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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 튤립의 땅, 모든 자유가 당당한 나라
주경철 지음 / 산처럼 / 2003년 7월
평점 :
히딩크 바람 불어서 급조한 책이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기우임이 밝혀졌다
아주 재밌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네덜란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쉽게 쓰여진 책이다
특히 네덜란드 역사 부분은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데 읽고나면 대충 유럽 역사는 감이 잡힌다
역시 저자가 누군인가가 중요한 것 같다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라는 타이틀 답게 수준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네덜란드에 대한 인상은 관용과 타협이었다
관용이라는 단어는 가벼운 마약은 정해진 장소에서 복용해도 된다는 특이한 제도를 알았을 때부터 느끼던 바다
알콜보다 금단 증상이 더 적다는 이유로 soft drug은 일명 커피숖에서 금단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는 methadone과 함께 판매된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서 뭐라고 왈가왈부 해도 타 국가에 비해 마약 중독률이 탁월하게 낮기 때문에 네덜란드 당국은 이 제도를 계속 밀고 나가고 있다
문제 해결에 대한 인식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리 마약 중독률이 낮다 해도 버젓이 시내 한복판에서 마약을 팔 수 있다니, 대단한 나라가 아닐 수 없다
교도소 정책이나 장애인 섹스 써비스에서도 이러한 발상의 전환은 돋보인다
교도소에 들어가면 전화, TV 등을 설치하고 신문까지 배달받을 수 있다고 한다
교도소란 범죄의 댓가로 개인의 자유를 박탈당할 뿐이지, 삶의 질까지 떨어뜨릴 수는 없다는 개념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인권을 존중하는 희한한 교도소가 유지된다
뭐가 옳은 것인지는 사회를 구성하는 성원들의 가치관에 따라 결정된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정당한 행위인가를 판단하기 전에, 이러한 사회적인 합의를 도출해내는 네덜란드 사회는 확실히 타인이나 기타 다른 사안들에 대해 관용적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태도는 군 대체 복무에서도 잘 나타난다
지금은 모병제로 바뀌었지만, 징병제가 시행되던 당시 신념에 의한 군 복무 거부를 인정하고 그에 상응하는 기간 동안 대체 복무를 허용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와 일률적으로 비교하는 건 곤란하겠지만, 어쨌든 군 복무 거부를 개인의 신념이라고 인정해 주는 사회적 분위기는 확실히 우리 사회와는 다른 것 같다
(그런데 심지어 이 대체 복무마저 결국은 군대에 가서 총을 집는 것과 똑같다는 이유로 거부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 경우에는 더 이상 용납하지 않고 군 복무 기간 동안 교도소에 수감한다)
네덜란드 군대는 두 가지 목표를 가진다
첫째는 국토 방위, 두번째는 평화 수호
우리 나라 군대도 인류의 평화 수호라는 이념을 갖는지 모르겠는데, 확실히 자국의 안녕만을 추구하던 시대는 지난 것 같다
요즘처럼 파병이 잦은 시대에 군대의 유지 목적에 대해 우리도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장애인의 섹스 써비스는 참 독특한 문화가 아닐 수 없다
장애를 가진 사람도 섹스를 즐길 권리가 있다
그러므로 국가에서 기본적인 생활비를 대 주듯, 섹스 도우미를 파견해 성적 욕구까지 충족시켜 준다
장애자에 대한 국가의 배려 중에 섹스 문제까지 포함되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네덜란드는 우리처럼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인지라 (네덜란드 세계 3위, 우리나라 2위) 집값이 워낙 비싸 집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부유한 사람들은 집을 몇 채씩 가지고 있다
이 빈 집에 집없는 사람들이 들어가 살기 시작했고 이것은 사회적인 문제로 떠올랐다
정부에서는 집이 나가기 전까지는 빈 집에 사는 것을 허락하고, 대신 집주인에 대해서는 일정한 액수를 보상해 주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이것에 관한 기사는 몇 년 전 주간지에서 소개된 걸 본 적이 있다
그 때는 왜 남의 집을 점령하는 걸 정부가 강력히 규제하지 못할까, 의문스러웠다)
우리나라 같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개인의 소유권을 침해한다고 신문에서 먼저 들고 일어나지 않았을까?
이걸 정부에서 강력하게 규제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의 위기 내지는 파퓰리즘의 전형이라고 신문 사설에서 먼저 비난하고 나서지 않을까??
식민지를 지배하고, 산업혁명이 일어나던 근대 네덜란드의 역사를 읽으면 비민주적인 정치와 인권 억압 사례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
특히 어린이들의 노동 시한은 하루 14시간으로 제한한다는 정책이 발표된 부분을 읽을 때는, 참 세상 많이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유럽의 복지 정책이나 인권 현황을 보면 부러울 때가 많은데, 그들의 과거 역사를 알게 되면 결국 사회의 발전에 의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민족성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사회가 발전하면서 그 분위기도 성숙한다는 느낌이 든다
"한국인은 이래서 안 돼" 내지는 "원래 우리 민족은 뭉치질 못하고 분열하길 좋아한다" "한국인은 맞아야 말을 듣는다" 등의 발언은 아주 위험하고 무지한 소리라는 걸 알 수 있다
선진국으로 진입한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 발전만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사회 각 분야의 성숙도 포함되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외국인 노동자 문제나 군 대체 복무 문제, 혹은 사상의 자유 등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난제들에 대한 보다 성숙한 토론이 활발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타 문화권에 대한 일방적인 찬사나 비난은 읽는 사람을 괴롭게 만든다
본인이 그 나라에서 받은 느낌이 강렬하다 보면 한 쪽으로만 치우치게 마련인데, 이 책은 균형잡힌 시각이 돋보인다
또한 저자가 네덜란드어를 배우고 그 역사에 대한 논문까지 썼을 정도로 네덜란드에 정통한 분이라 내용의 깊이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내용은 아주 쉽고 재밌다
대중을 위한 글쓰기를 아시는 분 같다
히딩크 때문에 네덜란드에 관심이 생긴 분이라면 읽어 보라고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