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장희빈, 사극의 배반
정두희 외 지음 / 소나무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오래 전부터 읽어야지 생각만 하던 책을 드디어 빌렸다.
2004년에 출간됐으니 벌써 16년이나 지났구나.
시간이 참 빠른 것 같다.
김혜수가 장희빈 역을 맡아 화제가 됐던 드라마를 소재로, 당시 왕실과 조정을 학술적인 측면에서 분석한 글들인데 밀도가 헐거운 느낌이 들어 약간 실망스럽다.
장희빈에 대한 21세기적인 해석인가, 자꾸 숙종은 정치적이고 공적인 목적으로 장희빈과 남인을 파트너로 선택하고 환국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폐위와 복위를 반복했다고 하는데, 그런 의도도 약간은 있겠지만 그게 주 이유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왕비가 자식을 못 낳아 후궁의 아들이 세자에 오른 사례는 조선 역사를 통틀어 너무나 많다.
오히려 편안하게 적장자가 계승한 경우를 찾기 힘들 정도인데 단지 후계자의 정통성 강화만을 위해 부득불 본처를 내치고 중인 출신의 후궁을 왕비로 세우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겠는가?
숙종 자신의 편협한 성격에 큰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숙종이 장희빈을 정치적 파트너로 삼았기 때문에 단순히 애정 행각으로 왕비를 폐위시키고 다시 복위시킨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다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연산군도 본인 성격이 괴팍해서가 아니라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서 폐비 윤씨 사건을 사화로 연결시킨 것인가?
모든 것을 다 사회 탓 구조 탓으로 돌리는 해석에는 반대한다.
유난히 숙종대에만 왕비의 폐위와 복위가 반복되었던 까닭은 숙종이라는 인물의 독특한 성격과 신분상승 욕구가 강했던 장희빈이라는 인물이 만났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저자는 줄곧 궁녀라는 것이 원래 공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정치에 개입하는 것이 금기를 깬 행동이 아니라 당연하다고 주장하는데, 그녀들이 품계를 받고 일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지극히 행정적인 궁궐 내부의 하급직에 불과했기 때문에 정치에 관여하는 것이 마치 당연한 책무인 양 기술한 것은 잘못된 견해라고 본다.
국왕이 왕비의 가문과 정치적 연대를 맺어 그 인척들을 등용할 수는 있으나 그것 역시 공적인 조정의 자리에서 이뤄질 때 합당한 것이지, 정말로 왕비나 후궁과 상의하여 정사를 돌본다는 건 측천무후 정도나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 싶다.
요컨대 조선이라는 전제군주정 치하에서는, 특히 유교적 덕목이 매우 중시된 나라에서는 저자의 견해처럼 궁녀들이 공적으로 정치에 개입하는 게 당연한 일은 절대로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자는 장희빈이 후대인에 의해 일방적으로 악인으로 묘사되었다고 무고함을 주장하지만, 어떤 후궁들도 후계자를 낳았다고 해서 정궁의 자리를 넘보지는 않았다.
남인이라는 정파와 연결된 것부터가 보통 정치력을 가진 여인이 아니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당장 다음대 영조의 후궁인 선희궁은 유일무이한 후계자 아들을 낳아 주고 그 외에도 많은 옹주를 낳은 궁인 출신이었지만 어떤 잡음도 없이 죽은 듯이 평생을 보낸다.
대부분의 후궁들은 그녀와 비슷했고 그것을 높이 숭상했으니, 장희빈의 경우는 조선시대에도 매우 특이하다 생각된다.
맨 앞 장에 역사 드라마에 대한 저자의 견해에 공감하는 바다.
사극은 고증에 충실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통해 문학적 상상력을 더해 관심을 갖게 만드는 데 의의가 있다.
삼국지가 역사와 안 맞는 것 투성이지만 이 불멸의 소설을 통해 우리는 무려 2천 년 전 중국 역사를 꿰뚫고 있다.
나 역시 KBS 에서 방영한 <근초고왕>을 통해 백제에 대한 무한한 관심을 갖게 됐다.
어쩌면 사극은 역사를 바탕으로 하지만 사실은 문학적으로 완성도가 있는지를 평가받는 게 중요할지 모르겠다.
문제는 사극을 곧 역사로 이해하는 대중들의 태도일 것이다.
역사왜곡하는 사극이 문제라기 보다는, 사극을 드라마가 아닌 역사로 받아들이는 대중들이 문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