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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큰 쇼어 ㅣ 블랙 캣(Black Cat) 15
피터 템플 지음, 나선숙 옮김 / 영림카디널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블랙 캣 시리즈를 읽었다. 한때는 이 시리즈 작품들에 반해서 열심히 모으고, 읽었다. 하지만 요즘 너무나도 많은 장르소설이 나오면서 손길이 뜸하다. 사놓은 책들이 쌓여만 가는데 그래도 사는 걸 멈추지 못한다. 수집병이다. 그 목록 중에 블랙 캣 시리즈도 들어있다. 읽지 않은 이 시리즈 중에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예전에 읽은 서평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화려한 수상경력이야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배경이 호주란 점이 눈길을 더 끌었다.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번 선택도 올바른 것이었다.
호주하면 캥거루, 시드니 등이 먼저 생각난다. 친구가 살고 있어 한 번 가야지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지만 마음뿐이다. 이런 마음과 함께 나에게 호주는 친구가 사는 곳과 유명한 영화 촬영지 혹은 관광지 정도다. 그런데 이 소설 속에서 드러나는 호주는 다르다. 빛 속에 가려진 어두운 그림자들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원주민과의 대립, 인종차별주의, 마약, 난개발 등의 현재 호주가 안고 있는 문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살인사건과 숨겨진 과거의 어둠은 점점 더 불쾌감과 함께 고조된다.
캐신은 대도시 형사로 있다가 하나의 사건 때문에 조용한 시골 마을 포트 몬로 경찰로 내려왔다. 심리적 평화를 위해 쉬려고 하지만 가정부에 의해 발견된 그 마을 유지의 살인사건으로 다시 현장으로 돌아간다. 유지 버고인 씨는 한때 유명한 발전기 제조 회사 사장이었고, 그 회사를 판 후는 도움을 요청하는 대부분 사람들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는 선량한 부자였다. 그런 그가 공격받고 죽은 것이다. 사라진 것은 단지 고가의 시계뿐이다. 이 시계는 하나의 단서가 되고, 맬버른의 한 곳에서 신고가 들어온다. 원주민 아이들이 그 제품을 팔려고 온 것이다. 그들은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된다.
미국처럼 원주민과 함께 사는 코로마티는 문제가 많다. 백인과 원주민의 대립, 마약, 폭력, 강간 등이 범람한다. 그중에서 던트 정착지는 원주민이 사는 곳이다. 처음엔 용의자를 잡기 위해 늦은 밤 정착지로 갈 것을 계획했지만 원주민의 반발을 염려한 크로마티의 합굿 형사의 제안에 따라 도로 중에서 체포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 계획은 폭우와 우발적인 요인과 폭력적인 경찰의 행동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아이들 중 두 명이 죽고, 한 명이 부상을 당한 것이다. 여기에 죽은 아이 중 한 명은 호주연합 대표의 조카다. 경찰의 무리한 체포와 인종문제까지 겹치면서 살인사건은 정치문제로 발전한다.
작가는 능수능란하게 등장인물을 만들고, 그들을 자신이 창조한 공간 속에 자유롭게 풀어놓는다. 처음엔 단순히 호주의 풍경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선을 끌었는데 뒤로 가면서 사건이 점점 커지면서 빠져들게 만든다. 단순히 강도 살인 사건 정도로 생각했는데 파고들어가니 그 뿌리가 과거와 맞닿아 있다. 용의자 중 유일한 생존자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을 때 경찰 수뇌부는 이것으로 사건을 종결하려고 한다. 하지만 뭔가 찜찜하다. 여기부터 캐신의 형사 본능과 뛰어난 활약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수많은 등장인물 중 부랑자 렙은 독특한 존재다. 처음 그가 등장할 때만 해도 그냥 스쳐지나가는 인물이거나 사건과 연관되어 금방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캐신의 집에 머물면서 그의 일을 도와주고 생활하면서 그의 외로움을 들어낸다. 지속적인 등장과 함께 그의 정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으면서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편안하게 보아도 될 그의 등장이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어떤 과거의 비밀을 안고 있을까 되묻게 한다. 얼핏 스쳐지나가는 대화 속에 단서 몇 개가 흘러가는 것은 단순히 그의 방랑 때문은 아닐 것이다.
거의 500쪽에 달하는 분량이지만 단숨에 읽게 한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멈춘 듯 앞으로 나가가면서 점점 커지는 사건은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호주의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은 낯설지만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초반에 몇 가지 추리를 했는데 모두 깨어졌다. 섣부른 판단과 다른 작품의 기억이 그런 문제를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이 사건이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일임을 알게 된다. 권력과 결탁한 부패와 비리와 추악한 욕망은 상상을 초월하고, 그 바닥을 정확히 보여주지 않는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빨리 번역되었으면 한다.