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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드라이버 - [할인행사]
마틴 스콜세지 감독, 로버트 드니로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말로만 듣던 택시 드라이버를 드디어 봤다
제목이 영화 내용을 전혀 암시하지 않아 대체 무슨 영화인지 정말 궁금했었다
1970년대 제작된 영화인데 베트남 전쟁 증후군이 배경이라고 한다
로버트 드니로의 젊은 시절과 조디 포스터의 어린 시절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로버트 드 니로, 지금도 멋지지만 젊었을 때도 참 매력적이다
연기도 어찌나 잘하는지 음울한 뉴욕 배경에 완전히 녹아 들어갔다
조디 포스터가 열 두 살 때 출연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섹시한 초등학생이 과연 있기나 할지 정말 의문이다
키가 크고 다리가 어찌나 긴지 또 허리는 완전히 개미 허리...
감탄의 연속이었다
지금도 참 예쁘지만 어렸을 때도 정말 환상적이다
특히 그 긴 다리...
트래비스는 뉴욕의 우울한 택시 기사다
아무런 희망도 없고 즐거움도 없고 그저 매일 심야 택시를 운전하면서 뉴욕 밤거리를 배회하는 남자
선거 사무실 창문 너머로 본 베시와 잠깐 데이트를 했지만, 너무 성급하게 진도를 나가는 바람에 버림받는다
두 번째 데이트에서 포르노 영화를 보는 건 좀...
(그런 건 혼자 봐야지)
트레비스가 베시에게 대쉬하는 장면은 정말 멋있었다
서로 호감을 느낀 탓일까?
택시 기사이면서도 그는 사회적 지위에 아랑곳 하지 않고 오피스걸인 베시에게 직접 대쉬한다
그녀가 거절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 말이다
이런 남자 만나면 얼마나 행복할까?
서로 끌릴 수 있는 관계, 저 사람이 내 청혼을 받아 줄거라고 확신할 수 있는 관계...
그러나 강한 끌림은, 포르노 영화 한 편으로 무산되고 만다
그 후 다시 반복되는 지루하고 무의미한 일상들...
나는 자꾸 폴 오스터의 소설 "환상의 책" 이 생각났다
그 주인공 헥터만은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후 헐리우드 최고의 스타에서 부두 노동자로 전락하고 만다
일자무식이었던 헥터만은 뜻밖에도 뉴욕 공공 도서관에서 희망을 찾는다
책 읽는 즐거움을 발견한 것이다
낮에는 부둣가에서 육체 노동을 하고 저녁에는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을 읽으며 하루를 보낸다
노동의 댓가로 얻는 돈은 방 한 칸에서 세 끼 식사하기에 부족함이 없고 대출증만 있으면 원없이 책을 빌릴 수 있다
헥터만은 단순함 그 자체인 삶에서 무한한 만족감을 느낀다
택시 드라이버의 트레비시도 헥터만과 비슷한 상황이다
그런데 그는 왜 일상이 무력함에 지쳐 우울해 하는가?
두 사람의 차이는 뭘까?
현실에서라면 아마도 트레비시 쪽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집중할 대상을 찾느냐 못 찾느냐이지 않을까?
칙센트미하이가 말한 몰입의 기술이야 말로 행복의 근원이 아닐까?
아마도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행복은 소통과 나눔일지도 모른다
연인이나 가족의 존재, 사랑을 나눌 대상이 있다면 아무리 일상이 비루하고 초라해도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제일 기억에 남는 말은, 트레비시가 선배에게 조언을 구할 때 그가 해 준 충고였다
남자가 직업을 가지면 그것은 곧 그의 삶이 된다는 얘기였다
비단 남자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먹고 살 생계수단이 정해지면 그 때부터 그 일은 곧 나 자신이 된다
나 역시 내 직업에 나를 맞춰 가고 있다
변호사든 의사든 어떤 고귀한 직업이든 택시 기사든 누구든 다 마찬가지라는 그 말이 기억에 남는다
결국 우리 자신을 규정하는 것은 생계수단, 직업인지도 모른다
선배 택시 기사는 실망하는 트레비시에게 자조적으로 중얼거린다
나 같은 택시기사에게 뭘 기대한 거야? 우린 낙오자들이야...
택시 기사가 낙오자인가?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다
그렇지만 곰곰히 따지고 보면 사회적 지위로 볼 때 가장 아래 계층을 형성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다 하다 할 게 없으면 기사로 취직한다고 하지 않는가
별다른 기술 없이 운전만 잘 하면 되니까
대체적으로 기사들은 사회의식도 낮은 편이다
트레비시 역시 뉴욕의 밤거리를 청소해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 쓰레기들을 말이다
실제로 그는 어린 아이리스를 창녀로 잡고 있는 포주와 그 일당을 쏴 죽인다
그리고 일약 영웅으로 떠오른다
매우 반어적으로 말이다
어찌 보면 트레비시는 인종 우월주의자와 비슷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흑인을 차별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다른 의미로 차별주의자다
창녀, 노숙자들, 사회 하층민들에 대한 적대감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아마도 그가 생각하는 쓰레기들이란, 매춘업을 일삼고 직업도 없이 떠도는 사회 부적응자들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어떤 인생이든 나름의 가치는 있다
사회 정화 운동이란 말처럼 무서운 단어가 또 어딨는가?
크게 보면 이것도 결국 나치즘의 인종 청소와 다를 게 뭐겠는가?
왜 자신의 지루하고 우울한 일상을, 사회 탓으로 돌리는지 알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이 트레비스라는 인물은 매우 위험한 종류임이 분명하다
범죄자나 포주를 죽였다고 그 행동이 정당화 될 수 있는가?
마치 죄와 벌에서 고리대금을 일삼는 노파를 주인공이 응징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누가 그에게 판단할 권리를 줬는가?
트레비스가 갑자기 삶의 의욕을 느끼고 열심히 몸을 만들 때는 참 보기 좋았다
일단 목표가 생기니까 놀랍도록 집중하는 모습에서 생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그 목표의 방향은 잘못 된 거였다
암살이나 인간 쓰레기 청소라니...
어쨌든 인생의 행복은 목표를 정하고 매진하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BBC에서 만든 "행복" 이라는 책에서도 목표가 있는 사람이 건강하게 오래 살고 행복할 수 있다고 했다
나의 목표는 뭘까?
한 번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 없다
앞으로는 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겠다
무기력한 태도는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시키고 좀 더 높은 곳을 향해 갈 때 우리 삶이 더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