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 - 의열단, 경성의 심장을 쏘다! 삼성언론재단총서
김동진 지음 / 서해문집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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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하면 뭔가 떠오르는 사건이 있나? 일제 치하에서 벌어진 사건 중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연도는 분명히 아니다. 외우기를 잘 못하고 싫어하는 이유도 있지만 이 연도에 벌어진 특별한 사건을 역사시간에 혹은 다른 곳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진 적이 없다. 그러니 처음 이 연도를 보았을 때 아무 것도 연상되지 않았다. 그리고 부제로 나온 “의열단, 경성의 심장을 쏘다!”란 문장은 또 다른 낯설음을 준다. 그래도 역사를 좋아하고 좀 읽었다는 나의 지식이 그 바닥을 보여주는 순간이다.

세계일보 사회부 캡이었던 저자는 2006년 8.15기획특집 기사를 낸다. 후배 기자들과 함께 서울 시내 항일독립운동 유적지 보존과 관리 실태를 탐사보도 했다. 유적지들 중 많은 수가 지자체의 관리 소홀과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 쓸쓸히 방치되고 있었다. 이 부분에서 나 자신도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기획특집 가운데 1923년 경성을 뒤흔든 사나이 김상옥과 황옥에 대한 이야기를 묻어두기 아까웠다고 한다. 기획시리즈 후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 자료를 찾고 수집하여 자신의 블로그에 연재를 시작했다. 그렇게 하길 3년 만에 단행본으로 나왔다. 왜 이런 과정을 쓰냐고? 저자의 노력 덕분에 잊고 있거나 몰랐던 역사의 사실을 알게 되고 그들의 행동에 고마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김상옥과 황옥이란 이름 너무 낯설다. 의열단과 김원봉이 낯익은 것에 비해 더 그렇다. 김상옥은 국사교과서에도 나온다지만 황옥은 그 이름조차 없다고 한다. 역사 속에서도 불평등이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아직 그가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의문들을 뒤로 하고 잘 몰랐던 1923년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조국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던진 두 독립운동가와 그들의 동지들을 만났다.

이야기는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사건으로 시작한다. 이 대담한 행동은 일제 경찰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 분노를 자아낸다. 누가 이런 대담한 행동을 했을까? 경찰들은 그 범인을 정확하게 추리하지 못한다. 그러다 김상옥이 몰래 잠입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가 범인일까? 그것과 상관없이 그는 잡아야 할 큰 적이다. 여기부터 이야기는 그를 잡기 위해 일제 경찰이 어떤 활동을 했는지, 그가 이 체포를 피하기 위해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와 그가 다시 경성으로 돌아온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김상옥이 어떻게 자라고 독립운동에 매진하고 그가 어떤 존재인지 간략하게 설명한다. 이 과정을 지나면 의열단 단원으로 그가 경성으로 온 이유를 설명하고, 그의 잠입이 들통한 후의 도피활동을 다룬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가 보여주는 대담하고 멋진 활약은 한편의 액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쫓는 자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단순히 그의 활약이 개인만의 것이 아쫓기는 자의 긴장감 속에 하나씩 드러나는 친일파와 항일파의 존재는 많은니라 조선의 독립을 바라던 수많은 인민의 것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은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멋진 장면들로 가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김상옥의 임무 실패와 함께 그해에 있었던 또 하나의 대담한 작전이 있다. 의열단의 폭탄 투척 사건이다. 이 사건은 결론적으로 실패했다. 하지만 저자는 실패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그 속에서 활약한 황옥에 중점을 둔다. 그는 일제 고등계 형사다. 이 직위는 친일파 중에서도 악질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속엔 숨겨진 사실이 있다. 경찰 속에서 그의 존재는 제5열이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친일 경찰 역할을 하지만 독립운동에 대한 열망과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도움으로 항일운동가가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3.1 만세 운동으로 놀란 일제가 외형적 압박 정책을 바꿨지만 내부적으로 더 고도의 정치 술책을 펼치고 경찰 숫자를 더 늘렸다. 이 늘어난 경찰들은 더 많은 밀고자와 친일파를 거느리고 치안유지에 힘쓴다. 이런 상황에서 폭탄 투척으로 일제 요인들을 암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충분한 자금도 없는 의열단임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저자는 황옥과 김시현을 중심에 두고, 어떻게 자금을 모으고, 고성능 폭탄을 만들고, 어떤 사람들이 그들을 도와주었는지 알려주고, 어떤 기지를 발휘하여 폭탄을 가지고 들어왔는지 보여준다. 이 과정 또한 감동적이고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아마도 이 두 사건이 실패로 끝났기에 낯설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기개와 의지와 노력은 그 어떤 찬사를 보내도 부족하다. 일제 강점 초창기에 이미 많은 친일파와 밀고자 덕분에 실패한 것을 생각하면 그 이후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해방 후 김원봉이나 김시현 등의 다른 독립운동가들이 느낀 절망감과 허탈함과 분노는 과거완료형이 아니다.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그냥 덮어두려는 세력이 있는 한 현재진행형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인물의 형상에 아주 약간 아쉬움이 있지만 잊고 있던 역사와 인물들을 되살린 것으로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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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떠나지 않았더라면
티에리 코엔 지음, 이세진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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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대 없이 읽었다가 예상외의 재미를 누렸던 첫 작품의 기억이 희미해진 지금 그의 두 번째 소설을 만났다. 전작 <살았더라면>처럼 이번도 조건문을 내건 제목이다. 이 조건문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선택의 순간을 말한다. 이것은 옛날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 하나처럼 선택받지 못한 또 다른 길에 대한 갈망이자 현실에 대한 불만족이다.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다른 선택을 하면 어땠을까? 이런 의문들이 쌓여 밖으로 표출될 때 우리 과거 속으로 돌아가게 된다. 다니엘과 장, 이 두 남자의 이야기는 바로 거기서 시작한다.

제롬. 그는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자살테러로 죽었다. 시체조차 온전하게 찾지 못할 정도의 처참한 죽음이다. 이 사랑스런 아들의 죽음은 한 가족을 절망과 끝없는 충격에 빠트린다. 특히 아버지 다니엘은 이 무저갱 같은 절망과 상실을 테러리스트에 대한 분노로 바꾼다. 이제 그의 삶은 테러를 지시했다고 추정되는 이슬람 종교지도자 셰이크 살인에 목표를 둔다. 살인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도 교육도 받지 못한 그가 이것을 실행하는 것이 쉬울 리가 없다. 이 살인을 위한 준비과정과 심리묘사와 과거가 이야기의 한 축으로 자리 잡는다.

거리의 부랑자 장은 갑자기 납치된다. 누가 그를 납치했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단지 10년 전 그가 죽인 이슬람 종교지도자와 관련이 있음을 암시할 뿐이다. 이 10년의 세월은 알코올 중독과 절망과 추락의 시간이었다. 죽음을 늘 생각하였지만 결코 실천할 자신이 없었던 그에게 이슬람 과격분자 같은 사람들의 납치는 조그마한 편안함을 줄 정도다. 중동에서 있었던 처형장면을 생각하면서 자신도 그 같은 죽음을 맞이하지 않을까 추측할 뿐이다. 그의 납치를 중심으로 또 하나의 이야기 축이 형성된다.

다니엘과 장, 이 두 남자의 이야기가 교대로 펼쳐진다. 분노와 절망으로 가득 찬 상태에서 죽이고자 하는 대상에게 접근하려는 과정과 함께 펼쳐지는 다니엘의 과거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그냥 보통의 건달이었던 그가 사랑하는 여자를 만난 후 어떻게 자신을 절제하고 변하고 성공하게 되었는지 추억과 회상을 통해 보여준다. 이 성공은 그에겐 성취감을, 가족에rps 경제적 풍요를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이 성공에 대한 욕망은 어느 순간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존재를 잠시 잊게 만든다. 작가는 그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현재로 오면서 왜 그렇게 복수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사실 이야기의 다른 한 축을 구성하고 있는 장은 납치되어 비디오로 녹화된 후 주체적인 존재보다 대상으로 더 많이 다루어진다. 그의 현재 마음 상태를 다루고 있지만 이슬람 과격분자들에게 납치된 사실이 방송된 후 미디어와 관료들의 대응과 반응에 더 많은 비중을 둔다. 미디어 방송의 대상이 되어 그의 존재가 여론 속에서 개인이 아닌 하나의 상징처럼 다루어진다. 이것은 테러리스트의 질문처럼 그의 가치를 어떻게 볼 것인가와 맞닿아 있다. 그러면서 장의 이야기는 점점 앵커 에릭 중심으로 옮겨간다. 이 중심 이동은 단순하게 이야기 거리가 없어 생긴 것이 아니라 작가의 치밀한 구성에 의한 것이다.

‘떠나지 않았더라면’이란 가정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모든 이야기는 그가 떠났기 때문에 생겼다. 다니엘은 제롬의 복수를 위해 떠났다고 하지만 결국은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가 떠남으로 남아있던 아내와 또 다른 아들은 버림받고 큰 상처를 입는다. 만약 그가 이들마저 잃었다면 그의 선택에 대해 박수를 치거나 최소한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그는 자신의 분노와 복수심에 먹혀 가족을 버린 것이다. 그것이 자신이 생각할 때 가장 올바른 행동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셰이크가 중동에서 일어났고 현재도 일어나고 있는 미군 등의 폭격에 의한 죽음을 말하는 순간 그 명분이 사라진다. 

잘 짜인 구성과 빠른 전개는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면서 빠르게 읽힌다. 두 화자의 정체는 얼마 읽지 않아 쉽게 알게 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각각 다른 주제와 무게로 재미를 준다. 상당히 무거운 주제임에도 긴장감은 이어지고, 읽는 나 자신에게 질문을 계속 던지면서 읽게 한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면들이 과도한 설정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주제의식과 긴 여운을 남겨놓은 장면으로 사그라진다. 그리고 다시금 나에게 묻는다. 나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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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엄마 찬양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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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은 지 2주가 넘었다. 서평을 쓰려고 마음먹었지만 몇 가지 구성과 인상만 간단히 머릿속을 스쳐지나갈 뿐이었다. 점점 쓰는 것을 미뤄두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 느낌을 적어나갈 것인가 몇 번을 생각했지만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컴퓨터를 켜고 자판을 두드리면서 기억과 스쳐지나간 감상에 집중해보자고 생각했다. 조금은 다른 사람들의 평이나 책 소개에 기대어서 말이다.

모두 열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 그림이 들어간 장은 모두 여섯이다. 여섯 그림은 이야기와 별개의 것처럼 보이지만 등장인물들과 연관이 있다. 그리고 이 소설 대단히 에로틱하고 페티시하다. 어느 장면은 너무 노골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순간도 있다. 멋진 엉덩이에 집착하는 리고베르토 씨의 행동 속엔 페티시즘이 보인다. 그의 이런 집착은 첫 그림 설명 속에서 잘 드러난다. 뭐 덕분에 그가 다른 여자에게 전혀 관심이 생기지 않는 좋은 일이 있지만 말이다.

재혼한 루크레시아에게 하나의 근심이 있다. 그것은 리고베르토의 아들 알폰소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알폰소가 편지 한 장을 보냈다. 생일 축하 편지다. 편지에 감동한 그녀가 늦은 밤 그의 방을 찾아간다. 이 둘의 만남이 보통이라면 화기애애하고 기쁨으로 충만해야 하지만 알폰소의 행동 하나가 그녀로 하여금 의문을 잠기게 한다. 이 행동들은 새엄마를 찬양하는 것인데 뒤로 가면서 노골적인 유혹으로 바뀐다. 이 속에 숨겨진 욕망과 뒤틀린 감정은 이 소설이 단순한 포르노그래피가 아님을 알려준다.

이번 소설은 단숨에 읽었지만 쉽게 몰입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많지 않은 분량과 에로틱한 장면이 단숨에 읽게 만들었다면 은유와 풍자가 뒤섞인 장면들은 그 의미를 파악하게 만들며 몰입을 방해했다. 각자의 욕망에 충실한 세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입에 발린 거짓으로 사람을 유혹하거나 잘못된 행동을 어쩔 수 없는 일이나 변명으로 욕망을 정당화시키는 모습은 역설적이지만 지독하게 인간적이다. 내적 갈등이 욕망에 손을 들고, 욕망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도덕의 탈을 쓴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겉으로 욕할지 모르지만 인류의 역사 속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온 일이다. 

사악한 아이 알폰소의 나이가 몇 인지 지금도 궁금하다. 아이로 불리지만 그의 심리와 행동은 결코 어리지 않다. 마지막 장에서 펼쳐지는 은밀한 요혹은 다음을 궁금하게 만든다. 이에 대한 정보들이 다음 이야기 <리고베르토 씨의 비밀노트>에 나올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 소설 속에서 가장 욕망에 솔직한 리고베르토 씨의 규칙적이고 강박적인 행동들은 살짝 남의 비밀을 엿본 듯한 재미를 준다. 약간 거부감이 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요사의 다른 작품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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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소울 1 블랙 캣(Black Cat) 6
가키네 료스케 지음 / 영림카디널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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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사상 최초로 3개 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하였다는 문구가 호감을 주지만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다. 뭐 큰 기대가 실망으로 이어진 경우가 종종 있다보니 그렇다. 하지만 첫 장을 읽을 당시 나의 감정은 분노로 가득하였다면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은 슬픔과 통쾌함을 느꼈다.  

하나의 국가가 자국의 국민을 외국에 팽개치고 나몰라한 경우가 우리나라 역사에도 있지만 일본의 경우는 사실 전후라는 시대를 생각하더라도 의외의 사건이었다. 특히 다른 책에서 브라질 등의 중남미 이민 2세가 일본에 취업 목적으로 들어온 사실을 이미 접했지만 이런 비극적인 과거사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소설의 첫 장은 브라질 이민을 간 한 일본인의 처참한 과거에 대한 기록이자 뒤에 벌어질 사건의 당위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장이다. 읽다보면 정부와 영사관에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다. 감정을 격하게 만드는 작가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그들이 경험한 과거가 그만큼 분노를 자아낸다. 이후의 진행은 일본 정부에 대한 복수를 위한 준비와 복수자들의 과거와 현재가 이어진다. 여기서도 상식을 초월한 그들의 첫 복수에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도전까지 엄청난 속도감과 흡입력으로 사람을 잡아당긴다.  

범인들에게 강한 동조를 하면서 이들을 쫒는 방송국과 경찰청의 모습은 풍부한 상황 설명과 다양한 캐릭터의 등장으로 재미를 높여가고, 범인 케이와 방송기자 다카코의 연애이야기는 즐거움과 기대감을 배가시킨다.  

이 소설이 나온 2003년과 책 말미에 설명된 2004년 고이즈미의 브라질 이민단 대표 앞에서의 눈물 흘린 사과가 시차는 있지만 당연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이민 시기의 정책 담당이나 결정자에 대한 후속 조차와 처벌을 생각하게 되지만 이에 대한 언급은 없다. 자신들의 결정이 어떤 참사를 불러올지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지만 자신들의 승진이나 보신만을 위해 이 정책을 실행에 옮긴 그들에게 국가가 연금을 지급하고, 그 일에 대한 책임을 문책하지 않는 것은 분명 후세에 일어날 일에 대한 면책 기능을 할 것이다. 뭐 그 당시 인물들 대다수가 죽었겠지만.  

일본 추리소설에서 다양한 캐릭터와 전개 방식을 접하지만 이런 소설을 경험한 것은 처음이 아닌가 한다. 대부분의 테러가 범인의 입장에서 정당하게 대변되지만 주인공의 경우는 그를 쫒는 형사들이지 않는가? 하지만 이 소설에서 범인이 주인공이다. 정부에 가하는 테러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반응을 이끌어낼지는 모르지만 나의 경우에 있어서는 통쾌함을 느꼈다. 그래서 더욱 재미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주인공의 브라질적(음! 표현할 다른 말이 없어서) 성격이 그런 느낌을 강하게 부채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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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큰 쇼어 블랙 캣(Black Cat) 15
피터 템플 지음, 나선숙 옮김 / 영림카디널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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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블랙 캣 시리즈를 읽었다. 한때는 이 시리즈 작품들에 반해서 열심히 모으고, 읽었다. 하지만 요즘 너무나도 많은 장르소설이 나오면서 손길이 뜸하다. 사놓은 책들이 쌓여만 가는데 그래도 사는 걸 멈추지 못한다. 수집병이다. 그 목록 중에 블랙 캣 시리즈도 들어있다. 읽지 않은 이 시리즈 중에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예전에 읽은 서평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화려한 수상경력이야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배경이 호주란 점이 눈길을 더 끌었다.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번 선택도 올바른 것이었다.

호주하면 캥거루, 시드니 등이 먼저 생각난다. 친구가 살고 있어 한 번 가야지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지만 마음뿐이다. 이런 마음과 함께 나에게 호주는 친구가 사는 곳과 유명한 영화 촬영지 혹은 관광지 정도다. 그런데 이 소설 속에서 드러나는 호주는 다르다. 빛 속에 가려진 어두운 그림자들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원주민과의 대립, 인종차별주의, 마약, 난개발 등의 현재 호주가 안고 있는 문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살인사건과 숨겨진 과거의 어둠은 점점 더 불쾌감과 함께 고조된다. 

캐신은 대도시 형사로 있다가 하나의 사건 때문에 조용한 시골 마을 포트 몬로 경찰로 내려왔다. 심리적 평화를 위해 쉬려고 하지만 가정부에 의해 발견된 그 마을 유지의 살인사건으로 다시 현장으로 돌아간다. 유지 버고인 씨는 한때 유명한 발전기 제조 회사 사장이었고, 그 회사를 판 후는 도움을 요청하는 대부분 사람들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는 선량한 부자였다. 그런 그가 공격받고 죽은 것이다. 사라진 것은 단지 고가의 시계뿐이다. 이 시계는 하나의 단서가 되고, 맬버른의 한 곳에서 신고가 들어온다. 원주민 아이들이 그 제품을 팔려고 온 것이다. 그들은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된다.

미국처럼 원주민과 함께 사는 코로마티는 문제가 많다. 백인과 원주민의 대립, 마약, 폭력, 강간 등이 범람한다. 그중에서 던트 정착지는 원주민이 사는 곳이다. 처음엔 용의자를 잡기 위해 늦은 밤 정착지로 갈 것을 계획했지만 원주민의 반발을 염려한 크로마티의 합굿 형사의 제안에 따라 도로 중에서 체포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 계획은 폭우와 우발적인 요인과 폭력적인 경찰의 행동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아이들 중 두 명이 죽고, 한 명이 부상을 당한 것이다. 여기에 죽은 아이 중 한 명은 호주연합 대표의 조카다. 경찰의 무리한 체포와 인종문제까지 겹치면서 살인사건은 정치문제로 발전한다. 

작가는 능수능란하게 등장인물을 만들고, 그들을 자신이 창조한 공간 속에 자유롭게 풀어놓는다. 처음엔 단순히 호주의 풍경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선을 끌었는데 뒤로 가면서 사건이 점점 커지면서 빠져들게 만든다. 단순히 강도 살인 사건 정도로 생각했는데 파고들어가니 그 뿌리가 과거와 맞닿아 있다. 용의자 중 유일한 생존자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을 때 경찰 수뇌부는 이것으로 사건을 종결하려고 한다. 하지만 뭔가 찜찜하다. 여기부터 캐신의 형사 본능과 뛰어난 활약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수많은 등장인물 중 부랑자 렙은 독특한 존재다. 처음 그가 등장할 때만 해도 그냥 스쳐지나가는 인물이거나 사건과 연관되어 금방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캐신의 집에 머물면서 그의 일을 도와주고 생활하면서 그의 외로움을 들어낸다. 지속적인 등장과 함께 그의 정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으면서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편안하게 보아도 될 그의 등장이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어떤 과거의 비밀을 안고 있을까 되묻게 한다. 얼핏 스쳐지나가는 대화 속에 단서 몇 개가 흘러가는 것은 단순히 그의 방랑 때문은 아닐 것이다. 

거의 500쪽에 달하는 분량이지만 단숨에 읽게 한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멈춘 듯 앞으로 나가가면서 점점 커지는 사건은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호주의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은 낯설지만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초반에 몇 가지 추리를 했는데 모두 깨어졌다. 섣부른 판단과 다른 작품의 기억이 그런 문제를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이 사건이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일임을 알게 된다. 권력과 결탁한 부패와 비리와 추악한 욕망은 상상을 초월하고, 그 바닥을 정확히 보여주지 않는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빨리 번역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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