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신드롬
제임스 트위첼 지음, 최기철 옮김 / 미래의창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왜 명품에 열광하는가?
그보다는 왜 사치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이 더 어울린다
사치스러운 생활이 삶의 질을 높혀 줄까?
단순히 남보다 더 나은 삶을 즐길 수 있다는 우월감 때문에 원하는 것은 아닐까?
50여년 전만 해도 냉장고, TV, 가스레인지, 심지어 상하수도관까지 사치품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면 사치가 인간의 삶을 풍성하게 해준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가방 하나에 100만원을 훌쩍 뛰어넘는 명품을 갖는다고 정말 삶이 행복해질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중요한 건 명품을 소유하면 남이 나를 대단하게 보고, 나는 그 부러움을 즐긴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바로 이 타인의 선망을 위해 물건 가치에 비해 턱없이 비싼, 비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것일까?

명품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비웃었지만 나 역시 하나쯤은 갖고 싶었다
나는 합리적인 소비를 신봉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명품을 갖기 위해 직접 지갑을 열지는 않지만, 대신 선물을 받으면 좋아했다
나에게 반드시 필요한 물건은 아니지만 그것을 들고 다님으로써 내 가치가 올라간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심리야말로 유치하고 속물적인 근성 아닐까?
남과 다르다고 생각하면서도 속으로는 역시 바라는 지적 스노비즘 내지는 위선 같은 감정은 아닐까?

인터넷에 널려 있는 명품 가방들을 고르면서 나 역시 그들의 희생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호사품이란 소수가 갖고 있기 때문에 가치있는 법인데,  인터넷에서 대량 판매되는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들은 브랜드 네임 밸류를 높이기 위해 애를 쓰고 마치 특별한 사람만이 그것을 소유할 수 있는 것처럼 광고한다
그리고 나서 좀 더 저렴한 제품을 대량으로 판매한다
100만원 짜리 가방은 쉽게 못 사지만 30-40만원 정도 하면 나도 한 번?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겠는가
바로 내가 그 경우였다
인터넷에서 수백개 널려 있는 판매 리스트를 읽으면서 명품 산다고 우쭐한 것이다
나 같이 순진하고 속물적인 소비자들의 심리를 꿰뚫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 책의 미덕은 저자가 절대 소비를 나쁜 것만으로 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시각의 균형을 유지한다고 할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란 필수 요소다
생산을 늘리기 위해 많이 쓰라고 부추기지 않는가?
그러므로 호사품에 대한 열광을 단순히 어리석은 대중의 속물적 취향이라고 넘길 수는 없는 문제다
그런 이론은 자본주의의 원리를 제대로 모른다는 증거다

호사품이 나오면 부자들이 비싼 값을 지불하고 그것을 소비한다
그들이 내는 돈 덕택에 생산자들은 더 많은 호사품을 만들어 내고 가격은 계속 떨어져 결국 호사품은 대중품으로 변신해 누구나 싼 값에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부자들의 호사품 소비를 나쁘게 볼 수만 없다
호사품을 만드는 근로자들을 위해 특별 소비세를 폐지할 수 밖에 없는 미국의 정책을 보면 이 말은 사실인 것 같다
자동자, 텔레비젼, 냉장고 등의 호사품은 이런 과정을 거쳐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소비가 생산을 촉진하고 결국 전체 부를 증가시킨다는 이론은 사실이다
교회는 부자들에게 사치를 줄이고 빈민들에게 적선하라고 가르치지만, 실제로 교회는 비판만 할 뿐 빈민을 구제할 재화는 만들지 못한다
아이러니컬 하지만 빈민을 구제하는 것은 부자들의 사치스런 소비 행태다
적은 파이를 공평하게 나누는 것 보다 파이 크기를 키워 할당량을 높이는 게 더 현명하다는 얘기다
비록 나보다 훨씬 많이 먹는 사람을 시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 봐야 하지만 말이다
볼링을 혼자 치면 재미없지만 아예 못 치는 것 보다는 낫다는 저자의 비유가 딱 들어 맞는 상황이다

사실 우리가 부자들의 사치스런 생활을 비판하는 건 그들을 질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들에게 사치할 자유를 주라고 말한다
이것은 자본주의 속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에게 사치품이 진짜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남이 그것을 가지고 있든 말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호사품을 즐기는 사람들에 대한 취향은, 인문주의적 교양을 즐기는 사람과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저자는 성별, 인종, 가문 등에 의해 사람을 평가하는 것보다 돈으로 평가하는 것이 더 인간적이라고 말한다
성별이나 가문 등이야 도저히 바꿀 수 없는 태생적인 것이지만, 돈이야 벌면 된다
가능성 면에서 보면 돈 벌 확률이 적든 많든 일단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부와 가난의 세습을 지적하지만, 혈통으로 신분이 결정되는 중세에는 아예 바꿀 가능성조차 없지 않았는가?

베블런의 과시적 소비는 럭셔리 신드롬을 파악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우리는 합리적 소비를 한다고 배우는데, 호사품에 대해서는 대단히 비합리적 소비를 한다
즉 물건의 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돈을 지불한다는 것이다
호사품의 가치는 그것을 만들 때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 만든 후 광고에 의해 결정된다
구찌나 페레가모 가방이 아무리 좋은 천으로 만들어진다고 백만원을 호사하는 가격을 매길 만큼 가치 있을까?
명품의 가격은 그것이 주는 이미지에 의해 결정된다
수요 공급 법칙과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런 걸 생각하면 대를 이어 쓴다면서 질이 틀리고 품격이 다르다는 식의 명품 예찬론자 말이 얼마나 허구인지 금방 알 수 있다
그들은 광고의 미사여구를 충실히 재생해 주는 어리석은 소비자일 뿐이다
그들이 명품에 열광하는 진짜 이유는 그것을 소유하면 격이 틀려 보일 거라는 광고의 황당하기까지 한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명품을 사기 위해 빚을 지는 한국과 일본의 젊은 여성들이 가엾다

디더롯 효과라는 게 있다
하나를 제대로 갖추면 또 다른 하나도 갖춰야 하고 결국 전체를 다시 준비해야 한다
최강희가 인터뷰 한 걸 보면 자기는 명품을 안 입는데, 하나만 갖추면 조화가 안 되니까 전부 갖춰야 하는데 그럴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솔직한 말이다
가방만 번지르하고 옷은 후줄근 하면 그것도 꼴불견일 것이다
결국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명품으로 갖춰야 제대로 입었다고 느낄 것이다
명품 회사들은 이 심리를 꿰뚫고 있기 때문에 거의 모든 품목을 만들어 낸다
시계, 가방, 옷, 악세사리, 심지어 헤어핀, 지갑, 열쇠고리, 썬글라스 등등 그들이 손을 안 대는 분야가 없다

물건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어리석다고 말하지만 학자들조차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물건만 사려고 한다
하루키의 "슬픈 외국어" 에서도 본 거지만 교수라면 하이네켄을 마시고 볼보를 몰아야 한다는 식으로 집단 나름의 내제된 규칙이 있다
그들이 단지 비싼 물건에 열광하지 않는다는 얘기지, 물건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건 절대 아니다
물건을 그 가치로만 평가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담긴 이미지로 판단하는 건 학자들도 마찬가지다
물질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사회 생활을 하는 이상 불가능한 얘기인지도 모른다

미술품 역시 르네상스 시대에는 사치품 역할을 했다
오늘날처럼 대중 매체가 없는 시대에 그림은 소유자의 품격을 드러내는 호사품 중 하나였다
영주와 교황 등이 그 호사품의 소비자가 됐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지만 네덜란드에서 한 때 튤립이 호사품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호사품이 얼마나 상대적인 개념인지를 알려 준다
그래도 그림이 사치품인 건 괜찮다
아무리 시대가 지난다 해도 명품이 예술품으로 둔갑할 일은 없을 것이다
광고에서는 그들의 장인 정신 어쩌고 운운하지만 말이다

명품을 구입하는 것이 하드웨어를 사는 거라면, 명품이 실린 잡지를 사는 것은 소프트 웨어를 준비하는 것과 같다
잡지를 열면 수많은 광고들과, 그 물품을 소비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기사들로 가득차 있다
패션 잡지를 볼 때마다 모델들이 입은 옷과 구두를 사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결국 모델처럼 완벽하게 다 준비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그런데 이것이 다 판매를 위한 전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잡지에 나온 그대로를 따라 한다는 건 평범한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일이고, 그럴 능력이 되는 사람은 잡지 따위에 의존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잡지를 통해 물건에 대한 도달할 수 없는 욕구만 느낄 뿐이다
그 욕구가 폭발하면 적당한 가격의 (물건 가치에 비해서는 엄청나게 비싸지만) 명품을 하나라도 구입하려고 애쓴다
한 달치 월급을 털어서라도 말이다

책을 읽는 이유는 이처럼 세상을 보는 올바른 시각을 키우기 위해서다
내가 500페이지 남짓한 이 두꺼운 책을, 다소간의 지루함을 무릅쓰고 읽었으면서도 여전히 명품에 대한 헛된 환상을 갖는다면 대체 내가 책을 읽은 이유가 뭐란 말인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카프카의 말처럼 내면의 얼어붙은 정신을 깨는 도끼가 되지 않는 책은 실은 별 가치가 없다
그는 단순히 읽는 재미를 주는 책이라면 남이 써 놓은 걸 읽을 게 아니라 직접 쓰고 말겠다고 했다
감동을 넘어서 내 가치관과 시각에 변화를 주는 것이 바로 책이다
이제 호사품에 대한 내 관점을 바꾸겠다
물건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어리석다
나는 물건의 진짜 가치만으로 판단하겠다
대신 사치품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심리도 이해하겠다
나는 사치품 대신 인문학적 지식과 교양에서 기쁨을 느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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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권력과 싸우다 - Kafka Franz
박홍규 지음 / 미토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카프카, 역시 어렵다
아직 내 수준이 이런 책을 읽을 만큼은 아닌 것 같다
박홍규는 비교적 쉽게 평전을 쓰는 사람인데 만만치 않은 걸 보면 카프카의 작품 자체가 어려운 것 같다
카프카의 일생에 대해 나온 부분은 재밌었는데, 작품 인용한 부분은 솔직히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
오늘 컨디션이 나빠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카프카는 체코에서 태어난 유태인이다
우리나라야 단일 민족 국가로 복잡할 게 없지만 유럽은 그 다양성 때문에 그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그 나라 사람이 아닌 경우가 많다
카프카는 체코에서 태어났으나 유태인이었고, 당시 체코를 지배하던 독일어를 구사한 사람으로 정체성이 모호하다
유태인이란 그 나라에 태어나도 국민으로 인정되지 않는 사람들인가?
팔레스타인에 독립 국가를 세울 수 밖에 없던 그들의 설움이 이해가 간다

카프카의 사진을 보면 무척 잘 생겼다는 느낌이 드다
저자도 인정하는 바다
젊어서 죽어서인가?
노년의 사진이 없고 젊은 시절 사진만 있어 더 멋있게 보인다
나름대로 인텔리 계층이었을 것 같다
대단한 벼슬은 아니더라도 법대 졸업 후 관리로 일했으니 나름대로 지식인으로 살았을 것이다
그는 특이하게도 산업 재해 보험 공단에서 공무원으로 일한다
작가와 공무원이라...
혹시 배수아도 카프카를 본뜬 건 아닐까?
카프카는 스피노자를 본받았다고 한다
스피노자는 렌즈알을 갈면서 밤에 글을 썼다고 한다
카프카는 당시 유명한 작가도 아니었고,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쓴다는 것을 참을 수 없어 다른 직업을 구했다
나는 늘 전업 작가가 되지 못한 것을 한탄스러워 했는데 카프카를 보면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다

카프카에게 있어 글이란 내적 고백, 바깥 세상에 대한 투쟁의 방법이었다
치열한 작가 정신이란 바로 이럴 때 쓰는 말 같다
아마추어리즘도 이 정도의 의식을 갖고 있으면 프로패셔널 못지 않을 것이다
그는 내면의 얼음을 깨는 도끼와 같은 책이 아니라면 왜 시간을 투자해 독서를 하겠냐고 반문한다
재미를 위해서라면 차라리 직접 글을 쓰겠다고 했다
깊이 공감하는 바다
누군가의 지적처럼 현대 사회에서 굳이 책 읽기만이 유일한 즐거움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이유는 우리 정신의 각성을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책을 통해 다른 사람의 사상을 공유하고 비판하고 내 앞날을 다시 설계하는, 또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찰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나는 독서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정신적 욕구라고 생각한다

카프카의 아버지는 성공한 유태인으로 유태주의를 혐오해서 가능하면 독일인처럼 보이려고 애쓴다
그는 독재적이고 가부장적인, 또 속물 근성이 농후한 인물이었다
평생을 권력과 싸운 아들과 당연히 반목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프카는 평생을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정말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고 싶었다면 관리가 된 후 독립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그가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 부모와 같이 살았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그의 집은 여러 식구들이 만들어 내는 소음 때문에 글을 쓰기에 적합하지도 않았다
카프카는 오후에 자고 모두 잠든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는 생활을 했다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독립했어야 하지 않을까?

카프카의 두 남동생은 어려서 죽고 세 명의 여동생이 태어나지만 불행히도 2차 대전 때 나치 수용소에서 죽는다
그의 마지막 사랑인 밀레나 역시 수용소에서 죽은 걸 보면 1차 대전 후 요절한 게 더 나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가 수용소로 끌려 갔으면 건강 때문에 일찍 죽었겠지만 그 안에서 치열한 갈등을 겪었을 것 같다
어쩌면 그의 문학이 한층 성숙할 기회가 됐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는 41세의 젊은 나이로 결핵에 걸려 죽는다
당시 결핵은 이미 치료제가 나와 불치병이 아니었는데도 원래 몸이 약해서인지 죽고 만다
남동생의 죽음 때문에 의사를 불신했던 카프카는 특이한 식이요법을 좋아하고 채식주의자였다고 한다
건강하지 못한 건 그의 책임 같다

박홍규는 카프카가 일찍 죽긴 했지만 병약하거나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약한 인간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직접 카프카를 안 만나 봤으니 뭐가 옳은 건지는 모르겠으나, 박홍규식 해석은 신선하다
그는 위인에게 덧씌워진 신비화나 이상화를 걷어내려고 한다
평범한 인간으로 대한다고 할까?
지나친 상징과 의미 부여는 위인의 실체를 가리고 오히려 그의 업적을 퇴색시킨다
그래서 박홍규식 해석은 새롭고 읽기 편하다
전부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박홍규에 따르면 카프카는 보험 관리 공단에서 이사까지 승진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노동자들을 위해 일하려고 애썼다
또 카프카는 데생 실력이 뛰어났다
그는 김나지움이 미술에 대한 안목을 뺏어 버렸다고 한탄하면서 손가락이 잘린 노동자의 그림을 보고서에 자주 첨부했다
그림 실력이 있으면 사물을 더욱 명확하게 관찰할 것 같다
지나친 비약 같지만 카프카의 뛰어난 관찰력이 삶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했을 것 같다
카프카는 노동을 신성시 하고 수영이나 보트타기 갖은 운동도 좋아했다
그는 자본주의 기업이 사라진 평등한 노동 공동체를 꿈꾼다
그래서 말년에 팔레스타인으로 들어갈 생각도 한다

물론 그는 유태주의도 싫어했다
권력을 싫어했던 만큼 민족주의도 혐오했다
자본주의의 폐해를 비판하면서 사회주의 역시 인간을 소외시킨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박홍규는 카프카를 아나키스트로 본다
박홍큐는 까뮈 역시 아카니스트로 간주했다
아나키스트를 무정부주의자로 번역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반권력주의자 뭐 이런 게 아닐까?
규제와 억압을 철폐하고 인간 본연의 자유를 추구하는 평등한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람들 정도?
작가들이 아나키즘에 경도되는 건 당연해 보인다
사회주의 보다 좀 더 그들의 속성과 어울린다

카프카는 여성과의 섹스를 혐오한다
감수성 예민해 보이는 이 친구는 사진만 봐도 그랬을 것 같다
그러나 자위를 금기시 하는 분위기 때문에 사창가에서 성욕을 해결하기도 했다
카프카는 첫 약혼녀 펠리체와 수백통의 편지를 주고 받는다
솔직히 부럽다
나는 아무래도 글 쓰는 사람을 만나야 하려나 보다
내가 꿈꾸던 이상적인 연애도 바로 이런 형태다
넘쳐 오르는 생각들을 격렬하게 편지에 적어 보낼 수 있는 사랑, 또 상대로부터 나만큼의 끓어 오르는 감정들을 고스란히 답장으로 받을 수 있는 바로 그런 관계를 원했다
그런데 펠리체는 카프카 보다는 현실적인 인물이라 수십장에 걸친, 거의 소설 수준인 카프카의 편지에 대해 가벼운 글로 답장했다고 한다
아마 좀 예민한 사람이라 느꼈을 것이다
그래도 그녀가 카프카의 편지를 소중히 간직한 덕에 무명 작가로 죽은 카프카 사후 활발한 연구를 할 수 있었다
옛 애인의 편지는 절대 간직해서는 안 된다는 충고가 위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나 보다
펠리체는 카프카의 편지를 출간해 병원비를 댔으니까

자신만큼 열정적인 밀레나를 만난 후 카프카는 또 많은 편지를 주고 받는다
당시 그는 율리에와 약혼한 상태였고 밀레나는 유부녀였다
간단히 말하면 부적절한 관계였던 것이다
그러나 카프카는 섹스를 혐오하고 정신적 사랑을 추구한 사람이었으니 이 둘 간에 직접적인 접촉은 없었고 편지로만 격렬한 사랑을 나눴다
카프카는 밀레나에게 남편과 헤어질 것을 강력히 권했으나 결국 그녀는 유태인인 남편을 떠나지 않고 2차 대전 때 수용소에서 죽는다
밀레나는 카프카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다

카프카의 작품은 어렵지만 그의 일생은 퍽 흥미롭다
무엇보다 전업작가가 아니면서도 치열하게 글을 썼다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든다
롤 모델을 만난 기분이랄까?
글쓰기나 독서에 대한 그의 태도도 정말 마음에 드다
나 역시 그렇다
내 정신 세계를 깨뜨리는 도끼로서 책을 읽고 싶고 외부 세계에 대한 투쟁의 일부로써 글을 쓰고 싶다
카프카가 공무원이라는 비교적 안정되고 시간이 많은 직업을 얻어 생계 걱정 없이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처럼, 나도 안정된 직업을 가져서 다행스럽다
솔직히 말하면 가만히 앉아 있어도 승진하는, 절대 잘릴 리 없는 공무원이 더 부럽다
내가 책에 대해 이렇게 강렬한 애정을 갖는지 알았다면 차라리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할 걸 그랬다
인문대에 진학해서 원하는 공부 마음껏 하고 공무원 시험 합격해서 적은 돈이지만 쫒겨날 리 없는 안정된 직장에서 책 읽고 글 쓸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할까?
배수아는 관세청에서 일하는 공무원인데 그녀처럼 유명 작가가 될 수는 없겠지만, 자기 만족감은 충분히 얻을 수 있을텐데

그렇지만 내 직업도 나쁘진 않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나아갈 바를 확실히 깨달은 기분이다
나는 돈을 많이 버는 것 보다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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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과 김용옥 - 상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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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이라는 작가는 그다지 호감이 안 가지만 그의 소설에는 깊이 감동한다
강준만이 비판하는 그 서구식 교영주의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나는 그의 미려한 문장에 늘 감탄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을 읽을 때 한 장 한 장 넘기는 게 어찌나 아까운지 밑줄 긋는 심정으로 읽었다
그가 만연체를 쓰고 장중하고 화려하게 미사여구를 동원해 가끔은 읽기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 문장은 눈에 쏙쏙 꽂힌다
모름지기 소설가라면 적어도 이 정도 수준의 문체를 보여 줘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일까?
나는 배수아나 김영하 같은 가벼운 작가의 소설은 왠지 신뢰가 안 간다
자꾸 기본이 안 됐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현대 문학의 특성상 가볍고 빠른 문체를 수준 낮다고 비난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정말 기본적인 수준은 되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배수아 소설을 읽을 때는 정말 짜증이 날 정도였다
이렇게 함부로 글을 쓰다니, 얘 문학 수업 한 거 맞나?
그런데 왜 이런 애들 글이 팔리지?
신기하다...

이문열이 누리는 문화 권력은 너무나 일상적인 것이 되서 새롭지도 않은 주제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뻔한 소재다
이 당연한 전제가 과연 논리적으로 합당한지 알고 싶어서 책을 읽었다
강준만의 진짜 전공은 신문 방송학이 아니라 인물 비평인 것 같다
"대중문화의 겉과 속" 에서는 나를 몹시 실망시키더니, 그래도 이문열 비판은 시원시원 하다
이문열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그래서 작은 것 하나까지 철저하게 챙긴 것 같다
그는 아무래도 학자 타입은 아닌 것 같다
교수 직함은 글 쓰는 자격으로 가지고 있고 진짜 직업은 정치 비평가로 나가야겠다

김용옥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어서 1권만 빌렸다
이문열은 내가 그의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비판가들로부터 가장 형편없는 작품으로 꼽히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마저도 나는 너무 재밌게 읽었다
이문열은 천부적인 이야기꾼이다
어쩜 그렇게 맛깔스럽게 얘기를 잘 하는지...
그 문장의 질과 더불어 플롯 구성이 탄탄하다
특히 중단편들을 보면 더욱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장편과 달리 짧은 분량에서 완성된 구조를 보여 주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그의 중단편은 장편 못지 않게 탄탄한 구조가 돋보인다
적어도 그를 문학성만 가지고 깍아 내릴 수는 없으리라

문학적으로는 훌륭하다
그냥 글만 쓰는 작가였다면 오늘날의 위상도 얻지 못했겠지만 이 정도의 비난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왜 문화 권력을 탐하는가?
강준만이 지적하는 대로 그는 권위주의와 가부장제로 뭉친 사람이다
조선 시대 큰 선비에 비유하는 것은 아주 적절하다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전통 문화에 대해 얼마나 큰 애착을 갖는지 알 수 있다
사실 애틋한 면이 많았다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문장 곳곳에 묻어나 마음이 쓸쓸했다
매잡이도 그렇고 갓 만드는 노인도 그랬다
더 이상 가치를 얻지 못하는 것들을 붙들고 있는, 그것도 돈벌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예술로써 붙잡고 있는 구시대의 장인들에 대한 묘사는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런데 그는 여전히 현대 사회에서도 권력을 휘두르는 가부장제와 족보, 문중, 권위주의 등에 대해서도 강한 애착을 보인다
역설적으로 가부장제가 구시대의 유물에 지나지 않는다면 이문열이 굳이 욕먹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저 취향 내지는 신념의 다양성으로 치부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21세기 한국 사회는 가부장제에 꽁꽁 묶여 있을 뿐더러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다
즉 가부장제를 숭상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문학을 통해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해 내고, 그 댓가로 문화 권력을 얻는다
비판자들은 이것을 공격한다

이문열은 아버지가 월북한 후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끊임없이 보여 줘야 했다
고시에도 실패하고 젊은 시절을 불행히 보낸다
그런데 어떻게 그는 대한민국 사회의 중심 인물이 됐을까?
강준만은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신해 자기가 당했던 그 방식을 답습한다고 지적한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할 때 더 무섭고 위선적이며 철저한 법이다
일반적으로는 자신을 핍박하는 지배 체제에 반항하기 나름인데, 이문열은 영리하게도 그 지배 체제 200 % 동의해 그들보다 더 완벽하게 지배 이데올로기를 내제화 시킨다
사실 이것은 자기 성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원래 이문열은 공산주의 속성이 없다
아버지가 월북하지 않았더라도, 그래서 빨갱이 자식이라고 차별받지 않았더라도 그는 공산주의를 혐오했을 것 같다

그가 실은 민주주의를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딱히 꼬집어 증명할 수는 없지만 강준만의 이 느낌이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회는 박정희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나와 어리석은 대중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권위주의 사회다
그는 대중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는다
권위주의야 말로 문중과 더불어 그를 설명하는 가장 적확한 단어 같다
이러한 이문열의 성향과 가장 대조적인 사람이 바로 마광수가 아닐까?
마광수는 문학의 다양성, 더 나아가 다원주의 사회를 꿈꾼다
"즐거운 사라" 가 법정으로 간 것은 황당한 사건이다
하긴 "천국의 신화" 도 검찰에 출두했으니 할 말도 없지마 말이다
왜 사법 당국은 자신들이 국민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능력이 있다고 믿는 것일까?

마광수 소설이 문학적으로 우수한지 비열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다양성의 측면에서는 인정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가 간통 같은 부도덕적인 일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좀 야한 소설 몇 권 썼을 뿐인데 구속까지 시키는 건 너무 한 거 아닌가?
나도 그의 소설을 읽어 봤지만 요즘처럼 인터넷에 성이 넘쳐 나는 시대에 그 정도면 별 문제도 아니다
연세대 교수라는 신분 때문에 문제가 된 걸까?
글쎄, 명문 사립대 교수는 반드시 정숙한 소설만 써야 하는 건가?
어쨌든 이런 마광수와 가장 배척되는 사람이 바로 이문열이니, 그가 마광수를 작가로 인정조차 안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문열의 진짜 적수는 진중권이다
여당과 시민 단체의 관계를 이문열과 젖소 부인 관계로 비유한 그의 글발은 놀랍기 그지 없다
강준만 보다도 한 수 위 같다
미학을 전공했다더니만, 확실히 정곡을 찌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앞으로 진중권 책도 읽을 생각이다
이문열은 진중권과의 직접 대결을 피한다
이길 수 없으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깨달은 것은 신문과 문학의 문언유착이다
신문은 TV 보다는 덜 상업적이고 더 수준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데, 강준만은 신문 역시 철저하게 상업주의를 표방한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TV 광고에서 만큼은 책을 팔지 않게 되길 바란다는 이문열의 바램을 비웃는다
왜? 그의 소설은 신문에서 엄청나게 팔아 주니까 말이다
강준만은 일제 시대부터 신문이 문학을 지배해 왔다고 말한다
식민지 치하였으니 사회 비평이나 역사 평론 같은 것은 못하고, 가장 원만한 형태의 문학만이 신문에 제대로 실릴 수 있었다
그래서 신문은 문학을 장악하고 문단에 등단하기 위해서 신춘문예는 필수 코스가 됐다

이 신춘문예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심사위원이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이문열만 해도 여러 신춘문예의 심사위원을 겸하고 있다
새롭고 참신한 인재를 개발해 줄 신문에서 예비 작가들에게 심사위원의 입맛에 맞출 것을 강요하는 꼴이니 기존 문학의 답습 밖에는 되지 않는 셈이다
그러므로 신문이 진정으로 문학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신춘문예 이외의 여러 등단 루트를 열어 주고 심사위원 역시 특정인에게만 집중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결국 21세기를 지배하는 원리는 다원성 같다
권위주의와 반대되는 말, 민주주의와 동의어가 바로 다원주의 같다
세상이 변하고 있음을 새삼 느낀다

이문열의 문화 권력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바로 철저한 상업주의에 있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속 그가 먹히는 이유도 바로 돈을 벌어 주기 때문이다
그는 평역한 "삼국지" 까지 합치면 천만권 이상을 판 엄청난 베스트셀러 작가다
천만권이라니, 상상이 안 가는 부수다
그의 작품은 늘 대중에게 먹힌다
심지어 이문열이 선정한 고전이라는 전집도 나오고 그의 중단편은 끊임없이 끼워 넣기 식으로 재출간 된다
이것은 우리 문단의 스타 시스템과 관련이 크다
즉 신문으로서는 모험을 하고 싶지 않다
확실한 것만 띄워 준다
영화나 드라마 캐스팅 때 스타들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 것과 같은 이치다
일단 이문열 작품이 어느 정도 먹힌다고 생각되니까 신문에서는 안전제일주의로 그의 작품을 계속 띄운다

강준만은 그가 철저히 상업적인 작가임을 지적하면서 마광수에게 상업성 운운하는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냐고 비웃는다
적어도 그 말은 맞는 것 같다
설마 자신이 상업주의와 무관하다고 믿는 것은 아니겠지?
하긴 그렇다고 대놓고 나 돈 벌려고 글 쓰요, 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문열이 간접적으로 위선을 떠는 반면 김용옥은 대놓고 말하는 스타일이다
어쨌든 둘은 튀길 좋아하고 기본적으로 문화 권력 내지는 지식 권력을 원한다
특히 미디어의 지배를 통해 권력을 휘두르고자 한다
김용옥은 관심없는 사람이라 이만 각설한다
"신들메를 고쳐 매며" 를 쓰던 그 자세로 이제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말년의 대작을 위해서 정진했으면 좋겠다
수십년 간 누려온 그 문화 권력을 내려 놓고 문학사에 길이 남을 대작을 쓰길 기대한다
우리 문학사에도 자랑할 만한 큰 작품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이문열이 그 작품을 써 주길 바란다
그는 충분히 역량있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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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클라시커 50 11
바르바라 지히터만 지음, 안인희 옮김 / 해냄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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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클라시커 시리즈는 기획 의도는 좋은데 집필 내용은 수준 이하다
솔직히 왜 번역하는지 모르겠다
그저 하나의 주제에 따른 50개의 다른 예를 단순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
"커플" 읽을 때도 짜증났는데 "여성" 역시 마찬가지다
작가 수준의 문제인가?
아니면 편집의 한계인가?
독일에서 출판되는 거라 그런지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많다

인상적인 인물들은 있었다
제일 기억나는 사람은 그리스 신화의 메데이아다
마리아 칼라스가 즐겨 맡은 역할인데 그녀의 정열적인 이미지와 딱 들어 맞는다
메데이아는 바람난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애인을 죽이는 것은 물론 자식들마저 죽인다
남편의 기쁨을 모두 빼앗고 싶었던 것이다
차라리 이아손을 죽이면 되지 왜 자기가 낳은 자식들마저 죽여야 했을까?
그야말로 복수의 화신이 아닐 수 없다
동양 신화 같으면 아무리 복수를 한다고 해도 어머니가 친자식을 죽이는 설정은 불가능 할텐데, 역시 그리스 신화답다

이집트 여왕 하쳅수트나 예카테리나 여제 등도 흥미롭다
하쳅수트는 의붓아들의 섭정 노릇을 하다가 직접 여자 파라오에 등극하는데, 20여년을 다스렸으나 죽은 뒤 그녀의 이름은 전부 지워졌다
의붓 아들 투트모세 3세가 계모의 흔적을 역사에서 지운 것이다
여자 파라오에 등극하고 자그만치 20년 씩이나 나라를 다스렸는데도 권력 기반이 확실하지 못했나 보다
솔직히 의붓아들을 20년 씩이나 살려 둔 것도 신기하다
그녀에게는 친딸 네페루레가 있었는데 왜 그녀를 후계자로 삼을 생각을 못했을까?
여자라는 한계 때문이었을까?
하긴 측천무후도 직접 황제의 자리에 올랐지만 결국 감금 상태로 죽고 말았다

반면에 예카테리나 여제는 남편을 죽이고 차르에 오른 독특한 케이스다
그녀는 러시아 사람도 아니고 독일 여자였다
그녀는 권력 기반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귀족들이 그녀를 권력 파트너로 삼았을까?
아무리 남편 표트르가 멍청하다고 해도 황제 자리에서 끌어 내고 외국인 마누라를 세운다는 건 납득하기 힘들다
대체 그녀는 어떻게 러시아 청년 장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을까?
불가사의한 일이다

마리 퀴리를 비롯한 여자 과학자들의 생애는 늘 감동을 준다
그녀들이 과학 분야에서는 소수였고 편견을 열정으로 이겨 낸 의지의 화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퀴리 부인이야 더 말할 것도 없을 만큼 널리 알려진 사람이지만, 리제 마이트너는 처음 알게 됐다
불행한 유태 여성 과학자였던 그녀는 나치 치하에서 연구를 중단하고 스웨덴으로 망명한다
수용소에서 안 죽은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공동 연구를 진행하던 오토 한은 핵분열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상을 단독 수상했다
그렇지만 화학 분야에서 빛나는 그녀의 업적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독일 학생운동의 꽃인 소피 숄의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겨우 스무 한 살 먹은 이 여대생은 오빠 한스와 함께 "하얀 장미" 라는 지하 조직에서 삐라를 돌린 죄로 사형에 처해진다
나치 치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국가 전복죄라니, 너무나 엄청난 죄목이라 도저히 스물 한 살 짜리 여자애와 연결이 안 된다
왜 독재 국가들은 보잘 것 없는 개인의 힘을 이토록 두려워 하는 것일까?
2차 대전 치하였기 때문이겠지만 그녀와 오빠 한스는 재판 2개월 만에 처형된다

마돈나는 섹스의 화신으로 현대 연예 사업을 요리하는 주체성으로 대표된다
그녀의 노래를 제대로 아는 게 없어서 그 위력이 실감은 안 나지만, 어쨌든 모든 언론과 출판물에서 그녀는 대중 문화의 요리사로 나온다
대중 문화의 소모품이 아니라 그것을 주무르는 능동적 객체로 묘사된다
대체 그녀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아마도 그녀는 대중 문화의 속성을 꿰뚫고 있는 것 같다
반면 락가수 제니스 조플린은 마약 중독에 빠져 스물 여섯의 나이로 죽었다
절제하지 못한 댓가일까?
마를린 먼로 역시 마약 중독으로 죽은 것을 보면 마돈나의 지배가 더욱 대단해 보인다

제인 오스틴은 결혼도 하지 않은 얌전한 18세기 여성이었다
목사 딸이었는데 당시 여성들처럼 집에만 갇혀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놀라운 관찰력으로 빅토리아 시대인들의 풍속사를 잘 묘사했다
"오만과 편견" 은 꼭 읽어 보고 싶은 책이다
애거사 크리스티도 집에 머무르는 걸 좋아하는 주부 작가였다
그래서 추리 소설의 공간은 집이 자주 등장한다
반드시 세상 경험이 많아야 글을 잘 쓰는 건 아닌 것 같다
이 두 여성 작가만 봐도 말이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 도 다시 읽고 싶다

코코 샤넬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어떻게 자신의 옷을 명품으로 승화시켰을까?
여성이 기업을 이룬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인데 말이다
그녀의 위대함은 여성을 코르셋으로부터 해방시킨데 있다
그녀는 사치품을 미적 기호와 심미안으로 연결시켰다는 비판을 받긴 하지만 어쨌든 대단하다
아무 것도 없는 가난한 처녀가 혼자의 힘으로 패션사에 길이 남을 거대 기업과 브랜드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신화다

난잡한 구성과 얕은 해설이 불만이지만 다양한 케이스를 알게 된 건 기쁘다
좀 더 깊이 있는 서술을 했더라면, 또 좀 더 유기적으로 연결됐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도 오페라와 문학에 대한 것도 읽을 생각이다
역시 새로운 것을 알아 가는 기쁨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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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끓는 사랑 - 세계문화예술기행 3
김혜순 지음 / 학고재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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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기행이라 기대를 많이 했는데 중간 정도다
스페인은 유럽에서도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한, 말하자면 변방 국가다
그래서 서유럽 여행할 때 여기 가려면 한 달은 잡아야 한다
내가 스페인에 가고 싶은 이유가 바로 프라도 미술관이듯, 이 책의 저자도 스페인이 배출한 위대한 예술가들을 보기 위해 먼 이국 땅으로 날아 갔다
역시 사람의 마음을 끄는 것은 인류의 영원한 유산인 문화임이 틀림없다

스페인은 이슬람의 지배를 받은 독특한 유럽 국가다
지도책을 열심히 봐야 할 것 같은데, 이베리아 반도가 아프리카와 가깝고 중동과도 지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나 보다
그래서 7세기 이후 이슬람이 팽창하면서 스페인까지 진격했고 수백년 동안 이슬람 지배권 하에 있었다
16세기에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나도 왕에 의해 통일됐다
국토 회복 운동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스페인도 이민족의 지배를 수 백년 동안 받은 셈인데 어떻게 르네상스 시대 때 그 많은 식민지를 거느릴 수 있었을까?
유럽 역사는 흥망성쇠가 잦아 동양사 보다 훨씬 흥미롭다
그 역동적 에너지가 그들의 발전을 이루었는지도 모른다

저자의 여정을 따라가 보면 이슬람 서원들이 많이 등장한다
특히 살아 있는 생명체나 사물을 조각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아라베스크라는 기하학 무늬가 발달했다고 한다
저자의 해설에 따르면 추상형이기 때문에 시대가 달라져도 촌스럽지 않고 그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는 충동이 생긴다
유럽의 동양적 풍경이라...
이슬람이 우리가 생각하는 동양과는 좀 다르지만 어쨌든 동서 문명이 하나로 잘 어울어져 멋진 풍경을 연출할 것 같다

더 관심 있었던 것은 가우디의 건축물이다
가우디가 유명한 건 알았지만 막상 그의 건축물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어쩜 그렇게 형형색색의 칼라풀한 페인트칠을 했을까?
또 건축물에 자유로운 곡선을 동원할 생각을 했을까?
원형이 아니라 완전히 파도치는 곡선 모형이다
그 파격적이고 자유로운 발상이 놀라울 뿐이다<BR>건축도 하나의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또 자유로운 생각의 표현일 수 있음을 느꼈다
가우디에 관한 관심이 증폭된다
꼭 직접 가서 보고 싶다

스페인 하면 뭐니뭐니 해도 프라도 미술관이다
다들 마드리드 가면 여기부터 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유럽이 우리를 끄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놀라운 미술관들 덕택인 것 같다
서양사가 곧 세계사가 되버린 현대에 와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인류의 위대한 유산을 감상하는데 동서 구분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프라도 미술관의 백미는 고야와 벨레스케스다
사실 고야의 그림이 왜 훌륭한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고흐 같은 정열적인 인상파 그림이나 미켈란젤로 같은 정교한 르네상스 그림을 좋아하기 때문에 해석하기 어려운 피카소나 대충 그린 듯한 고야의 그림은 솔직히 감동이 별로다
그렇지만 두 화가 모두 미술사에 워낙 중요한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라 관심이 간다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침범한 후 시민 병사들을 사격하는 그림은 아주 유명하다
자주 봐서 그런지, 아니면 워낙 훌륭한 평가를 받아서 그런지 내 눈에도 인상적으로 보이긴 한다
그래도 역시 친숙한 그림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이다
이것은 화가들이 꼽은 최고의 그림이라고 한다
나 같이 평범한 독자는 일단 평론가들이 좋다고 하면 좋게 인식하는 법이다
그래서인지 이 그림이 나에게도 특별해 보인다<BR>워낙 자주 언급되는 그림이라 직접 보면 가슴이 떨릴 것 같다
언젠가는 꼭 가서 직접 보고야 말리니!!

스페인 하면 생각나는 게 플라맹고와 투우, 그리고 집시다
이미 바르셀로나에서 투우는 금지됐고 전체적으로 사라져 가는 추세라 이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래도 좀 이상하긴 하다 1995년도에 쓰여진 기행문인데 왜 그 유명한 투우를 안 봤을까? 저자가 동물학대라고 싫어하나?)
플라맹고와 집시는 스페인 전역에 퍼진 것 같다
어딜 가나 집시가 등장한다
그들은 대체적으로 가난하고 도둑질 하거나 동정해서 먹고 산다
또 열정적으로 플라맹고를 춘다
캐스터네츠를 치는 경우는 드물고 박수를 치면서 신들린 듯 춤을 춘다고 하다
너무 더우니까 주로 시원한 동굴에서 관람을 한다
동굴 속에 앉아 신들린 듯 격정적인 춤을 보는 즐거움!!
얼마나 신비롭고 환상적일까? 우리도 이런 전통이 잘 계승됐으면 좋겠다

집시들이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유태인들은 미국에서 상류층을 형성하고 돈도 많고 기어이 나라까지 건설했는데, 이 가엾은 민족은 왜 소매치기로 전락한 걸까?
민족이란 이처럼 섞이기 어려운 독특한 집단일까? 원래 집시라는 것이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특성이 있나?
하여간 우리처럼 한 곳에 정착해 무려 5000년을 살아 온 사람들에게 이런 유랑 민족은 특이하게 보인다
저자는 집시들을 몹시 경계하는데, 이것도 결국 민족차별이라는 편견에 싸인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현실을 어쩌란 말인가!!

스페인 사람들은 엄청나게 먹어댄다고 한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는 워낙 더운 나라라 많이 먹고 푹 쉬는 게 체질화 됐다
특히 스페인의 시에스타는 유명하다
점심을 먹고 나면 상점이 문을 닫아 버리는 것이다
더위를 피해 휴식을 취하고 오후 일을 위해 원기를 충전하는 것이다
엄청나게 더운 것 같기는 한데, 우리처럼 부지런한 민족에게는 낯선 관습 같다
그래서 성당도 몇 백년 걸쳐 짓는 걸까?
저자는 스페인 사람들의 엄청난 식성과 불룩 나온 배에 깜짝 놀랜다
그러고 보면 동양인들은 다들 날씬하다
나도 유럽 가서 깜짝 놀랬다
진짜 비만이란 바로 저런 거구나, 고개가 다 끄덕여질 정도였으니까

야간 열차에서 고생한 얘기는 내 얘기 같아 웃음이 나왔다
3주간 유럽 여행하면서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잠자는 것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대체 나는 무슨 베짱으로 야간 열차를 많이 끼워 넣던지!!
그 놈의 열차 예약하느라 관광 포기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여행은 잘 먹고 잘 자야 한다
야간 열차, 생각하기도 싫다
그나마 이 사람들은 침대칸에서라도 잤다
우린 여섯 명이 들어간 그 좁은 객실에서 앉아서 밤을 보내야 했다
정말 끔찍하다
그렇게 고생하고 나면 다음 날 여행은 포기해야 한다
베네치아에 가서도 두깔레 궁전에 누워 잠만 잤고, 뮌헨 가서는 아예 호텔에서 나오지도 않았으니 지금 생각하면 유럽을 왜 갔나 몰라

물론 그 때 추억은 내 삶에서 가장 멋진 것이다
말로만 듣던 유럽을 직접 내 눈으로 체험했을 때, 역시 보는 것과 듣는 것은 확연히 다름을 느꼈다
문화적 쇼크라고 할까?
어쩜 그렇게 도시들이 문화적이고 아기자기 한지...
문화 콘텐츠가 참 풍부한 아름다운 도시라는 이미지가 남는다
어떤 도시를 가든 책에서 볼듯한 고딕 양식들의 건물들이 서 있고 그 넓은 분수대와 광장들, 또 공원, 박물관이나 미술관!!
특히 파리나 런던은 루브르와 내셔널 갤러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살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낄 정도였다
적어도 파리에 살면 혼자라도 외롭지 않을 것 같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혜택을 알고 있을까?

여행을 떠나고 싶다
무엇보다 나에게 감동을 주는 그림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
저자처럼 딸을 데리고 충분한 일정을 가지고 그것도 공짜로 하는 그런 여행, 정말 부럽다
물론 그녀에게는 책을 써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있었겠지만 그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즐겁게 할 수 있다
나도 아이를 갖게 되면 어렸을 때부터 꼭 해외 여행을 데리고 다니겠다
성장에 가장 큰 자극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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