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이해의 개념틀 나남신서 847
조긍호 지음 / 나남출판 / 2003년 3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대중을 위한 인문 교양서라기 보다는, 학술 도서 같다는 느낌이 든다

저자가 인용한 부분에 대해서는 철저할 정도로 원본을 밝히고 있고, 심지어 영어나 한자로 원문을 직접 인용한다

한글 번역과 원서 부분이 같이 인용되다 보니, 분량이 크게 늘어난 듯 하다

주석이 책의 1/4 정도를 차지한다

어떤 주석은 아예 한 페이지를 다 차지하기도 한다

이 책에도 등장하는 미국의 유명 심리학자인 니스벳이 쓴 "생각의 지도"를 보면,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여러 예화를 들어 심리학 이론을 설명한다

반면 이 책은 예시가 거의 없다

심리학의 발달 과정과 이론 정립에 치중한 책이라 하겠다

그만큼 깊이가 있지만, 쉽지는 않다

다만 심리학이라는 것 자체가 워낙 우리 생활과 가까이 있기 때문에 아주 어렵지는 않다

소재가 주는 평이함이라 하겠다

 

책의 서문에는 한국인의 특성을 집단주의로 규정하고, 미국 문화로 대표되는 서구의 개인주의와 어떻게 구별되는가를 밝힌다

집단주의란 연계성, 자기 억제, 가변성을 특징으로 하고, 개인주의는 자율성, 자기 주장, 안정성을 포함한다

책에서 가장 경계한 것은 개인주의가 근대화 이론과 맞물리는 이론이다

서구 사회가 근대화에 먼저 성공한 요인을 심리학에서 찾다 보면 필연적으로 개인주의와 연결되고, 자칫하면 개인주의가 집단주의 보다 우수한 문화로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집단주의에 대해 갖는 인상은 부정적인 게 보통이다

집단 내에서 개성을 죽이고 규율에만 따르려 하기 때문에 창의적인 발전이 없다는 식으로 비판되곤 한다

 

그런데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집단주의의 진정한 정신에 고찰해 보면 생각보다 우수한 문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유교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과 예의 개념을 살펴 보면, 인이란 자기 억제와 타인에 대한 배려로 풀이되고, 예란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므로써 사회의 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자기 계발을 살펴 보면 성공의 핵심은 바로 자신을 어떻게 통제하느냐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유교 사상은 현대에도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오히려 남을 배려하고 자신의 이기심을 억제하며,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한 동양 사회가, 개인주의에 기초한 서양 사회보다 더 발전해야 이론적으로 맞지 않을까?

자본주의로 정의되는 현대 사회의 발전을 서구가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자본주의는 타인에 대한 배려나 자기 통제 보다는 개인의 독특한 개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경쟁 체제에서 성장함이 분명하다

저자도 지적하지만 집단주의가 비록 동양 사회를 관통하는 지배 문화라 할지라도, 세대간의 이념 분화는 갈수록 심해져, 젊은이와 기성 세대의 문화는 또 따로 논해야 한다고 한다

말할 것도 없이 21세기 한국 사회의 젊은 세대는 개인주의 쪽으로 가고 있다

 

서론 부분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지금까지 보편적이라고 알려져 온 사회심리학이 결국은 주도권을 잡은 서구 문화, 혹은 미국 문화의 토착심리학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들 사회를 대변하는 사회심리학을 타 문화권, 특히 동양 문화권에 그대로 대입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니스벳의 저서에도 나왔지만, 이제 구미 학자들도 인류 보편성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비교 문화의 연구를 통해 각 문화권을 지배하는 고유 원리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정반합을 통해 하나의 거대한 공통 원리를 찾는 노력도 진행 중이다

 

메스컴이나 여러 책에서 보여 준 편견대로, 나 역시 집단주의는 다소 부정적인 경향을 갖는다고 생각했다

집단 내에서 개성을 억압하고 서열 의식이나 가부장 문화에 사회 전체가 묶여 있는 것이 싫었다

그렇지만 어떤 의미로 비판한다 해도 여전히 나는 가족을 중요한 가치관으로 생각하고, 옳든 그르든 이것은 변하기 어려운 내 신념 중 일부가 되버렸다

결국 나 역시 집단주의 문화 내부에서 살고 있고, 우리를 지배하는 문화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우리의 집단주의 문화가 보다 넓은 범위로 확장되어 나간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긍정적으로 발전할 것 같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미국에서 오히려 입양이나 기부 문화 등이 흔한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미국 사회를 설명한 책을 읽고서 이해가 갔다

개인주의 사회는 나와 타자에 대한 개념이 명확한 대신, 내가 포함된 집단에 대한 결속력이 약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의감이나 도덕성 등이 내가 속한 집단에 국한되지 않고, 전체를 향해 나갈 수 있다고 한다

반면 집단주의 사회는 나와 타자의 경계가 불분명한 대신, 내가 속한 집단에 대한 애착감이 강해 내 집단과 다른 집단 간의 구별성을 명확히 한다

혈연이나 지연, 학연 등을 중요시 하는 우리 문화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결국 집단주의는 폐쇄주의가 될 위험성이 높기 때문에, 보다 열린 사고 방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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