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자와 함께하는 이집트 역사기행 - 서해컬처북스 4
요시무라 사쿠지 지음, 김이경 옮김 / 서해문집 / 2002년 11월
평점 :
품절


사실 이 책도 읽을까, 말까 고민을 한 책이다

이집트 역사에 관한 책이라 오래 전부터 내 눈길을 끌긴 했는데 저자가 일본인이라 좀 망설였다

여태까지 내가 본 일본 번역서들은 자기 계발류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솔직히 신뢰가 안 갔다

누군가도 지적했지만, 세세하게 행동 하나하나까지 이렇게 하라고 제시해 놓은 자기 계발류를 보면 유치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집트 연구는 서구 사람들이 쓴 책이 더 전문적일 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몇 번 망설이다 집어든 책인데, 내 걱정이 기우였음이 드러났다

정말 재밌고 아주 유익한 책이다

 

이집트 역사하면 피라미드와 미라, 혹은 클레오파트라가 전부이다

이미 쇠잔해 버린 고대 문명이기 때문에 그리스 로마 문화와는 달리 후손들에게 전승되지 않고 잊혀졌다고 생각했는데, 잘못된 생각임을 알게 됐다

기원전 5천년 전부터 (얼마나 아득한 옛날인지!!) 나일강을 사이에 두고 찬란한 (진부한 표현이지만 제일 적합한 말이기도 하다) 고대 문명을 꽃피운 이 놀라운 문화가 계승되지 않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지도 모른다

요즘 읽고 있는 알파벳의 역사에도 나오는 말이지만, 학자들은 알파벳의 기원을 이집트의 상형문자에서 찾고 있다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상형문자는 표의 문자도 있고 표음 문자도 있다

이 고난이도의 상형문자를 발음하는데로 쓰기 쉽게 개선한 문자가 바로 알파벳이다

이집트와 상거래를 했던 페니키아인들에 의해 발전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미이라와 피라미드에 얽혀 있는 그들의 내세관이다

이집트인들은 왜 시신을 미이라로 만들었을까?

건조하고 더운 기후 때문에 미이라가 되기 쉬운 환경도 있지만, 보다 고차원적인 내세관이 숨어 있다

그들은 인간이 세 부분으로 구성됐다고 생각했다

"아크트"라는 육신과, "바"라는 혼과, "카"라는 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바"는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개념이지만 "카"는 과연 무엇인가?

(정령으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이슬람의 6대 믿음 중에도 이 정령이 있다 사실 정확한 개념은 잘 모르겠다)

이집트학 학자인 저자도 어려워 한 이 개념은 간단히 말하자면 인간이나 기타 사물들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죽으면 혼은 사후 세계로 간다

미트 여신이 자신의 깃털과 망자의 심장을 천칭 저울에 올려 놓아 평형을 이루면 영생을 누리고, 죄가 많을 경우 심장 쪽으로 기울어지면 영원한 죽음을 맞게 된다

(그러므로 미라를 만들 때 다른 장기는 다 꺼내도 절대 심장을 꺼내면 안 된다고 한다 심장이 없으면 무엇으로 사후 세계에서 심판을 받겠는가?)

즉 고대 이집트에는 지옥의 개념이 없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육신의 죽음과 동시에 영혼도 죽을 뿐이다

(이 개념은 여호와 증인교와도 일치한다)

 

그렇다면 영생을 얻게 된 사람의 영혼은 어떻게 되는가?

한번 사후 세계로 간 "바"는 다시 현세로 돌아올 수 없다

이 때 지상에 남아 있던 그 사람의 본질, 즉 "카"가 다시 육신으로 돌아가, 죽은 사람은 부활하게 된다

그러므로 영생을 얻게 될 경우 "카"가 돌아갈 육신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미라가 만들어진 근원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껏 영생을 얻었는데 돌아갈 육신이 이미 썩어 버리면 영혼이 머물 곳이 없어지지 않겠는가?

이 "카"의 개념은 플라톤에게 전수되어 이데아로 발전한다

사람의 본질을 밝힌 "카"의 개념은 실로 위대한 이집트 철학이 아닐 수 없다

찬란한 고대 이집트 문명은 그리스에 전파되어 서구 문명 발전에 이바지 하고,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기여하고 있다

 

이보다 더 파격적이고 놀라운 주장은 기독교에 있다

예수가 헤롯의 박해를 피해 10살 때까지 이집트에서 살았다는 사실은 성경에 기재되어 있다

이 때 예수가 이집트 사상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또한 유일신 사상이라든가, 처녀의 수태 같은 교리는 모두 이집트 신학에 등장하는 내용들이다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에서 같은 주장을 본 적이 있는데, 지나친 비약 같아 읽다 만 적이 있다)

이집트 신왕국 시대에 아크나톤은 아톤을 유일신으로 섬기는 파격적인 정책을 단행한다

저자는 이 유일신 신앙을 종교 개혁보다 더 위대하고 놀라운 발상으로 본다

사실 살아 있는 모든 동물들을 신으로 섬기고 (동물 그 자체를 섬긴 게 아니라, 동물을 신의 형상으로 의인화 시킴) 수백만의 신을 받드는 (무려 8백만이나 됐다고 한다) 이집트인들에게 신은 단 하나라는 생각은 가히 혁명적인 발상일 것이다

저자는 이 유일신 사상이 히브리인들에게 전파되어, 야훼가 유태 민족을 선택한 게 아니라 유태 민족이 수많은 신 들 가운데 야훼 신을 택한 것이라고 본다

기독교인이 고고학서나 역사서를 읽는다는 건, 이럴 땐 참 고역이다

 

카터의 투탕카멘 묘 발굴 이야기는 흥미를 넘어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초등학교 밖에 안 나온 카터의 이집트 사랑은 놀랍기 그지 없다

자신의 전 생을 바쳐 추구한 일이 인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라면, 그 보다 더 보람되고 가치있는 삶은 없을 것이다

카터의 발굴을 후원한 카나본 경의 열정도 놀랍고, 그 외 고고학 발전에 이바지한 수많은 학자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돈 되는 학문도 아니고, 어찌 보면 쓸모없는 짓일지도 모르는 일을 인류 문명의 태초를 밝힌다는 신념 하나로 사막을 파고 있을 그들의 열정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이 책의 저자 역시 피라미드의 건축법을 밝히기 위해 이집트 사막에서 1/4 크기로 피라미드를 옛날 방식대로 짓기까지 했다

또 쿠푸의 무덤에서 태양선을 발굴한 뒤 실제 그 배가 떴는지, 아니면 의식용 배인지를 밝히기 위해 직접 제작해 나일 강에 띄워 보기도 한다

문헌으로만 공부하는 고고학은 불완전하다는 신념으로 1년에 석 달은 이집트 모래 사막을 파헤치는 저자의 실증주의적 연구 방법에 박수를 보낸다

 

와세다 대학 교수인 저자는 일본에서는 이집트학으로 책도 많이 내고 TV 출현도 자주 하는 모양이다

그는 이 책이 문헌 몇 개 뒤져 적당히 짜집기 해서 이집트 소개하려는 책이 아니라, 직접 발로 뛰면서 얻은 지식들을 정리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저자의 이 말에 깊히 공감할 만큼 아주 체계적이고 성실한, 또 곳곳에 이집트 사랑이 묻어 있는 훌륭한 책이다

특히 대중을 위한 글쓰기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이집트 역사에 대해, 혹은 피라미드가 진짜 무엇인지에 대해 (피라미드는 왕들의 무덤이 아니라는 게 정설이다), 혹은 인류 문명의 시작을 연 찬란한 고대 문명에 대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적극 권하고 싶다

사라져 버린 줄 알았던 고대 문명이 여전히 우리 생활 속에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