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해 현대 지상전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32
모리 모토사다 지음, 정은택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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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분야라 맥락이 잘 안 잡혀 입문서 수준으로 도전해 본 책이다.

이 시리즈는 200 페이지 정도로 가벼운 분량이면서 주제를 한정한 장점이 있어 읽기는 편하지만 한쪽은 설명, 한쪽은 그림이나 도표로 정리하는 식이라 내용 면에서 아쉽다.

그리고 수험서도 아닌데 굳이 이런 어설픈 요약이 매 장마다 있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일본에서 출간된 책을 보면 흥미로운 주제도 많고 분야가 다양해 좋기도 하지만 자기계발서처럼 조잡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어 이 책도 끝까지 읽어야 하나 약간 고민했었다.

그렇지만 항상 느끼는 바처럼, 어떤 책이든 읽어서 나쁠 건 없다.

현대전의 특성에 대해 조금은 이해가 되는 좋은 독서 시간이었다.

특히 테러전이나 국지전에 초점을 맞춘 설명이 유익했다.

어찌 보면 마치 미군의 현대 지상전에 대한 설명을 일본인이 하는 거라 약간 웃기다는 생각도 든다.

역시 미국은 천조국인 모양이다.

다소 충격을 받은 부분은 6.25가 남침인지 북침인지 서로 다르게 주장한다면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쓴 부분이었다.

이런 책을 쓸 정도면 전쟁에 아주 관심이 많은 사람일텐데 아직도 이런 애매모호한 입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현대전의 대표로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을 비교해 설명한다.

핵무기가 존재하는 시대인 만큼 적을 완전히 섬멸하는 게 중요하기 보다는, 전후에 어떻게 패전국의 사회를 재건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췄다.

사실 전쟁이라고 하면 군인들끼리 총격을 가하고 적을 무찌르는 불꽃튀는 과정만 생각하기 쉬운데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전후 복구 과정인 것 같다.

고대의 전쟁처럼 패전민을 노예로 삼거나 다른 지역으로 사민시키는 게 아닌 이상 전후 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전쟁의 승리 만큼이나 중요한 문제고 이 책에서는 그 과정을 수행하는 것이 바로 CMO 즉 민사작전이라고 설명한다.

미군의 전쟁 수행 능력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전후 과정을 설명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핵무기 때문에 세계대전과 같은 대규모 전쟁은 배제하고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일어나는 국지전에 대응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췄다.

확실히 테러와의 전쟁이 일상화된 시대 같다.

맨 마지막에서 전투 피로 증후군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옛날에는 약한 자는 도태된다고 겁쟁이 낙오자 취급을 했는데, 21세기 현대에는 전쟁을 수행하다가 병을 얻은 상이용사 수준으로 치료하고 돌봐 주려고 한다.

인권의 진전인가?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소중다하는 뜻일까?

나약한 겁쟁이 한 사람도 다 안고 가려는 것이 진정한 복지 국가의 목표인가?

그런데 정말로 그것이 현실에서 가능할까?

sick role 을 우리는 진정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책에서 강조한 내용 중에 인상적인 것은, 전쟁도 여러 전략 중 하나일 뿐이고 가장 최후의 선택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외교 전략이 우선이기 때문에 백악관에서는 여러 루트를 통해 정보를 수집한다.

국방부의 의견 보다는 오히려 CIA 같은 정보부의 의견을 더 중요시 하여 정책을 수립한다고 한다.

확실히 무력 충돌이 우선시 되던 전통 사회와 상호 교류, 무역이 먼저인 현대는 다른 사회다.

책에서도 전후복구과정을 공들여 설명하면서 가장 중요한 성공의 열쇠는 바로 현지화, 즉 현지 주민들의 관습을 이해하고 그 문화와 언어를 습득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미국 문화의 확산, 특히 영화나 교육을 통한 전파는 미국 세계 전략 수립에 큰 도움이 될 듯 하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인인데,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에서 진 후에도 전후복구사업이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오늘날 일본은 미국과 같은 편에 서게 됐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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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 인민의 배신자 - 모택동은 왜 일본군의 進攻에 감사했나
엔도 호마레 지음, 박상후 옮김 / 타임라인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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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우연히 이 책의 번역자인 박상후씨의 인터뷰를 본 후 관심이 생겨 읽게 됐다.

모택동이라고 하면 홍군을 이끌고 국민당의 박해를 피해 연안으로의 대장정을 이끈 중국 공산당의 영웅이 아닌가?

어떤 의미에서의 배신자인지 궁금했다.

일당독재라는 의미에서 또 홍위병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거부감이 들긴 하지만 여전히 중국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호기심이 생겼다.

지금까지 읽은 책에서는 막연히 부패한 장제스의 국민당을 몰아내고 농민 소비에트를 건설해 민중의 힘으로 중국을 제패했다고 되어 있었다.

이 책에서는 전혀 다른 주장을 한다.

실제로 항일전쟁에 앞장 선 사람은 모택동의 공산당이 아니라 장제스의 국민당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군사력을 장악한 이가 장제스였으니 당연히 대부분의 항일투쟁은 국민당 쪽에서 수행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모택동 입장에서는 점, 즉 도시를 장악한 일본군을 피해 면, 즉 농촌 쪽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고 주로 게릴라 전술을 수행하고 농민들을 포섭하는 게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모택동의 항일 투쟁은 이미지 선전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오히려 한술 더 떠 판한년이라는 스파이를 앞세워 국공합작 때 국민당의 군사정보를 일본 이와이 에이이치에게 돈을 받고 넘겼다고 주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민의 배신자라는 것이다.

그 증거로 이와이 에이이치와 왕밍, 그리고 장제스 회고록을 들고 있다.

모택동 입장에서는 장제스가 계속 일본과 싸워서 군사력을 소진해야 중국 내 정권을 장악하기 쉬웠을 것이다.

모택동은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판한년 등의 스파이를 오히려 민족 배반 행위로 1955년에 잡아들여 결국 그는 옥사하고 만다.

최근 그 억울함이 밝혀졌다고 하는데 이 부분은 다른 자료를 좀더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인터넷 검색만으로는 정확한 전말을 알기가 어렵다.

저자는 모택동이 살아 있을 때는 난징 대학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오히려 그는 난징에 태평천국 기념관을 건립했다고 한다.

난징대학살을 필두로 일본의 전쟁 책임을 규탄한 것은 90년대 장쩌민이 정권을 잡은 이후인데, 그의 아버지가 일본 괴뢰 정부의 선전부장을 했던 전적 때문에 정통성 확보를 위해 반일 투쟁에 더욱 열을 올렸다고 한다.

그 후 현재까지 대외선전과 내부단결을 위해 반일 감정 자극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를 위해 모택동의 항일 투쟁은 더욱더 왜곡 날조되어 간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만주사변과 대동아 전쟁을 일으킨 일본 군부와 일본 정치권을 구별해서 설명한다.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전쟁 책임을 회피하려는 시도로 비난받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중요한 것은 21세기 현재적 시점에서 과연 어떤 태도가 도움이 될 것인가이다.

역자는 해설 부분에서 현재 대한민국의 반일 선동을 매우 위험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죽창을 들고 나서자고 선동하고 있고 또 그것이 대중에게 먹혀 들어가고 있으니 과연 평화로운 외교, 실리적 외교는 언제나 어려운 문제인 모양이다.

야만족에게 무릎을 꿇은 치욕을 갚자고 북벌을 외치던 주자학자들의 모습이 비현실적이고 어리석어 보이더니만 함부로 조상들을 비난할 일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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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히스토리 - 인류역사의 기원 생각하는 힘 : 세계사컬렉션 1
김서형 지음 / 살림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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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끌려 손이 갔는데 역시나...

중고생들이나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표지를 보니 청소년용이었다.

앞서 읽은 <도자기로 본 세계사>는 같은 시리즈인데도 정말 깊이가 있는데, 어쩜 이렇게 밖에 못 쓰나 실망스럽다.

인류의 기원을 밝힌다는 주제가 너무 거창해서인가?

<최초의 인류>를 읽고 나서 복잡한 호모 사피엔스의 기원을 정리하고 싶어 좀 쉬운 책을 골랐는데 그래도 이 부분은 약간의 도움이 됐고 뒷쪽으로 갈수록 중학교 교과서 수준의 서술이라 아쉽다.

저자로서는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을 같이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이런저런 근세 이야기도 삽입했겠으나 너무 뜬금없어 글의 맥락이 전혀 연결되지 않는다.

인류의 기원을 설명하다가 느닷없는 타이타닉 이야기를 하는 식이다.


분자시계를 근거로 인류는 600만~550만 년 무렵 공통 조상에서 침팬지와 갈라지게 된다.

호미니드, 즉 사람과에 속하는 정의를 확실히 모르겠다.

위키백과를 찾아보면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같은 대형유인원이 포함된다.

그 밑에 사람족, 즉 호미닌에 침팬지아족과 사람아족이 있다.

이 사람족의 하위 분류, 즉 사람아족에 호모속이 있고, 그 외에 파란트로푸스속,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 사헬란트로푸스속, 오로린속, 아르디피테쿠스속, 케냔트로푸스속이 있다.

사람속, 즉 호모의 종류가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등이 있는데, 저자는 이 하이델베르크인이 호모 사피엔스의 직접 조상이라고 한다.

용어 정의가 확실하지 않는 것 같아 다른 책을 참조해야 할 것 같다.

하여튼 인간의 진화는 일직선이 아니라는 게 중요한 듯 하다.

생명의 기원에 대한 부분에서 저자는 오파린의 원시수프 설만 설명했는데 이정모씨의 책에 따르면 요즘에는 거의 언급되지 않고 심해 열수구 가설이 받아들여진다고 했었다.

업데이트가 필요한 부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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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유럽 나의 편력 - 젊은 날 내 영혼의 거장들
이광주 지음 / 한길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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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별 4개 주는 책들이 많아져서 기분이 좋다.

한 권의 책에서 이렇게 많은 지식과 생각할 꺼리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기쁘고 행복하다.

책을 읽은 그 순간만큼은 세상 만사를 다 잊고 몰입하게 되는 것 같다.

현실로부터의 도피라는 자조적인 생각도 들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어쩌면 독서를 포함한 지적 활동, 혹은 문화나 예술, 교양 등도 종교나 윤리도덕, 거창한 대의명분, 시대정신처럼 인생을 살아가는 데 유의미한 방향키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앞서 읽은 이병한씨의 <유라시아 견문>에서는 동유럽 사상가들이 공산주의 이후의 대안으로 종교 즉 기독교를 내세웠다.

폴란드의 천주교나 러시아의 정교 등은 마치 우리의 유교 전통과도 같은 오래된 연원을 가진 민족 정신 비슷한 것이리라.

한국에서의 기독교는 어찌 보면 외세와도 비슷한 느낌이니 종교가 주는 의미가 서구 사회와 같을 수 없으리라.

그럼에도 종교의 광신과 도그마, 특히 이른바 근본주의자들이라 불리는 미국식 성경 무오류설 종파들이 먼저 떠올라 진정으로 21세기에 종교가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매우 회의적이었다.

이 책에서는 19세기 문화사가인 부르크하르트를 통해 국가, 종교, 문화 이 세 가지의 조화를 권한다.

국가라고 하면 애국심, 내셔널리즘, 오늘날 한국의 민족주의 내지 친일 청산 같은 걸 들 수 있겠고 종교는 이슬람 사회와 앞서 말한 공산주의 몰락 후의 동구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화는?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는 러시아 경구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과연 문화와 예술, 그리고 나같은 평범한 시민들의 교양은 이 급변하는 시대의 방향키가 될 수 있을까?


책이 참 예쁘다.

노란색 표지가 전혀 촌스럽지 않고 판형도 읽기 딱 좋고, 안의 사진들도 색감이 참 좋다.

한길사에서 책을 참 잘 만들었다.

이광주씨의 오래된 저작 "유럽사회-풍속산책"에서도 18세기 계몽주의에 대한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는데 이번 책을 통해서도 유럽의 많은 지식인들을 만나 볼 수 있었다.

이름만 들었지 실제로 어떤 사상을 가졌는지 전혀 몰랐던 유럽 지성인들에 대해 알게 된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다.

종교개혁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당대의 최고 지성이었던 에라스뮈스가 그것에 동조하지 않고 방관자 자세를 취했다는 점을 비판한 책들을 많이 봤다.

그런데 이 책에 따르면 루터는 행동하는 지식인이면서 맹목적이고 광기어린 집념을 가진 신앙인이었고, 에라스뮈스는 궁극적으로 관찰자의 역할을 자임한 지성인이자 휴머니스트였던 셈이다.

어려서는 행동하는 지식인이 참 인간이라 생각했었는데 나이가 들고 이른바 진보라는 이름을 앞에 내세운 사람들의 행태를 지켜 보면서 어쩌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일거에 때려부수고 전체의 이름으로 개인을 구속하고 재단하는 혁명이 아닌,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 휴머니즘적인 한걸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류>

72p

그들 가운데는 독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숙부로서 저명한 역사가인 오토 4세, 훗날 교황이 되는 두 명의 인물, 추기경이 된 몇몇 제자도 있었다.

-> 아벨라르의 제자인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숙부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아벨라르 자체가 한국에서는 유명하지 않은 신학자라 정보가 없어 찾느라고 혼났다. 아벨라르 제자 검색하면 죄다 엘로이즈와의 연애 얘기만 나온다.

아벨라르의 제자는 오토 4세가 아니라 중세 역사가인 오토 폰 프라이징이고, 그는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아니라 황제 프리드리히 1세의 숙부이다. 프리드리히 1세의 아버지인 슈바벤 공작 프리드리히 2세와 오토 폰 라이징은 아버지가 다르고 어머니가 같은 이부형제이다.

431p

디트리히의 아버지는 프로이센의 장교로 제1차 세계대전 때 러시아 전선에서 전사했다.

-> 위키백과에 따르면 프로이센의 장교로 러시아에서 전사한 이는 친부가 아니라 계부로 정식 입양하지 않아 성도 바뀌지 않았다. 친부는 베를린 경찰이었고 6세 때 사망했다.

434p

그리고 히틀러와 그녀의 싸움이, 생애를 건 긴 싸움이 시작되었다. 이때 그녀의 나이 29세였다.

-> 히틀러의 연설을 처음 들은 1933년은 그녀가 1901년생이므로 29세가 아니라 32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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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빈, 사극의 배반
정두희 외 지음 / 소나무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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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읽어야지 생각만 하던 책을 드디어 빌렸다.

2004년에 출간됐으니 벌써 16년이나 지났구나.

시간이 참 빠른 것 같다.

김혜수가 장희빈 역을 맡아 화제가 됐던 드라마를 소재로, 당시 왕실과 조정을 학술적인 측면에서 분석한 글들인데 밀도가 헐거운 느낌이 들어 약간 실망스럽다.

장희빈에 대한 21세기적인 해석인가, 자꾸 숙종은 정치적이고 공적인 목적으로 장희빈과 남인을 파트너로 선택하고 환국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폐위와 복위를 반복했다고 하는데, 그런 의도도 약간은 있겠지만 그게 주 이유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왕비가 자식을 못 낳아 후궁의 아들이 세자에 오른 사례는 조선 역사를 통틀어 너무나 많다.

오히려 편안하게 적장자가 계승한 경우를 찾기 힘들 정도인데 단지 후계자의 정통성 강화만을 위해 부득불 본처를 내치고 중인 출신의 후궁을 왕비로 세우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겠는가?

숙종 자신의 편협한 성격에 큰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숙종이 장희빈을 정치적 파트너로 삼았기 때문에 단순히 애정 행각으로 왕비를 폐위시키고 다시 복위시킨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다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연산군도 본인 성격이 괴팍해서가 아니라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서 폐비 윤씨 사건을 사화로 연결시킨 것인가?

모든 것을 다 사회 탓 구조 탓으로 돌리는 해석에는 반대한다.

유난히 숙종대에만 왕비의 폐위와 복위가 반복되었던 까닭은 숙종이라는 인물의 독특한 성격과 신분상승 욕구가 강했던 장희빈이라는 인물이 만났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저자는 줄곧 궁녀라는 것이 원래 공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정치에 개입하는 것이 금기를 깬 행동이 아니라 당연하다고 주장하는데, 그녀들이 품계를 받고 일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지극히 행정적인 궁궐 내부의 하급직에 불과했기 때문에 정치에 관여하는 것이 마치 당연한 책무인 양 기술한 것은 잘못된 견해라고 본다.

국왕이 왕비의 가문과 정치적 연대를 맺어 그 인척들을 등용할 수는 있으나 그것 역시 공적인 조정의 자리에서 이뤄질 때 합당한 것이지, 정말로 왕비나 후궁과 상의하여 정사를 돌본다는 건 측천무후 정도나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 싶다.

요컨대 조선이라는 전제군주정 치하에서는, 특히 유교적 덕목이 매우 중시된 나라에서는 저자의 견해처럼 궁녀들이 공적으로 정치에 개입하는 게 당연한 일은 절대로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자는 장희빈이 후대인에 의해 일방적으로 악인으로 묘사되었다고 무고함을 주장하지만, 어떤 후궁들도 후계자를 낳았다고 해서 정궁의 자리를 넘보지는 않았다.

남인이라는 정파와 연결된 것부터가 보통 정치력을 가진 여인이 아니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당장 다음대 영조의 후궁인 선희궁은 유일무이한 후계자 아들을 낳아 주고 그 외에도 많은 옹주를 낳은 궁인 출신이었지만 어떤 잡음도 없이 죽은 듯이 평생을 보낸다.

대부분의 후궁들은 그녀와 비슷했고 그것을 높이 숭상했으니, 장희빈의 경우는 조선시대에도 매우 특이하다 생각된다.


맨 앞 장에 역사 드라마에 대한 저자의 견해에 공감하는 바다.

사극은 고증에 충실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통해 문학적 상상력을 더해 관심을 갖게 만드는 데 의의가 있다.

삼국지가 역사와 안 맞는 것 투성이지만 이 불멸의 소설을 통해 우리는 무려 2천 년 전 중국 역사를 꿰뚫고 있다.

나 역시 KBS 에서 방영한 <근초고왕>을 통해 백제에 대한 무한한 관심을 갖게 됐다.

어쩌면 사극은 역사를 바탕으로 하지만 사실은 문학적으로 완성도가 있는지를 평가받는 게 중요할지 모르겠다.

문제는 사극을 곧 역사로 이해하는 대중들의 태도일 것이다.

역사왜곡하는 사극이 문제라기 보다는, 사극을 드라마가 아닌 역사로 받아들이는 대중들이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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