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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 삼인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너무너무 좋았던 책
인지이론에 대해 새롭게 확인했다
프레임의 재구성은 인문학에서 뿐 아니라 과학에서도 흔히 쓰는 말이다
비슷한 개념으로 패러다임의 재구성이 있을 것이다
생각하는 틀 자체를 바꾼다는 의미다
현실적인 충고들이 많아서 참 유용했다
고어 선거전 당시 민주당에서 무료로 이 책을 배부했다고 한다
민주당원들이 이 책에 얼마나 열광했는지 알 만 하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이 책처럼 현실적으로 강력한 메세지인지 모른다
추상적이고 정의롭기만 한 뜬구름 같은 얘기는 현실에서 별 도움이 안 된다
재밌는 건 이 책의 저자 조지 레이코프는 노암 촘스키의 제자인데 서로 대립 관계라고 한다
촘스키 책은 안 읽어 봐서 모르겠지만 그동안 알려진 이미지로 미루어 볼 때 레이코프와는 상당히 다른 사람일 것 같다
레이코프가 더 현실적이고 투쟁적이라고 해야 할까?
책 내용 자체는 아주 건전하다
보수주의자인 공화당의 프레임은 엄격한 아버지 모델이다
진보주의자인 민주당의 프레임은 자상한 부모 모델이다
벌써 단어부터가 다르다
공화당이 아버지만 있는 데 비해, 민주당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두 아우르는 부모라는 단어를 쓴다
공화당의 기본 강령이 가부장제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공화당은 또 종교적으로도 징벌하는 엄격한 신을 숭배한다
도덕체계는 상벌로 유지되고 내면적 규율을 습득해야 사회가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가난한 것은 열심히 일하지 않은 탓이고, 부자는 본인이 노력했기 때문에 얻은 댓가이므로 가난한 자에 비해 도덕적으로도 우월한 사람들이다
반면 민주당은 가난한 사람들을 부유한 사람들이 돌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화당이 복지정책을 축소하려고 하는 것은, 그들이 가난한 이유가 바로 게으름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자상한 부모 모델을 지향하기 때문에 능력이 떨어진 사람들도 품으려고 한다
필연적으로 세금을 늘리고 큰 정부를 지향할 수 밖에 없다
저자는 작은 정부라는 단어 자체가 벌써 공화당의 프레임에 놀아나는 것이라고 한다
작은 정부라고 하면 왠지 좋은 쪽으로 들린다
세금을 줄이면 중산층은 노력해서 얻은 댓가를 국가에 뺏기지 않고 온당하게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공화당이 지지하는 정책은 자유주의 시장경제이므로 필연적으로 양극화가 따라오고 대부분의 중산층들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능력있는 사람이 다 갖는 게임판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세금을, 국민이 국가의 인프라를 이용하고 내는 회비라고 생각해 보자고 권한다
스포츠 클럽의 시설을 이용하려면 당연히 회비를 내야 한다
국민 역시 국가가 만든 고속도로나 인터넷 등을 이용하려면 그에 따른 회비, 즉 세금을 내야 한다
저자는 엄격한 의미의 자수성가한 사람은 없다고 단정짓는다
이 말이 당연한 것이, 사업을 할 때 사람들은 국가의 금융 시스템과 인프라를 이용해서 시작한다
빌 게이츠 역시 만들어진 인터넷 시스템을 통해 엄청난 부를 획득했다
그래서 그는 상속세 유지를 주장한다고 한다
또 저자는 세금을 미래에 대한 투자로 보자고 한다
군대를 유지하고 복지 시설을 만들고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엄청난 돈이 든다
개인의 힘으로 안보를 유지하고 고속도로를 닦을 수는 없다
우리 세대가 내는 세금으로 국가는 사회 인프라를 닦고, 이것은 미래 세대에 대한 투자가 된다
부모가 자식의 미래를 위해 교육비를 투자하듯, 우리 역시 다음 세대를 위해 세금이라는 제도를 통해 투자하는 것이다
스웨덴 등의 북유럽 복지 국가들이 큰 정부에 실패했다고 말이 많지만, 궁극적으로 복지 제도는 모든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믿는다
능력이 없어도 게을러도 머리가 나빠도 기본 생활 수준은 유지하고 살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사회가 대부분
의 사람들이 살기 좋은 그런 발전된 사회일 것이다
또 사회 밑바닥을 구성하는 계층이 누리는 질적 수준이 보다 높을수록 그들을 지원하는 우리 삶은 더욱 더 높은 수준의 복지를 누릴 수 있다고 믿는다
공화당은 사회적 약자에 대해 배려하지 않고 오히려 가난은 스스로의 책임이라고 비난한다
보수주의자들이 왜 동성애와 낙태를 혐오하는지도 알게 됐다
엄격한 아버지 모델에 비춰 보면 설명이 된다
동성애자들이 결혼을 할 경우 진정한 아버지가 없으니, 이것은 곧 기존 세력에 대한 반역 행위다
낙태를 하는 미혼모는 혼전 섹스라는 범죄를 저질렀으니 아이를 낳음으로써 벌을 받아야 하고, 커리어우먼 역시 자기 일을 위해 아이를 안 낳으려는 것이므로 당연히 아이를 낳는 벌을 받아야 한다
만약 보수주의자들이 정말로 생명을 옹호해서 낙태에 반대하는 것이라면 대체 왜 산전 진찰이나 어린이 의료보험 무상 지급에는 반대하는지 저자는 묻는다
그들은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 낙태 반대를 외칠 뿐이라고 일갈한다
진보주의란 작은 파이를 나눠 먹자는 얘기가 아니다
저자는 단어에 실린 프레임을 파악하고 그것을 깨뜨려 우리 식으로 다시 이야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코끼리란 바로 미국의 공화당을 일컫는 말이다
공화당을 이기려면 공화당이 하는 말을 반대해서는 안 된다
아예 공화당의 캐치프랜치 자체를 거부한 후 민주당의 시각으로 다시 언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진보주의에 대한 내 시각이 다시 한 번 확실하게 정립됨을 느꼈다
진보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잘 사는 것을 의미한다
동성애자, 여자, 유색인종, 빈민층, 장애인, 소수민족 등등 좀 더 많은 이들을 포용하고 함께 발전하자는 얘기다
현실적인 조언들이 많아 참 유익했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