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변호사 - 붉은 집 살인사건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 1
도진기 지음 / 들녘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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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처음 책 표지와 제목과 두 권이 같이 나온 것을 보고 외국 유명 추리소설 번역본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국 추리소설이다. 이전에 발표한 단편을 모은 책이 아니라 장편 두 권이 동시에 출간된 것이다. 그것도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로 말이다. 좀처럼 추리소설 시장에서 보기 힘든 출판이다. 이런 상황이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 현직 판사가 쓴 본격 미스터리라니 얼마나 매혹적인가! 시리즈는 늘 가능하면 1권부터라는 생각을 가진 내가 첫 권을 뽑아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어둠의 변호사 고진은 작가처럼 판사 출신이다. 그가 왜 판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로 변신했는지 정확하게는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 부분에서 그 단서를 살짝 흘려 보여주지만 뭔가 계기가 된 사건은 아직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시리즈가 이어지면 한 번쯤은 반드시 다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왜 그가 어둠의 변호사로 불리는 것일까 하는 의문은 이야기 첫 부분에 나온다. 변호사지만 법원에 가지 않고 의뢰인을 만나서 조용하고 은밀하게 해결하기 때문이다. 소송 등으로 사건을 크게 만들거나 남에게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사건을 처리하는 그의 탁월한 능력은 의뢰인의 입맛에 딱 맞다. 

우면산 언더배기에 의뢰인 남광자의 집이 있다. 이 집의 소유자는 그녀가 아닌 오빠 남성룡이다. 그런데 문패엔 서태황이란 이름도 같이 있다. 약간의 의문을 가지고 들어간 집에서 남광자를 통해 고진은 이 집안의 기이하고 섬뜩한 사연을 듣는다. 그것은 서태황의 아버지 서판곤이 광자의 엄마를 살해한 것과 얼마 전에 서태황의 아내가 살해당한 사건이다. 서판곤은 광자 남매의 의붓아버지다. 그가 아내를 죽인 후 달아났고, 얼마 후 시체로 발견되었다. 이 살인은 광기의 흔적이 보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서판곤이 세금 문제 때문에 집 명의를 아내 앞으로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살인사건 후 서태황이 오히려 남성룡에게 얹혀사는 모양새가 된다. 엄마를 죽인 살인자의 아들과 함께 사는 것이다. 정말 쉽지 않은 상황이다. 비록 그들이 어렸다고 해도 말이다.

광자가 고진을 부른 것은 이 집안의 살인사건을 해결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오빠 남 교수가 암으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유언을 작성하면서 딸 진희 다음으로 그녀가 아닌 서 누군가를 2순위로 삼은 것이다. 육십이 넘은 그녀가 만약 한 푼도 상속을 받지 못하면 생계를 유지할 방법이 없다. 이 때문에 어둠의 변호사를 통해 소송을 통하지 않고 노후를 보장받을 방법을 찾으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고진도 가족 내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의뢰를 간단하게 마무리하고 나오려는데 남진희가 나타난다. 그는 그녀의 미모에 반하고, 그 집안의 광기와 살인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사건이 벌어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놓고 이야기는 진행된다. 그는 남진희 때문에 과거 사건을 조사한다. 그의 곁에는 강력계 팀장 이유현이 있으면서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을 도와준다. 하지만 선대의 살인사건은 마무리되었고, 서태황 아내의 살인사건은 그 어떤 용의자도 찾지 못한다. 미궁 속에 빠진 사건을 뒤지면서 관계자와 가족들의 알리바이를 조사하는데 이전처럼 특별한 허점이 보이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바로 이 알리바이 부분이다. 작가는 치밀하게 알리바이를 구성해놓고, 고진을 통해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하면서 이야기를 회오리 속으로 밀어 넣는다. 한 번 빠지면 그 혼란 속에서 정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본격적인 사건이 펼쳐지는 것은 남진희의 죽음부터다. 그녀는 부산 달맞이 고개 별장에서 추락해 죽었다. 현장 검증 결과는 추락사의 가능성이 높지만 고진은 그 집안의 광기어린 내력을 생각하면서 타살 가능성을 조사한다. 이번에도 역시 그녀의 죽음으로 득을 볼 사람들의 알리바이를 조사한다. 용의자들은 남 교수와 동생 그리고 서태황 가족이다. 그런데 약간의 허점은 있지만 좀처럼 깨어지지 않는다. 고진은 다시 반복적인 알리바이 조사에 집착하고, 그 허점을 찾는다. 하지만 쉽지 않다. 너무 탄탄하다. 작가는 등장인물과 용의자를 두 집안사람으로 한정시켜 놓고 이야기를 그 속에서 풀어낸다. 

전체적으로 잘 읽히고 몰입하게 만든다. 트릭과 알리바이를 통해 추리하는 재미를 준다. 하지만 중간에 갑자기 찾아와 살게 된 노인의 정체가 밝혀진 뒤에도 독자들에게 정확한 추리를 할 수 있는 단서 제공에 인색하다. 인물들의 성격을 약간은 공식처럼 풀어놓았고, 트릭과 알리바이를 조금은 과장되게 만들었다. 마지막에 사건을 해결하고 탐정 역인 고진이 사건을 해설하는 부분에서 장광설이 이어지지만 왠지 모르게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한다. 악의 유전자를 너무 과장한 탓일까? 명탐정처럼 중심에서 사건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면서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하지만 이런 아쉬움 속에서 현직 판사의 경력은 세부적인 법률 등에서 힘을 발휘한다. 개인적으로 다음 작품에서 어떤 발전이 있을지 궁금하다. 매력적이면서 약간은 어설픈듯한 이 두 콤비의 활약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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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령들의 귀환 - 1636년 고립된 한 마을에서 벌어진 의문의 연쇄살인사건 꿈꾸는 역사 팩션클럽 3
허수정 지음 / 우원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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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왕의 밀사>로 눈여겨보았던 허수정의 작품이다. 전작에서 탐정 역을 맡았던 박명준이 다시 등장한다. 이 두 작품 사이에 <제국의 역습>을 포함하면 박명준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다. 소개 글을 보면 앞으로 이 시리즈 계속 나올 모양이다. 반가운 소식이다. 이번 작품은 지난 작품들과 차이가 있다. 그것은 사건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조선이고, 유명한 인물들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설정은 작가의 상상력이 잘 발휘될 수 있게 만들지만 동시에 현실성을 제대로 담지 못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번 소설의 경우 이 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을 탄다. 하지만 후자에 더 가깝다.

이야기는 현재에서 시작하여 과거로부터 첫째 날까지 오고, 다시 오늘이 내일로 이어진다. 이 흐름 속에서 박명준과 오카다가 어떻게 만났고, 왜 이 까마귀 가득한 마을로 오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머리 둘 달린 까마귀와 불로장생 전설은 조금 황당한 이야기지만 예전에 까마귀 고기에 정력에 좋다고 거의 씨가 마른 것을 생각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것을 작가가 염두에 두었는지는 모르지만 하나의 배경 이야기로 충분히 매력적이다.

꿈속에서 여자아이를 보는 것을 시작한다. 그의 아픈 과거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여자아이 도모에다. 눈을 뜬 그가 마주하는 것은 낯선 여자다. 어리둥절하다. 그리고 한 남자가 옆에 있다. 함께 한 동행을 찾는다. 옆에 누워 있다고 한다. 그들은 승냥이 떼에게 쫓길 때 낭떠러지에서 떨어졌다. 오카다가 떨어지는 그를 감싼 바람에 부상이 적었다. 그들이 만난 것은 불과 열흘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런 친절을 베푼다. 고맙다. 자신들을 구해준 윤성호에게 그를 오촌 아저씨라고 소개한다. 이런 그에게 한 남자가 찾아온다. 대구 감영에서 온 김경덕이다. 

대구 감영에서 그가 온 것은 이 마을 어귀에서 발견된 시체 때문이다. 내장들이 모두 사라진 시체가 그의 시선을 끌었다. 5년 전 머리 둘 달린 까마귀를 찾아온 사람들이 사라졌을 때 그는 이 마을을 조사한 관리다. 그러다 이상한 시체가 발견되자 상사에게 졸라 다시 왔다. 이 이상하고 불길한 마을에 단 한 명의 수하도 대동하지 않고 말이다. 그런 그에게 박명준이 보여주는 행동과 추리력은 반가운 것이다. 이제 그는 명준을 대동하고 이제까지 자신이 찾은 단서들을 돌아보며 조사에 박차를 가한다. 홀로 오면서 생긴 불안감을 들어내기 위해 조금은 무리한 방법을 사용한다. 

시간적 배경은 1693년으로 후금이 조선을 일차 침공한 이후다. 아직 전란의 기운이 남아 있는 시점이다. 대구 팔공산 근처 고립된 마을에서 발견된 시체와 이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은 심상치 않다. 그리고 마을 중심에 위치한 성황당의 위치나 모습이 조선의 것과 달라 어색하다. 마을을 다스리는 인물이 신관이란 것도 낯설다. 여기서 은연중에 일본색을 드러낸다. 김경덕이 살인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신관을 만나자고 했지만 그는 두 달째 나타나지 않고 있다. 마을의 낯선 기운을 파악한 그가 그들을 흔들기 위해 내부에서 협력자를 구하고자 한다. 보부상을 하는 이기성이다. 다시 이어지는 연쇄살인의 시작은 바로 이때부터다.

이중첩자 노릇을 하려고 한 이기성이 신관을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살해당한다. 그 시간에 박명준 등은 망령 같은 일본 무사를 보게 된다. 지독하게 외지인에게 배척적인 마을에서 이런 망령은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다음 날 시체는 발견되고, 김경덕은 자신이 거의 회유했다고 믿은 그의 죽음에 분노한다. 마을 촌장과 마을 조직의 조장 역을 맡은 강태범을 범인의 배후 등으로 몰아간다. 촌장 집에 모여 사건을 조리 있게 추리하던 명준의 말을 증명할 증거가 나온다. 이상하고 낯선 모양새다. 그런데 김경덕이 이 증거를 가지고 너무나도 강하게 강태범을 몰아붙인다. 명준이 말리는 것도 무시하고 말이다. 그러다 또 하나의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은 또 다른 사건을 불러오기 위한 하나의 시발점일 뿐이다.

작가는 한 마을 속에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켰다. 동생을 찾는다는 명분으로 명준과 동행한 오카다, 그들을 구해준 윤성호와 그의 딸 연화, 대구 감영에서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온 김경덕, 그 마을에서 유일한 선비인 장수봉, 무슨 비밀을 품고 있는 듯한 성황당을 지키는 꼽추, 그리고 실질적으로 마을을 지배하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신관 등이 그들이다. 사건들이 이어지고, 불안감이 고조되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역시 박명준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심에 있는 것은 전쟁으로 고생한 고을 사람들과 그들이 숨기고 있는 비밀이다. 그의 날카롭고 명석한 추리로 하나씩 답을 찾아내지만 역시 사건을 막아내지는 못한다. 이것은 어쩌면 탐정이란 역할이 지닌 한계인지도 모른다. 전작에 비해 약간의 아쉬움이 있지만 이 시리즈 계속해서 주시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한국소설에서 보기 드문 탐정을 계속해서 만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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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부크 부인의 초상 샘터 외국소설선 4
제프리 포드 지음, 박슬라 옮김 / 샘터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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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힌다. 재미있다. 몸 상태가 거의 최악임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읽었다. 사실 처음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아직 한 번도 읽은 적 없는 작가고, 사람을 보지 않고 초상화를 완성하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기 때문이다. 과연 사람을 보지 않고 제대로 그려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생겼다. 이런 저런 의문과 약간의 불안감을 몇 쪽 읽지 않아 날아갔다. 왜 수많은 독자들이 가독성과 재미를 말했는지 알 수 있었다. 사놓고 아직 읽지 않은 그의 다른 책에 눈길이 간다.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 피암보는 부호 리드의 요구에 따라 리드 부인의 초상화를 완성한다. 그런데 이 초상화가 실물과 전혀 닮지 않았다. 리드의 불륜이 들통나자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피암보에게 아내의 초상화를 의뢰한 것이다. 부호 리드의 바람은 성공한 듯 보인다. 하지만 화가 피암보는 돈에 자신의 영혼을 판 기분이다. 이런 때 한 맹인이 찾아온다. 일 년 동안 그림을 그려서 버는 돈보다 많은 액수로 그를 유혹한다. 이 돈을 받으면 그가 바라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이 한순간의 선택이 그를 혼란과 공포의 시간으로 몰아간다.

맹인 왓킨이 데리고 간 곳은 부자들이 사는 곳이다. 이런 곳에 산다면 약속한 금액을 지불하는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간 곳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하나의 병풍이다. 그 병풍 뒤에서 샤르부크 부인이 초상화를 의뢰한다. 거액을 미끼로 말이다. 그런데 조건이 괴이하다. 자신을 보지 않고 초상화를 완성하라는 것이다. 만약 자신과 똑같은 초상화를 그려낸다면 약속한 금액의 두 배를 주겠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녀를 보지 못할 뿐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그녀를 상상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런 그림은 초상화가 아니고 상상에 의한 인물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는 유혹에 넘어간다.

두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피암보가 샤르부크 부인을 만나고, 그곳에서 얻은 이미지를 바탕으로 하나의 인물상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 작업이 단순히 상상력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가 존경하는 화가이자 아편 중독자인 셴즈가 곁에서 도와준다. 그는 단지 상상력만 동원할 것이 아니라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그녀의 정체를 알 수 있는 실재적인 기록을 찾으라고 한다. 이 작업은 그녀의 이야기가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거짓이 아님을 알려주고, 그녀가 지닌 미스터리에 한 발 더 다가가게 만든다. 물론 그만큼 위험도 높아지지만 말이다.

다른 하나는 샤르부크 부인의 과거사다. 그녀의 과거는 피암보에게 혼란과 환상을 심어준다. 그녀의 이야기는 창조된 것처럼 느껴지고, 나중에 미스터리를 해결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무녀로서의 능력과 환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라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특히 그녀의 이야기와 피암보 등이 발견한 단서가 만나는 부분에선 또 다른 미궁으로 독자를 몰아간다. 혹시 앞으로 계속해서 이런 미스터리가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피암보와 샤르부크 부인의 만남과 대화가 중요한 축으로 작용한다면 1893년 뉴욕에서 발견되는 피눈물을 흘리는 시체는 추리소설의 재미를 만들어낸다. 독립된 하나의 사건이 아님을 알 수 있기에 과연 누가 이런 살인을 저지르는지와 어떻게 그런 피해자를 만들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거기에 샤르부크 부인의 정체는 무얼까 하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혹시 하고 생각한 것은 정답이 아니고, 또 다른 추리는 역시 맞았다. 약간 낯익은 설정이라 쉽게 파악할 수 있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설정이 재미를 손상하지는 않는다. 다만 전체적인 완성도에 조그마한 아쉬움을 줄 뿐이다.

작가는 후기에서 엄밀한 의미의 역사소설로 받아들이길 거부한다.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이 사실을 알아서 그런지 한 번도 역사소설로 생각한 적이 없다. 오히려 판타지나 스릴러라는 생각을 더 많이 했다. 이것은 장르를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동시에 이 작품이 다양한 장르를 품고 있음을 알려준다. 다양한 풍경과 재미를 전해주면서 책읽기에 몰입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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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흩날리는 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4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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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을 처음 읽은 것이 <아웃>일 것이다. 이 소설을 읽고 그 분위기와 전개와 구성에 완전히 반했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추리소설을 많이 읽지 않은 때라 더 그랬다. 그러면서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몇 권 더 읽었지만 <아웃>을 능가하는 작품을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아웃>과 나란히 놓아두고 싶은 작품을 만났다. 아직 사놓고 읽지 않은 그녀의 작품들을 생각하면 몇 권 더 생길지 모르지만 말이다.

1993년 미로 시리즈 첫 권으로 출간된 작품이다. 사실 상의 데뷔작으로 제39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에 대한 소개 중 눈길을 끈 것은 ‘일본 여성 하드보일드의 위대한 시작점’이란 평이다. 개인적으로 일본 하드보일드 최고봉으로 하라 료의 작품을 꼽는데 이 작품은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그녀는 탐정이 되고 싶어서 된 것도 아니고 남자 탐정처럼 무력을 어느 정도 갖춘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무라노 미로가 어떻게 탐정 일을 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펼쳐지는 사건과 사람들의 관계와 삶은 어둠 저 깊은 곳에서 급격하게 떠오른다.

어느 소설처럼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한다. 미로는 자살한 남편에 대한 기분 나쁜 꿈을 꾸다가 깬다. 그녀를 깨운 것은 전화벨 소리다. 시간은 오전 3시 조금 전이다. 받지 않고 그냥 잔다. 늦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한 남자에게 전화가 온다. 그녀가 있는지를 알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곧 나루세가 온다. 그는 친구 요코의 남자 친구다. 그가 온 이유는 요코가 1억 엔을 들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 돈이 야쿠자의 돈임을 생각하면 위험하다. 이때만 하여도 그녀는 남편이 죽은 후 무력증에 빠져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다. 바로 요코의 실종과 1억 엔이 맞물려 그녀를 조사 탐정의 길로 인도한다.

1억 엔. 요코의 실종. 이 둘은 동시에 생겼다. 이 둘을 같이 묶어서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녀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왜 위험한 1억 엔을 들고 달아난 것일까? 이런 의문을 뒤로 하고 미로와 나루세는 그녀의 흔적을 쫓게 된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사실들은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요코의 모습이 아니다. 거짓과 허세와 욕망과 사랑이 뒤엉켜 있다. 하나씩 조사할 때마다 낯선 요코의 모습이 보인다. 그 낯설음은 요코만의 것이 아니다. 미로 자신의 낯설음도 같이 드러난다. 이 과정을 작가는 건조하면서 사실적인 문장으로 표현한다. 대단하고 매력적이다.

소설의 전반부는 사실 어느 정도 도식적이다. 친구가 사라지고, 그녀가 마지막으로 건 전화가 미로라면 당연히 그녀가 의심받는다. 여기에 야쿠자가 개입하고, 남자 친구도 사라진 돈에 대해 결백하고, 사건 해결을 위한 시한이 정해져 있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런 도식적인 전개를 통해 긴장감을 불어넣고, 사건 해결 과정에서 만나고 드러나게 되는 사실들은 그녀만의 매력을 충분히 느끼게 만든다. 육체적으로 너무나도 무력한 그녀가 어떻게 감성과 상상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지 말이다. 

“중요한 건 이상하다고 느끼는 감성과 왜인가를 생각할 줄 아는 상상력이야.”(243쪽)란 아버지의 말은 중요한 순간에 그녀에게 영감을 준다. 평범해 보이는 사건의 이면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이 바로 이 소설이 주는 또 다른 재미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구성 같은데 그 속에 담겨 있는 인간의 뒤틀리고 어두운 욕망과 악의 등이 그런 부분을 지운다. 가볍게 시작하여 무겁게 읽히지만 몰입도가 좋아 단숨에 읽게 된다. 지금 이 순간 먼저 나온 <다크>를 다른 작품 출간 전에 읽을까 고민한다. 미로의 길이 어디로 어떻게 이어지는지와 그 어두운 길을 확인하고픈 마음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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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3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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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표지를 펼치면 섬뜩한 그림으로 변신한다. 이미 알고 있던 이미지지만 늦은 밤 붉은 빛의 표지를 볼 때면 가슴 한 곳에서 스멀스멀 피어나는 감정이 묘하다. 제목 또한 마찬가지다. 장르문학에 관심 없는 사람이 본다면 아마 ‘뭐 이런 책이 있나?’하고 욕할 정도의 표지와 제목이다. 그것은 이 책을 들고 전철을 탈 때 사람들의 시선에 괜히 신경이 쓰이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시선끌기란 측면에서 성공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외형적인 이야기로 시작한 것은 초판본 표지가 기존 변신 표지들과 다른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한낮에 펼치면 조금 밋밋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내용은 읽으면서 요코미조 세이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한 일본색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기 때문이다.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한 가문의 지벌이란 설정과 머리 없는 귀신의 등장은 이제 웬만큼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한 나에게 변함없이 혼란을 가져다준다. 환상을 지우고, 사실에만 집중하면 해답을 얻을 수 있다는 추리소설의 금언을 알고 있다고 하여도 말이다.

미쓰다 신조란 작가 처음이다. 본격 미스터리와 민속적 호러를 결합시킨 작품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일본에는 수백만의 신들이 있다고 할 정도인데 그것을 잘 살리는 작가인 모양이다. 이번 작품은 히가미 가의 저주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무대는 히메카미 촌이고, 각각 다른 두 시간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첫 번째는 이치가미 가의 십삼야 참배고, 두 번째는 이십삼야 참배다. 이 마을에서 이치가미 가는 아주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고, 아오쿠비의 지벌은 그 가문 대대로 자손이 귀한 상태로 만든다. 그것은 가문의 남자들이 자라면서 한 명씩 사고 등으로 죽는 것이다. 이런 일이 몇 백 년을 이어오면 믿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소설의 구성은 흥미롭다. 히메카미 촌의 머리 없는 살인사건을 추리소설 작가가 된 전직 주재소 순사의 아내 다카야시키 다에코가 그 사건을 소설로 바꿔 연재하는 것이다. 작가가 화자로 등장하지 않고, 그 당시 사건을 조사했던 남편 다카야시키 하지메와 그 사건을 중심에서 관찰한 하인 이쿠타 요시타카라는 아이의 시선을 통해 풀어낸다.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하고, 이전 기록과 기억을 더듬어 그 당시 벌어진 사건의 사실을 나열하면서 독자 탐정들의 의견을 요청한다. 독자에 대한 일종의 도전이다. 중간에 이전 미스터리 작품에서 화자나 의외의 인물이 범인이었다는 설정을 거부하면서 말이다.

두 개의 시간 대에서 벌어지는 머리 없는 살인사건은 참 많이 꼬여있다. 히가미 가의 독특한 전통과 아오쿠비의 지벌이 맞물려 펼쳐진다. 이 가문의 수장은 역시 이치가미 가인데 이 집안에 남자 상속자가 없으면 다른 집안이 이치가미 가가 되고, 그 집안은 후타가미나 미카미 가가 된다. 한 마을 지배할 정도의 가문이라면 그 속에 욕망이 꿈틀거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대대로 전해지는 저주는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이용하기 딱 좋은 소재가 아닐 수 없다. 기괴한 환상과 저주가 엮이고, 이어지는 머리 없는 살인사건이 이것을 더 증폭시키면서 미로 속으로 끌고 가기 때문이다.

작가가 단서를 던지면서 독자들에게 범인이 누군지 알려달라고 했을 때 나 또한 작가의 의도대로 범인을 찍었다. 읽으면서 혹시 했던 부분들이 작가의 의도에 의해 무시하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너무 순진했다. 전체 구성을 너무 얕보고, 사실에 집중하기보다 지벌과 머리 없는 존재들에 너무 매혹된 것이다. 뭐 이런 것 때문에 뒤에 펼쳐지는 반전의 연속이 주는 재미를 만끽하게 되지 말이다. 참 도조 겐야 시리즈라고 하지만 그가 등장하는 것은 중간에 잠시 기차 속에서 만나고 마지막에 진짜 범인을 추리하는 장면에 등장하는 것이 전부다. 그 짧은 등장이 충분히 인상적이긴 하지만 말이다. 다음 작품에서 만나게 될 도조 겐야는 어떤 모습일지 지금부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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