 편입됐다고 본다.

또 주가 융적의 침입을 받아 동쪽으로 왕실을 옮긴 후 진정으로 동서융합이 일어나 중화라는 세계가 완성됐다고 한다.

마치 남북조 시대가 혼란기이면서도 중국인들이 양자강 이남으로 그 세력을 넓혀갔던 것처럼 말이다.

서주 왕실의 정체성과 중국이라는 거대한 공동체의 형성, 그리고 청동예기의 역할과 화이사상에 대해 알 수 있는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다.

기자조선 전설의 주인공인 기족에 관한 이야기도 나와 흥미로웠다.

대릉하 유역과 산동 지방에서 발견되는 기족의 청동 명문을 근거로, 저자는 이들이 은나라가 망한 후 주 왕실에 의해 사민되었는데 친분이 있던 연나라, 즉 대릉하 일대로 이주했고 동방 정벌 때 산동으로까지 옮겨 갔으리라 본다.

훗날 한나라 사람들이 기족의 동천에 대해 당시 동북아 대표 세력인 조선으로 오인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흥미로운 해석 같다.

결국 은나라 사람 기자는 한민족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인가?

오늘날 중국의 패권주의는 정말로 싫지만, 중국 역사는 마치 화수분처럼 끝없는 호기심과 즐거움을 주는 것 같다.

일반인도 이해하기 쉽게 저자가 정말로 글을 잘 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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