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권력과 싸우다 - Kafka Franz
박홍규 지음 / 미토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카프카, 역시 어렵다
아직 내 수준이 이런 책을 읽을 만큼은 아닌 것 같다
박홍규는 비교적 쉽게 평전을 쓰는 사람인데 만만치 않은 걸 보면 카프카의 작품 자체가 어려운 것 같다
카프카의 일생에 대해 나온 부분은 재밌었는데, 작품 인용한 부분은 솔직히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
오늘 컨디션이 나빠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카프카는 체코에서 태어난 유태인이다
우리나라야 단일 민족 국가로 복잡할 게 없지만 유럽은 그 다양성 때문에 그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그 나라 사람이 아닌 경우가 많다
카프카는 체코에서 태어났으나 유태인이었고, 당시 체코를 지배하던 독일어를 구사한 사람으로 정체성이 모호하다
유태인이란 그 나라에 태어나도 국민으로 인정되지 않는 사람들인가?
팔레스타인에 독립 국가를 세울 수 밖에 없던 그들의 설움이 이해가 간다

카프카의 사진을 보면 무척 잘 생겼다는 느낌이 드다
저자도 인정하는 바다
젊어서 죽어서인가?
노년의 사진이 없고 젊은 시절 사진만 있어 더 멋있게 보인다
나름대로 인텔리 계층이었을 것 같다
대단한 벼슬은 아니더라도 법대 졸업 후 관리로 일했으니 나름대로 지식인으로 살았을 것이다
그는 특이하게도 산업 재해 보험 공단에서 공무원으로 일한다
작가와 공무원이라...
혹시 배수아도 카프카를 본뜬 건 아닐까?
카프카는 스피노자를 본받았다고 한다
스피노자는 렌즈알을 갈면서 밤에 글을 썼다고 한다
카프카는 당시 유명한 작가도 아니었고,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쓴다는 것을 참을 수 없어 다른 직업을 구했다
나는 늘 전업 작가가 되지 못한 것을 한탄스러워 했는데 카프카를 보면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다

카프카에게 있어 글이란 내적 고백, 바깥 세상에 대한 투쟁의 방법이었다
치열한 작가 정신이란 바로 이럴 때 쓰는 말 같다
아마추어리즘도 이 정도의 의식을 갖고 있으면 프로패셔널 못지 않을 것이다
그는 내면의 얼음을 깨는 도끼와 같은 책이 아니라면 왜 시간을 투자해 독서를 하겠냐고 반문한다
재미를 위해서라면 차라리 직접 글을 쓰겠다고 했다
깊이 공감하는 바다
누군가의 지적처럼 현대 사회에서 굳이 책 읽기만이 유일한 즐거움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이유는 우리 정신의 각성을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책을 통해 다른 사람의 사상을 공유하고 비판하고 내 앞날을 다시 설계하는, 또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찰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나는 독서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정신적 욕구라고 생각한다

카프카의 아버지는 성공한 유태인으로 유태주의를 혐오해서 가능하면 독일인처럼 보이려고 애쓴다
그는 독재적이고 가부장적인, 또 속물 근성이 농후한 인물이었다
평생을 권력과 싸운 아들과 당연히 반목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프카는 평생을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정말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고 싶었다면 관리가 된 후 독립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그가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 부모와 같이 살았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그의 집은 여러 식구들이 만들어 내는 소음 때문에 글을 쓰기에 적합하지도 않았다
카프카는 오후에 자고 모두 잠든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는 생활을 했다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독립했어야 하지 않을까?

카프카의 두 남동생은 어려서 죽고 세 명의 여동생이 태어나지만 불행히도 2차 대전 때 나치 수용소에서 죽는다
그의 마지막 사랑인 밀레나 역시 수용소에서 죽은 걸 보면 1차 대전 후 요절한 게 더 나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가 수용소로 끌려 갔으면 건강 때문에 일찍 죽었겠지만 그 안에서 치열한 갈등을 겪었을 것 같다
어쩌면 그의 문학이 한층 성숙할 기회가 됐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는 41세의 젊은 나이로 결핵에 걸려 죽는다
당시 결핵은 이미 치료제가 나와 불치병이 아니었는데도 원래 몸이 약해서인지 죽고 만다
남동생의 죽음 때문에 의사를 불신했던 카프카는 특이한 식이요법을 좋아하고 채식주의자였다고 한다
건강하지 못한 건 그의 책임 같다

박홍규는 카프카가 일찍 죽긴 했지만 병약하거나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약한 인간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직접 카프카를 안 만나 봤으니 뭐가 옳은 건지는 모르겠으나, 박홍규식 해석은 신선하다
그는 위인에게 덧씌워진 신비화나 이상화를 걷어내려고 한다
평범한 인간으로 대한다고 할까?
지나친 상징과 의미 부여는 위인의 실체를 가리고 오히려 그의 업적을 퇴색시킨다
그래서 박홍규식 해석은 새롭고 읽기 편하다
전부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박홍규에 따르면 카프카는 보험 관리 공단에서 이사까지 승진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노동자들을 위해 일하려고 애썼다
또 카프카는 데생 실력이 뛰어났다
그는 김나지움이 미술에 대한 안목을 뺏어 버렸다고 한탄하면서 손가락이 잘린 노동자의 그림을 보고서에 자주 첨부했다
그림 실력이 있으면 사물을 더욱 명확하게 관찰할 것 같다
지나친 비약 같지만 카프카의 뛰어난 관찰력이 삶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했을 것 같다
카프카는 노동을 신성시 하고 수영이나 보트타기 갖은 운동도 좋아했다
그는 자본주의 기업이 사라진 평등한 노동 공동체를 꿈꾼다
그래서 말년에 팔레스타인으로 들어갈 생각도 한다

물론 그는 유태주의도 싫어했다
권력을 싫어했던 만큼 민족주의도 혐오했다
자본주의의 폐해를 비판하면서 사회주의 역시 인간을 소외시킨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박홍규는 카프카를 아나키스트로 본다
박홍큐는 까뮈 역시 아카니스트로 간주했다
아나키스트를 무정부주의자로 번역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반권력주의자 뭐 이런 게 아닐까?
규제와 억압을 철폐하고 인간 본연의 자유를 추구하는 평등한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람들 정도?
작가들이 아나키즘에 경도되는 건 당연해 보인다
사회주의 보다 좀 더 그들의 속성과 어울린다

카프카는 여성과의 섹스를 혐오한다
감수성 예민해 보이는 이 친구는 사진만 봐도 그랬을 것 같다
그러나 자위를 금기시 하는 분위기 때문에 사창가에서 성욕을 해결하기도 했다
카프카는 첫 약혼녀 펠리체와 수백통의 편지를 주고 받는다
솔직히 부럽다
나는 아무래도 글 쓰는 사람을 만나야 하려나 보다
내가 꿈꾸던 이상적인 연애도 바로 이런 형태다
넘쳐 오르는 생각들을 격렬하게 편지에 적어 보낼 수 있는 사랑, 또 상대로부터 나만큼의 끓어 오르는 감정들을 고스란히 답장으로 받을 수 있는 바로 그런 관계를 원했다
그런데 펠리체는 카프카 보다는 현실적인 인물이라 수십장에 걸친, 거의 소설 수준인 카프카의 편지에 대해 가벼운 글로 답장했다고 한다
아마 좀 예민한 사람이라 느꼈을 것이다
그래도 그녀가 카프카의 편지를 소중히 간직한 덕에 무명 작가로 죽은 카프카 사후 활발한 연구를 할 수 있었다
옛 애인의 편지는 절대 간직해서는 안 된다는 충고가 위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나 보다
펠리체는 카프카의 편지를 출간해 병원비를 댔으니까

자신만큼 열정적인 밀레나를 만난 후 카프카는 또 많은 편지를 주고 받는다
당시 그는 율리에와 약혼한 상태였고 밀레나는 유부녀였다
간단히 말하면 부적절한 관계였던 것이다
그러나 카프카는 섹스를 혐오하고 정신적 사랑을 추구한 사람이었으니 이 둘 간에 직접적인 접촉은 없었고 편지로만 격렬한 사랑을 나눴다
카프카는 밀레나에게 남편과 헤어질 것을 강력히 권했으나 결국 그녀는 유태인인 남편을 떠나지 않고 2차 대전 때 수용소에서 죽는다
밀레나는 카프카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다

카프카의 작품은 어렵지만 그의 일생은 퍽 흥미롭다
무엇보다 전업작가가 아니면서도 치열하게 글을 썼다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든다
롤 모델을 만난 기분이랄까?
글쓰기나 독서에 대한 그의 태도도 정말 마음에 드다
나 역시 그렇다
내 정신 세계를 깨뜨리는 도끼로서 책을 읽고 싶고 외부 세계에 대한 투쟁의 일부로써 글을 쓰고 싶다
카프카가 공무원이라는 비교적 안정되고 시간이 많은 직업을 얻어 생계 걱정 없이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처럼, 나도 안정된 직업을 가져서 다행스럽다
솔직히 말하면 가만히 앉아 있어도 승진하는, 절대 잘릴 리 없는 공무원이 더 부럽다
내가 책에 대해 이렇게 강렬한 애정을 갖는지 알았다면 차라리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할 걸 그랬다
인문대에 진학해서 원하는 공부 마음껏 하고 공무원 시험 합격해서 적은 돈이지만 쫒겨날 리 없는 안정된 직장에서 책 읽고 글 쓸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할까?
배수아는 관세청에서 일하는 공무원인데 그녀처럼 유명 작가가 될 수는 없겠지만, 자기 만족감은 충분히 얻을 수 있을텐데

그렇지만 내 직업도 나쁘진 않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나아갈 바를 확실히 깨달은 기분이다
나는 돈을 많이 버는 것 보다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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