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엔가 [환상의 책]을 읽은 후 두번째로 읽는 폴 오스터의 책이다..  

일단 제목은 멋지다.. 글의 전반적인 내용과 달의 궁전이 뭐 그다지 상관은 없지만서도, 책 속에 등장하는 세 남자의 인생 이야기가 달의 주기와 비슷한 면이 있다는 점에서는 잘 지어진 것도 같다.  

책에 등장하는 화자는 사생아로 태어나 소년기에 어머니를 여의지만, 자신을 극진히 아껴주는 삼촌과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왔다. 삼촌은 세상의 기준에서 보자면 실패한(?) 오케스트라 단원일지도 모르지만, 주인공 포그에게는 단 하나밖에 남지 않은 유일한 혈육이자, 보호자였다. 그랬기에 삼촌의 뜻밖의 죽음은 주인공에게는 삶 전체의 기반이 무너지는 일이었다.  

주인공은 더이상 삶에 미련과 의미를 두지 못한다. 그저 하루 하루 소멸되기만을 기다린다. 그는 자기 삶을 무위로 돌리기 위해 노력한다. 얼마 남지 않은 돈을 쪼개 쓰면서 가재도구들을 내다 팔면서 또 삼촌이 남겨준 책들을 헐 값으로 팔아 그걸 식료품으로 바꾸면서 조금씩 조금씩 자기 소유의 흔적들을 지우면서 자기 파멸의 길로 치닫는다. 그에게는 다른 기회, 예를 들자면 자기의 형편을 누군가에게 털어 놓거나, 장학금을 신청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하는 소위 말하는 건설적인 대안들은 다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와 세상을 연결하던 끈은 끊어졌다. 그저 아름답게, '서서히 몰락하고 소멸하리라' 이 생각에 빠져 있는 포그는 그의 바람처럼 서서히 몰락했다. 굶주리게 되고 살 던 곳에서 쫓겨나 공원에서 노숙을 하고 쓰레기통을 뒤져 음식을  찾는 신세가 되어 버렸어도 그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게 바로 자신이 원하는 거라고 스스로를 계속 합리화시켰다. (노숙 생활에 대한 묘사는 [파리와 런던의 영락 생활]이라는 책을 연상시켰다. 그 책은 조지 오웰의 실제 파리와 런던에서의 노숙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 폴 오스터도 공원에서 노숙을 해 보았을까??  노숙에 대한 묘사 부분이 꽤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런 그에게 기적처럼 내밀어진 손길, 키티 우!!  

그녀는 단 한번의 그와의 인상적인 만남 이후에 무엇에라도 홀린 듯 그를 찾아 다녔고, 절망의 수렁에 빠져있던 그에게 새로운 삶의 의미가 되어주었다. 역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그리고 포그는 키티 우의 격려 속에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서기 위해 직업을 갖게 된다. 그 직업이 에핑이라는 돈 많은 장님 노인의 말벗 겸 서기가 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숙식 제공이기에 특별히 갈 곳이 없던 주인공에게는 딱 맞는 일자리였다. 단 하나 문제가 있다면 에핑이라는 노인이 까다롭다는 점 정도.. 눈이 보이지 않는 에핑은 끊임없이 사물을 세세히 눈으로 보는 것처럼 말해주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사물을 말로 표현하는 일, 드러나지 않는 본질을 말이란 형식 속에 붙잡아 표현하되, 너무 늘어지거나 겉돌지 않게 적절한 타이밍안에 다 끝마지는 일, 그게 포그에게 노인이 원하는 일이었다. 어쩌면 모든 소설가에게 독자들이 요구하는 일도 같은 것일 것이다.  

포그는 첨엔 많이 힘들어하지만, 서서히 에핑을 통해 사물을 깊이 바라보는 법, 그걸 표현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그게 익숙해질 무렵부터 에핑은 포그에게 자신의 삶을 구술하기 시작한다. 수십년전에 이미 죽어 버린 화가..  황무지에서의 사고로 동료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고  그 자신도 죽음 가까이에 다가갔던 그는 더이상 과거의 그로 돌아갈 수가 없었기에, 본래의 성 바버를 버리고 에핑이라는 타인으로 위장해 평생을 살았다. 죽음을 얼마 앞두지 않은 에핑은 자신의 친 아들에게만은 자신의 삶의 진실을 알리고 싶어한다.  

에핑의 죽음 이후 포그는 줄이안 바버라는 에핑의 아들에게 에핑의 자서전과 유산을 전한다. 줄리안 바버는 거대한 몸을 가진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그의 외모 때문에 거리감을 갖게 되지만, 바버는 알면 알수록 빛나는 지성과 배려심을 가진 따뜻한 사람이었고 사랑했던 여자 키티 우와의 이별 이후 힘들어하던 그를 지극 정성으로 걱정해주고 위로해 주었던 사람이었다. 줄리안 바버의 제안으로 시작된 에핑의 과거 흔적 찾기.. 에핑이 조난당했던, 그래서 은거했던 동굴을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작가가 마지막으로 감추어 놓았던 퍼즐이 완성된다. 

 줄리안 바버는 포그의 엄마 에밀리를 알고 있었다. 그는 에밀리와 빅터 삼촌이 잠들어 있던 무덤에서 포그보다 더 서러운 눈물을 흘린다. 그 모습에서 포그는 모든 것을 불현듯 깨닫게 된다.. 

포그, 바버, 에핑 이 삼대는 서로 닮은 꼴이다.  

사람과 벽을 쌓고 스스로 단절과 소멸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감행했던 사람들이다. 포그는 공원의 굶주린 노숙자가 되었고, 에핑은 죽음을 위장했고, 바버는 스스로 자신의 모든 명성을 포기하고 먹어댐으로써 경멸받을 외모를 소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절망에서 나름대로의 해법을 찾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세상과 화해할 정도까지는 되지 않았지만, 세상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을 찾았다고나 할까... 

 너무도 똑 닮은 삼대가 서로의 존재를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삶이 조금은 덜 팍팍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질어진 달이 다시 차오르듯, 그들의 삶도 계속되긴 하겠지만, 조금은 더 따뜻해도 될텐데 하는 생각...  그럼 조금 더 편안하고 행복한 눈빛으로 달을 바라볼 수 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