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다 다나카
구로다 다쓰히코 지음, 김향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3년 5월
평점 :
절판


언젠가 신문에서 일본의 회사원이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 때는 좀 이해가 안 가서 잘못 알려진 게 아닌가 했다

말하자면 이슈를 만들기 위해 과장했다고 추측했다

노벨상이라면 가장 널리 알려지고 권위를 가진 상인데, 학자가 아닌 회사원이 수상했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짜 속사정을 알아 보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집어들었다

 

다나카는 월급을 받고 회사에서 일하는 샐러리맨이 맞다

시마즈 제작소의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엔지니어다

노벨상을 받은 그의 업적은 차치하고서라도, 석사 학위도 없는 무명의 젊은 회사원에게 과감히 수상을 결정한 노벨상 위원회의 열린 사고에 놀랬다

특히 연공 서열을 중시하는 일본에서 교수도 아닌 겨우 42세의 샐러리맨의 노벨상 수상은 사회적으로 큰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특히 그의 연구 성과를 공정하게 기록하고 전세계에 알린 미국과 독일 학자들의 학자적 양심도 빛을 발한다

(로버트 코터 교수가 아니었으면 그의 논문은 학회에 소개되지 못했을 것이다)

 

다나카가 이룬 업적은 고분자 단백질의 질량 분석에 성공한 것이다

레이저를 쏘아 질량 분석을 하는데, 이 때 레이저 광선의 힘을 흡수하는 완충제를 만드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대부분 레이저 광선을 이기지 못해 녹아 버리기 마련인데 그의 표현을 빌리면 "우연히" 코발트와 글리세린을 섞게 됐다

코발트가 워낙 비싼 시료라 그냥 버리기 아까워 레이저를 쏘았는데, 녹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 완충제로 인해 레이저에 의한 고분자 단백질의 질량 분석이 가능해졌다

비록 그가 "우연히"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그 우연한 발견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실험과 시행 착오를 겪었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무명의 회사원이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것 외에도 일본인의 마음을 끄는 다나카의 매력은 바로 그 겸손함과 유머 감각에 있는 것 같다

다나카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온 영광의 무게에 묻히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자 애쓰고, 여유있는 태도를 견지한다

노벨상으로 받은 상금을 어디에 쓰겠냐는 질문에 몇 십만엔이라면 디지털 카메라를 사겠지만, 너무 많은 돈이라 뭘 해야 할지 솔직히 모르겠다던가, 여자들이 당신을 최고의 남편감이라고 치켜 세우는데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I hope that I were single"이라는 재치있는 답변을 한다

또 쿄도대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하자 힘 안들이고 얻는 학위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다른 곳에는 절대 사용하지 않겠지만, 비지니스석 예약에 학위가 도움이 된다고 하니, 비행기 탈 때만 쓰겠다고 쑥쓰럽게 웃기도 한다

노벨상 수상식에서 영어로 연설하기 위해 밤새워 연습한 그는 혹시 사람들이 그 연설을 듣고 진짜 내가 영어를 잘한다고 착각하면 어쩌냐고 농담을 건네기도 한다

 

"멋지다 다나카"라는 제목에 딱 어울리는 에피소드들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그는 일본 유수의 대학이나 해외 연구소들의 러브콜을 거절하고 시마즈 제작소의 엔지니어로 남는 놀라운 결단을 보여 준다

이미 시마즈 같은 작은 회사에서는 거물이 되버린 다나카에 대한 적절한 예우를 갖추기 어렵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 하던 연구를 계속 하고 싶다고 말한다

부장이나 이사 같은 관리직도 거절한 다나카에게 회사는 펠로우라는 직책을 주고 현장에서 계속 연구할 수 있게 배려해 주지만, 노벨상 수상자에게는 턱없이 부족함은 물론이다

언론에서는 다나카가 외국으로 나가면 얼마나 많은 강연료와 연구비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호들갑을 떠는데, 그가 계속 회사에 남겠다고 결심한 것은 참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보통 노벨상을 타면 연구를 그만두고 연구소장 같은 행정 책임자로 들어 앉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사실 이런 종류의 전기를 대할 때는 지나친 미화에 눈살을 찌푸리기 마련인데, 더구나 동시대인인 까닭에 어느 정도의 거부감은 감수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이 평가하고 싶은 부분은 일본인인 저자가 서구 언론의 비판을 겸손하게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구 언론들은 일본 내의 기술자가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연구 성과를 올리더라도 적절한 보상을 하지 않고 그 이득을 회사가 취한다고 비판한다

또한 연공 서열을 중시하고 집단 문화 속에서 개인이 튀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개인의 창의성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닫힌 사회라고 평한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발명하기 보다는 있는 것을 개선하는 식의 연구가 많고, "흉내는 잘 내지만 신규 개척은 서투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샐러리맨의 수상에 대해 일본 내부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꼬집어 낸 미국 언론의 비판을 비난으로 받아 들이지 않고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라고 수용하는 저자의 성숙한 서술 태도에 박수를 보낸다

또한 서구에서는 노벨상 수상에 마치 국운이라도 걸린 듯 소란 피우지 않고, 평화상을 제외한 다른 부문의 상들은 그저 학계 내에서만 인정을 받을 뿐이라고, 요란스런 일본 언론의 행태를 비웃지만 샐러리맨의 수상은 세계 최초이고, 일본에서는 노벨상 수상이 흔한 일이 아니니 그런 비웃음 쯤은 얼마든지 감내하면서 크게 기뻐해도 되지 않겠냐고 한다

그 여유있고 솔직한 태도가 마음에 든다

 

노벨상이 국력을 나타내는 바로미터는 아니라 할지라도 일본이 이미 12명의 수상자를 냈다는 것은 분명 부러운 일이다

이럴 때는 일본이 강대국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곤 한다

특히 과학 분야에서는 무려 9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는데, 2000년부터 2002년까지는 연속 수상했고, 다나카가 화학상을 받은 2002년에는 도쿄대 교수인 고시바 마사토시가 물리학상을 받아 한 해에만 두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우리 나라도 과학 분야에서 이런 자랑스런 학자들을 가질 날이 곧 오게 되길 바란다

이공계의 위기라고 다들 이공계를 기피하는 분위기인데, 샐러리맨조차 노벨상을 받는 일본의 저력이 부럽기만 하다

 

다나카에게 노벨상 수상이 결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는 설마 그 노벨상이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스웨덴에 비슷한 상이 있나 보다 생각했다고 한다

이처럼 갑작스럽게 찾아 온 엄청난 영광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다나카가 정말 멋지게 보인다

특히 엔지니어라는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는 그 마음가짐이 더욱 돋보인다

이제 겨우 43세인 다나카가 인류 발전에 기여할 더 훌륭한 연구들을 많이 하게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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