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유형의 역사 - 격리 형벌, 계몽, 자유 서울대 인문 강의 시리즈 8
한정숙 지음 / 민음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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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흥미로우면서도 시베리아는 잘 모르는 곳이라 지루하거나 어려울까 봐 걱정했었는데 역시 이 시리즈는 다 재밌다.

아마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교양 강좌를 책으로 엮은 모양이다.

깊이있고 전문적인 내용을 교양있는 독자층이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잘 쓰여져 있어 읽는 책마다 다 마음에 든다.

시베리아라고 하면 막연히 정치범들 수용소라고만 생각했다.

<러브 오브 시베리아> 같은 영화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같은 수용소를 소재로 한 소설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정치범이 있긴 했지만 주류는 아니고 대부분은 공동체로부터 추방해야 할 범죄자들이었다.

하긴 정치범이 아무리 많다고 그 넓은 시베리아에 얼마나 보낼 수 있겠는가.

저자는 시베리아가 영국의 오스트레일리아 식민지처럼 징벌로서의 유배지이자 경제 식민지라고 주장한다.

이 점이 인상적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아예 대륙으로부터 떨어진 당시로서는 절도인 만큼 탈출이 쉽지 않고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 시베리아는 그래도 같은 러시아 땅이고 육로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그 정도의 완벽한 추방은 아닌 느낌이다.

워낙 땅덩어리가 넓고 시베리아의 범위를 넓게 잡으면 러시아의 3/4에 해당되고 심지어 중국이나 미국보다 크다고 하니, 내가 생각하는 수준의 좁은 지역이 아닌 모양이다.

사실 워낙 넓고 인구도 적어 탈출은 수시로 일어났으나 사면되지 않는 이상 러시아 사회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어 계속 방랑해야 했다.

러시아는 모피를 찾아 유목민을 쫓아 내고 시베리아로 동진했는데 중국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별다른 방해없이 오호초크해에 도달할 수 있었다.

청 또한 강대국이었을텐데 중앙아시아나 티벳 점령이 훨씬 이득이라 생각해서 동토의 땅은 내버려 둔 것일까?

중국인들은 러시아인들처럼 흑담비 모피에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일까?

마치 미국인들이 금을 찾아 인디언들을 쫓아내고 서부 개척을 했던 것처럼 러시아인들도 시베리아 초원을 지배하게 됐으나 워낙 땅이 넓고 황량해 인구를 사민시키는 방법으로 유배형을 고안해 내게 된다.

마치 조선 초에 4군 6진을 개척하여 지방민들을 사민시켰던 것처럼 말이다.

남획으로 모피가 바닥나자 이번에는 광산에서 금은과 구리 등 값비싼 광물들이 발견되어 유배자들을 강제노역 시킨다.

중죄인은 광산에서 일하고 한 단계 낮은 범죄자는 농사를 짓고 산다.

그 외 수공업, 직물업 등에도 종사한다.

인구가 늘고 안정적인 정착촌을 만들길 원했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가족과 함께 가는 것을 권장하고 그 지역 여자와 결혼하면 정착금도 줬다,

그러나 범죄자들은 신랑감으로 인기가 없었고 착실하게 정착해서 얌전한 농민이 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미국 개척자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가족이 다 함께 이주해 정착했기 때문에 안정된 사회를 건설하고 국가를 세울 수 있었던 모양이다.

시베리아 유배자들 역시 정치범 같은 귀족 계층의 아내들은 헌신적인 자세로 남편을 찾아 기꺼이 시베리아까지 쫓아와 가정생활을 했고, 러시아 정교회의 구의례파들도 신앙의 박해자였던 만큼 신실한 자세로 열심히 정착 생활을 했다.

먹고 살만 하거나, 신앙심 같은 경건한 자세가 있어야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는 모양이다.


막연하게 시베리아의 황량한 이미지만 갖고 있었는데 유형지로서의 시베리아 개척기를 흥미롭게 잘 읽었다.

어떤 나라든지 영토를 넓히고 안정된 터전을 만드는 것이 거저 얻어지는 법은 없는 모양이다.

오늘날의 거대한 국가 러시아가 있기까지 국민들의 엄청난 희생이 있었고 또 그들을 채찍질 해 가면서도 무너지지 않고 큰 국가를 만들어 온 지도자들의 노력도 대단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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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20-04-19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arine님의 리뷰를 읽으니. 읽고 싶어 지는 책이네요. 사실은 이 시리즈는. 청나라, 키메라 제국,매이지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제외하고는 흥미를 가질만한 것이 없더라구요.

marine 2020-04-20 08:28   좋아요 0 | URL
시베리아를 징벌의 유배지이자 경제적 식민지로 본다는 관점이 특이했어요. 지루하지 않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역사 속의 전사들 - 아시리아 전사부터 게릴라까지
정토웅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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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 읽고 쓴 리뷰가 있다.

무려 13년 전에 읽은 책인데 아쉽게도 현재는 품절이고 오랜만에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나서 재독하게 됐다.

도서관 문닫을 시간에 걸려 거의 불이 꺼지려고 하는데도 마지막 장을 못 놓고 급하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쓴 리뷰를 보니 인물 외에 뒷부분의 게릴라전이나, 전쟁포로, 종군기자 등은 재미가 없다고 했던 것 같은데 다시 보니 그런 주변부가 더 흥미롭다.

고대 역사 부분은 저자가 전공이 아니라서 그런지 대부분의 역사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이라 사실 좀 지루했고 현대전 설명이 아주 흥미롭다.

아이젠하워와 패튼의 관계, 현대전에서 공군의 중요성, 과학자들의 군사 자문, 전쟁포로, 여군, 무기상 등을 재밌게 읽었다.

역사책에 등장하는 전사들도 일반인의 평범함을 뛰어넘는 대단한 용기의 소유자들이긴 하다.

알렉산더 대왕은 광대한 제국을 설립하고 젊은 나이에 죽었다는 신화적인 삶 말고도 문화통합을 추진하고 불멸의 의지와 용기 같은 성품만으로도 너무나 매력적인 인물이다.

후대인들이 그를 계속 추앙하는 까닭을 알 것 같다.

현대전에서 제공권 장악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전쟁은 경제력 싸움이 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과학이나 산업도 같이 발전하는 것 같다.

무조건 좋거나 무조건 나쁘기만 하는 일은 없는 모양이다.

공군 파일럿을 조명한 다큐를 본 적이 있는데 그 때는 그냥 군인인가 보다 했다.

그런데 책을 보니 조종사야 말로 전투의 승패를 좌우하는 최고의 핵심 전력이고 군대의 엘리트라고 한다.

엄청난 속도의 전투기들이 도입되어 이것을 조정하고 작전을 수행하려면 엄청난 체력을 갖고 맹훈련을 해야 한다고 한다.

걸프전의 제공권을 장악한 다국적 조종사들인 출격 전 하루 평균 2000회 이상의 연습을 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다.

그런 전투기 조종사도 지금은 여자들에게 개방되어 과연 남녀차별이 사라지고 있는 모양이다.

저자는 여군이 반드시 전쟁으로 나가야 하는 문제에 대해 약간 회의적인 듯한데 현대전이 과거처럼 체력만 요하는 것이 아니라면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모든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음은 분명하다.

예전에는 여의사에게 진료받기를 꺼려 했지만 지금은 절반이 여의사다.

세계 최초로 의과대학에 입학해 의사 면허증을 획득한 엘리자베스 블랙웰 이후로 지금은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의사가 될 수 있다.

군대 역시 여성들에게 점점 개방되고 있으니 권리에 맞는 의무 수행도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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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 인류를 위협한 전염병과 최고 권력자들의 질병에 대한 기록
로날트 D. 게르슈테 지음, 강희진 옮김 / 미래의창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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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독일의 안과 의사이면서 역사학도 같이 공부했고 미국에서 특파원으로 있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다.

의학사라는 분야도 연구해 볼만한 재밌는 분야 같다.

번역도 매끄럽고 내용도 한번에 쭉 쉽게 읽힐 정도의 수준이면서 전문적인 의학적 식견도 들어 있어 재밌게 읽었다.

350 페이지인데 4시간 정도에 다 읽었으니 비교적 평이한 수준의 내용이다.

고대인들의 죽음은 아무래도 기록이 너무 적다 보니 추측할 수밖에 없어 약간 지루하다.

알렉산드로스는 당연히 말라리아로 죽은 줄 알았는데 찌르는 듯한 상복부 통증을 근거로 과음에 의한 급성 췌장염을 의심하기도 하고, 웨스트나일바리어스라는 감염증을 의심하기도 한다.

젊은 건장한 남자가 30대 초반에 며칠만에 사망할 수 있는 질환이 뭐가 있을까?

로마의 황제 칼리굴라는 뇌염 후유증으로 간질을 앓으면서 인격이 변해 연회장에서 사람을 죽이는 등 극단적인 성격을 견디다 못한 이들에 의해 살해된다.

이렇게 확실한 암살이 아닌 이상 고대 독살설은 느닷없는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 당대인들의 음모론인 경우가 많을 것 같다.

당시 의학 지식으로서는 돌연사의 기전을 밝히기 어려웠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서양은 부검 문화가 활발한지 최고 권력자인 레닌이나 독일 황제 프리드리히 3세 같은 이도 부검을 통해 사인을 분명히 밝힌다.

부검에 대해 부정적인 동양과 매우 다른 문화 같다.

1차 대전 후 전 세계에 유행해 2500만에서 1억명 사이의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스페인 독감도 요즘의 코로나 바이러스와 비교되어 흥미롭다.

전 세계 인구의 5%에 해당되는 이들이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의 화가 클림트와 에곤 쉴레도 이때 사망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전 세계 인구를 단시간 내에 감염시켰다는 점에서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을 것 같다.

중세 페스트가 퍼진 것은 도시가 성장하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쉽게 전염됐기 때문인데 오늘날 코로나 바이러스도 워낙 이동이 활발해서 그런 듯하다.

흥미로운 것은 페스트가 퍼질 당시 화산 폭발로 인한 이상 기온 현상으로 농작물 수확이 급격히 감소해 면역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더 쉽게 퍼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빈민들이 훨씬 전염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반면 통풍처럼 육식 위주로 잘 먹는 귀족들이 걸리는 병도 있다.

헨리 8세 등도 통풍으로 고생했고 루벤스 역시 말년에 통풍으로 손이 마비되어 붓을 잡기 힘들었다.

현대 정치인들의 질병 이력도 흥미롭다.

제일 관심있는 사람은 케네디다.

케네디 전기에 따르면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의 공격을 받고 함선이 침몰해 대원들을 구하는 과정에서 요통을 얻었다고 했다.

그래서 유세할 때도 매우 고통스러워 했지만 밝은 모습으로 이겨냈다고 그의 애국심을 칭찬하는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사실은 그가 에디슨병이라는, 부신피질호르몬 부족에 시달려 지속적으로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는 과정에서 골다동증이 생기고 척추가 주저앉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힐러리도 간질일 수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유명인들은 언제나 건강한 모습으로만 대중 앞에 나서고 싶은 모양이다.

한 나라의 정책을 결정하는 대통령 정도의 위치라면 국민에게 정확히 공개하는 게 맞긴 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의 윌슨이나 루즈벨트처럼 말년에 병상에 누워 식물 대통령이 될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오류>

103p

폴란드의 지기스문트 왕은 구스타브 아돌프의 숙부로

-> 지기스문트는 구스타브 2세 아돌프의 숙부가 아니라 사촌형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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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일기 - 126일간의 평안도 암행어사 기록
박래겸 지음, 조남권.박동욱 옮김 / 푸른역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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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에 못 미치는 책이다.

옛 사람의 일기를 토대로 당시 사회상을 분석하는 책을 원했는데 이 책은 정말 한글로 번역만 해서 아쉽다.

번역과 연구는 또다른 차원인 것 같다.

뒷부분 해제가 너무 간략해 아쉽다.

얼마전에 읽은 정병설 교수의 혜빈궁 일기 정도 수준은 되는 줄 알았는데 국문으로 번역에만 초점을 맞춘 듯하다.

그래도 우리 학계에서도 이런 일기류 같은 개인 전적들이 많이 발굴되어 미시사 연구가 활발해지는 것 같아 반갑다.

이 책의 주인공은 순조 때 평안도로 암행어사를 떠난 박래겸이라는 인물이다.

홍문관 교리였다고 하니 아마도 문과에 급제해 고위관료를 역임한 인물인듯 한데 역사책에서는 이름을 보지 못했다.

보통 일기라고 하면 개인의 내밀한 감정과 생각을 고백하는 아주 사적인 기록이라 기대하는데, 옛 사람들의 일기는 일록이라 표현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오늘 날씨는 어땠다, 오늘 무슨 일을 했다 이 정도의 간략한 하루 일과 기록이라 대부분이라 아쉽다.

그러고 보면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이 대단한 문학적 가치를 가진 책 같다.

뚜렷한 목적을 갖고 서술했기 때문에 더 그렇겠지만 말이다.

생각했던 것처럼 암행어사 출두가 극비리에 이루어지기도 어려웠고 다른 책에서도 본 바지만, 수령을 현장에서 파직하는 등의 대단한 권한을 갖지도 못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국왕을 대신해 시찰하는 정도의 수준이었던 것 같다.

전통사회는 교류가 많지 않던 시대라 외지인의 등장은 금방 이슈가 되고 더군다나 하고 다니는 행색이 초라해도 말을 타고 어사 신분이다 보니 당당함이 베어 나와 눈치빠른 기생들은 쉽게 박래겸의 정체를 알아차려 버린다.

관리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도 접대를 받아 뱃놀이를 하고 관기가 수청을 드는 걸 보면 춘향전의 암행어사는 민중들의 환상 속에서나 존재했던 모양이다.

교통수단이 거의 없던 시대라 말을 타고 하루에 평균 40리를 이동하고 많을 때는 120리까지 갔다고 한다.

40리는 21km에 해당된다.

이것은 조사 때문에 쉬는 날도 다 합친 평균 거리이고 일기에 보면 대부분 90리를 갔던 것 같다.

말타고 신분도 숨기고 궁벽진 시골까지 이동했으니 암행어사로 내려갔다가 순직한 사람도 있다는 게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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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통해 본 양반들의 일상세계 - 17세기 <매원일기>를 중심으로 국학자료 심층연구 총서 11
정정남 외 지음 / 새물결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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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영남 지방의 사족인 김광계라는 인물이 28년간 쓴 <매원일기>를 바탕으로 당시 향촌 사회를 분석한 책이다.

역사책에 나오는 거대 정치 담론 말고 실제로 당시를 살아간 일반인들의 삶은 어땠는지 가공하지 않은 날자료로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16세기까지는 남귀여가혼의 풍속으로 혼인을 하면 처가 근처로 이사하였고 처가로부터 재산도 많이 물려받고 제사도 윤회봉사로 돌아가면서 지냈다.

집 구조도 부부가 안방에서 거주하여 사랑방을 따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남성들은 손님을 접대하고 개인 독서처를 갖기 위해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정자를 지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17세기 들어 부부가 안채와 사랑채에서 따로 거주하게 되어 그 공간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17세기는 주자학이 일상생활에 스며들어 가부장적 사회로 변화했고 18세기에 완벽하게 통제됐다.

조선이라는 왕조의 입장에서는 향촌까지 성리학 일변도의 통제된 사회가 되어 안정적이었으나 결과적으로 근대 사회로 변모하지 못한 원인이 된 듯하다.

반정 이후 서인 세력, 19세기에는 완전히 세도정치로 변하면서 지방 사족들은 더더욱 중앙 관계로 진출하지 못한 대신, 향촌 사회에서 문중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워갔다.

제사는 일종의 문중 단합 의식인 것 같기도 하다.

종가를 중심으로 제사를 지내면서 향촌에서 재지 사족으로 인정받으면서 관에도 대항하고 서원을 중심으로 공론을 형성해 자신들의 권리를 챙겼다.

당시가 병자호란 때라 이 책의 주인공 김광계는 의병장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의병으로 차출되어 전쟁에 나간 것은 노비들이었고 양반들은 군량미를 댔다고 한다.

양반이라고 하면 상민들을 억압하는 모습만 상상하기 쉬운데, 이들도 관으로부터 핍박받고 심지어 관찰사를 모욕했다고 형신을 받다가 도산서원의 원장이 사망하는 일도 있었으니 기본적으로 지방 사회는 중앙 권력에 의해 통제됐던 것 같다.

그래도 공동으로 대응하는 게 유리하기 때문에 혼맥과 학맥을 중심으로 외연을 넓히고 공론을 일으키는데 그 중심이 바로 서원이었다.

김광계도 도산 서원의 원장을 역임하면서 예안이라는 지역 사회를 이끌었다.

조선 후기 일기를 읽어보면 문과에 급제하기가 매우 어려웠던 듯하다.

역사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정말로 바늘귀 같은 좁은 문을 통과했던 사람들인가 보다.

이 공론을 이끌기 위해 양반들은 접빈객이 일상화 됐다.

사대부가 여자의 가장 중요한 일이 접빈객 봉제사라고 하더니만 일기를 보면 과연 그렇다.

거의 매일 손님이 오고 제사를 지낸다.

시장이 활성화 되지도 않았을 때라 손님이 오면 집에서 술을 담그고 음식을 준비해서 대접해야 했으니 매일 같은 손님 접대가 주부 입장에서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싶고 상당한 재물이 아니면 지역사회에서 위상을 유지하기가 어려웠을 것 같다.

음풍농월로 놀려고 손님들을 만나는 게 아니라 지역의 여러 사람들을 두루 만나는 사교 과정에서 인맥을 형성하고 공론을 만들었던 것이다.

역시 역사는 글을 남기는 사람들이 승리하는 모양이다.

하층민들의 일상은 글로 남겨진 게 없어 생활상을 재구성하기 어려우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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