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보스 - 디지털 시대의 엘리트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형선호 옮김 / 동방미디어 / 200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또 한 권의 리뷰를 올린다

사실 끝까지 다 읽지는 않았다

책을 읽을 때 제일 난감한 경우는 과연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을 필요가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다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이야 (사실 이런 경우는 드물지만) 쉽게 던져 버리지만, 같은 얘기를 계속 동어반복 하는 책을 대할 때는 참 고민스럽다

앞에 다 나온 얘긴데, 계속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혹시 또 다른 얘기도 있을지 모르니까 성실하게 읽어야 하는데, 뭐 이런 식의 고민들

책을 열심히 읽는가, 혹은 그렇지 않는가는 내가 저자의 생각에 얼마나 동의하느냐에 달린 것 같다

어려운 책은 읽기 힘들어서 대충 본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저자의 생각에 일단 거부감이 들면 그 때부터 글자가 눈에 잘 안 들어온다는 걸 새삼스레 깨달았다

미셸 푸코에 관한 책을 읽을 때 굉장히 어려웠지만, 워낙 감동스러워 (여기서 감동이란 소설 읽고 느끼는 그런 감동이 아니라, 저자의 날카로운 관계 분석에 경의를 표하는 것) 자를 들고 밑줄 그어 가며 열심히 읽었다

연습장에다 책 내용 기록해 가며 교과서 읽듯 여러 번 읽었다

그런데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지 못하는 책은 어쩔 수 없이 대충 읽게 된다

끝까지 읽는 건 대부분 저자의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서다

 

누군가의 리뷰에서처럼 이 책의 주제는 1장에 압축되어 있다

1장은 퍽 훌륭하다

보보가 어떤 개념인지 쉽지만 정확하게 밝혀낸다

어떤 책인지 궁금한데 시간이 없는 분은 1장만 읽어도 충분하겠다

그렇지만 저자의 서술 능력이 떨어지는 건 절대 아니다

다만 워낙 같은 얘기를 반복하다 보니 좀 지루하다는 것 뿐

아마도 보보라는 게 어떤 개념인지를 여러 예를 통해 제시하고 싶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저자 역시 통계보다는 주로 자신이 수집한 사례들을 중심으로 기술한다고 서문에서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 책들은 근거 대기에 어쩜 그렇게 철저한지, 단순히 자기 주장만 대충 늘어 놓는 책임없는 책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약간 다른 얘기이긴 하지만, 주장을 펼칠 때는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그 주장을 뒷받침 하는 근거를 분명히 대야 한다 과학적으로는 밝힐 수 없는 신비한 것이다는 식의 말뿐인 현학적인 논리들, 적어도 의학에서는 이런 태도를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간단히 말하면 보보란 부르주아와 보헤미안의 합성어로, 세속적인 성공을 지향하면서도 드러내 놓고 즐기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다

부르주아의 특징인 물질적인 성공과 보헤미안의 특징인 자유로움, 혹은 정신적인 가치의 추구가 합해져 오늘날 보보를 탄생시켰다

책 표지에 나와 있는데로 보보스란 바로 디지털 시대의 엘리트를 지칭한다

요즘 유행하는 웰빙도 바로 보보스의 핵심적인 특징 중 하나다

유기농만 먹고 요가를 즐기고 오지 체험을 하는 식의 라이프 스타일 말이다

저자의 미덕은 본인이 보보이면서 오늘날의 지배 이념이라고 정의하면서도, 그 속물적인 근성까지 함께 밝힘으로써 균형적인 시각을 유지하려고 애쓴다는 점이다

"속물적인 근성"이란 이런 것이다

휴가를 떠나도 리조트 이런 데로 가면 부르주아다

보보스는 라틴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혹은 인도 등의 오지로 떠나야 한다

단순히 여행 자체를 즐기면 안 되고, 극한 체험을 통해 뭔가 정신적이고 영적인 것을 얻으려고 해야 보보답다

물건을 사도 너무 새 것을 사면 부르주아처럼 보이니까, 적당히 낡은 느낌을 주는 걸 골라야 한다

(그래서 일부러 새 것을 헌 것처럼 보이게 파손시키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생긴다)

 

과거 부르주아 시대에 권력은 가문에서 나왔다

집안이 좋으면 대부분 출세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는 교육의 시대다

아이비 리그의 대학들은 이제 좋은 가문의 자제들을 받아 들이는 대신, SAT에서 높은 성적을 받은 우수한 학생을 선호한다

(저자는 이 변화야 말로 미국을 보다 강하게 만든 핵심이라고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학벌 지상주의 내지는 엄청난 교육열도 반드시 부정적인 면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과거 미국을 이끈 WASP 계층의 힘이 혈통, 재산, 군사적 힘 등에서 나왔다면 현제 미국의 지배 계층을 결정하는 요소는 대학, 학위, 사회적 경력, 부모의 직업 등이라고 한다

(강남 엄마들의 치맛바람이 시대적 대세인 모양이다)

 

재밌는 일화 하나

어떤 이가 영국 작은 마을의 대학을 나왔습니다, 라고 말하면 그가 보보스일 경우 그 대학은 이튼 스쿨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영국으로 쫒겨 가서 대학 생활을 했다면, 그가 보보스일 경우 로즈 장학생이라는 걸 은근히 암시하는 말 (클린턴처럼 로즈 장학생에 선발되면 옥스퍼드에 유학 갈 수 있다)

이처럼 보보스는 자기가 성취한 것을 자랑스러워 하나, 남에게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말함으로써 스스로의 정신적 가치를 높힌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예인지는 모르겠는데, 배낭 여행 갔을 때 두 여학생이 자기들은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 다닌다고 소개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둘 다 서울대 법대생이었음)

 

미국에서 혼전임신이 늘고 마약이 판을 치는 등, 어찌보면 자유롭고 어찌보면 타락한 문화가 난무했던 까닭은 부르주아에 대항하는 보헤미안 문화 탓이었다고 한다

이제 보보들은 과거 보헤미안의 무절제한 자유를 거부한다

대신 그들은 부르주아처럼 종교적, 혹은 도덕적 규범으로 자신들을 규제하는 게 아니라,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위해서 절제한다

혼외정사를 안 하는 건 교회에서 가정에 충실하라고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에이즈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고, 담배를 안 피우는 것도 도덕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에 나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일도 도덕적, 종교적 규제가 수반되면 무조건 거부하고, 아무리 나쁜 일도 정신적 영적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반드시 한다

그들을 규제하는 게 사회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미국은 다른 어느 세대 보다도 금욕적이고 청교도적이라고 한다

 

한 때 자유로움, 창의성, 모험 정신 등이 도덕, 종교, 근면함 등 과거 덕목들 보다 가치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과거란 무조건 고리타분하고 잘못된 것이고, 특히 전통이란 거부할수록 좋은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결국 우리 세대가 내세우는 가치나 이념 역시 하나의 트렌드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표적인 게 요즘은 말 자체의 격이 떨어져 버린 바로 그 웰빙 아니겠는가!!

(광고에 넘쳐 나는 그 놈의 웰빙 홍수를 보면 자본주의 시대는 이념도 판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부터 우리나라 사람이 쓴 미국 문화 탐방기 등을 읽지 않게 됐다

사실 나는 미국 문화에 대해 동경이 강한 편인데 (정확히 말하자면 인권이나 사회적인 분위기 등이 우리보다 성숙했다고 생각했다) 그 까닭은 미국을 소개하는 책자들 때문이었다

미국 사회를 분석하는 책들은 대체적으로 감탄하고 그 우월성을 우리에게 훈계하는 식이다

비판하는 책들은 너무나 도덕적인 기준을 들이대며, 미국은 사실 타락한 자본주의 국가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웃는지라 공감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미국인이 직접 쓴 미국 사회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보다 정확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요즘 나의 결론은 민족성이 나빠서, 혹은 훌륭해서라는 식의 관점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인 부의 축적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시민 의식의 성숙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미국 역시 우리와 비슷한 시행 절차를 먼저 겪었을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미국은 이러지 않는데 우리는 이게 뭐냐, 혹은 미국 같으면 안 그런다 식의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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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평전
정규웅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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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TV에서 나혜석의 일생을 조명할 때가 있다

아마 그녀가 갖는 다양한 의미들 때문일 것이다

한 마디로 얘깃거리가 많다고 해야 하나?

항상 그렇지만 대부분의 책이나 프로그램에서 나혜석에 관한 이야기는 그림 자체 보다는 그녀 삶의 비극성에 초점을 맞춘다

조선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라는 화려한 타이틀과, 시립병원에서 행려병자로 죽은 말년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후 춘원 이광수를 비롯, 조선 유학생들 사이에서 많은 흠모를 받았다고 하길래 그녀가 아주 미인일 거라고 상상했는데 의외로 사진을 보니 평범하다

요즘 기준으로 보자면 촌스러운 (좀 경망스런 표현이긴 하지만) 20세기 초의 평범한 여성이다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최승희의 요염하고 매혹적인 흑백 사진과 비교된다

그녀가 여러 남성들에게 흠모의 대상이 됐던 것은 외모보다는 그림을 그리는 동경 유학생이라는 게 더 크게 작용했을 것 같다

 

어쨌든 젊은 시절은 무척이나 화려했다

구한말 여자가 학교에 다니는 것만 해도 대단한데, 서양 그림을 그리고, 거기다 일본으로 유학까지 떠났으니 말이다

일본 유학은 남자들도 쉬운 일이 아닌데 당시로서는 최고의 엘리트였던 셈이다

아버지가 큰 부자였는데 특별히 개화 사상을 가져서 그런 건 아니라고 한다

그녀의 둘째 오빠가 깨인 사람이라 여동생들의 유학을 강력하게 주장해서 이뤄진 것이다

어찌 됐든 4남매가 모두 일본으로 유학을 갔으니, 대단한 집안이 아닐 수 없다

 

역시 이야기의 핵심은 최린과의 스캔들에 있다

남편 김우영이 일본의 배려로 세계 여행을 떠나게 되서 파리에 머무는 중 18살이나 많은 최린과 바람이 난다

당시 남편은 베를린에서 법학을 공부하는 중이었고, 나혜석은 파리에서 그림을 공부했다

파리에 조선 여자가 나타난 것만으로도 화제가 될텐데, 세력가인 최린과 바람이 났으니 파리의 조선 사회가 그 문제로 시끌벅적했다고 한다

그런데 웃긴 건 남편이 그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처음에는 관대하게 넘어가 두 부부는 파리에서 넷째를 임신하기까지 한다

 

왜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때 일이 문제가 되어 이혼까지 갔을까?

이 책은 소설 형식인데 여기 나오는 얘기들은 대부분 나혜석이 신문에 발표한 것들을 기초로 한다

그녀의 얘기를 들어 보면 순진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유부녀가 잠시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났어도 오히려 그것을 계기로 남편에게 더 잘 하면 부부간의 사랑은 두터워질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주장하나

말하자면 바람 피운 게 결혼 생활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식이다

바람핀 남자들의 뻔뻔한 변명으로, 21세기에도 통용되지 않을 이 말이 1920년대에 조선 여자로부터 나왔다는 게 참 놀랍다

그녀가 예술가이기 때문일까?

작가의 추론으로는 그녀가 남편에게 직접 그 얘기를 했을 거라고 한다

참,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뻔뻔하다고 해야 할지...

 

어쨌든 유럽에서는 임신까지 하고 무사히 귀국했으나 결국 이혼까지 간데는 나혜석이 다시 최린에게 사귀자고 보낸 편지에 책임이 있다

남편이 부인의 떠들석한 스캔들을 눈감아 줬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이유로 부유한 최린에게 다시 사귀자고 편지를 띄운다

최린이 자신과 가족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줄 거라 기대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할 수 있는지, 좀 이해가 안 간다

그녀는 남편과 이혼할 생각도 없었고, 남편이 변호사로 개업 후 일이 안 풀려 시댁이 어려움에 처하자 이런 편지를 썼다고 한다

물론 최린이 세력가이긴 하지만 지고지순한 사랑에 빠진 것도 아니고, 잠깐 외국에서 바람핀 유부녀의 생계를 돌봐 준다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겨우 4개월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 최린이라는 놈도 나쁜 놈이다

나혜석이 그런 철없는 편지를 보내 왔으면 점잖게 거절했으면 될 일을, 친구를 시켜 김우영에게 아내 단속 잘 하라고 훈계를 한다

열받은 김우영은 결국 나혜석에게 이혼을 강요하고 바로 새장가를 든다

웃긴 건 아직 이혼이 성립하지 않았는데도, 버젓이 새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는 것이다

김우영은 이미 나혜석과 결혼할 때 두 번째였는데, 그 후로도 두 번이나 결혼을 더 해서 총 4회의 결혼 전력을 갖는다

나혜석과의 결혼 당시 사진을 보면 평범하게 생긴 나혜석과는 달리 점잖고 부드러운 멋쟁이 신사답다

시어머니를 모시지 않고, 자신의 예술 활동을 후원해 주며, 죽은 첫사랑의 (최승구) 무덤에 비석을 세워 달라는 걸 결혼 조건으로 내세운 나혜석을 아내로 맞아 들인 점이나 (그는 아내의 예술 활동에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 네 번째 결혼한 여자가 독립운동가인 양한나 (해방 후 부산에 경찰서를 창립하고, YWCA를 세우는 등 사회 활동이 활발했다) 등인 걸 보면 그도 퍽 열린 사고방식을 가진 것 같다

 

그렇지만 네 번이나 결혼을 하고 (첫부인과는 사별) 나혜석과의 이혼 과정에서 단 한 푼의 재산도 주지 않은 채 쫒아낸 뒤 아이들과의 접근도 막은 걸 보면, 역시 시대적인 한계성을 갖는 인물이라 하겠다

나혜석은 이혼을 하긴 했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이혼고백장을 잡지에 (삼천리) 실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한다

요즘 같으면 여성지에 이혼 후 심경 고백 등을 기고했다고 할까?

지금도 이혼한 여자가 억울하다고 잡지에 글 쓰면 일단 삐딱한 시선으로 보기 마련인데, 1920년대 상황이 오죽 했으랴 싶다

나혜석을 대담하게도 자신의 불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왜 남자는 혼외정사를 가져도 되는데 여자는 안 되냐고 반문한다

또 비록 불륜을 저지르긴 했으나 재산은 둘이 이룬 것이므로 절반을 내 놓라고 한다

최린에게도 유부녀의 정조를 유린했으니 위자료를 내 놓으라고 소송을 건다

사회적 명망이 손상되는 걸 우려한 최린은 재판으로 가기 전에 합의금을 지불하고 끝낸다

 

시대를 완전히 앞서 간 여인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재능이 뛰어나는 수 밖에 없다

적당히 훌륭해서도 안 되고, 탁월할 정도로 뛰어나야 비로소 세상의 편견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불행히도 나혜석의 예술적 재능은 세상의 편견과 질시를 이겨낼 만큼 탁월하지는 않았다

김우영과 이혼 후 조선미전과 일본 제전 등에 입선하던 촉망받는 화가의 그림은 형편없는 평가를 받아 생계마저 위협하게 된다

여학교 교사 자리 등이 났는데도 이상하게 나혜석은 방랑벽이 있어 정착을 못한다

최린에게 받은 돈을 가지고 파리로 떠나려고 하지만, 건강이 악화되고 좀 더 많은 돈을 모으고자 그린 그림들이 혹평을 받으면서 나혜석은 급속히 몰락해 간다

오빠 집에 의탁하기도 하고 절을 떠돌기도 하는 등 정착을 못하다가 결국 그녀는 시립병원에서 불행한 인생을 마감한다

 

다른 건 몰라도 저자의 말대로 그녀가 취한 일련의 행동들이 사회적으로 지지를 받았더라면 그녀의 예술성이 그토록 참혹하게 짖밟히지는 않았을 것 같다

요즘 같으면 시대를 선도하는 페미니즘 화가라고도 불릴 만 한데, 나혜석이 살았던 시대는 불행히도 1920-30년대다

시대를 초월하는 위대한 예술가가 아닌 이상, 어느 정도는 살고 있는 시대와 사회에서 제시하는 기준을 받아 들여야 하는 법인데, 나혜석이 그 점을 가볍게 생각한 것 같다

어쨌든 조선 최로의 여류 서양화가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슬픈 삶을 산 나혜석이 그나마 요즘 와서 그 일생을 조명받고 있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녀의 예술 보다는 불행한 일생에 초점을 맞추기는 하지만 말이다

책 표지에는 전혜린 보다 먼저 나혜석이 있었다고 하던데, 전혜린 보다 훨씬 더 비극적인 삶을 산 것은 그녀가 한 세대 앞에 살았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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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문자, 알파벳
존 맨 지음, 남경태 옮김 / 예지(Wisdom)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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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어렵다

갱지 같은 가벼운 종이를 사용해서 400페이지나 되지만 무척 가벼운 게 마음에 들어 집어 들었는데, 생각보다 어렵다

일단 그림이 한 장도 없기 때문에 알파벳의 발전 역사를 글을 읽으면서 추론할 수 밖에 없다

알파벳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대단히 궁금한 사람이거나, 유럽 역사에 정통한 분이 아니라면 과히 일독을 권하지는 않겠다

번역은 "종횡무진 서양사 & 동양사"를 쓴 남경태 씨가 맡았는데, 꼼꼼한 각주가 돋보인다

그렇지만 저자가 워낙 복잡한 이야기를 어렵게 써서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어제 읽은 이집트 책에서 보듯, 알파벳의 기원은 수메르 문자나 상형 문자에서 비롯됐다

그 문자들이 알파벳으로 변형됐다기 보다는, 말을 글로 남긴다는 혁명적인 발상을 전수받은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겠다

저자는 알파벳이 언제 최초로 등장해서 오늘날의 위치에 이르렀는지를 방대한 역사적 자료를 거론하며 설명한다

그런데 오늘날 유럽 국가들의 대부분이 자신들의 언어를 알파벳을 이용해 표기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거의 모든 유럽 국가의 역사들이 들먹여진다

유럽 역사에 어느 정도 식견이 있지 않다면 무슨 얘기인지 조차 알기 어려울 정도로 난해하다

 

그나마 이 책에서 반가웠던 것은 한글에 대한 설명이 따로 한 장으로 독립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실 내가 제일 관심있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알파벳처럼 수천년의 역사를 가지로 기존의 것을 변형시켜 문자를 만들어 온 것은 이해가 가는데, 도대체 한글이란 문자는 어느 날 갑자기 새롭게 만들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

아무 것도 참조하지 않고 문자를 만든다는 발상 자체가 여간 신비로운 게 아니다

(물론 옛 가림토 문자나 위구르 문자 등을 참조했다는 건 알지만 결정적인 근거는 될 수 없다고 본다)

저자가 이 부분에 대해 실증적인 논증을 해주길 바랬는데, 실망스럽게도 자세한 논증은 없다

다만 한글이 얼마나 우수한 글자인지에 관해 감탄할 뿐이다

아마도 저자는 한글에 대해서 구체적인 지식이 없는 것 같다

전공하지 않는 학자라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래도 한글이 세계 언어학자들 사이에서 최고의 문자이고,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인정받는다는 걸 알게 되서 뿌듯하다

(활자를 좋아하는 나는 세종대왕에게 늘 감사한다 그 분이 한글을 발명하지 않았더라면, 그 어려운 한자로 책을 읽어야 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기독교도로서 받아들이기 난처한 부분이 이 책에서도 나온다

나는 기독교도이지만 성경을 있는 그대로 (즉 쓰여진 그대로) 믿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문학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21세기의 보편적인 이념를 믿는 나로서는 괴롭지 않을 수가 없다

세상이 7일만에 창조됐고, 곧 말세가 닥칠 거라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에 동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들은 오히려 해결하기 쉽다

워낙 분명하게 과학적으로 논증된 문제들이기 때문에 재론의 여지가 없는 셈이다

그러나 모세의 이집트 탈출이라든가, 가나안 입성 등의 구체적인 역사적 기록으로 들어가면 괴로워진다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출애굽" 사건을 상당히 부정하는 편이다

이 책의 저자 역시 모세가 실존 인물인지조차 의심스럽다는 입장이고, 현존했다면 "출애굽"은 성경에 기록한 것처럼 엄청난 대사건이 아니라 이집트 역사에는 기록할 가치조차 없는 노예들의 작은 반란에 지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역사학자나 고고학자들은 구약 성경을 유태 민족의 신화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다른 여러 나라의 정황들이나 고고학적 발굴 결과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를 우려해서 중세 시대에는 성경을 읽는 것 자체가 금지였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스라엘에 알파벳이 전해진 과정을 기술한 부분은 나를 무척 곤혹스럽게 했다

(내 믿음이 부족한 건 아닐까, 이런 생각도 했다!!)

 

그 외에도 이탈리아에 먼저 살았던 에트루리아인들의 문자라든가, 크레타 섬의 선형 B 문자, 중국의 한자까지 다양한 지역들의 문자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저자의 결론은 알파벳이란 여러 문화의 복합적인 발명품이고, 또 글을 표기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체계이기 때문에 미국의 영향력은 차치하고서라도 결국 이 문자가 세상을 지배하리라는 것이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로 고대 로마인들조차 알 수 있는 키보드를, 중국인들도 익히는 걸 보면 고유 문자 체계는 알파벳과 협력해야만 존속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이 과장은 아닌 것 같다

역자의 서문에서도 밝혔지만 영어 공용화 논란은 단순히 민족주의적 관점에서만 볼 일은 아닌 듯 싶다

이제 한글도 알파벳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시점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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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자와 함께하는 이집트 역사기행 - 서해컬처북스 4
요시무라 사쿠지 지음, 김이경 옮김 / 서해문집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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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도 읽을까, 말까 고민을 한 책이다

이집트 역사에 관한 책이라 오래 전부터 내 눈길을 끌긴 했는데 저자가 일본인이라 좀 망설였다

여태까지 내가 본 일본 번역서들은 자기 계발류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솔직히 신뢰가 안 갔다

누군가도 지적했지만, 세세하게 행동 하나하나까지 이렇게 하라고 제시해 놓은 자기 계발류를 보면 유치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집트 연구는 서구 사람들이 쓴 책이 더 전문적일 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몇 번 망설이다 집어든 책인데, 내 걱정이 기우였음이 드러났다

정말 재밌고 아주 유익한 책이다

 

이집트 역사하면 피라미드와 미라, 혹은 클레오파트라가 전부이다

이미 쇠잔해 버린 고대 문명이기 때문에 그리스 로마 문화와는 달리 후손들에게 전승되지 않고 잊혀졌다고 생각했는데, 잘못된 생각임을 알게 됐다

기원전 5천년 전부터 (얼마나 아득한 옛날인지!!) 나일강을 사이에 두고 찬란한 (진부한 표현이지만 제일 적합한 말이기도 하다) 고대 문명을 꽃피운 이 놀라운 문화가 계승되지 않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지도 모른다

요즘 읽고 있는 알파벳의 역사에도 나오는 말이지만, 학자들은 알파벳의 기원을 이집트의 상형문자에서 찾고 있다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상형문자는 표의 문자도 있고 표음 문자도 있다

이 고난이도의 상형문자를 발음하는데로 쓰기 쉽게 개선한 문자가 바로 알파벳이다

이집트와 상거래를 했던 페니키아인들에 의해 발전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미이라와 피라미드에 얽혀 있는 그들의 내세관이다

이집트인들은 왜 시신을 미이라로 만들었을까?

건조하고 더운 기후 때문에 미이라가 되기 쉬운 환경도 있지만, 보다 고차원적인 내세관이 숨어 있다

그들은 인간이 세 부분으로 구성됐다고 생각했다

"아크트"라는 육신과, "바"라는 혼과, "카"라는 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바"는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개념이지만 "카"는 과연 무엇인가?

(정령으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이슬람의 6대 믿음 중에도 이 정령이 있다 사실 정확한 개념은 잘 모르겠다)

이집트학 학자인 저자도 어려워 한 이 개념은 간단히 말하자면 인간이나 기타 사물들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죽으면 혼은 사후 세계로 간다

미트 여신이 자신의 깃털과 망자의 심장을 천칭 저울에 올려 놓아 평형을 이루면 영생을 누리고, 죄가 많을 경우 심장 쪽으로 기울어지면 영원한 죽음을 맞게 된다

(그러므로 미라를 만들 때 다른 장기는 다 꺼내도 절대 심장을 꺼내면 안 된다고 한다 심장이 없으면 무엇으로 사후 세계에서 심판을 받겠는가?)

즉 고대 이집트에는 지옥의 개념이 없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육신의 죽음과 동시에 영혼도 죽을 뿐이다

(이 개념은 여호와 증인교와도 일치한다)

 

그렇다면 영생을 얻게 된 사람의 영혼은 어떻게 되는가?

한번 사후 세계로 간 "바"는 다시 현세로 돌아올 수 없다

이 때 지상에 남아 있던 그 사람의 본질, 즉 "카"가 다시 육신으로 돌아가, 죽은 사람은 부활하게 된다

그러므로 영생을 얻게 될 경우 "카"가 돌아갈 육신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미라가 만들어진 근원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껏 영생을 얻었는데 돌아갈 육신이 이미 썩어 버리면 영혼이 머물 곳이 없어지지 않겠는가?

이 "카"의 개념은 플라톤에게 전수되어 이데아로 발전한다

사람의 본질을 밝힌 "카"의 개념은 실로 위대한 이집트 철학이 아닐 수 없다

찬란한 고대 이집트 문명은 그리스에 전파되어 서구 문명 발전에 이바지 하고,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기여하고 있다

 

이보다 더 파격적이고 놀라운 주장은 기독교에 있다

예수가 헤롯의 박해를 피해 10살 때까지 이집트에서 살았다는 사실은 성경에 기재되어 있다

이 때 예수가 이집트 사상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또한 유일신 사상이라든가, 처녀의 수태 같은 교리는 모두 이집트 신학에 등장하는 내용들이다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에서 같은 주장을 본 적이 있는데, 지나친 비약 같아 읽다 만 적이 있다)

이집트 신왕국 시대에 아크나톤은 아톤을 유일신으로 섬기는 파격적인 정책을 단행한다

저자는 이 유일신 신앙을 종교 개혁보다 더 위대하고 놀라운 발상으로 본다

사실 살아 있는 모든 동물들을 신으로 섬기고 (동물 그 자체를 섬긴 게 아니라, 동물을 신의 형상으로 의인화 시킴) 수백만의 신을 받드는 (무려 8백만이나 됐다고 한다) 이집트인들에게 신은 단 하나라는 생각은 가히 혁명적인 발상일 것이다

저자는 이 유일신 사상이 히브리인들에게 전파되어, 야훼가 유태 민족을 선택한 게 아니라 유태 민족이 수많은 신 들 가운데 야훼 신을 택한 것이라고 본다

기독교인이 고고학서나 역사서를 읽는다는 건, 이럴 땐 참 고역이다

 

카터의 투탕카멘 묘 발굴 이야기는 흥미를 넘어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초등학교 밖에 안 나온 카터의 이집트 사랑은 놀랍기 그지 없다

자신의 전 생을 바쳐 추구한 일이 인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라면, 그 보다 더 보람되고 가치있는 삶은 없을 것이다

카터의 발굴을 후원한 카나본 경의 열정도 놀랍고, 그 외 고고학 발전에 이바지한 수많은 학자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돈 되는 학문도 아니고, 어찌 보면 쓸모없는 짓일지도 모르는 일을 인류 문명의 태초를 밝힌다는 신념 하나로 사막을 파고 있을 그들의 열정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이 책의 저자 역시 피라미드의 건축법을 밝히기 위해 이집트 사막에서 1/4 크기로 피라미드를 옛날 방식대로 짓기까지 했다

또 쿠푸의 무덤에서 태양선을 발굴한 뒤 실제 그 배가 떴는지, 아니면 의식용 배인지를 밝히기 위해 직접 제작해 나일 강에 띄워 보기도 한다

문헌으로만 공부하는 고고학은 불완전하다는 신념으로 1년에 석 달은 이집트 모래 사막을 파헤치는 저자의 실증주의적 연구 방법에 박수를 보낸다

 

와세다 대학 교수인 저자는 일본에서는 이집트학으로 책도 많이 내고 TV 출현도 자주 하는 모양이다

그는 이 책이 문헌 몇 개 뒤져 적당히 짜집기 해서 이집트 소개하려는 책이 아니라, 직접 발로 뛰면서 얻은 지식들을 정리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저자의 이 말에 깊히 공감할 만큼 아주 체계적이고 성실한, 또 곳곳에 이집트 사랑이 묻어 있는 훌륭한 책이다

특히 대중을 위한 글쓰기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이집트 역사에 대해, 혹은 피라미드가 진짜 무엇인지에 대해 (피라미드는 왕들의 무덤이 아니라는 게 정설이다), 혹은 인류 문명의 시작을 연 찬란한 고대 문명에 대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적극 권하고 싶다

사라져 버린 줄 알았던 고대 문명이 여전히 우리 생활 속에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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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 튤립의 땅, 모든 자유가 당당한 나라
주경철 지음 / 산처럼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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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 바람 불어서 급조한 책이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기우임이 밝혀졌다

아주 재밌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네덜란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쉽게 쓰여진 책이다

특히 네덜란드 역사 부분은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데 읽고나면 대충 유럽 역사는 감이 잡힌다

역시 저자가 누군인가가 중요한 것 같다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라는 타이틀 답게 수준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네덜란드에 대한 인상은 관용과 타협이었다

관용이라는 단어는 가벼운 마약은 정해진 장소에서 복용해도 된다는 특이한 제도를 알았을 때부터 느끼던 바다

알콜보다 금단 증상이 더 적다는 이유로 soft drug은 일명 커피숖에서 금단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는 methadone과 함께 판매된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서 뭐라고 왈가왈부 해도 타 국가에 비해 마약 중독률이 탁월하게 낮기 때문에 네덜란드 당국은 이 제도를 계속 밀고 나가고 있다

문제 해결에 대한 인식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리 마약 중독률이 낮다 해도 버젓이 시내 한복판에서 마약을 팔 수 있다니, 대단한 나라가 아닐 수 없다

교도소 정책이나 장애인 섹스 써비스에서도 이러한 발상의 전환은 돋보인다

 

교도소에 들어가면 전화, TV 등을 설치하고 신문까지 배달받을 수 있다고 한다

교도소란 범죄의 댓가로 개인의 자유를 박탈당할 뿐이지, 삶의 질까지 떨어뜨릴 수는 없다는 개념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인권을 존중하는 희한한 교도소가 유지된다

뭐가 옳은 것인지는 사회를 구성하는 성원들의 가치관에 따라 결정된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정당한 행위인가를 판단하기 전에, 이러한 사회적인 합의를 도출해내는 네덜란드 사회는 확실히 타인이나 기타 다른 사안들에 대해 관용적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태도는 군 대체 복무에서도 잘 나타난다

지금은 모병제로 바뀌었지만, 징병제가 시행되던 당시 신념에 의한 군 복무 거부를 인정하고 그에 상응하는 기간 동안 대체 복무를 허용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와 일률적으로 비교하는 건 곤란하겠지만, 어쨌든 군 복무 거부를 개인의 신념이라고 인정해 주는 사회적 분위기는 확실히 우리 사회와는 다른 것 같다

(그런데 심지어 이 대체 복무마저 결국은 군대에 가서 총을 집는 것과 똑같다는 이유로 거부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 경우에는 더 이상 용납하지 않고 군 복무 기간 동안 교도소에 수감한다)

네덜란드 군대는 두 가지 목표를 가진다

첫째는 국토 방위, 두번째는 평화 수호

우리 나라 군대도 인류의 평화 수호라는 이념을 갖는지 모르겠는데, 확실히 자국의 안녕만을 추구하던 시대는 지난 것 같다

요즘처럼 파병이 잦은 시대에 군대의 유지 목적에 대해 우리도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장애인의 섹스 써비스는 참 독특한 문화가 아닐 수 없다

장애를 가진 사람도 섹스를 즐길 권리가 있다

그러므로 국가에서 기본적인 생활비를 대 주듯, 섹스 도우미를 파견해 성적 욕구까지 충족시켜 준다

장애자에 대한 국가의 배려 중에 섹스 문제까지 포함되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네덜란드는 우리처럼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인지라 (네덜란드 세계 3위, 우리나라 2위) 집값이 워낙 비싸 집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부유한 사람들은 집을 몇 채씩 가지고 있다

이 빈 집에 집없는 사람들이 들어가 살기 시작했고 이것은 사회적인 문제로 떠올랐다

정부에서는 집이 나가기 전까지는 빈 집에 사는 것을 허락하고, 대신 집주인에 대해서는 일정한 액수를 보상해 주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이것에 관한 기사는 몇 년 전 주간지에서 소개된 걸 본 적이 있다

그 때는 왜 남의 집을 점령하는 걸 정부가 강력히 규제하지 못할까, 의문스러웠다)

우리나라 같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개인의 소유권을 침해한다고 신문에서 먼저 들고 일어나지 않았을까?

이걸 정부에서 강력하게 규제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의 위기 내지는 파퓰리즘의 전형이라고 신문 사설에서 먼저 비난하고 나서지 않을까??

 

식민지를 지배하고, 산업혁명이 일어나던 근대 네덜란드의 역사를 읽으면 비민주적인 정치와 인권 억압 사례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

특히 어린이들의 노동 시한은 하루 14시간으로 제한한다는 정책이 발표된 부분을 읽을 때는, 참 세상 많이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유럽의 복지 정책이나 인권 현황을 보면 부러울 때가 많은데, 그들의 과거 역사를 알게 되면 결국 사회의 발전에 의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민족성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사회가 발전하면서 그 분위기도 성숙한다는 느낌이 든다

"한국인은 이래서 안 돼" 내지는 "원래 우리 민족은 뭉치질 못하고 분열하길 좋아한다" "한국인은 맞아야 말을 듣는다" 등의 발언은 아주 위험하고 무지한 소리라는 걸 알 수 있다

선진국으로 진입한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 발전만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사회 각 분야의 성숙도 포함되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외국인 노동자 문제나 군 대체 복무 문제, 혹은 사상의 자유 등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난제들에 대한 보다 성숙한 토론이 활발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타 문화권에 대한 일방적인 찬사나 비난은 읽는 사람을 괴롭게 만든다

본인이 그 나라에서 받은 느낌이 강렬하다 보면 한 쪽으로만 치우치게 마련인데, 이 책은 균형잡힌 시각이 돋보인다

또한 저자가 네덜란드어를 배우고 그 역사에 대한 논문까지 썼을 정도로 네덜란드에 정통한 분이라 내용의 깊이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내용은 아주 쉽고 재밌다

대중을 위한 글쓰기를 아시는 분 같다

히딩크 때문에 네덜란드에 관심이 생긴 분이라면 읽어 보라고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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