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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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읽고 싶던 책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도서관에는 없어서 광주까지 가서 어렵게 빌렸던지라 더욱 열심히 읽었는데, 기대했던 것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다른 독자들도 지적했듯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책과 작가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하기 때문에 쉽게 몰입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나마 토머스 하디나 에드워드 기번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라면 좀 알겠는데, 미국이나 영국에서 유명한 현대 작가들은 들어 본 적도 없는지라 쉽게 공감이 안 갔다

또 저자의 서술 태도 역시 쉽고 매끄럽지만은 않았다

모르긴 해도 역자 역시 번역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소설과 작가와 단어들의 뉘앙스를 설명하기 위해 역자는 주석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 볼만한 재밌는 에세이다

제일 부러운 것은 저자 앤 패디먼의 가족 환경이다

출판사에서 교정일을 보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앤은 어머니와 오빠를 포함한 네 가족이 모두 활자 중독 수준이었는데, 자신과 똑같은 남자와 결혼해 두 아이들까지 같은 증세를 보인다

이 얼마나 대단한 행복인지!!

서문에서도 밝히지만 이 책은 그저 앤의 개인적인 일상사를 이야기 함에도 불구하고, 전부가 책에 대한 이야기다

책이 곧 삶이기 때문이다

남편 조지와 침대에서 서로 책을 낭독해 주다가 잠이 든다는 부분에서는 두 손 다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은 취미를 공유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연애의 방법임이 틀림없다

 

책을 사랑하는 습성은 부모에게 물려받기 쉬운데, 앤이 그랬듯 나 역시 아빠에게서 전해 받았다

활자 중독증이라는 특성 때문에 아빠와 유달리 친한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앤의 가족과는 다르게 내 동생들은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만 아빠의 가장 중요한 특성을 물려받은 셈이다)

그래서 우리 부녀간의 대화는 거의 대부분이 책에 관한 내용이다

거기까지는 앤과 비슷한데, 결혼 부분에 이르면 그녀를 부러워 하지 않을 수 없다

내 남자 친구는 책에 거의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가 읽는 책은 기껏해야 세금 적게 내는 방법 같은 실용서다) 함께 캠핑을 가서 텐트 안에서 책을 읽는 연애 따위는 기대할 수가 없다

물론 결혼을 하게 되면 내 책만 소장하면 되니까 공간적인 면에서는 이득이긴 하다

 

책을 어떻게 소장할 것인가는 책 애호가들에게 공통된 골칫거리인 모양이다

"책은 나름의 운명을 가진다"의 저자 역시 같은 고민을 토로했는데, 앤 역시 남편 책까지 합쳐져 아파트가 고서점으로 변할 것 같다는 걱정을 한다

특히 앤은 90이 넘은 아버지의 책들까지 물려 받아, 다시 아들딸에게 전해 줄 계획이라 소장할 책들이 더욱 많다

책 소장 문제는 우리 집도 심각하다

책을 몽땅 쌓아 놓고도 살기에 충분할 만큼 넓은 집에 살면 문제가 없으련만, 경제적 능력 때문에 집의 크기는 늘 한정되어 책이 주거 공간을 침입하고 있다

지금 우리 집은 더 이상 책을 쌓을 공간이 없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계속 책을 산다) 내가 독립해서 나오지 않는 이상 내 책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다

 

이 책에서 새롭게 발견한 독서법이 바로 "현장 독서"다

책에 나온 바로 그 장소에서 책을 읽는 독서법인데, 이를테면 "로마 제국 흥망사"를 로마에서 읽는 식이다

앤과 그녀의 남편은 "콜로라도 강과 그 협곡 탐험"을 콜로라도 강 옆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면서 읽었다

당연히 책에 등장하는 급류의 두려움을 온 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인쇄된 그림으로만 보는 명화들을 직접 미술관에 가서 볼 생각은 했지만, 책에 나오는 장소에서 책 읽을 생각은 미처 못했는데, 역시 앤은 대단하다!!

 

앤이 나와 비슷한 습관이 하나 있는데, 카탈로그를 열심히 읽는 것이다

내가 활자 중독임을 카탈로그를 읽을 때 느끼는데, 앤 역시 아주 꼼꼼하게 많은 시간을 투자해 읽는다

덕분에 그녀의 집에는 온갖 종류의 카탈로그가 배달이 되서, 그녀가 일이 많을 때는 남편이 우편함에서 미리 절반은 버려 버린다

앤과 나의 공통점은 카탈로그를 열심히 읽지만, 절대 물건을 사지는 않는다

우리가 카탈로그를 읽는 까닭은 활자를 읽기 위함이지,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책을 소장하는데 별 의의를 안 두기 때문에 저자의 싸인을 받는다거나, 누군가의 헌사가 쓰여진 책에 대한 미련이 별로 없는데, 앤을 보면서 소장의 가치에 대해 새롭게 느꼈다

싸인회가 생기지 전에 열혈 독자들은 책을 산 후 저자에게 싸인해 달라고 보낸다

물론 베스트셀러 작가의 경우 수 십만권의 책에 일일히 싸인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책이 주인에게 돌아갈 확률은 아주 낮다

자신의 글을 남겨 선물한 책을 어느 헌책방에서 발견하게 된 기분은 어떨까?

적어도 누군가 글을 써서 선물한 책은 그 사람을 위해서라도 간직해야 될 것 같다

또한 서점에 진열된 책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앤은 말한다

워낙 책이 많아 나중에 고서점을 열까 하는 소망도 갖지만, 집 없는 책은 그저 팔아야 할 물건일 뿐이라는 서점 직원의 충고를 앤은 기꺼이 받아 들인다

"집 없는 책"이란 말은 우리가 책을 읽고 내 것으로 소유할 때만이 의미있는 한 권의 책이 된다는 것을 잘 말해 준다

 

맞춤법에 집착하는 앤의 가족은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아 반가웠다

솔직히 나는 앤처럼 한 권의 책에서 수백 개의 오자를 발견할 만큼 대단한 실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맞춤법에 맞게 글을 쓰려고 꽤 애를 쓴다

특히 광고 등에서 잘못된 철자를 발견하면 꼭 지적하고 넘어간다

(옛날에 만나던 남자 친구의 편지를 엄마가 보더니만, 맞춤법도 제대로 못 맞추는 남자랑은 만나지 말라는 엄마 말이 생각난다 엄마는 국어 선생님이시다)

레스토랑에 식사하러 가서 메뉴판을 보면서 잘못된 철자를 찾아 내는 앤 가족의 모습에 정이 간다

 

역자는 후기에서, 한 때 독서가 취미라고 하면 당연한 것을 취미라 말한다고 비난받던 시절이 그리울 정도로 요즘은 책 읽는 게 특별한 일이 되버렸다고 한탄한다

이제 독서도 동호회를 만들 정도로 특별한 취미가 됐다

취미로서의 독서는 당연히 해야 할 교양으로서의 독서와는 다른 의미를 갖는 게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책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앤의 에세이는 더욱 빛이 난다

나도 내 책에 애정을 느끼면서 수집하는데 열을 올릴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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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1.2권 합본) - 우리 소설로의 초대 4 (양장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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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왜 이 책이 노무현 대통령과 엮어져서 안 받아도 될 오해를 받는지 모르겠다

리뷰를 읽어 보면 꼭 "노무현"이라는 세 글자가 따라 다닌다

대통령의 선전과는 상관없이 2001년 동인 문학상 수상작이기 때문에 책 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에게는 큰 감동이 없었지만 말이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 해도 나랑 스타일이 안 맞는 책들이 있다

줄거리보다는 작가가 서술하는 태도에서 반감, 혹은 호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 책은 나와 궁합이 좀 안 맞는다

내가 좋아하는 문체는 은희경이나 이만교 같은, 좀 삐딱한 시선의 시니컬한 문장인데 (배수아 스타일은 절대 아니다 겉멋 부리는 시니컬함 같아 안 좋아한다) 이 작가의 소설은 내 취향이 아니다

그렇지만 죽음을 옆에 두고 싸우는 무장의 고뇌와 두려움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이순신이라고 하면 무과 시험 당시 낙마한 후 버드나무로 다리를 싸매고 달렸다는 에피소드나, 그 보다 더 유명한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마지막 유언으로 대표되는 조선 최고의 영웅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개인적인 숭배 때문에 갑자기 최고의 성웅으로 등장했다는 말도 있지만, 어쨌든 임진왜란 당시 혁혁한 공훈을 세우고 장렬하게 전사한 훌륭한 위인임이 분명하다

위대한 인물들이 흔히 그렇듯, 이순신 역시 인간적인 면모 보다는 범인들과는 다른 출중한 재능과 성인 같은 삶의 궤적으로 점철되기 일쑤라 그가 걸어 온 진짜 삶의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시도는 참으로 신선하다 할 수 있겠다

비록 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으나, 과장없는 위인전이라 해도 될 것이다

위인전 속의 인물들을 평범한 인간으로 끌어내려 숨은 고뇌와 인간적이 위악성들을 그려내는 시도가 많아졌음 좋겠다

(개인적으로 광해군의 인간적인 고뇌를 그린 책이 나오길 바란다 10년 동안 왕의 자리에 있은 후 20여년을 죄인으로 유배지에서 질긴 목숨을 이어 간 그의 속내를 유려한 필체로 그려 줄 작가가 있다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종종 군인들을 생각했다

명령에 따라 무조건 진격해야 하는 사병들 말고, 그들을 지휘해야 하는 장교들의 고뇌를 생각했다

전쟁이 발발하면 인간성을 상실하게 된다

무기를 들고 적진으로 돌진하는 군인들은 늘 죽음을 옆에 두고 살 것이다

그 공포와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더욱 잔인해지는 건지도 모른다

특히 자기 휘하의 군사들과 주변 백성들의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지휘관의 고뇌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더불어 견딜 수 없는 무거움으로 마음을 짓누를 것이다

"칼의 노래"에는 그러한 인간 이순신의 고뇌와 두려움이 잘 녹아 있다

 

전쟁 앞에서 인간이란 얼마나 형편없고 하찮은 존재인지!!

한 끼 먹을 식량을 위해 한나절 내내 고민해야 하고, 그것이 해결되지 못하면 허망한 죽음을 맞게 된다

전쟁 중이라 그런지, 아니면 원래 중세 사회가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걸핏하면 죽음으로써 잘못의 댓가를 치룬다

군량미 빼돌리면 사형, 보고서 늦게 보내도 사형, 소집에 응하지 않아도 사형

책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바로 "목을 베었다"이다

언젠가 한글로 번역한 난중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거기서도 여러 번 접한 문장이다

그래서 성웅 이순신도 부하들을 많이 죽였구나, 좀 충격을 먹기도 했었다

아마 김훈의 책에 나온 예화들은 대부분 난중일기에서 인용한 것이리라

 

"칼의 노래"에서 주목한 대립 관계는 이순신과 선조다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정작 원균과의 갈등 구조는 보이지 않는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책의 서술 시점이 이순신이 백의 종군 할 때부터라 이미 원균은 전사한 것으로 나온다

(난중일기에는 무과 선배인 원균이 삼도수군 통제사가 된 이순신의 명령을 거부하여 선조에게 장계까지 올릴 정도로 갈등 구조가 심각했음이 자주 등장한다고 한다 김훈이 말미에 그 부분을 짧게 기록한 것을 두고, 이순신과 원균이 서로 불화했다는 식으로 역사를 왜곡한다는 비난을 받은 모양이다)

선조는 임진왜란과 광해군을 기록한 여러 책에서 무능하고 의심많고 형편없는 임금으로 등장하는데, 여기서도 예외는 아니다

전쟁에서 패해 의주 땅까지 쫒겨간 무력한 왕이면서도, 혁혁한 성과를 거둔 의병장들과 무관들을 의심해 죽음으로 몰아 넣는 어처구니 없는 왕으로 묘사된다

(그의 시호에 "조"자가 붙은 건 참 아이러니컬 할 정도다)

 

선조가 느꼈을 분노와 비애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오랑캐들에게 아홉 번 절을 해야 한 손자 인조나 망국의 비애를 짊어 진 고종 등보다 더 불행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지독히도 운이 없는 왕임은 틀림없다

왜 하필 자기 치세에 그런 난리가 일어나야 한단 말인가!!

그것도 하찮기 그지없는 왜놈들에게 쫒겨 그 멀고 먼 의주 땅까지 피난을 떠났어야 하니 참으로 불행한 왕이다

그가 왕으로써 느꼈을 무력함과 분노, 혹은 모멸감이 조금은 공감이 간다

어쩌면 그의 바램대로 전장터가 되버린 조선을 버리고 강을 건너 요동으로 가 버리는 게 역사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왜군의 진격 소식에 놀라 왕위를 세자 광해군에게 넘기고 명으로 피신하겠다는 발언을 했다는 것 자체가, 그가 얼마나 무력한 왕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모르긴 해도 태종이나 세종 혹은 영조나 정조처럼 국가를 확실하게 장악한 왕이라면 절대 그런 말은 입 밖에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선조는 선왕들의 무덤을 파헤친 왜장 고시니의 목을 간절히 원한다

고시니의 목을 쳐서 선왕의 위패에 제사를 지내야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한다고 믿은 모양이다

아마도 권위를 세워 줄 상징물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고시니를 잡을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했으니, 이순신이 압송당한 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작가의 분석으로는 실제 이순신이 몸을 상할 만큼 고문당하지는 않은 것으로 본다

하긴 진짜 역적으로 여겼다면 죄가 밝혀지기도 전에 문초 과정에서 이미 죽었을 것이다

책에는 이순신이 정치적으로 고립됐다고 나오는데, 그래도 풀려난 후 백의종군이라도 하게 된 걸 보면, 고문받다 죽은 김덕령 보다는 더 나은 처지였던 것 같다

 

(어렸을 때 "조선왕조 5백년"의 임진왜란 편에서 이순신이 고문 당하는 걸 본 기억이 난다

그 때 배우가 김무생이었는데, 고문 장면은 압슬형이었다

지금도 꼿꼿한 이미지인데, 훨씬 젊었을 그 당시의 김무생 이미지는 청렴결백 하고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이순신에 딱 어울렸다

무거운 돌이 무릎뼈를 으스러뜨려도 신음 소리를 거의 내지 않으며 지긋이 눈을 감는 모습은 범인들과는 뭔가 다른 성웅의 모습이었다

실제 이순신이 받은 고문의 내용은 전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칼의 노래"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그것을 담담하게 이겨 내려는 인간 이순신의 고뇌가 전면을 흐른다

꼭 이순신이라는 위대한 영웅에게만 국한된 감정은 아닐 것이다

전쟁에 나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모든 군인들이 겪어야 할 고통들일 것이다

이순신이 선조의 시기를 두려워 하여 일부러 마지막 전투에서 자결했다는 말이 있는데, 책에서는 그런 식의 상투적인 내용은 자세히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늘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는 장수가 결국은 총알을 맞고 생명이 아스라져 갈 때 그 사라져 가는 의식을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점점 의식이 혼미해져 갈 때, 전투는 계속 중이고 전 생을 걸고 쫒은 적들은 여전히 내 앞을 어지럽히고 있다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그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기도 하다

 

누구나 자신의 생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다만 전쟁 때는 좀 더 극적으로 보일 뿐이다

여진족과 싸울 때의 진중일기나 임진왜란 중의 난중일기를 꼼꼼하게 남긴 걸 보면 이순신은 전쟁 중이 아니라 할지라도 자기 삶을 치열하고 꼼꼼하게 산 인물이라 생각된다

문인도 아닌 그가 매일 매일의 기록을 이토록 성실하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성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이 소설은 다만 이순신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빌렸을 뿐, 죽음을 불사하고 순간순간을 치열하게 살아 간 인간들의 얘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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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다 다나카
구로다 다쓰히코 지음, 김향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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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언젠가 신문에서 일본의 회사원이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 때는 좀 이해가 안 가서 잘못 알려진 게 아닌가 했다

말하자면 이슈를 만들기 위해 과장했다고 추측했다

노벨상이라면 가장 널리 알려지고 권위를 가진 상인데, 학자가 아닌 회사원이 수상했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짜 속사정을 알아 보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집어들었다

 

다나카는 월급을 받고 회사에서 일하는 샐러리맨이 맞다

시마즈 제작소의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엔지니어다

노벨상을 받은 그의 업적은 차치하고서라도, 석사 학위도 없는 무명의 젊은 회사원에게 과감히 수상을 결정한 노벨상 위원회의 열린 사고에 놀랬다

특히 연공 서열을 중시하는 일본에서 교수도 아닌 겨우 42세의 샐러리맨의 노벨상 수상은 사회적으로 큰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특히 그의 연구 성과를 공정하게 기록하고 전세계에 알린 미국과 독일 학자들의 학자적 양심도 빛을 발한다

(로버트 코터 교수가 아니었으면 그의 논문은 학회에 소개되지 못했을 것이다)

 

다나카가 이룬 업적은 고분자 단백질의 질량 분석에 성공한 것이다

레이저를 쏘아 질량 분석을 하는데, 이 때 레이저 광선의 힘을 흡수하는 완충제를 만드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대부분 레이저 광선을 이기지 못해 녹아 버리기 마련인데 그의 표현을 빌리면 "우연히" 코발트와 글리세린을 섞게 됐다

코발트가 워낙 비싼 시료라 그냥 버리기 아까워 레이저를 쏘았는데, 녹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 완충제로 인해 레이저에 의한 고분자 단백질의 질량 분석이 가능해졌다

비록 그가 "우연히"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그 우연한 발견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실험과 시행 착오를 겪었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무명의 회사원이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것 외에도 일본인의 마음을 끄는 다나카의 매력은 바로 그 겸손함과 유머 감각에 있는 것 같다

다나카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온 영광의 무게에 묻히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자 애쓰고, 여유있는 태도를 견지한다

노벨상으로 받은 상금을 어디에 쓰겠냐는 질문에 몇 십만엔이라면 디지털 카메라를 사겠지만, 너무 많은 돈이라 뭘 해야 할지 솔직히 모르겠다던가, 여자들이 당신을 최고의 남편감이라고 치켜 세우는데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I hope that I were single"이라는 재치있는 답변을 한다

또 쿄도대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하자 힘 안들이고 얻는 학위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다른 곳에는 절대 사용하지 않겠지만, 비지니스석 예약에 학위가 도움이 된다고 하니, 비행기 탈 때만 쓰겠다고 쑥쓰럽게 웃기도 한다

노벨상 수상식에서 영어로 연설하기 위해 밤새워 연습한 그는 혹시 사람들이 그 연설을 듣고 진짜 내가 영어를 잘한다고 착각하면 어쩌냐고 농담을 건네기도 한다

 

"멋지다 다나카"라는 제목에 딱 어울리는 에피소드들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그는 일본 유수의 대학이나 해외 연구소들의 러브콜을 거절하고 시마즈 제작소의 엔지니어로 남는 놀라운 결단을 보여 준다

이미 시마즈 같은 작은 회사에서는 거물이 되버린 다나카에 대한 적절한 예우를 갖추기 어렵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 하던 연구를 계속 하고 싶다고 말한다

부장이나 이사 같은 관리직도 거절한 다나카에게 회사는 펠로우라는 직책을 주고 현장에서 계속 연구할 수 있게 배려해 주지만, 노벨상 수상자에게는 턱없이 부족함은 물론이다

언론에서는 다나카가 외국으로 나가면 얼마나 많은 강연료와 연구비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호들갑을 떠는데, 그가 계속 회사에 남겠다고 결심한 것은 참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보통 노벨상을 타면 연구를 그만두고 연구소장 같은 행정 책임자로 들어 앉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사실 이런 종류의 전기를 대할 때는 지나친 미화에 눈살을 찌푸리기 마련인데, 더구나 동시대인인 까닭에 어느 정도의 거부감은 감수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이 평가하고 싶은 부분은 일본인인 저자가 서구 언론의 비판을 겸손하게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구 언론들은 일본 내의 기술자가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연구 성과를 올리더라도 적절한 보상을 하지 않고 그 이득을 회사가 취한다고 비판한다

또한 연공 서열을 중시하고 집단 문화 속에서 개인이 튀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개인의 창의성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닫힌 사회라고 평한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발명하기 보다는 있는 것을 개선하는 식의 연구가 많고, "흉내는 잘 내지만 신규 개척은 서투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샐러리맨의 수상에 대해 일본 내부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꼬집어 낸 미국 언론의 비판을 비난으로 받아 들이지 않고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라고 수용하는 저자의 성숙한 서술 태도에 박수를 보낸다

또한 서구에서는 노벨상 수상에 마치 국운이라도 걸린 듯 소란 피우지 않고, 평화상을 제외한 다른 부문의 상들은 그저 학계 내에서만 인정을 받을 뿐이라고, 요란스런 일본 언론의 행태를 비웃지만 샐러리맨의 수상은 세계 최초이고, 일본에서는 노벨상 수상이 흔한 일이 아니니 그런 비웃음 쯤은 얼마든지 감내하면서 크게 기뻐해도 되지 않겠냐고 한다

그 여유있고 솔직한 태도가 마음에 든다

 

노벨상이 국력을 나타내는 바로미터는 아니라 할지라도 일본이 이미 12명의 수상자를 냈다는 것은 분명 부러운 일이다

이럴 때는 일본이 강대국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곤 한다

특히 과학 분야에서는 무려 9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는데, 2000년부터 2002년까지는 연속 수상했고, 다나카가 화학상을 받은 2002년에는 도쿄대 교수인 고시바 마사토시가 물리학상을 받아 한 해에만 두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우리 나라도 과학 분야에서 이런 자랑스런 학자들을 가질 날이 곧 오게 되길 바란다

이공계의 위기라고 다들 이공계를 기피하는 분위기인데, 샐러리맨조차 노벨상을 받는 일본의 저력이 부럽기만 하다

 

다나카에게 노벨상 수상이 결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는 설마 그 노벨상이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스웨덴에 비슷한 상이 있나 보다 생각했다고 한다

이처럼 갑작스럽게 찾아 온 엄청난 영광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다나카가 정말 멋지게 보인다

특히 엔지니어라는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는 그 마음가짐이 더욱 돋보인다

이제 겨우 43세인 다나카가 인류 발전에 기여할 더 훌륭한 연구들을 많이 하게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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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이분법 - 당비생각 01
권용립 외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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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분법적 논리라면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다

대표적인 게 요즘 떠오르고 있는 친미와 반미라 할 수 있다

여러 명의 저자가 함께 쓴 이 책에서 특히 친미와 반미에 대한 분석이 돋보이는데, 미국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를 분명하고 명확한 태도로 밝히고 있다

 

가장 공감이 갔던 부분은 미국이 곧 세계고, 미국화 되는 것이 곧 세계화라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미국이라는 나라는 친미라는 말 자체가 어색할 정도로 우리에게는 공기와 같은 존재였다

미국에 대한 강자 콤플렉스의 반작용으로 요즘 외치고 있는 반미는, 정확히 말하면 외교적 자주권의 요구라고 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논리다

미국 자체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대등한 관계를 요구한다고 할까?

그런데도 기득권층은 반미=친북으로 이해하고 주한미군 철수에 따른 파장을 미리 걱정한다

저자의 말대로 반미, 혹은 친미를 외치기 전에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보다 주체적인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세계라는 등식부터 깨야 할 것이다

미국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컴플렉스를 느끼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애를 쓰면서 3세계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근거없는 우월 의식을 갖는 우리의 이중 구조를 저자는 비판한다

 

의사 파업에 대한 예도 나온다

왕조 시대와 식민지 시대, 독재 정권을 거치면서 국가 권력이란 저항해야 할 억압의 체제라고 인식해 왔다

사실 그런 의미에서 국가에 대항하는 시위는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부터 시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민주화된 정부가 들어서고, 전문가 집단이 파업하면서 가치의 혼란이 온다

민주화 세례를 받은 일부 의사 계층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항한다는 의미에서, 파업 자체를 민주화 항쟁과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했다는 지적을 한다

이 책의 주제가 흑백 논리의 타파인 만큼, 그들의 파업 역시 지하철 노조의 파업과 큰 의미에서 다를 게 없다는 얘기도 빼놓지 않는다

물론 대체가 어렵기 때문에 더 많은 도덕적 비난을 감수했지만 말이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국가와 개인의 대립, 혹은 공익과 사익의 추구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분법이 위험한 까닭은 그 안에 폭력성을 내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간파한다

친미와 반미, 공익과 사익, 통일과 반통일, 남성과 여성 등 수많은 주제들이 극단을 향해 치닫고 있다

이런 첨예한 문제들을 다시 한 번 균형잡힌 시각으로 돌아 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바다

그렇지만 흑백논리와 양비론은 명백히 다른다

강준만이 지적한 것처럼 양비론은 더 나쁜 쪽이 자신들의 잘못을 은폐하기 위해 내세우는 전략에 불과하다

흑백논리의 타파가 열린 사고를 의미한다면, 양비론은 물타기 전략일 뿐이다

 

우리 사회를 흔들고 있는 여러 주제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원한다면, 혹은 그동안의 흑백 논리에 지친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다만 누가 옳다는 결론은 없다

책 제목처럼 그저 우리 안의 이분법을 지적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문제들을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한 후 자신만의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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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이해의 개념틀 나남신서 847
조긍호 지음 / 나남출판 / 2003년 3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대중을 위한 인문 교양서라기 보다는, 학술 도서 같다는 느낌이 든다

저자가 인용한 부분에 대해서는 철저할 정도로 원본을 밝히고 있고, 심지어 영어나 한자로 원문을 직접 인용한다

한글 번역과 원서 부분이 같이 인용되다 보니, 분량이 크게 늘어난 듯 하다

주석이 책의 1/4 정도를 차지한다

어떤 주석은 아예 한 페이지를 다 차지하기도 한다

이 책에도 등장하는 미국의 유명 심리학자인 니스벳이 쓴 "생각의 지도"를 보면,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여러 예화를 들어 심리학 이론을 설명한다

반면 이 책은 예시가 거의 없다

심리학의 발달 과정과 이론 정립에 치중한 책이라 하겠다

그만큼 깊이가 있지만, 쉽지는 않다

다만 심리학이라는 것 자체가 워낙 우리 생활과 가까이 있기 때문에 아주 어렵지는 않다

소재가 주는 평이함이라 하겠다

 

책의 서문에는 한국인의 특성을 집단주의로 규정하고, 미국 문화로 대표되는 서구의 개인주의와 어떻게 구별되는가를 밝힌다

집단주의란 연계성, 자기 억제, 가변성을 특징으로 하고, 개인주의는 자율성, 자기 주장, 안정성을 포함한다

책에서 가장 경계한 것은 개인주의가 근대화 이론과 맞물리는 이론이다

서구 사회가 근대화에 먼저 성공한 요인을 심리학에서 찾다 보면 필연적으로 개인주의와 연결되고, 자칫하면 개인주의가 집단주의 보다 우수한 문화로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집단주의에 대해 갖는 인상은 부정적인 게 보통이다

집단 내에서 개성을 죽이고 규율에만 따르려 하기 때문에 창의적인 발전이 없다는 식으로 비판되곤 한다

 

그런데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집단주의의 진정한 정신에 고찰해 보면 생각보다 우수한 문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유교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과 예의 개념을 살펴 보면, 인이란 자기 억제와 타인에 대한 배려로 풀이되고, 예란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므로써 사회의 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자기 계발을 살펴 보면 성공의 핵심은 바로 자신을 어떻게 통제하느냐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유교 사상은 현대에도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오히려 남을 배려하고 자신의 이기심을 억제하며,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한 동양 사회가, 개인주의에 기초한 서양 사회보다 더 발전해야 이론적으로 맞지 않을까?

자본주의로 정의되는 현대 사회의 발전을 서구가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자본주의는 타인에 대한 배려나 자기 통제 보다는 개인의 독특한 개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경쟁 체제에서 성장함이 분명하다

저자도 지적하지만 집단주의가 비록 동양 사회를 관통하는 지배 문화라 할지라도, 세대간의 이념 분화는 갈수록 심해져, 젊은이와 기성 세대의 문화는 또 따로 논해야 한다고 한다

말할 것도 없이 21세기 한국 사회의 젊은 세대는 개인주의 쪽으로 가고 있다

 

서론 부분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지금까지 보편적이라고 알려져 온 사회심리학이 결국은 주도권을 잡은 서구 문화, 혹은 미국 문화의 토착심리학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들 사회를 대변하는 사회심리학을 타 문화권, 특히 동양 문화권에 그대로 대입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니스벳의 저서에도 나왔지만, 이제 구미 학자들도 인류 보편성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비교 문화의 연구를 통해 각 문화권을 지배하는 고유 원리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정반합을 통해 하나의 거대한 공통 원리를 찾는 노력도 진행 중이다

 

메스컴이나 여러 책에서 보여 준 편견대로, 나 역시 집단주의는 다소 부정적인 경향을 갖는다고 생각했다

집단 내에서 개성을 억압하고 서열 의식이나 가부장 문화에 사회 전체가 묶여 있는 것이 싫었다

그렇지만 어떤 의미로 비판한다 해도 여전히 나는 가족을 중요한 가치관으로 생각하고, 옳든 그르든 이것은 변하기 어려운 내 신념 중 일부가 되버렸다

결국 나 역시 집단주의 문화 내부에서 살고 있고, 우리를 지배하는 문화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우리의 집단주의 문화가 보다 넓은 범위로 확장되어 나간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긍정적으로 발전할 것 같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미국에서 오히려 입양이나 기부 문화 등이 흔한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미국 사회를 설명한 책을 읽고서 이해가 갔다

개인주의 사회는 나와 타자에 대한 개념이 명확한 대신, 내가 포함된 집단에 대한 결속력이 약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의감이나 도덕성 등이 내가 속한 집단에 국한되지 않고, 전체를 향해 나갈 수 있다고 한다

반면 집단주의 사회는 나와 타자의 경계가 불분명한 대신, 내가 속한 집단에 대한 애착감이 강해 내 집단과 다른 집단 간의 구별성을 명확히 한다

혈연이나 지연, 학연 등을 중요시 하는 우리 문화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결국 집단주의는 폐쇄주의가 될 위험성이 높기 때문에, 보다 열린 사고 방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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